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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의 무장투쟁부터 자주국방까지, 국가라는 것은 그 자체로 군사적이다. 성공하는 국가는 성공하는 군대를 보유한다. 둘은 많은 경우 동의어나 마찬가지다.


마침 사병에 대한 착취가 사회적 이슈다. '이기는 군대'의 정의를 규정할 역량은 없지만 예는 들 수 있다. 세계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군대를 둘 꼽자면 아무래도 동방의 몽골제국, 서방의 로마제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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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케 몽골 울루스(몽골제국)의 창시자 칭기스칸이 패배보다 끔찍하게 여기는 일이 있었다. 바로 부하 병사가 전사하는 일이다. 그에게 국가는 이익공동체다. 칸은 울루스(백성)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


칭기스칸에게 전쟁은 모두가 이익을 쟁취하고 함께 나누기 위한 행위였다. 따라서 그는 전사들이 자신에 대한 충성을 위해, 혹은 제국의 영광을 위해 목숨을 거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았다. 몽골군은 살아서 돌아오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도 할 수 있었다. 말, 병장기, 그리고 약탈한 시점에서 분배되기 전까지는 국가의 공공재산인 전리품까지 그 어떤 것도 과감히 버릴 수 있었다. 이는 권리가 아닌 의무에 가까웠다.


몽골군의 제 1 전투교리는 불리하다 싶으면 즉각 후퇴하여 정해진 지점으로 복귀해 아군의 보호를 받는 것이었다. 확보한 전선을 포기해도 문제없다. 전선도 전쟁도 구성원의 공동이익을 위해 존재한다. 칭기스칸은 아군의 희생을 최소화하며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긴 시간과 많은 비용의 낭비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사상자는 발생한다. 몽골 제국은 전쟁고아와 유가족을 끝까지 책임졌다. 제국 정부는 아침마다 가장 질 좋은 양고기로 고아들을 위한 국을 끓이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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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은 정복전쟁의 현장에서 부상자가 발생하면 다음과 같은 순서를 따랐다.


1) 긴급 후송. 야크나 소를 즉석에서 도축, 배를 가르고 창자를 가른다. 그 안에 부상자를 넣는다. 창자에는 소화되다 만 풀이 가득한데, 이것으로 상처를 메우는 것이다. 또한 체온을 유지하고 전쟁터의 소음과 무기로부터 단절시켜 안정을 취하게 하는 목적도 있다. 자연스럽게 소의 피로 수분과 염분을 보충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 한 마리 정도 재산은 긴급후송을 위한 들것으로 얼마든지 소모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강력한 시그널이다.


2) 후송이 완료되면 아랍 의사가 응급처치를 한다. 당시 외과술은 아랍권이 최고의 수준이었다. 중국인 한의사는 내과로 분류되어 외과 처치가 끝난 부상자의 컨디션 회복을 맡았다.


3) 그래도 사망자는 발생한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되면 후방에 독립된 게르(유목민의 천막)를 배당받았다. 이 게르에는 검은 색 창을 둘러 안에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어갈 사람이 있음을 표시했다. 주변에서는 누구도 정숙해야만 했다. 오직 유가족만 게르에 드나들 수 있었으며, 직속상관은 물론 아무리 신분이 높은 사람이라도 가족의 허락 없이는 출입이 금지되었다. 존엄한 죽음까지 배려한 것이다.


몽골 전사들은 이런 말을 습관적으로 했다고 전해진다.


"칭기스칸이 물에 뛰어들라면 물 속으로, 불에 뛰어들라면 불 속으로 전진하리라."


칭기스칸이 부하의 인명을 소중히 할수록, 부하들은 그를 위해 죽겠다고 결심하는 아이러니에 직면했다. 칭기스칸은 병사들의 충성심을 억누르기 위해 애를 써야만 했다.


승리보다 자국민의 인명을 소중히 하는 국가.

역설적으로 이런 국가의 군대는 승리한다.


'공정한 체제'는 지도자의 공약이나 선심 따위로 증명되지 않는다. 몽골군의 경우처럼 국가의 존재 목적이 백성의 이익에 있으며, 국가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보여주어야 인정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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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의 군대는 기본적으로 시민군이었다. 유권자였기에 책임감은 물론 대우도 남달랐다. 적진에 영웅적으로 뛰어들어 적장의 목을 벤 병사보다 동료 시민군을 구한 병사가 더 큰 영예를 누렸다. 전공보다 시민의 목숨을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영웅심을 주체하지 못해 적진에 뛰어든 병사는 살아 돌아오면 영창에 가는 경우가 많았다(전쟁터에 상설 감옥이 있을리 없기에, 보통은 땅을 파 만든 구덩이에 며칠 갇혔다). 그를 구하기 위해 동료 시민이 위험에 빠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로마군은 의외로 많이 패배했다. 로마제국이 지중해 세계를 제패한 힘의 근간은 자국 병력을 다루는 태도에 있다. 로마군은 패배를 확인하면 최대한 많은 병사의 목숨을 보존한 채 철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명예를 위해, 국가를 위해, 전선을 '사수'하기 위해 목숨을 걸라고 외치는 국가는 로마처럼 오래도록 승리하지 못한다.


현대로 오면 미군의 예가 있다. 미군은 아군 부상병을 살리기 위해 어떤 비용도 기꺼이 감수하는 조직이다. 미국처럼 의무병이 많은 훈장을 받는 나라도 없다. 미국은 외부 세계의 입장에서는 전쟁광 국가지만, 내적으로 국민을 납득시키는 방식엔 모범적 측면이 있다. 미군은 어쩔 수 없이 전쟁터에 두고 온 아군의 시신마저 내버려두지 않는다. 전사자 시신 회수 부대를 따로 운용하며, 외교적으로 접근 할 수 없는 지역에 대해서는 백 년이라도 기다리겠다는 게 그들의 정책이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의해 우리도 같은 부대를 보유하게 됐다. 중요한 진보라고 생각한다).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군의 부상자 대비 전사자는 독일과 일본에 비해 깜짝 놀랄 정도로 적다. 미군에게 있어 부상병을 포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기에 그렇다. 미군의 전투력은 무기의 질과 보급량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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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에 대한 접근과 마찬가지로 기회의 평등도 공정성의 차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몽골 제국은 비록 피정복민이라 할지라도 한 번 체제에 편입되면 완전한 평등을 제공했다. 종족, 언어, 종교에 의한 차별은 엄격한 금기였다. 칭기스칸에 의해 나라와 부모를 잃은 사람들, 즉 타타르족과 나이만족, 투르크족 출신 장수들은 그에게 무한한 충성을 바치며 몽골제국의 영토 확장에 투신했다.


비슷한 예로 당나라의 고선지 장군을 들 수 있다. 고구려가 멸망하고 수많은 유민이 당나라에 끌려간 과정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한 번 체제에 편입되면, 적국의 유민 출신이라도 기회가 보장되었다. 그리하여 불과 두 세대 만에 멸망한 적국의 혈통이 대장군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고구려와 비교해 보자. 부여족을 제외한 이민족은 분명한 차별을 받았다. 발해 역시 말갈족과 돌궐족은 엘리트층에 진입할 기회가 제한되어 있었다. 그들은 체제에 충성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두 나라는 한 두 번의 외부 충격으로 사라졌다. 사회 내부의 느슨한 결속력이 이유 중 하나임은 자명하다.


고구려와 발해가 한국사의 멋진 추억이자 낭만임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동시에 당나라가 두 한민족 국가보다 선진국이었다는 사실 역시 부정할 수 없다. 당나라가 성취한 수준은 중국의 크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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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한민국의 군대로 와 보자.


한숨이 나올 것만 같지만 과거를 돌이켜보면 조금 이상하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은 인민군에 비해 물자는 물론 군기와 도덕성의 차원에서도 형편없었다. 극에 달한 수뇌부의 부패, 병사들에 대한 배임행위 등 도무지 싸울 동기가 부여되지 않는 군대였다. 망하는 군대의 전형이다.


그런데 농민 출신의 일선 국군 병사들은 착취와 폭력을 당해가면서도 인민군에 맞서 최선을 다해 싸웠다. 그들이 단지 소처럼 순박해서 그랬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한국의 농민들은 그렇게 순했던 적이 없다.


한국전쟁은 남한에서 친일 지주들의 땅을 모든 농민들에게 분배한 농지개혁 이후에 발발했다. 누구든 지주에게 소출의 3할을 5년간 상환하기만 하면 자영농이 될 수 있었다. 이는 '무상몰수 무상분배'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나라에 25%의 현물세를 영구적으로 바쳐야 하는 북한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이었다. 즉 농민들이 느끼기에는 남한의 토지개혁이 그들에게 더 '공정했다.' 그래서 군 수뇌부의 부패를 견디면서도 인민군에 전향하기는커녕 열심히 맞서 싸운 것이다.


남한 농지개혁의 설계자가 공산주의자인 죽산 조봉암 선생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국군과 인민군의 싸움은 물론 이념 대립이지만 일선 병사들의 입장에서는 분배와 분배, 좌와 좌의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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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금의 한국군은 병사들에게 어떤 가치를 제시하는가?


나는 군 개혁 없이는 더 이상 유사시에 한국군에 승리를 기대할 수 없다고 믿는다. 공짜 인력으로 간주되어 함부로 쓰이면서도 목숨을 바치는 국민은 세상에 없다. 전문적인 군사평론가의 눈에는 유치한 담론이겠지만 물질적 조건만큼 심리적 동기도 중요하다고 본다.


만약 지금 전쟁이 터진다면 사병들은 자기 생명의 쓰임새를 저울질할 것이다. 많은 사병들이 즉각적으로 전쟁을 '제 자식 군대 안 보내는 이들, 부모 잘 만나 군대 안 온 이들' 그것도 '우리보다 잘 사는 이들'의 생명과 재산을 위해 내 목숨을 거는 싸움이라고 규정하지 않을까? 혹은 간부들의 승진을 위해 고작 시급 몇 백 원에 상이용사가 되어주는 싸움이라 믿을 것이다.


"우리의 주적은 간부"라는 흔한 군대 농담은 결코 농으로 치부될 현상이 아닌 불길한 징후다.


내가 복무했던 부대의 농담이 있었다. 사실 태극기 게양대 밑에는 인공기 한 장이 고이 접혀 있다는, 아무도 믿지 않는 농담의 내용은 ‘우리 대대는 인민군이 밀고 내려오면 순순히 인공기를 걸고, 다시 국군이 수복해 올라오면 태극기를 걸면 된다’는 것이었다.


재밌는 유머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우리와 상관없는 어떤 이들'을 위해 목숨을 걸지 않겠다는 섬뜩한 내용이기도 하다.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은 적어도 군대에 있어서는 국민에게 국가가 쓸 만한 도구임을 증명하는 데 실패해왔다. 동아시아 정세가 언제 어떻게 폭발할지 모르는 현재 우리 군의 결속 수준은 위험하고 위태롭다. ‘지는 군대’의 조건을 모자람 없이 충족하고 있다.


군대는 국가가 국민을 어떻게 여기는지 내보이는 프레젠테이션 현장이다. 징병제가 유지되는 한 사병의 인권과 존엄은 국격이 아닌 국가 존망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방개혁 의지에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문재인의 접근은 참여정부 시절보다 진일보한 지점이 있다. 사병 출신인 노무현은 사진과 멘트 등으로 사병의 애환을 이해하는 대통령임을 연출했다. 훈훈했고, 좋은 전략이었다. 사병 월급 인상 등의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가치체계의 전환까지 본격적으로 시도하지는 않았다.


현 대통령에게서는 보다 본질적인 차원의 고민이 느껴진다. 그의 도전이 어디까지 성공할지는 미지수지만 일반 사병과 국민들이 군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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