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에 목차를 만들고 글을 쭉 써 나가는 것과 매번 연재 회차의 주제를 정해 쓰는 것을 비교해 보면 글을 쓰는 제 처지에선 전자가 편합니다. 문 닫고 저 혼자 방구석에서 북치고 장구치면 되니까요. 하지만 이번 연재는 글을 쓸 때 되도록 시의성을 반영하고 읽는 분들과의 소통을 통해 글을 전개해 나가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지요. 저는 빨리 가는 것보단 멀리 가고 싶었습니다.
마침 수뇌부에서 두 가지 정도의 주제를 글로 풀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요. 번외 편으로 편성해서 넣었습니다. 앞으로도 편집부의 요청이나 독자의 요구가 있다면 적극 반영할 테니 궁금하신 점이나 함께 고민해보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 회사는 좋은 회산가? 우리 회사는 회사다운 회산가? 우리 회사는 다른 회사들에 비해 나은가? 라는 궁금증은 어떤 직장인이든 갖는 의문이겠죠.
누군가는 이직을 위해서 갖는 질문일 수도 있겠고, 어떤 직장인에게는 재직 중인 회사의 외부평가를 대비하기 위해, 또는 타 기업을 조사하고 평가하기 위한 업무적 필요성일 수도 있을 거구요. 기업의 미래비전을 수립하기 위해 그간은 신경 쓰지 못했지만 이제라도 임직원들이 냉정하게 자신의 회사를 평가해야 할 필요도 있을 겁니다. 뭐 그냥 순수하게 궁금할 수도 있죠. 오늘은 직장인들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를 스스로 평가할 때 고려할 점들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가. 일반적인 기업의 평가들
기실 기업들은 지속적으로 외부의 평가를 받습니다. 기업의 재무적 신용도, 시공능력, 매매를 위한 가치평가, 국고보조금 수혜 대상 기업 평가 등 우리 사회에서 기업은 아무리 꽁꽁 숨어 있으려 해도 본인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타인들이 어떻게든 찾아내서 정보를 캐내고 기업의 수준을 평가합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궁금한 우리 회사는 좋은 회사? 제대로 된 회사? 라는 궁금증에 딱 맞는 직장인의 시선에서 종합적이고 신뢰 높은 평가를 하는 곳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아래 살펴볼 평가들은 나름의 목적에 부합하고, 어떤 직장인이라도 업무지식의 측면에서도 알고 있으면 좋은 것들이니 먼저 알아보고 가겠습니다.
(1) 기업신용평가
흔히 기업신용평가 등급이 BBB+이라든지, CCC+이라는 식의 평가 등급을 보신 적이 있을 텐데요. 이런 평가등급은 기업의 재무적 안정성을 중점으로 산정됩니다. 그러므로 기업신용평가등급을 산정할 때 양성평등이 이루어지는 직장인지, 기업의 성과가 종업원에게 공유되고 있는지, 노조와 경영진이 상호 존중하며 좋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를 보지는 않습니다.
만약 취준생이나 이직하려는 직장인이 ‘기업신용평가 등급이 높은 회사이니 그 회사에서 일하면 참 좋겠네.’라고 단정하면 오산이라는 것이지요. 이 신용평가등급은 전환사채 발행, 융자, 국가입찰 등에서 기업들을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일 뿐 직장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기업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기업신용평가에서 우리 회사는 제대로 된 회사인가?에 대한 질문의 답을 일부 찾아볼 순 있습니다.
조달 납품을 위해 평가를 받았든, 대기업의 협력업체 평가를 위해 신용평가를 받았든 전체기업 중 가운데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B+’등급 이상이 나오지 않았다면, 적어도 경영자와 재무책임자가 무능하다고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제대로 된 회사라면 흔하디 흔한 신용평가를 대비하는 재무 설계와 자금관리를 하니까요.
(2) 시공능력평가순위(도급순위)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급순위, 즉 시공능력평가순위는 건설업의 경우 대한건설협회와 대한전문건설협회를 통해 손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시공능력 평가 산식과 세부적인 평가 방법, 법적 근거는 각 협회 홈페이지에서 상세히 공지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산식은 이렇습니다.
[시공능력평가액 = 공사실적평가액+경영평가액+기술능력평가액±신인도평가액]
산식에서 보는 것과 같이 시공능력평가는 ‘실적’과 ‘재무상황’을 결합한 형태의 절대평가이므로 기업의 점수에 따라 쭉 늘어놓으면 업체별 순위가 나옵니다. 이런 방식이니 내가 재직 중인 건설회사가 건설업종에서 어느 정도 위치인지 알고 싶다면 즉시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시공능력평가에서도 양성평등이나 노동자에 대한 복지 수준 같은 요소들이 포함되지는 않습니다. 공사실적이 많고 재무상태가 우량하며, 많은 기술자들이 있는 회사가 더 능력 있는 건설사라는 명제에 충실하게 만들어진 평가방식이니까요.
‘우리 회사가 제대로 된 회사인가?’ 라는 질문에는 여러 가지 근거로 답할 수 있겠지만, 마치 우리 아이가 공부 잘 하는 아이인가요? 라고 학교에 물었을 때 전체 석차 몇 위라서 공부를 잘하는 겁니다라고 답해주는 것처럼, 적어도 건설회사라면 같은 식으로 회사를 평가할 수는 있다는 것이죠.
(3) 외부회계감사
앞서 살펴본 신용평가는 소기업이라도 받는 평가이고, 시공능력평가는 건설업종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는 그래도 이름값 있는 회사이고, 규모가 있는 회사라고 한다면 어김없이 외부회계감사를 받고 있을 것입니다. 총자산 규모 120억 원 이상인 기업일 테니까요.
이때는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매년 3월말까지 등록되는 감사보고서를 통해 기업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뉴스에서는 어느 기업이 영업상황이 좋고 최근 외부회계감사에서 ‘적정’ 의견을 받아서 투자자들이 기뻐하고 있다는 식의 보도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제대로 된 회사의 성적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회사의 재무 상태와 영업상황 등에 대해 받기 어려운 악성채권은 없는지, 미래에 받게 될 대금을 부풀리지 않고 적정하게 계획해서 사업을 하고 있는지 등을 회계사들이 꼼꼼하게 점검하고 여러 관련 자료를 검토해 내린 의견이기 때문이죠.
반면 의견 제출을 ‘거절’한다든지, 중도에 감사를 중지하는 등의 경우가 있었다면 제대로 된 회사가 아니라 제대로 망가진 회사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한정’적인 의견일지라도 회사가 외부회계감사를 처음 받아서 전년도 재고자산의 실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면 관련된 보고서의 내용과 다른 재무상황과 영업에 대한 사항을 읽어보면 제대로 된 회사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외부회계감사에서도 감사인은 “이 회사의 임원들은 종업원들에 비해 100배가 넘는 보수를 받는 등 성과공유의 정신 등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와 같은 의견은 적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일반 직장인들이 나름 중요하게 회사를 바라보는 시각들이 외부회계감사에 반영되지는 않습니다.
외부회계감사는 투자자 등이 기업의 정확한 정보를 요구해도 기업들이 정보를 공개하지 않거나 가공해서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에 충실한 제도이니까요.
지금까지 살펴본 일반적인 기업의 평가 방식에 대해 답답함을 느끼신 분들이 많았을 겁니다. 직장 내 수직적 꼰대문화, 사내정치, 사장의 윤리의식, 죽도록 일해서 돈을 벌어도 한 푼도 인센티브로 주지 않고 오너가 다 처먹는 구조 등은 왜 종래 기업평가의 요소로 자리 잡지 못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간 우리 사회는 기업이 돈을 많이 버는 게 최선이며 기업이 많은 돈을 벌수 있도록 정부가 물심양면으로 돕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기업들이 많아지면, 더 많은 투자로 일자리가 늘어나고,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승할 거라는 최면에서 깨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본의 최면에 걸린 정부의 안일한 성장주도 정책에 대해 일찍이 로버트 케네디는 이렇게 연설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물질적 풍요를 쌓는데 몰두했고, 그 앞에서 개인의 존엄성과 가치를 포기했습니다. 우리의 국민 총생산에는 삼나무 숲을 파괴해 발생한 부가가치와 네이팜탄과 핵탄두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국가총생산에는 우리 아이들이 받는 교육의 질과 놀이의 즐거움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공동체로서 서로를 측은해 하는 마음도 담겨 있지 않습니다. 이 국민 총생산은 모든 것을 응축해서 측정해 냅니다. 단,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하는 것들이 제외되어 있습니다.”
로버트 케네디의 이 오래된 지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사회의 기업에 대한 좁은 정의와 고민 없는 통찰이 결국 대표적인 기업 평가 방식들로 고착된 것이죠. 기업과 공존해야 할 노동자의 삶은 쳐다보지도 않고 공동체의 미덕은 안중에도 없었던 그간의 기업평가 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직장인들이 겪는 고충들이 쉽게 해결될 리 없을 겁니다.
나. 기업의 규모별 평가
앞에서 살펴본 방식은 절대평가로 행해지는 우리 사회의 기업평가 방식들이었습니다. “우리 회사가 제대로 된 회사인가?” 라는 질문으로 다시 돌아와 보면 이 질문은 “다른 회사보다 우리 회사가 더 나은가?”로 치환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은 우리 회사와 유사한 규모의 기업들과 비교를 하는 상대평가를 해 볼 필요가 있는 건데요. 직원 10명 있는 소기업을 다니면서 자기 회사를 삼성전자와 비교하는 건 바보짓일 테니까요.
스포츠 종목에는 체급이 있지요. 만약 체급 구분이 없다면 대부분의 경우는 체구가 작은 사람들에게 불리할 겁니다. 기업의 경우도 매출액과 고용인원 그리고 업태와 종목 등으로 나누어 중소기업(소기업, 중기업), 중견기업, 대기업 등으로 구분을 하는데요. 법적인 기준으로 정해져 있는 것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 소기업 : 중소기업기본법 시행령으로 통해 아래와 같이 표 한 장으로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2015년 법 개정 전에는 고용인원을 함께 고려했었는데 이제는 매출액 한 가지 만으로 구분을 합니다. 만약 내가 다니는 회사가 국수를 만드는 회사인데 평균연매출 100억 원을 하고 있다, 그러니 이 정도면 중견기업이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이 국수회사는 소기업입니다. 반면에 쇼핑몰을 운영하는 도소매업인데 평균연매출액이 60억이라고 하면 소기업을 넘어선 중기업이고요.
● 중기업 : 앞서 업종별 소기업 기준의 평균매출액을 넘어서고 아래 표에서 제시한 매출액 이하면 중기업이라고 봅니다.
중기업에 대한 범위도 업종에 따라 다릅니다. 만약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연평균매출액이 450억원이라면 이 기업은 더 이상 중소기업이 아닙니다.
● 중견기업 : 중견기업이란 단어가 사용된 지 오래 되었지만 그간은 중견기업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혹자는 매출규모가 커진 벤처기업을 지칭하기도 했고, 대기업 지정 직전의 기업들을 중견기업이라고도 했습니다. 정부부처에 따라서는 중견기업을 강소기업이라는 단어와 함께 써서 정말 헛갈렸었는데요.
“중견기업 성장촉진 및 경쟁력 강화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그나마 정리가 됐습니다. 법적으로는 중견기업이라 함은 중소기업의 범위를 넘어선 기업이지만 법과 시행령을 통해 중견기업 후보기업이라는 단계를 둬서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넘어가는 단계의 기업까지도 육성하기 위한 법적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금융업이나 보험업 등을 배제하면서 단순히 매출액 규모 등으로 중견기업을 지정하지는 않습니다.
● 대기업 : 소기업, 중기업, 중견기업까지는 기업을 육성하고 지원하기 위한 목적의 분류였으나 대기업부터는 제재를 위한 시스템이 동작합니다. 대기업은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계열사 등이 집단을 이루죠. 그래서 공정거래위원회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기업을 “대규모 기업집단”이라고 명명하고 경제력집중 억제시책, 즉 상호출자제한 금지 등을 통해 억제하고 있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대기업이라고 하면 자산총액이 10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입니다. 올해 5월에 발표된 자료를 기준으로는 31개만이 대기업인 거죠.
여기까지 기업의 규모별 기준을 설명했습니다. 기업의 규모를 잘못 이해하는 분들이 워낙 많고, 실무적으로도 국고보조금 관련 업무나 공무상 기업지원을 하는 분들이라면 반드시 잘 알고 있어야 할 내용이기도 해서 자세히 적었습니다. 그럼 이제 내가 다니는 회사의 규모가 대기업인지 소기업인지는 확실히 아셨을 것 같고요.
지금부터는 기업의 규모별로 우리 회사는 제대로 된 회사인가? 라는 질문에 제 기준으로 답해 보겠습니다.
(1) 소기업
적어도 소기업은 사장이 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회사는 제대로 된 회사인가?” 라는 질문은 “우리 사장은 제대로 된 사장인가?” 로 질문을 바꿔서 답을 찾으면 됩니다. 사장이 종업원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는지, 경영전반에 관련된 지식을 계속 학습하고, 미래의 비전과 위험을 고민하고 있는 사장이라면 제대로 된 회사이고 아니라면 불안한 회사입니다.
특히 소기업 중 극소기업인 5인 미만의 사업장은 노동법의 사각지대입니다. 부당해고 구제 신청도 안 되고, 각종 법정수당 지급도 예외입니다. 계약직 직원이 자동으로 정규직 직원이 되는 2년 초과 근무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연차휴가도 사장 마음입니다. 이런 사업장을 규제하는 노동법은 최저임금 빼고는 딱히 없습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이런 처지이다 보니 우리가 말하는 흔히 인간적인 사장, 아니 정말 존경심이 우러나오는 사장이 아니면 제대로 된 회사의 모습을 갖추기 어렵습니다.
(2) 중기업
직원들 월급 주기 빠듯했던 사업 초창기를 지나 안정적인 매출과 자생력을 갖춘 단계에 들어서며 중기업들은 인력을 늘립니다. 초기기업을 이끌었던 창업주는 스스로에 대한 보상으로 자연스레 회사의 현업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조직을 키우고 보강하기 위해 데려온 새로운 인력이 대신 시스템을 만들고 회사는 지금처럼 잘 성장하리라고 착각합니다.
대부분의 중기업들이 늘어난 규모에도 불구하고 창업초기의 주먹구구식 경영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제대로 된 회사라면 늘어난 인력에 맞는, 조직 내에서 인재가 성장할 수 있는 인사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때 대기업에서 인사를 했다는 모모팀장을 모셔오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사장이 회사가 어느 정도의 성장을 이뤄냈는지 앞으로 우리 회사가 나아갈 방향이 무엇이지 정확하게 직원들에게 메시지를 던져야 합니다.
회사가 그동안 성장할 수 있었던 스스로의 강점과 고유한 문화를 소중히 인사시스템에 갈무리하고 부족한 프로세스는 벤치마크해서 추가해 나갑니다. 또한 객관적인 시각의 외부평가에도 귀 기울이고 더 높은 곳에 다다른 기업들의 전장으로 진출하기 위해 외부회계감사를 받고 중장기적인 사업계획에 맞는 펀딩 계획과 상장계획까지 세워야 합니다.
그 동안은 투자하지 못했던 연구개발에도 체계적인 접근을 시도해야 합니다. 부설연구소를 설립하고 직무발명보상제와 같은 성과공유보상제도 시행해야 합니다. 인사, 재무회계, 연구개발 적어도 이 세 가지 분야에 신경 쓰지 않는 중기업이라면 비교군의 중소기업들보다 꽤 큰 매출액과 규모를 갖고 있더라도 제대로 된 회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3) 중견기업
2017년 7월 26일에 공포된 ‘중견기업 성장촉진 및 경쟁력 강화에 관한 특별법’만 보더라도 정부는 기존 중소기업과 대기업들의 한계를 체감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중견기업에 방점을 찍은 듯합니다. 해당되는 기업들에게는 정말 좋은 소식이죠.
정부가 원하는 중견기업의 이상적인 모델은 아마 ‘유니콘’일 겁니다.(최근에는 기업가치가 $ 1 Billion, 즉 1조원이 넘는 기업을 유니콘이라고 부릅니다.) 벤처기업, 요즘은 스타트업(Start up)이라고 부르는 기업들이 스케일업(Scale Up)의 과정을 거쳐 유니콘으로 대거 성장한다면, 기존 재벌들의 적폐와 이런 환경에서 어렵사리 대기업의 우산 밑이라도 만족했던 중소기업들에게 충격을 줄 수 있겠죠. 결국 중견기업들로 인해 고착됐던 기업 생태계가 흔들리게 되고 우리가 생각했던 기업과 회사의 모습이 완전히 바뀔 수 있는 혁명인자로 중견기업들을 주목하고 육성하려는 것입니다.
과거 미국 산업을 대표했던 기업은 포드자동차와 카네기 철강회사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구글, 애플, 아마존 그리고 페이스북 등의 기업들이 미국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도 미국과 같은 세대교체를 이룬다면 기존 한국의 재벌들을 ‘Old money’가 되고, 중견기업들은 ‘New money’가 되겠죠.
과연 이렇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중견기업들은 마땅히 이러한 꿈을 꾸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여기에 우리 회사는 제대로 된 회사인가? 라는 질문의 답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중견기업이라면 과거 기업들의 적폐와 다른 혁신성을 보여줘야 합니다. 물론 이 혁신성은 기술에 국한되지 않고 노사관계, 기업의 문화 등에서 전 방위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개별적인 법정수당 지급을 하기 싫어서 포괄임금제로 퉁 쳐서 연봉계약을 하고, 심지어는 노조설립을 방해하고, 여성임원의 비율이 현격히 낮은 중견기업은 제대로 된 중견기업이라고 하기 부끄럽지요. 과거 몇몇 대기업들이 그랬던 것처럼 가족에게 회사를 차리게 해서 일감을 몰아주거나, 우월적 지휘를 이용해 하청기업들의 단가를 후려치고 갑질이나 하고 있다면 제대로 된 중견기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4) 대기업
전언에 의하면 국내굴지의 대기업 중 하나인 OO은 몇 년째 직원들에게 위기경영, 비상경영을 외치고 있답니다. 직원들이 아주 죽어난다죠.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이 기업관련 뉴스를 보면 깜짝 실적 발표, 실적 상승 등의 기사 제목 일색입니다.
또 하나 비슷한 사례, 2016년 전까지는 대기업 지정 기준이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이었습니다. 당시 대기업에 다니던 모모씨는 45세에 퇴직을 했는데 실적압박이 너무 커서였다라고 말하더군요. 이 분 얘기는 실적을 못 채워서가 아니라 아무리 실적을 초과 달성해도 회사는 별의별 이유를 들어 계속 목표액을 인상시키더랍니다.
제가 재직했던 20년 전이나 지금 직장인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대기업만큼 변하지 않는 곳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다고 말하는 기업도 있겠지만, 노동자는 도구인가? 그 자체로 목적인가? 라는 질문 앞에 당당히 목적이라고 답할 수 있는 대기업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적어도 대기업에 재직 중인 직장인이라면 우리 회사는 제대로 된 회사인가? 라는 체크리스트에 회사가 노동자를 단순한 생산 도구로만 인식하는가? 가 우선적으로 포함되어야 합니다.
대기업들의 시스템과 프로세스는 딱히 나무랄 것은 없습니다. 다만, 시스템과 프로세스의 혁신 주기가 늘어지고 매너리즘에 빠진 상태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죠. 어떤 이들은 한국의 대기업들을 찬물을 넣고 끓이고 있는 냄비 속의 개구리로 비유하기도 하는데요. 이런 상태에 대한 내부 자성은 쉽지 않습니다. 조직에 대한 자부심과 기업의 오랜 역사에 대한 자만이 자성의 기회를 막기 때문이죠.
따라서 외부의 비판과 문제제기에 눈과 귀를 여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이런 노력이 회사의 영속성을 담보할 수 있으니까요. 두 번째로 우리 회사가 제대로 된 회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여기 있습니다.
다. 그래서 우리 회사는 어떤 것 같아요?
경영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제가 자주 떠올리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래전 책에서 읽었던 내용인데요.
외국에서 유학도 하시고 오랜 기간 수행을 쌓아 올려 존경받는 고승(高僧)이 계셨답니다. 이 스님이 두만강 근처의 마을을 지날 때 마을 사람들 얘기가 우리 동네 스님은 삿갓을 물에 띄워 올라타고 강을 건넌다는 것입니다. 신기하고 궁금해서 강에 나가보니 정말로 어떤 스님이 삿갓을 타고 강을 건너더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니 외고 있는 불경의 구절이 틀렸더랍니다. 그래서 그 스님에게 이 구절은 이런 뜻이 있으니 이렇게 외워야 맞습니다하고 알려줬다지요. 그러자 그 시골 스님은 고승의 가르침에 감사하며 삿갓을 물에 띄우고 다시 불경을 외우는데 옳은 것이라 고쳐준 구절에 이르자 삿갓이 물 아래로 가라 안더랍니다.
어떤 기업이든 나름의 장점과 오랜 시간 공들여 쌓아올린 지식과 통찰력을 갖고 있습니다. 컨설턴트라면 다른 기업의 예나 교과서적인 지식을 대입해 기업에게 잘했네. 못했네. 제대로 하라는 등의 훈수를 둬서는 안 될 일이기에 계속 이 이야기가 기억에 남나 봅니다.
보통의 직장인들은 자신이 속한 직장을 오래 생각해보지도 않고 덥석 우리 회사는 이런 곳이야 라고 판단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런 회사원들이 적지 않습니다. 반면, 우리 회사는 제대로 된 회사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무엇을 바꿔야 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를 고민하는 직장인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장이 회사 경영에 관심이 없어서, 직원들 간의 부서 이기주의와 불화 때문에 또는 뭣뭣 때문에 우리 회사는 잘 안 될 거야라는 저주를 외우는 직원들이 가득한 회사라면 아무리 좋은 사업기회와 운을 만나도 그 기업은 망하겠죠. 누군가 제게 우리 회사는 어떤 것 같아요? 라고 묻는다면 좋은 회사인지 제대로 된 회사인지 바로 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 회사는 어떤 회사지? 제대로 된 회사인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계속 더 나아지고 싶어 하는 임직원들이 많은 회사라면 자신 있게 좋은 회사라고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기사 회사 사용법 5 : 퇴사, 직장을 떠나기 전 고려할 것들 |
누구나 사장이 될 수 있지만, 누구나 경영을 잘 하는 건 아니다.
워크홀릭
트위터 : @CEOJeonghoonLee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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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내부 규정에 따라 제한 조치를 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