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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1. 27. 월요일

내딴지닉이뭐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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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열린 채용과 기회균등의 정신을 살리면서 사회적 부담을 줄이는 채용방식”인 각 대학별 총장추천제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동안 실질적으로 수도권 명문대학 위주로 주어지던 입사 기회를 다소 기계적이나마 전국 200개 대학으로 그 문호를 넓힌다는 차원에서 환영받을 만한 조치다.


사실 논리적으로만 따지자면 삼성 입장에서는 검증이 덜 된(?) 지방대학 출신 학생들을 굳이 총장추천으로 뽑지 않아도 서로 입사하려는 명문대 출신의 지원자가 많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인사 채용 기회를 확대할 이유도 별로 없을 뿐더러, 어떤 면에서는 일정의 손해(?)를 감수해야 할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대표기업으로서, 막중한 책임과 국가 인식을 가지고 이런 대승적인 차원의 결정을 하지 않았겠나...



...라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삼성그룹의 입사라는 게 사법고시 합격이나, 하다 못해 부동산 중개사 시험 합격과 같이 어떤 자격증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무원처럼 정년까지 신분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다. 입사를 하더라도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언제든, 얼마든지 탈락시켜버리는 ‘가혹한 경쟁 시스템의 일반 사기업일 뿐이다.


솔직이 말해서 이런 열린 채용 이전에 입사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대학 출신의 지원자가 이번 조치로 총장 추천을 받아 어떻게 어떻게 입사했다고 해도 삼성이라는 조직 내에서 살아 남을 가능성은... 솔직히 별로 없다고 봐야 한다. 그 이유는 바로 여태껏 그런 대학 출신들을 공개 채용으로 뽑지 않아 왔었다는 자체를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효율성만을 따진다면 지금처럼 입사 경쟁이 치열한 판에 더더욱 경쟁을 부추겨 기업이 원하는 최고의 인재만을 쏙쏙 뽑아가는 이상의 효율적인 인사는 있을 수가 없다.


말하자면 이번 삼성의 대학 총장 추천제 입사 제도는 실질적인 기업의 대 사회적 책임 완수라든가, 지원자의 기회균등 확대 라든가 사회적 부담 완화 같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이번 제도의 가장 큰 목적은 “회장님, 우리 삼성이 대한민국에서 이 정도 위치에 올랐습니다”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모를 이건희 회장에게 조금이라도 기쁨을 안겨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추측해 본다. 명색이 전략기획실의 인사 담당 사장이라면 이 정도는 기본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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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뭐. 지들이 회장에게 아부를 하든 충성을 하든 그거야 뭐 나하고는 상관이 없으니.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가 어쩌다 이런 꼴이 났는가는 것이다.


삼성이 아무리 잘 나간다고 한들, 입사하는 사람의 인생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고, 무슨 자격증을 발급해 주지도 않는, 그냥 일개 기업일 뿐이다. 기업이란 자본을 바탕으로 노동력을 활용해서 이익을 내는 것이 본업이고, 따라서 노동력이란 기업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요소여서 기업으로서는 노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인데 어쩌다 그런 일이 마치 선심(!)을 쓰는 듯한 자선행위처럼 포장되는 사회가 되었느냐는 말이다.


초,중,고,대 기본 16년 간 최소 수억을 쓰고서 잘 해야 연간 1, 2천만 원의 잉여를 만들 수 있는 기업에 노동을 제공할 기회를 얻는 일이 그렇게 선심을 받아야 하는 사회라는 게 웃기지 않은가. 노동자가 원하는 대로 노동을 제공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자본에 의해 간택되어야 하는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일 리가 없다. 혹자는 “삼성 정도의 안정적인 기업이라면 저 정도 할 수도 있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삼성 아니라 삼성 할애비라도 그런 식으로 노동을 간택할 수 있는 사회는 잘못된 사회다. 그것을 인정한다는 자체가 스스로 노예 인증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오늘날 삼성이 이런 식의 노동에 대한 자본의 승리를 공언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노동자들과 삼성을 소비해 준 국민들 덕이었음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그 결과 오늘날의 젊은 입사지원자, 예비 노동자들은 간택을 기다리는 시궁창 생쥐 정도로 전락해 있다. 지난 수십 년간의 한국 사회가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달려왔는지를 보여주는 확증을 우리 눈으로 보고 있다.


신문에 난 삼성의 각 대학별 총장 추천 쿼터를 보면서 학교별 서열이나 따지고 앉아 있는 것 또한 패배를 인정한 노예의 짓거리에 다름 아니다. 인간에게 노동을 할 기회는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가 되어야 하고, 노동이 자본에 예속되는 그런 사회라면 체념이나 수긍이 아닌 반발을 할 수 있어야 비로소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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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이번 발표가 어떠한 긍정적인 사회적 효과를 갖고 오는 것은 아닐 거라고 감히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다만 이에 따른 여타기업들의 추종으로 더 많은 예비 노동자들이나 기성 노동자들이 자본의 우위를 인정해 버리고 체념해 버리지나 않을까 걱정될 뿐이다.


개인적으로 자본보다 노동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이번 삼성의 발표에 대해서 무한히 반대하는 바다. 지금 이 순간, 삼성이 가장 정점에 올라 자만에 빠져 있을 때라고 믿고 싶다.







내딴지닉이뭐였지?


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