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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랑 미국이 같이 하는 군사행동에 대한 연습, ‘을지연습(UFG)’ 기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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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이 “을지연습은 방어훈련이며 북한이 도발할 경우 단호히 격퇴”하겠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한미 양국 정권이 바뀐 첫 해인데다가 북한 관련 정세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오죽하면 미국 장성 몇 명이 패트리어트 앞에서 사진을 찍은 것이 뉴스에 나올까? ‘합기도 3단에 검도 2단, 태권도 4단 해서 도합 9단’이라고 하듯이 장성들의 별도 도합 15개라는 기사도 뜬다.


해외에 있는 내게도 많은 사람들이 남한 사람인지 북한 사람인지 묻고, 김정은을 이야기한다. 그들은 김정은을 안다. ‘크레이지’라고 한다. 뭐가 ‘크레이지’한지는 잘 모르는데 아무튼 미사일을, 그것도 ‘뉴클리어’를 쏘니까 독한 놈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을지연습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사람인데, 마침 회자되고 있어 기쁜 마음에 글을 써본다. 군에서 경험한 생생한 이야기를 과감하게 풀어놓을 생각이므로 이 글로 인해 군사기밀 누설에 대한 옥고를 치르는 것도 각오하고 있다. 조중동을 중심으로 언론들이 광분하는 을지연습에 대해 한마디 거드는데 그 정도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1. 을지연습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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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연습은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을 줄인 말로, 복잡한 영어는 떼고 친숙한 을지문덕 장군의 이름만 남겨 부르고 있다. 가끔 을지‘훈련’이라고 하는 위험한 사람들이 있는데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다. 훈련은 군사 활동에나 하는 것이고, 이건 군인들이 하긴 하지만 연습에 불과하다. 축구팀 전지‘훈련’만큼도 북한에게 위협적이지 않다. 세계 군사력 순위에 빠지지 않는 일본 역시 웬일인지 군대는 없고 ‘자위대’라는 이름의 집단만 있으며, 그네들이 뛰고 구르고 총 쏘는 장소들에 모두 ‘연습장’이란 이름이 붙인 것은 무시하자.


북한은 연례행사인 을지연습에 대해 ‘북침훈련’이라고 극력 반발하며 가혹한 보복을 가할 것이라고 협박한다. 이에 대해서는 아침에 닭이 우니 개가 짖는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북한이 한미연합사령부의 활동에 대해 조용히 있었던 적은 별로 없다. 내가 복무하던 시절도 그랬고 작년에도 그랬고 아마 내년에도 극렬히 반발할 것이다. 말로만.


유독 올해만 언론에서 북한의 위협을 크게 보도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을지연습에 대한 북한의 반응’에 대해 논평을 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한다. 박근혜는 UFG랑 UFC도 구별 못했을, 아니 아예 둘 다 모를 가능성이 큰데, 대통령이 그러면 안 된다고 하기도 뭐할 정도로 별 거 없는 연례행사다.


문재인 대통령이 안보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잠재우려고 다소 강한 어필을 했다고 본다. 심드렁하게 “올해도 하나보다” 하고 있을 북한 들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내부용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 을지연습에 대한 강렬한 관심은 아쉽게도 계속되고 있는 북한 미사일 사태의 연장선일 뿐, 을지연습 자체의 경중이 근본적으로 올라간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2. 을지연습 당시 나의 임무


지금까지 늘어놓은 이야기로 내가 잡혀갈 일은 없겠지. 인터넷 치면 더 자세하게 나오는데 뭐.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사병 복무 시절, 을지연습 때마다 아주 특별한 임무를 수행했다. 그 당시에는 ‘을지프리덤가디언’이라는,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흐리멍텅한 명칭이 아니었다. UFL, 그러니까 ‘을지포커스렌즈’라는 여전히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좀 주시해서 본다는 건가 싶은 명칭이었다. 내 비록 민방위로 던져진지 오래지만 여하튼 하는 일은 대동소이할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부대가 을지연습에서 맡은 역할은 여기 모인 수많은 밀덕들조차 감히 쉽게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냐면 우리의 임무는 을지연습에 대한 한국군, 미군, 연합사 차원의 모든 문서에도 공식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을지연습의 막이 오르면 수많은 한미연합군이 들락거려야 하는 필수적인 부수 시설들이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연습중이든 전쟁 중이든 꼭 필요한 ‘화장실’이다.


그렇다. 우리는 24시간 화장실을 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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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방홍보원 블로그)



3. 깨끗한 바닥 유지는 나의 존엄을 유지하는 일


무려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고조시키는 을지연습 기간인데 ‘단순한 화장실 청소’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화장실을 24시간동안 2시간씩 2인 1조로 지켰다.


전투력의 유지와 직결되는 군 장병의 위생 확보를 위해 화장실을 적으로부터 수호하는 것이 아니다. 화장실 바닥의 (눈에 보이는) 청결함을 지키고 혹여나 올지도 모르는 높으신 장군들의 비위가 상하지 않도록 해야 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아니 옛날에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산업혁명 이후 24시간 화장실 보초가 인류 역사에 거기 말고 또 있었을까.


우리의 주무기는 대걸레였지만 총 외에는 모든 군장을 착용하고 있었다. 대걸레가 나의 총이었다. 계속 빨아서 물기도 잘 짜줘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얼룩이 잘 지워지지 않고 오히려 번졌다. 자외선에만 반응하는 특수도료마냥, 그곳의 조명은 군홧발에 찍힌 검은 자국을 유난히 잘 보이게 했다. 사람 한명 오줌 싸고 나오면 한명이 들어가서 발자국을 지웠다.


내가 거기서 왔다갔다하는 군인이었다면 우리한테 미안해서 화장실도 잘 못 가고 방광염으로 죽어버렸을 거다.


그러나 그들이 미안해 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감사했다.


우리는 원래 하고 있던 경계근무도 일부 다른 부대에 떼어주고 화장실 보초를 섰다. 나는 땡보 놈팽이가 아니라, 설령 징집병이라고 해도 국방에 종사하는 대한민국 국군이었다. 화장실이 더러워지지 않아 주무기를 쓸 일이 없어진다면 그거야 말로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속으로 되뇌었다.


“제발 누군가 더러운 군홧발로 이곳에 와 다오. 저 새하얀 타일조각에 뺀질뺀질한 밑창자국을 내다오.”


평소 쓰레빠 신고 다니는 군기 빠진 한국군 간부들의 뽀얀 전투화가 와서 볼일 보고 나가면 신발광고 사진처럼 예쁜 군화자국이 생겼다. 반면 미군 병사들은 군화의 뒤축이 닳고 여기저기 이가 나가서 자국이 예쁘지 않았다. 역시 군화자국도 국산이 최고였다.


군화자국들이 계속 찍혀줘야만 24시간 이곳을 지키고 있는 나와 전우들의 존재의미가 생기는 것 같았다. 아무도 오지 않는 화장실은 작은 소리도 차가운 타일에 반사되어 웅웅 울릴 뿐 적막하고 외로웠다. 취직 못해 집에서 안 나오는 다 큰 외아들도 그토록 큰 자괴감에 눈물 흘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4. 너와! 나의! 연결방독면


훈, 아니 연습 초반에는 가상의 화생방 경보가 울리면 다들 열심히 방독면을 뒤집어썼다. 아까 24시간 화장실 보초가 미증유의 것이라고 했는데, 그렇지 않다해도 방독면 쓴 24시간 화장실 보초는 없었을 것이라고 내 장담한다. 우리는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화생방 경보 때 방독면을 써야할지 안 써야할지 망설였는데 어느 한국군 투스타가(무궁화나 밥풀 두 개가 아니고 별 두개가) 와서 “니네는 왜 안 쓰냐”고 불호령을 쳤다.


아, 얼마나 기쁜 일인가. 방독면을 쓸 수 있다니. 그건 아주 중요한 메시지이고 이정표였다.


한미연합군이 분주하게 을지연습을 수행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놀이동산 관리자나 게임 속 관리자 캐릭터, 혹은 NPC같은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그런 존재. 훈, 아니 연습 현장에 있지만 연습하는 것은 아닌 존재. 그들이 하는 임무는 매뉴얼에 있었고, 활동 내용은 모두 기록되었으며, 평가받았다.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 포상도 받았을 것이다. 을지연습은 매우 큰 연례행사고 언론 관심도 높은 편이니까. 반면 우리의 화장실 보초는 그 누구도 기록하지 않는다. 전장에서 죽어간 이름 없는 의용군 병사의 잊혀간 활약처럼 ‘왜 거기에서 화장실 보초를 서는가’에 대해 솔직히 번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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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생방 경보가 울리면 달랐다. 마치 죽은 이의 영혼이 무당에 접신해서 산 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우리도 매뉴얼에 있는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공식적인 무언가와 함께한다. 그들과 함께 방독면을 뒤집어씀으로 인해 가상의 화생방 상황을 함께 겪고 있음을, 겉도는 귀신이 아니라 같이 반응하고 먹고 싸고 죽는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게 며칠 가지 못했을 뿐이다. 지들이 귀찮아서 방독면을 안 쓰기로 합의 본다. 평소에 꺼내지도 않는 간부들 방독면 냄새가 오죽 지독하고 숨쉬기가 답답할까? 국군 간부 하는 일이 다 그렇다. 올해도 아마 을지연습에 참여하는 군인들은 경보 울려도 방독면을 안 쓰고 있을 것이다. 그나마 의미를 붙들고 있던 연결고리마저 그렇게 사라져 버리고 만다.



5. 국가 방위의 필수가치 수호


아까 언급한 투스타는 상호작용하는 거의 유일한 캐릭터지만 나쁜 사람(원래는 조금 거친 말이었습니다)이었다. 을지연습 외에도 그놈은 원래 개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일병이었던 내가 그 자와 을지연습 와중에 맞서는 일이 있었다. 그저 사병이었지만 나라를 지키는 숭고한 임무에 대한 투스타의 잘못된 인식을 참고 넘길 수가 없었다.


그곳에는 미군 및 고위 장교들이 들락거렸으므로, 입대 전에도 거의 본 적 없던 ‘핸드타월’이란 게 놓여있었다. 화장실에 항균되는 에어타월만 있어도 제법 괜찮던 시대였는데 무려 한 번 쓰고 버리는 손을 닦는 종이라니! (당시 대걸레로 바닥 닦는 것 외에는 나프탈렌과 핸드타월 채워놓는 것이 중요한 일과였다. 아까 말한대로 대걸레가 총이라면 핸드타월은 위생붕대요, 나프탈렌은 수류탄 쯤 되었을 것이다)


핸드타월 디스펜서 아래에는 “Use one sheet per once”라고, 그러니까 “한 번에 한 장만 쓰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아닌가. 기억이 희미하다. 비굴하게 한국어로만 쓰여 있고 영어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투스타가 그걸 보고 내게 시비를 걸어왔다.


“핸드타월 한 장은 좀 부족한 거 같은데… 이거 문구 바꿔야 되지 않아?”


대한민국 육군 사병 앞에 별 두 개 달린 투스타가 와서 단순한 동의를 구하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나였다.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물 묻은 손을 잘 털면 한 장으로 됩니다.”라고 대꾸했다. 우리 부대장이나 다른 놈들이 그 소리 듣고 “투스타 지시야”라고 하면서 부랴부랴 “한 번에 서너 장 쓰셔도 됩니다.”라고 문구를 고친다면 주무기인 대걸레를 들고 탈영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사실이다. 나는 쓸데없는 일에 집착하는 편이다.


여러분도 어딘가의 화장실에서 핸드타월 한 장씩 쓰라는 문구가 있다면 의심하지 말고 손을 몇 번 탁탁 털고 써보길 바란다. 금세 뽀송뽀송해진 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뭐든 아껴야 했다. 투스타의 월급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월급을 보면 국군은 돈이 없는 것이 분명했기에, 핸드타월 같은 고급 소비재는 함부로 쓸 것이 못 되었다. 투스타는 그 이후 별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 투스타가 그놈이다. 전에 쓴 글에서 음향장비 고장 났다고 경위서 쓰라고 한. 대북 심리전용 음향장비인줄 알았나? 파티용이다. 군대에서 투스타 달면 그런 게 중요해지나보다. 별들의 파티용 노래방장비, 핸드타월 사용량 같은 거. 일개 사병 출신의 입장에서 유추하건대 그런 것들이야말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과 행복한 삶을 보존하기 위한 국방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6. 오늘은 그것을 먹었는가?


보초를 교대하거나 복귀할 때, 우리끼리 묻던 게 있었다.


“그거 먹었냐?”


여기서 말하는 ‘그거’는 미군들이 들고 다니는, 노란 종이봉투에 있는 간식이었다. 먹었으면 그게 어땠는지, 오늘은 뭐가 달랐는지를 화제에 올리고는 했다.


햄버거가 있을 때도 있었고 과자가 있을 때도 있었다. 이외에 여러 가지가 있었다. 군인이라고 배곯는 시절은 아니었고 나름 밥 잘 나오는 곳에 있었지만, 어린 병사들은 배고팠다. 전쟁 직후 “김미 더 쪼꼬렛”을 외치며 미군 지프를 따라다녔다는 이야기가 남일 같지 않았다. 나에게도 어느 미군 아재가 노란 종이봉투를 가져다 준 적이 있다. 뭐가 들어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설렘만큼은 생생하다. (문제는 받은 뒤였다. 들고 복귀할 수는 없고, 먹을 데가 화장실밖에 없었다. 그래서 화장실에서 먹었다. 후각이 민감한 사람은 냄새 때문에 쉽지 않았겠지만 난 비위가 좋은 편이니까)


갖다 준 미군에게는 고마웠지만, 또 안 주고 자기들끼리 양손에 몇 개씩 들고 지나가면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다. 분명 남았을 텐데. 하지만 나이를 먹고 알았다. 야속해 할 일이 못 된다는 걸. 징집사병이라고 해도 다 큰 성인인데, 화장실 앞에서 보초서는 사람한테 그런 걸로 선심 쓰는 건 보통 철판 아니고서야 못할 짓이다. 저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왠지 그랬을 것 같다. 기억에 미군은 치사하게 굴지 않았고 늘 정중했다.


살아보니 한 공간인데도 밥상 따로 차려서 먹을 걸로 치사하게 구는 것처럼 더러븐 것도 없더라. 왜 서로에게 못할 짓이 국방의 의무를 하러 갔을 때 생겼는지 모르겠다.



7. 박찬주 대장 사태의 양대 축


이 글을 쓰다 보니 얼마 전 갑질논란을 일으켰던 박찬주 대장의 공관병 사건이 떠오른다. 그것을 단순히 ‘갑질’이라고 하는 것조차 너그럽다. 갑질은 손해를 감수하고 피해갈 수나 있지, 그것은 노예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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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태는 두개의 기둥 위에 서 있다.


하나는 썩은 권위주의. 아들 같아서 그랬다는, 예상했지만 또 놀랍고 분한 대답을 우리는 또 들어야 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하나같이 딸 같고 아들 같을 때 용서받지 못할 행동을 한다. 사적 행사에 병사들을 동원하며 “괜찮아 쟤들 공짜야.”라고 말했다는 공관병의 진술은 너무 익숙해서 힘이 빠진다.


또 하나의 축은 징병제다. 아무리 국방예산 펑펑 쓰는 미군이라도 사람 귀한 줄은 안다. 귀한 것뿐만 아니라 비싸다. 월급 주고 고용한 장병들을 24시간 화장실 보초로 쓸까? 전투력 향상에 별 도움도 안 되는 임무를 위해? 골프병이나 과외병, 테니스병 같은 말들도 생길 수가 없다.


소중하게 취급받지 못하는 병사들이 국가를 소중하게 생각 할 리는 없다. 지금도 을지연습 중에 누군가는 화장실을 24시간 지키고 있을까? 그렇든 그렇지 않든 문제의 본질은 여전히 그대로다. 아직 그들은 공짜고, 아무거나 대충 시켜도 다 해야 하는 노예들이라는 점이다.





무성한그곳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