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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4천만 해커를 양성하라! 2000. 3.06.월요일
딴지 양재동 지부장 전지운

해커 전사 10만 양병설


임진왜란을 예측했던 율곡 할부지의 10만 양병설이 연상되는, 자못 비장하기까지 한 이 주장이 요즘 언론들 사이에서 인기다. 다가오는 사이버 전쟁을 대비하고 산업기밀을 지키기 위해서 보안 전문가를 키우자는 이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본 기자 해커 10만 전사 양병설에 딴지를 좀 걸어야 겠다. 


왜? 


함 바바.





 해커는 뭐 하는 쉐이들 인가?


컴맹이건 아니건 해커는 일반인들에게 신비롭기까지 하다. 심심찮게 보도되는 해커들의 사이버 테러와 전쟁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서, 장풍 쏘고 축지법으로 날라 다니는 싸이버 무협 고수를 상상하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요즘 신문들은 해커는 착한 놈 크래커는 나쁜 놈 하는 식으로 구분을 해주기도 한다. 그러면 졸라 컴퓨터 전문가이면서 준법정신이 투철한 사람은 다 해커인가? 뽕이다. 


해커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헤커의 조창기로 돌아가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ENIAC은 30톤에 50평이었단다.. 씨바 ..


컴퓨터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에는 그것을 만든 사람들조차 컴퓨터로 어떤 일들을 할 수 있는지 잘 몰랐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이 졸라게 비싼 기계를 접하게 된 일부 학생과 연구원들 중에서 여기에 빠진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때만 해도 개인용 컴퓨터 따위는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미리 자신에게 할당된 시간에만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었고, 컴퓨터에 미친 넘들은 항상 컴퓨터 사용시간의 부족함을 느낄 수 밖에. 그래서 이들 초창기 컴퓨터광들은 최대한 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해 남들이 사용하지 않는 밤 시간을 활용해야 했고 한 번 자리에 앉았다 하면 2-3일을 기냥 스트레이트로 작업을 하기가 일쑤였으며 아무 곳에서나 디비져 반나절쯤 자다가 부시시한 몰골로 다시 컴퓨터 앞으로 기어 나오곤 했던, 컴퓨터 좀비였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를 금방 알아봤는데, 두꺼운 안경에 하얀 양말(이윤 모르겠다)을 신고 면티를 입은 체 몇 일째 씻지를 않아 더러븐 냄새가 풀풀 났기 때문이었단다. 







61년 MIT에 보급되었던 PDP-1 모델


이 시절 시스템에 조금이라도 더 접근해보려고 시간을 아껴쓰기 위해, 작업을 최대한 간편하게 해주는 프로그래밍을 스스로 하는 고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 프로그램들은 컴퓨터에 딸려왔던 운영체제 그 자체보다 훌륭할 때도 있었으며 그러한 프로그램들을 hacks라고 불렀다. 이제 해커가 어디서 나온 말인지 알겠지들 엉? 


최초의 해커들은 그런 대형 컴퓨터에 가장 일찍 접근할 수 있었던 MIT 공대의 TMRC(Tech Model Railroad Club)라는 동호회를 중심으로 출현한다. 


어떤 넘은 게임은 만들고 언 넘은 컴퓨터 언어를 만들고 언 넘은 아예 오퍼레이팅 시스템을 만들기도 했다. 오늘날로 치면 혼자 쓸라고 Windows 98 같은 것을 만들었다고 보면 되겠다. 오로지 재미로. 미친넘들...


이들 TMRC 출신의 해커들은 이후 MIT의 인공지능연구소의 핵심인물들이 되었고, 이들은 인터넷의 모체가 된 초기 아르파넷(ARPANET)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해커와 인터넷은 그 탄생초기부터 같이 자라온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유치하고 파괴적이며 변태스럽고 게다가 컴퓨터도 제대로 알지도 몬하는 븅신쉐이들이 대다수인 저급한 크래커들과 달리 남에게 피해를 주려는 의도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이들의 다양한 시도와 연구는 초창기 컴퓨터 시스템의 에러와 문제점을 찾아서 개선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오늘날의 컴퓨터 세상, 인터넷 세상을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것은 거의 전적으로 이들 해커의 헌신적이고 창조적인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UNIX 시스템이나 C언어 같은 것들도 처음에는 해커들이 개인적인 용도로 개발했던 것이었으니까. 이 외에도 수 많은 컴퓨터 관련 기반 기술과 제품 중에 이들 해커들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다.







이 바닥에서 최후의 해커로 불리는
리처드 스톨만, GNU 창립자다.


이처럼 초창기 해커들은 컴퓨터가 가진 가능성, 그 자체를 찾아내가던 탐험가였으며 그 속에서 아름다음을 발견하고 키워 나간 예술가들이었다. 


이러한 해커의 정신은 오늘날, 프로그램의 복제와 개작 그리고 배포의 자유, 즉 copyleft와 정보공유를 기본정신으로 하는 GNU( Gnu is Not Unix )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어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정치적 의사의 전자적 표현으로 해킹을 이용하는 정치적 해커(hacktivist)들도 등장하고 있다. 동티모르 탄압을 비판하며 인도네시아 정부사이트를 해킹해버리는 식으로. 


그들은 그 시대의 돈벌이나 출세 혹은 명예와는 전혀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에 모든 열정을 아낌없이 바치며 창조와 모험의 세계를 만들어 간 이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있었기에 독자 니들이 바로 지금 컴퓨터로 인터넷에 접속해 본지와 같은 민족정론지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해커들이 없었으면 본지도 없었을 뻔했던 것이다. 아... 클날 뻔했다.


본기자는 만약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옳다고 믿는 일에 모든 열정을 바치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컴퓨터분야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들을 그 분야의 해커라고 불러도 좋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열정이 있어야 하냐고? 글쎄, 일본의 오타쿠와 같은 정도는 되야겠지.



오타쿠가 뭐냐고?

무엇인가를 좋아하고 빠지는 단계의 첫 번째는 팬의 단계이다. 야구를 좋아해서 스포츠 신문을 꼬박 꼬박 챙겨서 보고 주말이면 야구장을 찾는 사람은 야구 팬이다. 다음 단계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매니아다. 이들은 선수들의 기록과 팀의 전적 등을 꾀고 있으면서 야구의 역사와 기술 등에 이르기까지 나름대로의 연구와 공부를 통해서 전문가적 식견을 갖춘 사람이다.


그 다음이 오타쿠이다. 오타쿠는 전문가 이상의 지식을 갖추고 있음은 물론이고 단순히 야구에 빠지는 것을 넘어서서 야구를 여러 각도에서 특히 자신과의 관계에 있어서 되돌아 본다. 즉 나는 왜 야구를 좋아하는가? 나는 야구를 통해서 나의 삶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에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삶과 야구를 일치시키고 그것을 통해서 삶의 보람을 찾는 단계.



그래서, 해커가 이런 저런 상업적인 또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필요해지니까 대량으로 길러 보자는 식의 발상은 오히려 해커가 크는 사회를 만드는 데 방해가 되는 사고다. 의도적이고 시스템적인 육성지침에 의해 해커가 탄생하고 크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해커, 오타쿠는 누가 시켜서 되는 것이 아니다. 열정을 교육시킬 수 있나? 사회가 각 개인의 자율성과 다원성을 인정해 주는 포용력과 탄력을 가질 때 지들이 알아서 각 분야에서 스스로 크는 것이다. 


해커 전사 10만 양병설이란 말에는 그렇게 해커에 대한 몰이해가 숨어 있다.


 너희가 애플을 아느냐


본 기자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동네에 있는 컴퓨터 학원에 다닌 적이 있었다. 당시는 국내에 퍼스널 컴퓨터가 처음 보급되던 시기였는데 젖도 모르는 동네 애쉐이들이 애플 기종이 좋네, 대우에서 나오던 MSX 기종이 좋네 하면서 머리 끄댕이 잡고 쌈박질 하던 시절이었다.


기자가 다니던 학원에서 배웠던 것은 애플II 컴퓨터였는데 메모리가 64KB이고 하드디스크는 아예 없었다.


당시 모든 얼라쉐이들이 그랬듯이 본기자도 베이직 언어부터 배우기 시작했는데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컴퓨터가 그렇게 재미있고 신기할 수가 없었다. 


컴퓨터는 더 하고 싶은데 학원에서 배우는 시간은 터무니 없이 적었다. 그래서 당시 모 대학 전자과 교수였던 이모부를 졸랐 결국 애플II 컴퓨터 한 대를 빌려 올 수 있었다. 그 순간부터 본기자는 밥 먹는 시간만 빼고 그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학원에서 배운 것을 예습, 복습은 물론 혼자 컴퓨터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의 학원 선생님은 어디 학원에서 몇 달 배워 가지고 애쉐이들을 가르쳤던 것 같다. 3달쯤 걸려서 교재를 끝내고 나니까 황당하게도 자기는 더 가르칠 게 없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본기자 같은 어린애한테 프린터 뭉치를 한 아름 들고 와서 에러를 찾아 달라고 그랬으니까. 어릴 적 이미 후루꾸 어른 세계의 내막을 알아버린 본기자, 학원을 때려치고 집에서 독학을 하기 시작했다. 베이직 언어를 마스터하고 어셈블리 언어를 혼자서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머리 싸매고 책과 컴퓨터랑 씨름을 하다 보면 어느새 날이 밝아 있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됐다. 어디 컴퓨터 경진대회에서 수상했던 우리 학교 친구 녀석이 기계어를 공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허걱 기계어를.... 베이직 같은 고급언어는 사람이 쓰는 언어와 비슷한 문장 ( if, else, while, goto )을 써서 컴퓨터에게 명령을 내리는 반면, 기계어는 컴퓨터가 내부적으로 사용하는 0100101011100 따위의 이진수로 직접 명령을 내리는 절라 무식한 방법이다. 본기자가 독학 하던 어셈블리는 그 중간에 해당하는 언어고.


이 기계어는 하드웨어 사양에 따라 기계마다 다른데 이젠 전 세계를 통틀어도 이 기계어로 프로그램 짜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컴퓨터의 용량과 속도를 극복하기 위해 처절하게도 인간이 직접 기계의 수준까지 겨내려가 프로그램을 짜는 일이 벌어지던 눈물 나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하여튼, 쇼킹한 소식에 전율한 본기자는 나도 당장 기계어를 배워야지 겠다는 전의를 불싸지르며 똥꼬를 힘차게 오므려 집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집에 컴퓨터가 없었다...


공부는 안하고 컴퓨터만 잡고 늘어지는 애를 그대로 나뒀다가는 인생을 망치겠다고 염려하신 부모님께서 컴퓨터를 이모부께 돌려준 것이었다. 대학에 가기 전까지는 학교 공부만 하라는 것이었다. 아... 그것으로 본기자의 황홀하고도 신나던 컴퓨터와의 인연은 미처 반년이 되지 못해서 끝나고 말았다. 본기자는 그 전에도 그 뒤로도 아직까지 그때처럼 신나게 뭔가에 미처 본 적이 없다. 


그 이후로 늘 가슴 속에는 늘 컴퓨터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길을 가다가도 컴퓨터 가게 앞에서는 항상 한참을 서서 쇼윈도를 들여다보곤 했었다. 결국 그때의 느낌을 잊지 못해 대학에서 컴퓨터까지 전공하게 되었지만 어린 시절에 느꼈던 열정은 도저히 되찾을 수가 없었고 그저 그렇고 그런 평범한 학생으로 졸업을 했다...


 해커를 죽이는 사회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 그가 처음 컴퓨터를 접했던 것도 본 기자와 같은 13살 때였고 컴퓨터에 빠진 것도 본 기자와 비슷했다. 그러나 빌게이츠는 학부모들이 바자회를 열어서 컴퓨터 사용 요금을 내 주었지만, 본 기자는 대학입시를 위해서 있던 컴퓨터 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빌게이츠는 20살에 마이크로소프트를 차렸는데 본 기자는 20살에 재수 학원에서 어느 지방에서 무연탄이 많이 나는지 외우고 있었다. 씨바...


물론 본 기자는 탁월한 해커였으면서 동시에 하버드에 진학할 정도의 천재였던 빌게이츠에 비해 아주 한참을 평범한 사람이고 또 본 기자의 가능성이 꺽인데 대해 누구를 원망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따구 교육 환경을 도외시 한 채 도대체 어디에서 해커가 10만 명이나 기어나온단 말인가. 자기와 다른 생각은 모조리 빨간 칠을 해서 싹을 말려야 속이 후련한 좃선삐라 같은 것들이 같쟎게 신문 1등을 하는 우리 나라 같은 곳에서 도대체 어떻게. 아 씨바, 좃선은 명랑 사회로 가는 길목 길목에 안 낑긴 곳이 없구나.


그동안 우리 사회는 10만 명은 커녕 단 한 명의 해커도 죽이는 사회에 다름 아니었다. 공부 못하는 것은 죄악이고 인생의 낙오자며, 학벌이 계급이고, 다른 생각 다른 행동은 권위에 대한 도전이자, 빨갱이였다.


이런 세상이 뒤엎어지기 전에는 해커는 없다. 10만 명이 아니라 4천만 전 국민이 지들 조때로 나름의 분야에서 정열적인 해커가 창궐하는 사회를 꿈꾸며, 본 기자 해커 전사10만 양병설 대신에 4천만 전국민의 해커화를 주장하믄서 이만 물러간다. 


졸라~



 



딴지 양재동 지부장 겸 딴지 
해커 국민 4천만 양병 추진위 위원장
전지운  (baram93@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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