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싸 준 도시락 가방에서 핸드폰이 울려 1년을 준비한 시험장에서 쫓겨난 수험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울컥 목구멍이 젖는다. 그 지경을 당하고도 그는 한창 집중해야 할 국어 시험 시간에 난데없이 울린 벨 소리로 시험을 방해받은 다른 학생들에게 미안해했다. 듣자 하니 학원도 다니지 않고 혼자 공부한 재수생이라는데 모르긴 해도 그 집안 형편이 어떨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마지막으로 치른 시험 점수는 넉넉히 1등급이었다는데......
얼마나 오늘을 별렀고 오늘 이후를 기다렸을까. 아마 그 어머니는 지금쯤 벽에 머리를 찧으며 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도시락을 싸면서 얼마나 가슴을 조이며 기도를 올렸을까. 가방 안 지퍼에 자신의 핸드폰이 들어가 있는 줄을 꿈에도 몰랐을 그 어머니는.
자신의 삶을 위해 아등바등 노력해 왔으나 본의아니게 수렁에 빠져 버린 수험생. 그러나 하늘을 원망하기에 앞서 자신이 수렁에 떨어지는 소리에 놀랐을 다른 수험생을 걱정하던 고운 마음엔 여지없고 예외없는 '원칙'에 의해 탈락의 낙인이 찍혔다.
그 수험생의 맑은 눈에 가 가 가 투성이의 장시호가 연세대학교에 떡하니 입학했다는 뉴스가 어떻게 보일까. 학교에 나오지도 않는 아이에게 수행평가 만점을 주고 항의하는 아이들에게 "출석을 하지 않아 태도를 평가할 근거가 없다"고 선생이라는 작자가 지껄였다는 뉴스는 또 무슨 조화로 들릴까. "돈도 실력이야 네 부모를 탓해"라고 주절거리던 그 잘난 애마공주는 무슨 모양으로 비칠까.
과연 우리 사회는 저 수험생에게 원칙을 얘기할 수 있는 사회인가. 안 됐지만 다음 기회에 보자고 단호하게 자를만한 염치를 지닌 사회인가. 왜 원칙은 착한 사람들에게는 불칼같이 단호한데 정작 원칙이 필요한 사람들 앞에서는 머리칼처럼 바람에 팔랑일 뿐인가. 자기 방에 들어앉아 천정만 바라보며 또 1년을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 왈칵 울음을 터뜨리고 있을 것 같은 이름모를 수험생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
너를 이렇게 아프게 하는 원칙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구나.
죄 지은 증거가 산더미로 나오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도, 자기 입으로 “성실한 조사”를 받겠다고 말한 사람이 서면 조사로, 모든 수사가 끝난 뒤에 최소화해서 조사받겠다는 식으로 입장을 바꾸고, 그 변호사는 밑도 끝도 없는 “여자의 사생활”을 들먹거리는 일이 가능한 나라에서, 들개도 물어가다가 퉤퉤 뱉아버릴 역겨운 원칙이, 토악질 흔적에서 밥알 파먹는 비둘기도 구역질을 할 대한민국의 뭐같은 ‘원칙’이 왜 네게는 이렇게 지독하고 예외 없고 용서 따위는 없는 건지 정말 도통 알 수가 없다.
그 아픔 속에서 다른 친구들을 걱정한 네 마음 정말 고맙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득함 속에서 까마득하게 멀 수 있는 다른 이들의 피해를 배려하는 그 마음이야말로 수능 1등급 천 개보다 귀하고, 대통령을 비롯하여 여러 버젓한 직함을 가진 이들의 사악한 옹고집에 비해 10만 8천 배 소중하구나. 힘내라. 반드시 복받을 거다. 비록 이런 축복의 실현 가능성이 점점 사라지는 사회의 기성 세대로서 미안하고 면구스럽지만 그래도 어쩌겠니. 네게는 좋은 일이 꼭, 반드시, 무조건 생길 거라는 기원과 다짐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구나.
부디 몸과 맘 추스르기 바란다. 그리고 꼭 아저씨의 기원을 이뤄주기 바란다. 너는 잘 돼야 한다. 잘 되기 바란다. 기죽지 마라. "네 부모를 탓해" 지껄인 것들의 손을 꺾어 버릴 수 있도록 팔에 힘도 길러라. 너를 응징한 철봉같은 원칙을 엿가락처럼 휘고 줄넘기 삼아 재주를 넘는 자들에게 이단 옆차기를 날릴 수 있도록 다리에 근육도 쌓아라. 너는 잘 될 것이다. 잘 돼야 한다. 억지스레 들릴지 모르나 그래야 이 나라가 산다.
산하
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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