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춘심애비 추천11 비추천0

2013. 04. 03. 수요일

춘심애비




 001.jpg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혼자, 혹은 연인이 있는 사람이 배우자, 혹은 연인이 아닌 다른 사람과 섹스를 하는 것에 대해 옳지 못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게 꼭 가정을 버리고 연인을 버리는 수준이 아닌 원나잇이나 매매춘이라 해도, 옳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건 마찬가지다. 그 이유가 뭘지 생각해보면, 궁극적으로 '상대방에게 고통스러운 감정을 주기 때문'으로 귀결된다. 성경을 들먹이든, 유교문화를 들먹이든 간에, 궁극적으로는 배우자 혹은 연인이 싫어하니까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이 난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사람들은 자신의 연인이나 배우자가 다른 사람과 섹스를 했다는 사실에 상처를 받고 고통스러워하나? 아마도 그럴 거다. 많은 사람들이, 허허 웃어넘기진 못할 거다. 하지만, 일부다처제 사회의 여성들은, 자신의 남편이 다른 여자들과 섹스하는 걸 염두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다른 여자들과 한 집에서 살기도 한다. 이 사람들은 엄청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걸까?

 

아마도 혹자는 이렇게 말하려 할 거다. 바로 그 점이, 일부다처제가 전근대적이고 부조리한 사회문화인 이유 중 하나라고. 수많은 여성들이 그 문화로 인해 고통받기 때문에, 일부다처제는 없어져야 한다고.

 

잠깐. 그렇다면 우리는, 일부다처제가 아직 존재하는 아랍권의 여성들을 측은하게 여겨야되는 건가? 부조리한 사회에서 고통에 신음하는 존재들이며, 우리가 도와주어야 할 대상인가?

 


 002.jpg

 


진짜 문득 들었다는 생각은 바로 이거다. 갑자기 어떤 외국인이 나한테 와서

 

"넌 어떻게 그렇게 개 좆같은 나라에서 살고 있냐…. 졸라 불쌍하다…, 내가 뭐라도 도와주고 싶다, 씨바…."

 

라고 했다고 치자. 난 씨발 기분이 졸라게 나쁠거다. 내가 씨바. 밥 잘 먹고 행복한데 너는 얼마나 잘난 나라에서 왔다고 지랄이야 지랄이. 그 외국인의 국적이 스웨덴이든, 중국이든, 코스타리카든 상관 없이, 난 기분이 나쁘다.

 

범위를 더 좁혀서, 누가 나한테 와서 '넌 어떻게 그런 회사를 다니냐'던가, '어떻게 그런 밥을 먹고 사냐'는 식으로 디테일하게 불쌍해한다면, 기분은 점점 나쁘다. 뭐, 씨바 잘 살고 있는데 그게 뭐 어때서. 하지만 그렇게 기분 나쁘고, 반발감이 든다고 해도, 우리가 다니는 회사가 아주 천국 같거나, 한식이 다른 음식들에 비해 졸라게 위대하고 몸에 좋거나 그런 거까진 아니다. 분명 단점이 있고, 나는 그 단점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불쌍함의 대상'으로 놓아버리면, 나는 기분이 나쁘다.

 

뭔가, 옳지 못하다는 이성적 판단에서 오는 측은지심, 반대로 측은지심으로부터 옳지 못하다는 이성적 판단을 하는 것. 이 과정 자체가, 심하게 폭력적일 수 있다. 그건 감정적인 반발을 살 수도 있고, 그저 폭력적이어서 나쁜 행위일 수도 있다.

 

 

003.jpg



그렇다면 우리가, 70년대에 뼈빠지게 일해서 자기 손으로 나라를 일으켜 놓고도, 박정희를 그리워하며 월간 박정희를 구독하는 우리네 어르신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과연 어느정도 폭력적인 걸까. 뭐, 그때 좀 힘들었어도 살기 좋았는데, 지들이 뭘 안다고 감히 측은해하고 지랄이지 않은가.


계몽주의, 지식인, 깨시민, 논객. 혹시 다 씨바 졸라 폭력적인 거 아닌가.

 

 

애초에, 그들에게 더 좋은 것을 알려주고, 나쁜 것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고 싶은 그 의도 자체가 졸라게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상대가 도움을 요청한 게 아니라면, 우리는 감히 그들을 '구제'해 줄 자격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셀프착취인 줄도 모르고 수꼴을 자처하는 이들에게 뭔가 알려주고 싶어하는 그 마음은, 어쩌면 의료보험도 안되는 나라에서 돈이 없어 노숙생활하다 결국 자살기도를 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구출해놓고 수백만원의 병원비가 청구되게 냅두는 짓과 같을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떡할까. 그거 다 폭력이니까 그냥 각자 다 알아서 살게 냅두고 나도 그냥 살까. 모두가 모두를 존중하며 잘 살아가?


이제는 아는 분덜은 알겠지만, 나 그런 사람 아니다. 뭘 살길 그냥 살아 좆같아서 못살겠구만.

 

내가 아랍권의 일부다처제 속에서 한 남자의 27번째 아내로 살아가는 여성을 측은해하는 게 폭력일 수는 있지만, 뭐, 씨바 아랍에 사람이 살든 말든, 내가 내 배우자, 내 연인에게 '씨바 절대 바람피지마, 바람피면 다 죽이고 나도 죽을 거야!!' 이럴 수는 있는 거다. 만약에, 내 배우자나 연인이 '나도 쿨하게 살테니까 너도 그냥 쿨하게 살아'라고 말하는 타입임에도 불구하고 우린 주장할 수 있다. 씨바, 싫다고. 나도 바람 안필 거니까 너도 피지 말라고.

 

아랍권 여성을 측은하게 생각하는 것도 안된다면서, 내 마누라, 내 남편, 내 연인에게는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건, 이 주제가 그 둘간의 관계에 대한 얘기고, 그 둘간의 관계라는 것이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당장 내가 살아야겠는데 내가 싫은 건 싫은 거니까, 하지 말라고 할 수 있는 거다. 대신, 상대방의 주장도 들어줘야되는 거고, 그걸 싸워서 결론을 내든, 타협점을 찾든, 동전을 던지든, 그냥 헤어지든 그 결정은 그 사회의 구성원인 부부, 연인이 알아서 하면 된다.



 

004.jpg



여기까지 생각이 들었더니, 지난 총선과 대선 결과를 보고 멘붕했던 내 자신이 졸라 하찮은 병신처럼 느껴졌다. 내가 그때 멘붕했던 이유는 '아 씨바, 이 많은 인간들이 지 등에 빨대 꼽는짓을 스스로 하고 산다고?' 에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인간들'이 차라리 젊은 놈들이면 그렇다 치겠는데, 독재의 대포알을 온 몸으로 받았던 50대 이상의 태반이라는 사실이 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그 때. 그나마 뱅뱅이론 하나 건진 걸 다행히 여기던 그 때 말이다. 뭘 씨바 내가 그걸 놀랬을까. 그냥 진건데.

 

그냥 진 거다. 저쪽 쪽수가 많아서, 내가 지지하던 편이 진거다. 졌으면 분해하면 되는 거지, 뭘 저들이 이해가 안된다는 둥, 불쌍하다는 둥, 깨우쳐주고 싶다는 둥 할 일이 아니다. 뭐 열분덜은 졸라 분노했었다고? 그 분노는 새누리당이나 조중동을 향한 거였겠지. 내가 말하는 건 그들을 지지한 그, 인구 절반이 조금 넘는 그 사람들, 특히 그 중에서도 새누리당 조중동 패거리들한테 평생 뜯어먹힌 그 어른들이다. 그들에 대한 감정은 분노와 패배감 보다는, 답답함에 가까웠다.

 

하지만, 솔직하게 잘 생각해보면, 그냥 그들에 대한 분노도 있긴 있다. 노인들 투표권 빼앗아야 한다는 과격한 발언들도 꽤 있었고, 대선 때 50대 투표율 보고 졸라 빡친 느낌도 있긴 있다. 그런데 그러면 안될 거 같아서 참고들 있겠지. 어르신들인 데다가, 알고보면 피해자들이니까.

 

 

조또 씨바. 분노하는 게 맞는 건지도 모른다. 나 먹고 살아야되는데, 자꾸 저쪽 편 들어주는 할배할매들이나, 나는 졸라 기분 나쁜데 서로 쿨하게 바람피자는 배우자나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같이 살아야되는데, 왜 이렇게 못살게 굴어 씨바.



 

005.jpg



우리가 뭔가를 깨달은, 더 나은 존재고, 저쪽이 그걸 아직 모르는 안타까운 존재라는 식의, 우리가 더 트여있는 시각을 갖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면 좆된다는 사실을, 뱅뱅이론을 통해 주장했던 바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뭔가를 저들에게 알려줘야하는 게 아니라, 그냥 '씨바 나도 좀 살자고!!'라고 한판 붙는 게 맞다는 거다.

 

그런데 내가 배우자나 연인에게 바람피는 건 서로 하지 말자며 '씨바 나도 좀 살자고!!'라고 하면 상대방은 어떻게 얘기 할까. 그냥 서로 바람 좀 피자며 '씨바 나도 좀 살자!!'고 하겠지. 왜냐하면, 그 사람의 삶에 있어서는 서로 평생동안 딴사람 안 만나고 사는 게 고통이니까.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고, 괜시리 내가 구태의연한 성관념에 사로잡힌 답답한 새끼니까. 그래서 서로 언성 높이고, 뭐 던지고, 울고불고 해서 싸우겠고, 어떻게든 결론은 나는, 그런 거다. 우린 2012년에 징하게도 싸웠고, 울고불고 했고, 그 결과 졌다.

 

우린 내내 지다가, 두 번 이기고, 또 두 번 내리 졌다. 혹은, 그냥 내내 졌다. 어찌됐든 이 글을 읽는 열분덜이나 나는, 대체로 패배했다. 씨바. 분하다.

 

이쯤 되면 제일 얄미운 게, 우리편에 있다가 저쪽 편에 간 사람들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배신자.


 

006.jpg



딱 떠오르는 건 지난 대선의 50대 지지율이다. 무려 89.9%의 투표율을 보였고, 그 중 62.5%가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다. 이들은 16대대선 때, 정확히 10년 전이므로 40대였고, 47.4%가 고 노무현 전대통령을 지지했다. 당시 이회창 후보에 대한 40대 지지율은 48.7%. 거의 비등했다. 아주 초딩스럽게 단순계산하면, 지금 50대의 우리편 중 1/3 가량은 우리를 배신했다.

 

그런데 그게 꼭 50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2년의 60, 2002년의 50대 중 우리편이었던 사람들의 절반이 배신했다. 2012년의 40, 2002년의 30대 중 우리편에서 1/3이 배신했다.  

 

나도 안다. 이걸 배신이라고 부르면 너무 유치하고 오바라는 거. 게다가 우리편이 노무현 지지자라고 퉁쳐지는 것도 아니고, 저쪽편이 박근혜 지지자라고 퉁쳐지는 것도 아니라는 거도 안다. 하지만 상황이나 맥락, 시대를 고려할 때, 역사상 이렇게까지 대비되는 대통령도 없지 않은가. 저 수치가 정확치 않은 거지, 당시의 30~50대에서 상당수는 10년 사이에, 저쪽편으로 옮겼다.




그런데 말이다, 이거 혹시 당연한 거 일 수도 있을까?

 

사람이 10살 더 먹으면, 저쪽 성향으로 넘어가는 게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나?




혹시라도 이 가설이 맞다면, 그러니까,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더 수꼴스러워지고, 비민주적이어지고, 돈을 밝히게 되는 게 일반적인 경향이라면 말이다,

 



어쩌면 인류역사의 보수/진보 대결과 체제혁명 과정 전체가,

 

그냥 세대간의 싸움이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혹시, 그저 단순하게 한 국가 국민의 연령분포가, 그 사회의 정치성향을 결정지어 버리는 건 아닐까?

 

그냥 세대분포의 문제를 갖고, 우리는 옥신각신 이론들을 끌어들이며 골머리를 썩여왔던 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다.

 

 

나이가 문제다.

 

 

 

간만에 한 번, 쌈빡하게 디벼보자.



007.jpg

 





춘심애비

트위터 : @miiru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