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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7. 14. 화요일

아까이 소라









올해 초 샤를리 엡도 사건이 터졌고, 나는 쿠아시 형제에 대해 글을 썼다. 그 글에 누군가 내게 “돈 많은 집에 태어나서 고생한 번 안 하고 프랑스 건너가서 유학 중이니까 그런 배부른 얘기 할 힘이 남아 도는 ‘금수저’”라고 댓글을 달았다. 금수저... 진짜 그랬으면 좋으련만 나는 금이나 은수저까지는 못 되고, 그래도 동수저 정도 물고 태어난, 부모 돈 먹는 벌레 같은 딸인 듯하다. ‘딴지일보 프랑스 특파원’이라는 뭔가 병신력 있어 보이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나는, 이 나이 먹도록 경제적으로 완벽하게 독립하지는 못 하고 ‘부모님께 더는 손 안 벌려야지’ 하며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로 한 달 한 달을 버티며 논문을 쓰는 유학생에 불과하다.


엥겔의 법칙에 따르면 저소득 가계일수록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고 한다. 친절한 네이버의 시사경제용어사전에 따르면, 식료품비가 가계의 총 지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율, 즉 엥겔지수가 0.5 이상이면 후진국이고 0.3 이하면 선진국이라 하는데, 내 경우는... 이건 완전 먹고 자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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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한 달 지출을 100으로 놓고 봤을 때 숙식비(외식 아님)가 차지하는 비중이 70.8%에 달한다. '나'라는 단 하나의 표본으로 모든 것을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내가 특별히 하루에 대여섯 끼를 먹거나 고급식료품점을 다닌다거나 외식을 즐겨 한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기에 아마도 파리 시내에 사는 학생들의 삶의 모습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한 달 지출 중 가장 으뜸은 바로 집세다. 내 피 같은 돈의 무려 절반 이상을 매달 집세라는 이름으로 날리고 있다. 실제로 파리의 집세는 드높기로 유명한데, 이전에 타데우스 님이랑 함께 썼던 ‘프랑스와 독일 유학비’ 기사 1편에서도 인용했지만, 2013년 유럽국가 수도의 18-22 (5-6평) 원룸 집세를 평균 내본 결과, 런던이 1위, 모스크바가 2위, 파리가 3위였다. 다른 나라는 잘 모르겠고 파리의 경우는 외국 유학생에게도 주택보조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실제로 내는 비용은 이보다 100~200유로 정도 낮다고 생각하면 된다. 위의 도표는 내가 받는 주택보조금까지 넣고 계산한 결과다. 주택보조금 없으면 집세로 나가는 돈이 60%에 육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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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각국 수도의 원룸 월세 비교
2013년 자료이므로 2015년 7월 현재의 집세는 이보다 더 높아졌을 것이라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이놈의 집세를 충당하기 위해 별의별 모습들이 등장한다. 우선 전 세계 192개국에 서비스되는 에어비앤비(숙박공유서비스). 파리 여행객이 가장 선호하는 숙박형태이자 실제로 파리에 있는 집(혹은 방)에 대한 광고가 5만여 건으로 가장 많다. (그 다음으로 뉴욕(4만3천여 건), 런던(2만3천여 건)의 순이다) 파리 시내 호텔이 최소 100유로는 생각해야 할 만큼 비싸고 그닥 특색 없는 데에 비하여, 에어비앤비는 여행객은 파리지앵의 실제 삶의 공간을 누려 볼 수 있어서 좋고, 파리지앵은 자기 집을 자기가 세 놓는 게 나쁠 거 없어 보인다.


최근 들어 불거진 택시와 우버(Uber) 사이의 갈등은 흔히 호텔과 에어비앤비 사이에 비교되곤 한다. 실제로 많은 수의 집주인들이 보다 높은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에어비앤비를 선호하고 있어 안 그래도 모자란 파리 시내 집 매물이 더더욱 없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숙박공유서비스를 불법으로 단정지어 금지할 근거는 없는 것 같다. 또 하나의 문제는 집주인이 아니라 세입자가 재임대를 할 때다. 프랑스에서 모든 형태의 재임대는 불법이지만 집주인으로부터 허락을 받으면 가능하다. 그 경우에도 재임대 비용은 세입자가 집주인에 내는 임대료를 초과할 수 없으며, 재임대 계약 시에는 집주인이 재임대를 허락했다는 자필증명서를 첨부해야 한다. 하지만 모두가 예상할 수 있듯이 많은 경우 이렇게 복잡한 단계를 거치지 않고 있다.


끈끈한 정과 유대감을 자랑하는 한민족은 에어비앤비같은 숙박공유서비스가 나오기 전부터 프랑스 내 한인 커뮤니티를 통하여 필자와 같은 돈이 궁한 유학생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어 주곤 했다. 단, 다들 돈이 궁한 관계로 사기나 도난 사례도 종종 발생하곤 한다. 방학 동안 잠시 집을 비우게 되어서 한국인에게 재임대를 했는데, 다시 돌아와 보니 2차 세입자가 집에 있던 물품들을 모두 팔아 치워 버리고 먹튀한 사건, 2차 세입자가 재임대는 불법이라며 이 집에서 못 나가겠다며 배 째라는 식으로 나와서 제발 나가 달라고 애원하는 사연은 꽤 유명한 에피소드다.


부동산 중개료와 관련한 사례는 이미 이전 글을 통해 소개한 바 있는데, 정리하자면 이전에는 100% 세입자 부담이었던 부동산 중개료(대략 한 달 치 집세)가 2014년 9월 15일 이후로부터는 1당 최고 15유로를 넘지 못하게 되었으며, 집주인과 세입자가 이 가격을 각각 부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중개료 한 달 치를 요구하는 한국 업자들이 있으며, 심지어 집주인(한국인)이 세입자(한국인)에게 한 달 치 부동산 중개료를 달라고 하기도 했다는 소식을 건너건너 전해 들었다. 사실 파리에서 집과 관련한 사연은 차고 넘칠 정도로 많은데,


1) 집세가 너무 비싸고
2) 외국인으로서는 보증인을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에다
3)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개인의 프랑스 사회 친화도 및 여러 요인에 따라 천차만별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물론 이는 유학생이나 프랑스에 사는 외국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쨌든 이런 개판을 조금이나마 정리하기 위해서 프랑스 정부에서는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저번 글에서 다룬 알뤼르(ALUR)법이 그 대표적인 예이며, 가장 최근에 발표된 것은 ‘파리시 집세 상하한가 도입’이다. 파리시가 속한 행정구역인 ‘일드프랑스 지역 조례 2015 176-0007호’로 올해 8월 1일자로 시행될 예정이다. 이 법은 우선 파리시에 국한된다. 집세의 최소 값과 최대 값은 각 동네의 특성을 고려하여 80개 권역으로 나누어 달리 적용하며, 집의 형태(원룸, 방1, 방2, 방3 및 그 이상) 및 건축년도(1946년 이전, 1946-1970년, 1971-1990년, 1990년 이후)와 임대형태(가구포함 유무)를 기준으로 하여 매겨진다.


예를 들어 보자. 20짜리 1946년 이전에 지어진 원룸(가구 없음)이 있다. 파리 20개 구 중 가장 소득수준이 높은 7구의 세느강과 에펠탑 근처의 부촌 지역의 경우, 집세를 최소 438유로에서 최대 752유로까지 책정할 수 있다. 반면, 가장 소득수준이 낮은 18구의 불법체류자 밀집 지역으로 알려진 동네의 경우, 최소 352유로에서 최대 604유로까지를 집세로 책정할 수 있다. 파리에 살고 있는 교민이라면 그리고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의 월세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시다면 여기서 검색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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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스위트홈을 공개한다.


이 법이 얼마나 도움이 될 지 이렇게 설명해서는 별로 감이 안 올 것이므로 현재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집을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필자가 살고 있는 동네는 파리 14구. 구별 소득 수준으로 따지면 중하위 정도 되는 곳으로, 인접한 13구가 차이나타운, 15구가 일본인 및 한국인 밀집지역으로 유명하다면 14구는 대표적인 프랑스 중산층 가정의 주거지역이다. 파리 대학 기숙사가 모여 있는 씨떼 유니베르시테르(Cité Universitaire)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실 소득이 없는 대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에 소득 수준이 낮게 나타나는 것도 있다).


필자의 원룸은 대략 5평, 월세는 750유로로 1당 44유로 정도를 매달 지불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된 조례에 따르면 이 원룸의 적정 월세는 최소 350유로에서 최대 600유로 정도다. 최대치를 적용하더라도 현재 필자가 납부하고 있는 월세와 150유로 정도 차이 난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필자가 다른 집에 비하여 턱없이 높은 월세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2월, 집을 구해 보겠노라 발에 불 나도록 뛰어다녔을 때에는 이 동네에 이 가격이면 나쁘지 않았다. 즉, 워낙 집세 자체가 높아져서 750유로, 한국 돈으로 94만 원에 육박하는(2015년 7월 14일 환율) 금액이 그냥저냥해 보였던 것. 그 결과 현재 숙식에 전체 지출의 70%가 넘는 금액을 쏟아 부으며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다. (왜 싼 동네를 선택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는 싼 동네 살다가 좋지 않은 경험을 몇 번한 이후로 생긴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다 정도로 답하겠음)


최저임금, 최저임금 하는데, 현재 프랑스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9.61유로(1만2천 원 가량)이며, 풀타임(35시간/주)으로 일했을 때 세금이고 뭐고 다 제하고 통장으로 고스란히 들어오는 돈은 1137유로(142만 원 가량)다. 결국 최저임금으로는 파리지앵의 인간다운 삶을 절대 보장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이야기로,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지방자치단체가 (이제서야) 손 걷고 나섰다. 그래도 사실 그게 어딘가 싶다.


얼마 전 한국에서 전세가가 집값의 90%를 돌파했다던데, 한국의 내년 최저시급은 올해에서 고작 450원 오른 6,030원이라고 한다. 한국 소식을 듣고 있노라면 이곳 프랑스 파리가 낫다고 생각하지만 마냥 기뻐하긴 또 마음이 착잡하다.



* 참고로 이 조례는 2015년 8월 1일자로부터 새로이 계약을 하는(계약 연장 해당 없음) 임대에 한하여 적용된다. 결국 필자가 현재 이 곳에 계속 사는 한 150유로 이상의 혜택을 받을 가능성은 없다. 집주인의 마음 씀씀이가 하해와 같이 넓어 집세를 줄여주지 않는 이상.


** 또한 최저-최고로 나온 월세금액을 기준으로 하여 발코니라던가, 지하창고라던가, 주차장이라던가, 엘리베이터라던가 등 편의시설에 대해서는 집주인이 추가의 월세를 받을 수 있으니 꼭 월세가 최저-최고 범위 안에 머무르리라는 법은 또 없다.


*** 필자는 또 이사를 해야 하는 건가!






참고



http://etudiant.aujourdhui.fr/etudiant/info/logement-le-classement-des-villes-les-plus-chere-d-europe-pour-se-loger.html

http://jactiv.ouest-france.fr/vie-pratique/logement/airbnb-site-location-qui-casse-baraque-51023

http://www.francetvinfo.fr/economie/airbnb-va-t-on-se-diriger-vers-une-nouvelle-bataille_980465.html

http://www.francezone.com/xe/index.php?mid=hot&page=2&document_srl=35272

http://www.pap.fr/actualites/encadrement-des-loyers-a-paris-le-1er-aout-2015-les-loyers-de-reference-sont-connus/a18060

http://www.drihl.ile-de-france.developpement-durable.gouv.fr/IMG/pdf/Arrete_no2015_176_-_0007_cle5d1377.pdf

https://www.referidf.com/

http://immobilier.lefigaro.fr/article/immobilier-les-prix-a-paris-quartier-par-quartier_226a740a-9d28-11e2-aef5-b7b1d06bd22b/

http://droit-finances.commentcamarche.net/faq/3567-smic-2015-taux-horaire-et-smic-mens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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