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로운 미디어
2014년 연말, 딴지일보에 일본의 한 해를 결산하는 기사를 하나 송고했다. 그 해 내가 꼽은 일본 사회의 세 가지 이슈는 기자회견, 우경화 그리고 유튜브였다. ([결산]열도의 기자회견과 우경화, 그리고 유튜브 - 링크)
이 기사에서도 지적한 바 있지만, 유튜브는 한 때 불법 업로드 된 TV 드라마나 버라이어티 쇼, 영화 영상 등을 중심으로 조회수를 확보하고 있었고 이들 영상의 저작권을 가진 회사나 단체가 일상적으로 영상 삭제 신청을 하는, 저작권 침해의 온상이라 해도 무리가 없는 공간이었다.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가 한 번 정착되면 그 사이트는 적어도 정상적인 방법으로 수익을 내는 것은 힘들어진다. 유튜브의 위대한 점은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를 새로운 아이디어로 불식시킨 것이다. [유튜버]로 불리는 개인 동영상 제작자가 새롭게 제작해 저작권상 문제가 없는 동영상의 숫자를 늘리고, 이들에게 광고 수익을 배분해 수익을 확보해 준다는 돌파구는, 현재까지는 세계 각국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3년이 지난 지금, 한국도 유튜버라는 단어가 더 이상 생경한 단어가 아닌 사회가 됐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최악의 사건이 발생했다.
2. 살인 사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사건 개요는 다음과 같다. 2017년 3월, BJ남순이란 남성 BJ가 유튜브 10만 구독 기념 미션으로 브라질리언 왁싱 미션을 제의 받고, 한 왁싱샵을 섭외해 영상을 촬영한 뒤 이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그 뒤 4월초에 영상을 내려달라는 부탁을 받고 문제의 영상은 삭제했으나, 살인사건 범인으로 기소된 배 모가 모종의 경로로 5월에 이 유튜브 영상을 본다. 영상에는 여성 혼자 인적이 드문 장소에서 왁싱샵을 경영하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고 하며, 배 모는 이 영상을 보고 강도 살인을 계획하고 2017년 7월 초에 범행을 자행한다. 배 모는 현재 강도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상태다.
자세한 범행 내용은 앞으로 재판을 통해 밝혀질 것이다. 한국의 법원이 여성의 생명도 남성의 생명과 동일하게 소중하다고 생각한다면, 법이 정한 가장 무거운 형벌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한다.
3. 방송 윤리
사건이 보도된 뒤, 인터넷 공간에서 이른바 [책임소재]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었다.
사건의 계기가 된 방송, 즉 동영상을 업로드한 남성 BJ에게 법적인 책임은 없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수사기관의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도의적인 책임인데, 본인도 도의적인 책임은 느낀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것을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이 BJ를 옹호하는 측의 의견은 주로 방송이 범행을 조장한 것도 아니고 왁싱샵의 위치 등은 방송이 아니라 다른 경로로도 입수할 수 있었을 테니, 본인의 동의를 받고 영상을 촬영한 뒤 업로드 했다가 심지어 영상을 내려달란 부탁을 받고 삭제까지 해 준 BJ에겐 도의적인 책임 이상의 책임은 없다고 말한다.
한편으론 도의적인 책임은 물론이요 그 이상의 책임도 있다고 주장하는 측도 있다. 이 BJ의 평소 방송 내용이나 문제가 된 영상의 연출 방식이 자극적이고 선정적이었다는 주장도 많으나, 핵심적인 것은 해당 영상에 [여성이 혼자] [인적이 드문 주택가에서] 일을 한다는 정보가 들어가 있었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배 모는 바로 이 정보를 토대로 범행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국가가 방송국을 지정하고 전파를 관리하고 방송 윤리에 관한 세밀한 규정을 만들고 많은 인력과 비용을 투입해 방송 내용을 모니터링하는 이유다. 국가가 그저 세금 낭비만을 목적으로 쓸데없이 일을 늘리려고 이런 일견 무의미해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심지어 방송을 기획하고 방송에 출연한 당사자조차 인식하지 못할 위험, 눈 앞에 보이는 위험 뿐만 아니라 몇 주 몇 달 몇 년 뒤에 발생할지 모를 위험과 부작용과 피해를 미리 막기 위해 이전의 사건 사고를 분석하고 검토해 사건 사고를 막기 위한 매뉴얼을 확립하고 이걸 지켜나가는 것이다.
기존의 방송 포맷이 대중의 관심을 예전만큼 끌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 인식과 이에 대한 대안으로 생겨난 [새로운 미디어]는, 그 자유로움에 대한 반대급부로 바로 이 [안전 확보]의 면에서 기존의 미디어에 비해 취약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취약성이 문자 그대로 정면으로 드러난 것이 이번 사건이었다. 다시 말해, 한국이 새로운 미디어를 사회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사건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사건을 받아들이는 관계자들의 자세는 놀라울 정도로 나태했다.
4. 유튜버, 유튜버들, 사람들
문제가 된 영상을 올렸던 BJ는 사과 방송을 올린 뒤 자숙기간을 거쳐 현재도 아무런 제재 없이 동영상 방송을 계속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그 자숙기간 동안 동료 유튜버들의 위로를 받기도 하고, [죄책감 들지 말고]라는 내용이 포함된 용기를 북돋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 첫 보도가 나간 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언론 보도도 뜸해졌다.
현재까지 개인 미디어 산업과 관련된 사람들이 이 사건에 대해 보이고 있는 태도는, 좋게 말해 [좋은 게 좋은 거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사건은 최대한 빨리 잊고, 동영상 업로드 하던 우리들은 앞으로도 동영상 업로드 하며 수익을 내야겠다는 것이다.
바로 이 시점에서, 한국의 개인 미디어 업계는 자신들의 업계에 스스로 사형 선고를 내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미디어가 도전하지 못하는 것을 대중에게 제공하고 수익을 내는 새로운 미디어는, 적어도 현재까지는 기존의 미디어가 거치는 유형 무형의 절차를 통한 [위험성 제거 작업]을 개인의 윤리관에 맡겨 둔 상태다. 자격증 없이 복어 요리를 만드는 사람들이 성업하는 거리라는 뜻이다. 누군가가 독 때문에 생명을 잃지 않는 동안은 그냥 저냥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가 끔찍하게 삶을 마감했다면, 남이 말하지 않아도 자격증 없이 복어 요리 만들던 자신들이 자성해야 하고 적어도 자성하는 척은 해야 한다.
그 과정을 이렇게나 나태하게 넘어가려 한다면, 앞으로 한국에서 동영상의 형태로 개인 방송을 제공하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은 결코 이전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사건의 책임 소재를 세밀하게 따져서 우리가 져야 할 책임보다 1미리그램이라도 더 무거운 책임은 질 수 없다고 온 세상에 외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그 결과만을 직시하고 도의적인 책임을 무겁게 느끼려고 시도만 했더라도 이렇게나 관계자 전원이 방만한 자세를 보일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 사건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최악의 선택만을 골라서 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 앞으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하려는 사람들에게 그 주변 지인들이 “그 방송이 간접적인 원인이 돼 네가 강도 살인을 당하고 그 과정에 강간 미수 사건까지 있어도 그 방송 내보낸 사람과 지인들은 서로 위로하고 보호하며 몇 주 뒤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음 방송을 내보낼 거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며 출연할 정도의 가치가 있냐? 그 방송에?”라고 묻는다면, 이 질문을 받은 사람은 뭐라 대답할까.
5. 자성
손해를 보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풍토가 한국 사회에 만연하기 시작하고 꽤 시간이 흘렀다. 이젠 이런 사건이 발생해도 관계자들이 “우리의 책임을 밀리그램 단위로 정확히 계산해 그 책임 이상은 절대로 손해보지 않겠다”고 선언해도 그것이 이상한 행동은 커녕 똑똑한 대응인 것처럼 비춰지는 지경이다.
그러나 오랜 도덕은 항상 무의미한 것도 아니고, 지금 당장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이 더 큰 시야에서 바라보면 관계자 전원에게 더 나은 선택인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공자 왈 맹자 왈 따분한 소리를 늘어놓으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는 쓸데없는 손해는 보지 않는 똑똑한 사람들'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 새로운 미디어가 정착하는 데 얼마나 큰 장애가 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이 죽었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바뀌지 않는 사회는, 스스로 반성할 다음 기회를 영원히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 개인 미디어 시장의 자성을 촉구한다.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 범인에게 법이 허락하는 가장 무거운 형벌이 내려지길 바립니다.
알려지지 않은 주시자
트위터 : @unknownbeholder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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