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2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퇴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1. 들어가며
2011년 5월, 34년간 장기 집권했던 인도 웨스트 벵갈주의 좌파연합 정권이 몰락했을 때, 대한민국의 우파라고 하는 분들은 대책없는 포퓰리스트를 “34년 집권 공산당을 쫓아낸 인도의 여걸”이라고 칭송했다. 반면 좌파라고 하는 분들은 “진보의 우클릭이 선거 승리를 보장하는가?”라는 어처구니 없는 소릴 했다. (관련기사 링크)
좌든 우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거. 이거 아마 임진왜란 때의 김성일과 황윤길 이후 좀 고질인 것 같다.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가 불타고 있다는 외신들에 대한 포털 댓글들도 마찬가지다. 2013년 암으로 사망한 차베스에 대해 미련이 많은 좌익과 모든 복지는 국가를 말아먹는다는 선동 하시기 바쁜 우익들이 참 재미있게들 놀고 있더라. 하지만 카라카스가 불타고 있는 이유는 훨씬 복잡하다. 무엇보다 베네수엘라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세상 만사를 자신들의 틀에 맞춰 보는 분들의 관심사와는 아주 거리가 멀다. 이 이야기, 좀 자세하게 해보자.
2. Piccola Venezia
15, 16세기에 지금의 베네수엘라 땅을 찾은 유럽의 탐험가들이 마라카이보 호수의 원주민 천막들이 베니스를 연상시킨다고 이 지역을 Piccola Venezia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작은 베네치아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16세기부터 18세기 초까지 이 지역은 스페인 제국의 신대륙 전초기지로 개발된다. 주된 역할은 누에바 에스파냐, 즉 멕시코에 식량을 공급하고 카리브 지역에서 제국을 방어하는 것이었다.(“현대 라틴 아메리카”, 그린비, 토머스 E, 스키드모어, 피터 H, 우석균, 김동환 외 옮김)
라틴 아메리카의 농업대국이었던 나라가 베네수엘라다. 이 농업대국은 후안 빈센테 고메즈(Juan Vicente Gómez, 1857년 7월 24일~1935년 12월 17일)가 대통령이던 1914년에 석유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단 한 세대만에 식량 수입국이 되어버렸다. 석유 수익이 늘면서 베네수엘라의 화폐인 볼리바르화의 가치가 상승했던 것이다. 자국 화폐가치가 상승하면 어느 나라든 수출 경쟁력은 약해진다. 세계 대공황기에 커피와 카카오 수출이 침체되면서 비석유 부분의 자산가들은 그렇게 사라졌다.
석유가 모든 것을 해결하다보니 산업화도 지연되었다. 모든 제품을 수입할 수 있으니 국내 제조업을 육성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1960년대와 70년대 베네수엘라는 다른 중남미 국가들과는 사뭇 다른 위치를 가지고 있었다. 중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였다. 당시 광공업장관을 역임했던 후안 파블로 페레스 알폰소(Juan Pablo Pérez Alfonzo 1903.12.13~1979.9.3)는 “우리는 여타 중남미 국가들과는 다르다, 우리는 브라질보다 사우디 아라비아에 가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1970년대 베네수엘라
3. 먼로주의, 시프리아노 카스트로
1823년 12월 3일, 미국의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James Monroe, 1758년 4월 28일~1831년 7월 4일)는 의회 연두교서에서 “유럽 국가가 아메리카 대륙의 국가들을 식민지화하려 하거나 전쟁을 일으키려고 한다면 이는 미국에 대한 전쟁으로 규정하고 대응하겠다”고 선언한다. 미국은 유럽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신경끄겠으니 우리 나와바리는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른바 먼로독트린(Monroe Doctrine)이다.
유럽에선 이 선언을 신생독립국의 패기 정도로 취급했다. 그러나 1890년대 중반, 영국이 기아나에서 베네수엘라와 국경분쟁을 일으켰을 때 베네수엘라는 진지하게 먼로선언을 말하면서 글로버 클리브렌드(Grover Cleveland1837년 3월 18일~1908년 6월 24일, 미국의 22대 24대 대통령) 미국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유럽국가들의 신대륙에 대한 영향력 차단을 원했던 미국은 바로 호응했다. 미국과 영국, 그리고 러시아와 베네수엘라가 대표로 참여했던 경제획정위원회에선 1835년 기준의 국경선을 확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1899년 10월 20일부터 1908년 12월 19일까지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이었던 시프리아노 카스트로(Cipriano Castro 1858년 10월 12일~1924년 12월 4일) 재임 기간에 또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 생긴다. 쿠테타로 정권을 장악했던 시프리아노 카스트로는 엄청난 사치를 즐겼다. 경기침체기에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이가 사치를 즐기고 있으면 민중봉기가 일어난다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 결과 1902년 시프리아노 카스트로는 디폴트를 선언해버렸다. 돈 빌려줬던 영국과 독일, 이탈리아는 바로 군함을 보내 카라카스를 포격하겠다고 날뛰었다. 미국의 26대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1858년 10월 27일~1919년 1월 6일)가 협상을 시작했다. 1903년 워싱턴에서 채무상환 방안을 합의하게 된다.
이 두 사건을 지나면서 신대륙이 미국의 배타적인 영향권이라는 것이 공고해졌다. 물론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도 공고해졌다고 할 수 있다.
4. 그리고 푼토피호 조약
제1차세계대전 이후부터 1950년대의 베네수엘라 정치는 군부와 정당이 계속 지지고 볶는 과정이었다. 군부는 1952년 선거를 무효화하고 마르코스 페레스 히메네스(Marcos Pérez Jiménez, 1914년 4월 25일~2001년 9월 20일)를 대통령에 앉혔다. 그리고 무자비한 독재를 시작했다. 그랬던 그가 1958년 부정선거를 저지르자 공군이 주도되어 쫓아내버렸다.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정치세력들은 더 이상 권위주의적인 정부가 들어서지 않을 방안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베네수엘라의 세 정당, 민주행동당(Acción Democrática AD), 사회기독당(COPEI Social Christian Party), 그리고 민주공화동맹(Unión Republicana Democrática URD)은 석유수입은 모든 주요 경제집단에 분배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하고 모든 세력들이 설 핵심적인 이익을 위협하지 않겠다고 보장했다. 군부에겐 군부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 급여와 장비를 대폭 개선하고 과거 행위에 대해 사면을 부여하며 국가에 헌신한 공로를 대중적으로 인정하겠다고 제안했다. 군의 전문성 강화와 독재에 연류되었던 낙인을 지우기 바랬던 소장파 장교들은 이를 수용한다. 이 협약이 바로 푼토피호 조약(Puntofijo Pact)이었다.
일면 훌륭한 조약으로 보이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이들 개혁 조치를 실행하기 위해선 미국의 힘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들은 미국의 냉전정책을 지지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가 30년 뒤에 나왔다. 푼토피호 조약이 맺어진 후 30년이 지나자 이들 정당들이 보수화되면서 서로 구분하기 힘든 상태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 결과 새로운 정치인들이 정치에 나설 기회도 차단되어 있었다.
Samuel Seong
트위터 : @ravenclaw69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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