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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4. 04. 목요일

Samuel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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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네스티 코리아가 최근 집중하고 있는 곳이 인도 Orissa주의 POSCO 공장 부지 강제 수용건이다. 본 기자, 이 사안에 대해 할 말이 좀 많다. 사실 간단하게 정리할 수도 있는데, 독자님들의 이해를 좀 쉽게 하기 위해 좀 많이 돌아야 한다... 도 있지만 최근에 벌어진 여러가지 일들에 대해 할 말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여튼, 방글라데시부터 인도의 웨스트벵갈을 거쳐 역시 인도의 오릿사주로 가보도록 하자.

 



방글라데시 치타공

 

구글어스에서 Chittagong을 치면 위성지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거대한 배들이 한 쪽에 몰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은 전세계 폐선박들의 무덤이자 다시 태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 분해된 철판은 방글라데시 철강수요의 85%를 담당한다. 이 작업은 안전장비 하나 없이 모두 사람들의 손으로 이루어진다.

 

이들의 삶을 담담한 시각으로 담아냈던 다큐멘터리가 <철까마귀의 날들>이라는 다큐멘터리였다. KBS에선 2009 7 19일 방영되었고, 편집본이 전세계 3대 다큐멘터리 영화제 중에 하나인 2009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당당하게 대상을 쥐었다. 아마 본 독자분들 꽤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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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일년에 20명의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도 하루에 1달러를 벌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이 순박한(?) 이들이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는 이들이 있다. 그 의외성 때문에 다큐멘터리를 본 독자들은 모두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좀 뜬금없지만, 이들이 적대감을 보이는 이들은 바로 국제환경 NGO, 그리고 이들과 함께 일하는 방글라데시 NGO들이다.

 

환경오염을 이유로 폐선처리를 제3세계에 맡기는 선진국들의 관행에 대한 고발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이걸 막겠다고 나서면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루 임금 1달러, 그러니까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야 버는 돈이 365 달러, 험한 곳 돌아다니는 이들에게 사랑받는 LOWA 등산화 한 컬레 값이 연봉인 이들에게 자신들이 1년을 버는 돈을 신발에 쓰는 외국인들은 그냥, 다른 차원의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이 특히 적대감을 보이는 것은 자국의 환경 NGO들이다. 이것은 환경운동가와 현장일꾼의 일반적인 갈등이 아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자국의 환경 NGO '졸라 잘사는 외국에서 보내주는 돈으로 호의호식하면서 자신들의 밥줄을 끊겠다고 덤비는 자들'로 인식하고 있다. '우아한 생계수단을 가지신 분들께서 몸으로 먹고 사는 우리를 탄압한다'고 받아들이는 것. 이게 사실이면 안 빡도는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상당히 많은 제 3세계 NGO들에서 치타공의 폐선 해체 노동자들의 의심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다. 국제활동가로 명성이 높은 엄기호 선생의 <닥쳐라 세계화>에도 등장하는 제 1세계에서 연금으로 살아가는 국제주의자가 생활비를 아껴서 보낸 돈으로 벤츠굴리며 자기 애 외국어 과외 시키는 NGO대표가 지구상에 몇 명만 있는게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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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자도 개가 죽은 개의 머리를 물고 다니는 험한 동네에서 굴러먹은 게 7년이 넘다보니 실제로 이런 곳들을 몇 군데 알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은 NGO라는 수익모델을 만들어 낸 현지인들에게 있다기 보다는 현지의 상황에 대해 무지할 뿐만 아니라 졸라 오만하기 그지 없는 활동을 벌이고 있는 국제 NGO들에 있다고 본다. 폐선처리과정이 방글라데시의 주요 경제 사슬로 편입된 게 언제인데 이걸 잘라내겠다니, 이 얼마나 황당한 짓거리란 말인가? 너네가 방글라데시 철강수요의 85%를 어디서 갖다줄라고?

 

문제의 현장에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이들이 진짜로 해야 하는 것은 일년에 20명이 죽어나가는 환경을현지에 특화된 적정기술을 통해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와 '빈약한 인프라에서 어떻게 환경부하를 줄일 수 있을 것인가'하는 고민이다. 그런데, 이거 현장에서 이 분들의 활동을 몇 번 지켜본 경험으로 놓고 보자면 엄청난 압박이 가해지지 않는 한, 이런 식으로 이들의 활동이 바뀔 가능성, 없다. 포경선을 쫓아가서 몸으로 막는 것과 같은 스펙타클이 있어야 후원자들이 끊이지 않는데, 구호 만들기도 간단하지 않은 현실인 걸.

 



인도 West Bengal, Mamata Banerjee, 그리고 TATA Nano

 

2011 5, 34년간 장기집권하고 있었던 인도 웨스트 벵갈주의 좌파 연합이 개 털렸다. 그런데 이게 한국에서 전달되는 과정을 냉정하게 보면 좀 많이 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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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userId=iohcsj&logId=5546158


먼저 주간조선 편집장님의 블로그  “34년 집권 공산당을 쫓아낸 인도의 여걸이 타이틀이다. 이 분, 인도에 대해 꽤 잘 아는 분이며 본문 글도 사실 전달에 꽤 충실한데, 포커스가 저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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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21212100947


그 다음은 프레시안의진보의 우클릭이 선거 승리를 보장하는가?" 우경화가 몰락을 부추겼다는 이야기...

 


이 두 이야기 이상 알 필요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본 기자의 사골을 끓이기 전에 브라우저의 뒤로가기 버튼을 누르시는 게 나을꺼다그래도 알고 싶은 분들은 본 기자의 사골인 인도의 마오이스트, Naxal 부터 복습하자.

 

쓴 거 다시 쓰기도 참 멋적으니 그냥 링크만 연결하면 좋겠는데, 하필이면 Naxal관련 글들은 딴지 해킹 사건으로 복구불가 상태가 된 글들에 포함된다. 그러니 초간단 요약을 하면 다음과 같다.

 



Naxal

 

 


홍차로 유명한 다르질링. 해발 2200여 미터의 다르질링에서 내려와 네팔로 넘어가는 길에 이 단체가 쓰고 있는 이름의 마을이 있다. 낙샬바리 Naxal Bari. 1967년에 이 마을에서 소작농들의 봉기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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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샬바리 마을의 경찰서 


모든 대형 참사가 그렇듯, 사건의 발단은 큰 것도 아니었다.

 

1967 3 3일. 이 마을의 소작농 세 명이 150명의 공산당원을 이끌고 지주의 곡물창고를 털어갔다. 그런데 이런 일이 같은 해 5월까지 100회 이상 벌어진다. 이후 경찰과 충돌이 벌어지게 되는데, 이 폭력시위를 3명의 공산당원이 '지도'하기 시작한다. 인도 공산당 내에서도 좌파 그룹에 속해 있었던 Charu Majumdar(1918~1972.7.28 사망. 체포 후 12일만에 옥사), Kanu Sanyal(1929~2010.3.23), Jangal Santhal(?~1987년 사망)이 그들이다.

 

5 23일에는 경찰이 발포하는 바람에 10명 이상이 사망한다. 계속 사태는 악화되다가, 드디어 7 12일 웨스트 벵갈 주정부는 1500명의 무장경찰을 출동시켜 무장항쟁을 일으킨 소작농들을 모조리 체포한다.

 

이때 웨스트 벵갈 주정부의 주도 세력이 인도공산당이었다. 무장봉기를 일으켰던 주동자 셋 중 하나인 Charu Majumdar은 바로 그 다음 해에 낙샬들이 '역사적인 여덟 개의 문건'이라고 부르는 성명을 발표하고 자신들의 이념적 지향이 '마오주의'라 밝히면서 인도 공산당과 공식적으로 결별한다.

 

이 후 1970년대 웨스트 벵갈의 주도 꼴까따의 좌파적 성향인 대학생들의 결합을 시작으로 인도 전역에서 좌파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지성들이 이들과 결합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합류에 자신감을 얻은 Charu Majumdar '지주, 사업가, 대학교수, 경찰간부, 좌우파 막론하고 고위급 정치인' '인민의 적'으로 개별적으로 처단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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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떤 상황이었기에 이렇게 막 나갔을까?

 

본 기자의 네팔인 파트너는 네팔 남부지역의 지주 명문가 자제다. 왕정을 무너트렸던 2006년 혁명 당시 마오바디들이 파트너의 집으로 몰려가 동네에서 쫓아냈었다. 그 경험 때문에 지금은 무장경찰부대와 군 부대 근처에 집 지어놓고 5미터짜리 담장을 만들어놓고 산다. 이 경험 이야기에 소작료가 도대체 얼마였기에 그랬냐고 했더니, 파트너가 하는 말. “우리집은 매우 자비로와서 그 즈음에 소작료를 50%로 내렸어”, 말 많다고 다그치면서 그 전엔 얼마였냐는 질문에 대답이 “80%”

 

이게 그냥 80%도 아니고 자신이 지정한 퇴비를 쓰고 지정한 농기계를 빌려서 농사 짓고 소출의 80%를 내놔야 했던거다. 씨방 생퀴, 안 죽인게 다행이지...

 

여튼, 이런 고질적인 문제를 인도 웨스트 벵갈의 집권당이었던 좌파연합은 한국식 토지개혁(유상몰수, 유상분배)으로 해결하는 데 성공, 낙샬들의 주요 활동무대는 웨스트 벵갈 옆의 비하르, 오릿사 등으로 옮겨지게 된다. 이게 1978년의 일이었다.

 

비하르와 오릿사에서 낙샬들에 의해 경찰정보과장의 목이 잘려 효수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웨스트 벵갈 좌파 연합은 자기들이 이 문제는 34년 전에 해결했으니 제조업을 유치해 경제를 일으켜보자고 대규모 부지가 필요한 대공장을 하나 유치하러 나섯고, 유치하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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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TA

 

그리고, 이들이 유치한 회사는 바로 인도의 국민기업 TATA였다.

 

라탄 타타 회장이 길을 가다가 한 가족이 바이크를 위험하게 타고 가는 것을 보고, 저들이 구매할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어야 겠다고 해서 개발된 TATA Nano의 생산공장이었다. 그 전설의 자동차. 10만루피, 한화 200만원으로 살 수 있는 자동차를 생산하는 공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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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TA 그룹은 그냥 저냥한 회사가 아니다. 20세기도 아니고 19세기말에 8시간 노동제를 도입하고, 그 시기에 공장 자체에서 산업재해보험과 의료보험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잠세드뿌르에 TATA 스틸을 만들 때 공장에서 가장 먼저 설계했던 곳은 노동자들의 휴식공간이었던 회사다. 거기다 창업자인 잠셋지 타타는 인도가 산업화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정치적으로 독립한다고 해도 진정으로 독립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다보니 경제 발전 뿐만 아니라 인재에 대한 투자도 폭넓게 해서 인도 독립 즈음에 인도인 관료들의 80% TATA 장학금으로 학업을 마쳤던 이들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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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세드뿌르는 타타그룹의 창업자 잠셋지 타타의 이름을 따서 붙인 도시

아예 도시의 역 이름이 TATA다


쫌 더 가자.

 

2008 11 26일 일군의 테러리스트들이 뭄바이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호텔을 턴다. TATA 그룹의 창업자 잠셋지 타타가 뭄바이의 대형 호텔들은 인도인 출입이 불가하다는 것에 빡 돌아서 만들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이 호텔. 바로 여기에서 수많은 관광객들과 호텔 노동자들이 살해되었다.

 

당시 회장이던 라탄 타타는 사태 수습 기자회견에서 맨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한다. 살해된 우리 노동자들의 가족에겐 이들이 원래 정년퇴직해야 하는 그 날까지 계속 임금을 지불하도록 하겠습니다. 더불어 살해된 우리 노동자들의 유자녀에겐 그들이 국내외 어디에서 공부하든 학비는 전액 우리가 부담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말을 덧붙였다고 한다. 가족을 잃은 분들에게 이게 충분한지 모르겠습니다라고...

 

그런데도 이런 회사를 유치하는 게 신자유주의에의 투항인가?

 

얼마전 미디어스에 주대환의 인터뷰가 실린 적이 있었다. 한국 운동권들이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는지를 지적하면서 언급했던 게운동권들이 토지개혁의 성과를 무시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TATA가 어떤 회사인지는 금속노조에게 TATA대우가 어떤지를 물어보고 말이든 막걸리든 만들 일이다.

 

그런데 왜 망했지?

 

그러니까 좌파 연합은 제대로 된 회사를 유치했던 거다. 그런데 왜 망한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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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라 냉정하고 심플하게 정리하자면 동네 이장들이 삥 좀 뜯겠다고 나선 걸 34년간 집권하면서 간이 부어 터져 달에 닿아버린 웨스트 벵갈 집권당이 그냥 갈아버려서 그런거다. 주간 조선 편집장께서 '여걸'이라는 호칭을 부여한 마마타 바네르지는 이 삥 뜯기 판을 엄청나게 키우는 데 공헌하신거고.

 

주간 조선 편집장님이 '여걸'이라고 칭한 마마타 바네르지의 전임 철도장관이 남아시아 일대에서 정치 개그란 정치 개그에는 다 등장하는 랄루 프라사드 야다브(Laloo Prasad Yadav)였다. 이 분, 인도에서도 가장 가난한 동네라 큰 도시에서촌놈을 부르는 말로 쓰이는비하르인들의 주, 비하르에서 꽤나 오랫동안 주총리를 해드셨던 분이다. 반복한다. 역임하신 분이 아니라, ‘해 드셨던 분이다.

 

일본의 ODA를 통크게 해 드시는 덕택에 OECD국가들의 ODA집행 방식을 바꾸는 데 큰 공헌을 하신 분이며 막내 따님의 결혼식 때 식비로만 한화로 2억을 쏘셨다는 통 큰 아버지이기도 한 이 분이 도대체 어떤 인간인가는 잘 알려진 이 농담 하나만 소개해도 될 것 같다.

 

일본의 나카소네가 비하르에 와서 “내가 주총리라면 비하르를 10년내에 일본 수준으로 만들어놓을 것이오”라고 했더니 씨익 웃으며 “내가 일본의 총리라면 1년이면 일본을 비하르로 만들 수 있지요”라고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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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바로 나야


이 분이 철도장관 하시면서 안 해 드시고 얌전하게 임기를 끝냈을까? . 그런데 이 전설의 부패 정치인보다 더 엉망으로 만들어놓는 데 공헌을 한 분이라면 도대체 어떤 양반이겠는가?

 

마마타 바네르지는 싸구려 옷만 입는다고 칭송이 자자하지만 인도 철도를 랄루보다 더 엉망으로 만들어놓는 데 큰 공헌을 하신 분이며, 2008년 이후의 West Bengal주 상황 역시 별로 좋지 않다. 아니 삥 뜯으러 나서서 판을 키운 분이 무슨 제대로 된 정치를 하겠어?

 

국제문제로 가면 좌우가 쌍으로 밥통 같은 말 하는 경우, 이렇게 흔하다. 뭐 이런 밥통 같은 말을 해도 먹히는 건 인도에 자아 자판기 찾으러 가는 이들과 인도의 밤문화만 궁금한 이들이 대한민국의 다수기 때문이지 뭐.

 



그리고 Orissa POSCO

 

POSCO가 인도에 투자하겠다고 했던 금액이 얼마인지 지금 기억이 잘 안나는데, 언젠가 뭐 조사할 일이 있어서 뒤져봤을 때, 그게 인도에 10년간 투자한 외국인 투자금액의 총액 수준이더라는 걸 알고 확 깼던 적이 있다. 그런데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승인은 받아놓고, 정작 도장 받아야 할 곳, 한 곳의 도장을 못 받는 바람에 지금까지 삽 못 파고 있다. 도대체 POSCO가 인도에 투자하겠다고 한 게 언제적 이야기인데!

 

이들이 도장 받았어야 할 곳? 바로 빤짜아트다.

 

빤짜아트는 다섯 명의 원로들이 행정과 사법권을 가진 상태에서 지역을 운영하는 것으로 간디가 가장 이상적인 사회로 생각한 형태다. 그러니까 간디에겐 지주로 태어난 이들은 지주로, 불가촉 천민으로 태어난 이들은 평생 인간의 배설물만 치우고 자식에게도 세습되는 체제가 가장 이상적인 체제였던 것이다.

 

인도에서 토지 분쟁이 극심해서 Naxal들이 맹활약하는 지역들은 모두 빤짜아트의 힘이 강한 곳들이다. 당연하지, 종교적 이유로 낮은 카스트에게 터무니 없는 징계를 가하는 곳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에서 가장 저항이 심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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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만은 신을 찬양해야 하기 때문에 지주로 태어나야 하고, 이 귀중한 이들을 먹여 살려야 하니 일하는 놈들이 조빠지게 일해야 한다는 체제가 가장 빡세게 작동하는 곳이라면 바로 거기서 가장 격렬한 저항들이 일어날 수 밖에 없지 않겠나? 당근 Naxal들의 주요 나와바리들이 바로 그곳들이다.

 

POSCO입장에선 황당했을꺼다. 세상에 이장들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니!!!! 중앙정부도 아니고 이장이라니! 이장이 뭐야!!!

 

이런 곳에서의 싸움에 Naxal을 비롯한 엄한 인간들이 안 달라붙어서 지원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믿는다면 그 분들, 참 세상을 해맑게 살아오신 분이리라.

 

사실 투자하겠다고 돈 갖고와서 은행에 집어넣은 돈의 이자가 어디로 도망갈 일 없는 POSCO보다 제조업 좀 일으켜서 중국과 경제적으로도 맞짱을 떠야하는 인도 중앙 정부의 똥꼬 끝이 따끈따끈해지는 것이 당연지사 아닌가? 인도 정부는 꽤 오래전부터 POSCO만 전담하는 수상실 직원들까지 두고 전적으로 지원해왔다고.

 

사실 그러니 최근에 POSCO가 욕먹는 건 좀 뜬금없는 거다.

 


특히 앰네스티 인터네셔널에서 여기 좀 집중하는데, 본 기자... 얼마전에 트위터에서 아우팅 당해 날아간 고은태 선생이 아쉽다. 제 3세계와 관련된 켐페인을 벌일 때 어떤 삽질들이 일어나는지 꽤 많이 알고 있었던 분이라 함부로 올인하는 거 좀 아니라는 걸 말 할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사람이니 말이다. 사실 이건 앰네스티 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대한민국 조직이 그렇다. 어떤 일은 어떤 사람 아니면 안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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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단순한 일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단순하게 보려고 꽤들 애를 쓴다. 그러니 엄한 놈이 나쁜 놈이 되는거다. 그리고 상대를 나쁜 놈 만드는 데 필요한 단어 쪼가리들은 3살 아기들이 구사할 수 있는 단어 숫자 정도다. 꼴페미, 개마초, 안빠, 노빠, 종북, 수꼴... 세상 일이라는 게 그 단어 쪼가리 몇 개로 조합될 수 있는 게 몇개나 된다고 그러나?

 

2009 5월 이후, 너무 조급하며 너무 단순화시키려고 했던 게 아닌가? 이젠 이 단계를 어떻게 넘을지 고민 좀 해야 하지 않을까?

 



PS. 말 꺼낸 김에 덤으로 POSCO에게 한 말씀 드리자면 웨스트 벵갈 주의 저 아수라장 끝에 TATA Nano는 거의 다 만든 공장을 몽땅 다 뜯어서 구자랏으로 옮겨가야 했던 것만 상기시켜드린다. 다행인지 아직 마마타 바네르지급은 붙지 않았다. 그러니 좀 잘해보시라. .






SamuelSeong

트위터 : @ravenclaw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