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악의 입시 스캔들
3월 12일, 미국 각지에서 대학 부정입학에 연관된 50명이 일제히 체포(또는 체포 영장 발부) 되었다. 이들은 학부모, SAT 시험 감독관 및 관리자, 대학 관계자(대부분 운동부 감독들)인데, 학부모들은 내노라하는 회사의 CEO, 변호사, 의사,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 심지어 두 명의 잘 나가는 배우도 포함된, 돈과 권력이 꽤나 있다고 폼 잡던 사람들이었다. 물론 대부분은 체포 몇 시간 후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긴 했지만 말이다.
그중엔 90년대 풀 하우스(Full House)로 꽤 인기를 끌었던 배우 로리 로우린(Lori Loughlin)도 포함되어 있는데, 딸내미를 USC에 넣으려고 50만 불을 찔러주었다고 한다.
연방 검사가 FBI 수가 결과를 발표한 후, 미국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30분마다 하는 NPR 뉴스에서는 이 사건을 계속 첫머리로 다루었고, CNN, MSNBC에서도 수사 장면을 반복해 내보냈다.
이번 사건은 대략 1년 동안 300여 명의 FBI수사관들이 극비로 조사해서 파헤친 것이라 하는데, 처음엔 입시 비리가 아니라 조사포탈을 의심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건을 파고 들어가니? 고구마 줄기가 터진 것이다.
사건의 핵심 인물은 윌리엄 싱어(William Rick Singer). <스카이캐슬>의 김주영 쓰앵님 정도의 인물이라고 보면 되겠다.
입시컨설팅 업체(college admission counselling service)를 운영했던 그가 돈 받고 학생을 대학에 꽂아줬던 것이 발각된 것이다. FBI가 제시한 녹음엔 자신의 고객들(학부모)을 향한 그의 주옥같은 발언이 날것 그대로 담겨 있었다.
"'정문'은 학생 혼자만의 힘으로 들어가는 거고요, '뒷문'은 대학에다가 거절 못 할 정도로 돈을 들이부으면 열리는 건데요. 저는 '옆문'을 개척해 놨습니다. 뒷문보다 10분의 1아니 100분의 1만 들이면 됩니다. 어때요, 괜찮죠?"
'옆문'을 들여다보자
발각된 부정은 크게 두 가지이다. 대학 운동부와 SAT.
첫째, 들어가기 힘들다는 미국 유명대학들도 운동부를 통하면 생각보다 수월하게 합격할 수 있다. 사실 운동부 신입생 선발은 그 운동부의 감독에게 전권이 있는 관계로, 부정의 소지가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정이 이러하니 합법과 편법의 경계에 있는 사례가 그간 많았겠지만, 이번 건은 무척 확실한 경우다. 운동을 하지도 않았는데 뇌물을 받고 운동선수로 조작해서 합격을 시켜주다가 된통 걸렸기 때문이다.
Stanford, Yale, Georgetown, USC, UCLA, UT Austin, Wake Forest, U San Diego
그게 아무나 들어가는 대학도 아니고, 선망의 대상이 되는 요런 학교들이어서 더욱 공분을 사고 있다.
두 번째는 SAT 시험 부정이다. 대리시험으로 고득점을 받아서 대학에 제출하거나, 아니면 답안지를 고쳐서 점수를 부풀렸다는 거다. 한국에서 가끔씩 입시부정 사건이 나올 때마다 비슷한 이야기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이런 걸 미국에서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사실 운동부를 통한 부정 입학은 짐작은 했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었을 뿐이라, 실제 사건을 보고 크게 놀라지 않았는데, SAT 부정은 좀 의외였다.
한국에서는 수능, 공무원 시험, 각종 국가고시 등, 시험장에서 신분증 대조가 꽤 철저한 편이다(그래서 그런 걸 뚫고서 대리시험에 성공했다가 나중에 발각된 사례를 보면 가히 경하할 만도 하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시험장에서 신분증 대조가 그렇게 철저하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마음먹고 부정을 저지르자면 충분히 저지를 수도 있지만, 여기 사람들은 그냥 그렇지 않으리라 믿었던 건데,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기분이다. 나 혼자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닐 것 같다.
실제 거래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한 가지 사례를 살펴보기로 하자. 예일의 사례다(예일이 랭킹이 가장 좋은 학교니까 여기부터 까보고 싶었다). 앞서 살펴봤던 브로커 윌리엄 싱어는 "우리 쓰앵님만 믿어요"라는 학부모로부터 120만 달러를 받는다. 그리고 예일대 여자축구 감독에게 접근,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뭐 필요한 거 없으세요?"라 물으며 40만 달러를 건넨다. 그러는 사이, 실제 축구를 해본 적도 없는 아이의 포트폴리오는 남가주 유명 축구팀 주장으로 꾸며진다.
예일대 감독은 그 가짜 포트폴리오를 진짜인 것으로 믿기로 결심하고, 신입생 선말 명단에 그 학생을 올려놓는다. 대학 본부엔 겉보기에 이상 없는 서류를 만들어 제출한다. 임무 완수.
여기서 브로커 싱어의 디테일이 빛나는데, 그는 Key World Foundation이라는 유령 자선 단체를 설립해 놓았었고, 학부모는 이쪽을 통해 돈을 냈기 때문에(형식상 자선단체 기부), 그 돈에 대해 세금공제를 받게 된다. 참으로 꼼꼼한 새끼들이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미국에 20년 넘게 살면서 추악한 자본주의의 절정에 오른 미국 문화에 대해 거부감을 느낀 적이 많았다. “꼬우면 너도 부자 되란 말야, 루저 같은 소리 하지 말고” 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연되어 있다는 것이다.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을 향한 큰 저항감이나 비판의 목소리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어제 연방검사의 발표를 보면서, 오랜만에 속이 시원해짐을 느꼈다.
“A catalog of wealth and privilege”
이렇게 번역해볼까.
“여기 돈 꽤나 있고 목에 힘주고 다니는 학부모들의 종합세트가 있습니다”
“…. this is a widening corruption of elite college admissions to the steady application of wealth and fraud combined. there can be no separate college admissions for the wealthy and i'll add there will not a separate criminal justice system either.”
“이 인간들, 자격이 되는 다른 학생들의 기회를 박탈했다는 점에서 아주 악질입니다 (요 부분은 위에 없고, 그전에 한 말). 돈 몇 푼 갖고 일류대 입시에 사기를 쳐 왔는데, 그럼 안되죠? 암요, 법의 이름으로 본때를 보여줍시다.”
너 그동안 돈 있다고 장난, 지랄했지, 한번 개 ㅈ 되봐라, 라는 식의 말 미국에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공적인 인사가 하는 말 참 듣기 힘들었는데, 사이다다.
이제 막 첫 보도를 했을 뿐, 이 사건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앞으로 연관된 사건들이 줄줄이 뉴스를 타게 될 것이다. 운동하지도 않은 걸 했다고 조작한 게 이번에 걸렸을 뿐, 운동부를 통한 입시 부정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운동선수이긴 한데 자격이 미달되는 경우, 웃돈 찔러주고 합격시키는 거, 비일비재하다. 학부모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앞으로 양파 껍질 까지듯 뉴스가 소록소록 나올 것이다.
지금 똥꼬가 찌려서 잠을 못 자는 인간들이 꽤 많을 것 같다. 이참에 그들의 똥꼬를 힘차게 후벼 줬으면 좋겠다.
+ 기여입학제와 무엇이 다른가
"미국에서는 ‘기여입학’이라는 게 어차피 사회적 합의하게 용인이 되는 것이 아닌가?"
"돈으로 대학 입학을 사는데 무엇이 범죄이고 무엇이 범죄가 아닌가?"
라는 질문이 들어올 것 같아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려 한다.
1억 달러쯤 기부해서 건물을 지어주면서 자식을 슬그머니 신입생으로 끼워주는 사례가 있다. 이건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고 뉴스거리조차 되지 않는다(전에 재직했던 대학에서 우리 과로 그런 학생 맡아달라는 압력이 와서 교수들끼리 고민을 했던 적도 있다. 왜 고민이냐고? 녀석이 좀 모자랐다). 희대의 사기꾼 대통령, 지금 탄핵을 하냐 마냐 하는 트럼프도 그렇게 유펜(UPenn)을 졸업했던 것이고(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 이런 것은 범죄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그 돈이 대학의 공공재로 쓰여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갈 수 있기 때문에 괜찮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번 일은 십만 달러 정도의 돈을 한두 명의 호주머니로 집어넣으면서 자식을 대학에 밀어 넣은 것이다. 이건 범죄행위가 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범죄행위가 되느냐? 부정입학 금지, 뭐 그런 게 미국 형법에 나오는 건 아니지만, 주동자들은 돈세탁 관련 법안으로 범죄가 되고, 학부모나 운동부 감독들은 사기 혐의로 범죄가 되는 것 같다.
물론 이 이야기는 이번 일과 차이점을 설명하기 위해 지금까지의 상황에 대한 것이지, 앞으로 이것이 공론화되면 무엇은 괜찮고 무엇은 괜찮지 않은지 사회적 합의를 다시 짜야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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