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3.03.30.토요일
논설우원 파토

 

 
지난 두 편에 걸쳐 시대를 풍미한 비운의 밴드 광야(廣野)와 그 장렬한 산화의 전설에 대해 널리 알려 드린바 있다. 그러나 당시 부산 지역에 오직 광야만이 활동하던 건 아니다. 그 무렵 우원 주변에서 암약하던 뭇 아티스트들의 위용과 포복절도할 활동,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여건과 사회상 또한 전설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을 터.
 
이제 그들의 자취를 잠시 들여다보도록 한다.

 

1. 전설의 밴드
 

image001.jpg


이미 말했듯 우원의 밴드 광야의 뜻하지 않은 성공은 부산 동래 지역에 밴드 광풍(狂風)을 몰고 오기에 이른다. 그 속에서 명멸해간 아티스트들은 가히 수십(數十)에 이르고 우원이 잘 모르는 경우도 적잖이 있겠으나, 특히 눈에 띄는 몇몇은 본 지면을 통해 음악사에 기록될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들 중 가장 먼저 결성된 그룹은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를 연상케 하는 헤비 록 트리오 <세마치>. <시나위>처럼 한글 석자로 된 전통 리듬의 이름을 차용한 것만 봐도 우리네 5천년 록 음악을 부흥시키려는 확고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 밴드를 이끈 리더는 광야의 리듬기타 수환이의 동급생이었던 바, 지근거리(至近距離)에서 광야의 성공에 크게 영감을 얻은 것이 분명했다.
 
허나 이 밴드가 전설이 된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니다. 그들의 영광 뒤에는, 이름과 멤버만으로 존재했을 뿐 일체의 실제적인 활동도 벌인 바 없다는 가공할 사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는 일렉기타를 친다는 ‘말’만으로도 관심과 존경을 받던 때라, 리더이자 기타리스트 김을용(현 44세, 가명)은 오로지 플라스틱 필통 표면에서만 빛나는 핑거링을 보여줬을 뿐 어느 누구도 그의 실제 연주를 본 적이 없었다.
 
합주나 그 밖의 활동도 절대 비밀로서 그들 3인이 모여있는 모습은 공연 무대가 아닌 교정 으슥한 곳에서의 흡연(吸煙) 광경으로만 목격되었을 뿐이다. 김을용이 실제로 일렉기타를 소유했었는지 조차 음악사가들의 의견이 갈리는 실정이니, 가히 진정한 레전드란 무엇인지 보여주는 신비로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image002.jpg  


전설은 쉬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런 세마치 외에 진정한 전설의 라벨을 감히 달 만한 한 팀을 더 뽑자면 우원의 학교 직속 후배들로 이루어진 헤비 록 밴드 <용트림>이어야만 한다. 이들은 광야의 경우와 비슷하게 울 학교 축제에서의 데뷔를 목표로 결성되고 연습했었는데, 축제일 직전 록 밴드의 공연 스케줄이 있는 걸 알게 된 학주가 불허 방침을 천명하고 만다.
 
그러나 그들은 불행한 결말을 예견한 우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정된 실내 체육관이 아닌 운동장 구석에 드럼과 앰프를 갖다 놓고 공연을 강행하기에 이르렀다. 전기 시설이 없어 급조된 초소형 배터리 앰프를 갖다 놓고 벌인 극악 로우파이 사운드의 공연이었지만, 그런 것 따위는 끓어오는 예술혼(藝術魂)과 주체할 수 없는 록큰롤의 열정(熱情) 앞에서는 아무런 장애도 아닐 터.
 
다만 아쉬운 것은 채 한 곡이 끝나기도 전에 학주가 달려와 수십 명의 여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쳐 맞고 악기마저 압수당하며 발길질에 내쫓긴 점이라 할 것인데, 어떻게 맞았는지 눈이 시커매져서 내게 달려와 ‘형님, 그래도 했습니다!’ 라고 부르짖던 리더 권모(權謀)의 얼굴은 오늘 이 순간까지도 잊을 수 없다.

 
image004.jpg
그러나 그날 이후 용트림의 연주를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성난 학주가 멤버들의 부모에게 연락을 취했던 것.
 
 
늘 그렇듯 일부 호사가(好事家)들은 이날 입대껏 이들을 비웃기 위해 천박한 세치 혀를 놀린다. 공연은 고사하고 합주 장면 한번 보여주지 않은 밴드가 밴드며, 용트림의 전설적 라이브도 대부분의 관객들이 공사장 소리 같은 잡음에 호기심으로 들른 후 두들겨 맞는 모습만 목격했다는 류의 폄훼(貶毁)가 그것이다.
 
백번 양보해 그런 소리들에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다고 치자. 허나 망신(亡身)과 실패로 귀결되었다 한들 적어도 그들의 청춘(靑春)은 한때나마 뜨거운 겉멋으로, 열정으로 불타오르지 않았던가. 니들은 그런 뜨거움을 가진 적 있었냐.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는 거 아니다.
 
 
2. 전설의 무대
 
사직보칼이 당당히 지역 록의 메카로 군림하던 영광의 시절, 우리 젊은 록커들의 공연 여건은 절라 어려웠다. 공연 장소를 구하는 것부터 난항이었는데, 밴드들의 경제력이 거지 수준이었던 데다가 관객층도 얼라들에 국한되고, 그나마 학교에서는 양아치 취급을 받는 실정이니 쉬울 리 없다. 그래서 당대의 탑 밴드 광야마저도 한낱 일일찻집 무대를 전전했던 것이다.
 
허나 그러던 중 우리는 가뭄의 단비 같은 한 공간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향후 부산 헤비 록 공연의 전당으로 위명(偉名)을 떨친 그 곳.
 
바로 부산 반공회관(反共會館).

 
  image006.jpg
( ... )
 


 

편집부 주


제 여러분은 무규칙2종매거진 [더딴지 5호]에서

반공회관과 롹뮤직의 충격적 만남을 목도할 수 있다.


파토와 그의 친구들은 급기야

꿈의 무대인 여고 강당에까지 진출하게 되는데...


편집부는 아래의 링크를 마련해드림으로써

독자 여러분들에게 최대한의 예를 갖추고자 한다.


더딴지 5호 보러 냉큼 달려가기






 
 
논설우원 파토
@pato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