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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 추천7 비추천-8






책을 읽는 방식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 같다. ‘탐독’(耽讀)이라는 말처럼 책 안의 내용에 매료돼 먹을 것 찾듯, 미녀 만나듯 ‘호시탐탐’ 들여다보는 독서만 있으면 좋겠지만 어디 그런가. 읽는 내내 부글부글 끓으면서 이 작자는 뭐 이런 말을 하지? 뭐라고 반박해야 하지? 중얼거리며 읽는 투쟁 같은 독서도 있고, 마치 강의를 듣듯 의무감으로 책장은 넘기는데 도통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꾸벅꾸벅 졸다가 종국엔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남아나지 않는 ‘5교시 물리’ 같은 독서도 있다.

가끔은 읽어내리다가 “어 그럼 이건 뭐지?” 하고 궁금증을 가지면 다섯 줄 밑에 “응 이런 거야.” 하듯 그 답이 등장하고 작가의 이야기에 내 경험과 기억이 맞장구를 치는, 마치 작가랑 대화를 나누듯 빨려드는 독서가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독서를 ‘담독’(談讀)이라 한다.

정치인 심상정의 책 <난 네편이야> 읽기는 최근에 읽은 대표적인 ‘담독’의 예였다. 그는 나와 띠동갑에 가까운 연배다. 웬만큼 친하지 않으면 ‘형’이나 ‘누나’라고 부르기 어색한 차이다. 그런데 그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전혀 그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연배를 넘어서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느낌이 빈속에 소주 털어 넣은 식도 느낌으로 찌르르 살아왔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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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는 내내 심상정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그때 그랬군 무릎을 치기도 했지만 질문을 던지기도 했고 머리 속에서 작자와 논쟁(?)하기도 했고 혀를 끌끌 차며 충고를 던져 댔으니 이 아니 ‘담독’이겠는가.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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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 “세 번째 직장이 국내 최대의 봉제 업체인 대우어패럴이었다... 자본금 25억 원으로 36억의 흑자를 냈으면서도 노동자들이 일당 100원 인상을 요구하자 깡패들을 동원해 전기를 끄고 어둠 속에서 살인적인 폭력을 휘두른 곳이었다.”

: “아 그때 기억난다. 아마 1986년 보도사진연감이었을 거야. 고등학교 도서관에서 그걸 보는데 대우어패럴이라는 공장에서 대우 김우중 회장이 노동자들과 협상한다고 함께 어딘가로 향하는 사진이 있었지. 그때 노동자들이 긴장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고 벽에는 구호가 어지러웠지. 거기에 당신이 있었구나. 그때 같이 있던 위원장 이름이..."

심상정 : “1985년 6월 22일 11시 대우어패럴 노동조합 사무실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노조위원장 김준용, 사무장 강명자, 여성부장 추재숙 등을 잡아갔다.”

: “어 1985년 6월 22일? 엇 그렇구나 구로동맹파업이 시작된 날이구나. 아 참 그걸 당신이 조직했던가?”

심상정 : “(계속 반말이냐) 공장 밖에서 여러 노조의 간부들과 비밀리에 만나 움직였다. 그때 우리가 세운 대책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고, 목격한 적도 없는 동맹파업이었다. 1946년 9월 총파업 이후 최초의 동맹파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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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이 노동권은 열악했고 지금도 열악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귀족노조들의 배 두드리는 소리가 얼마나 큰데 그딴 소리를 하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결국 마름들의 세도에 불과하다. 소작농의 힘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권력을 쥔 자들은 끊임없이 갈라치고 처우를 달리하고 권리를 따로 주면서 피지배 집단을 이간시키는 게 역사의 이치였다. 그리도 격렬한(?) 노동운동을 거치고도 현재 한국 노동조합 조직률 10%대를 기록하고 있는 현실은 이런 ‘역사적 이치’의 충실한 구현이 아니겠는가.

10%가 노동 3권을 자신 있게 행사하고, 해마다 거듭되는 쟁의로 ‘자본가로부터’ 과실을 획득하고 그 일부는 자기 자식들 대를 이어 취업시키라고 꼴값까지 떨어대는 동안 나머지 90%는 타임머신을 타고 되레 80년대로 후퇴 중이니 말이다. 박노해의 시 마냥 “묵묵히 일하고 시키는 대로 따르고 주는대로 받는” 인생으로 원위치 중 아닌가.

“전투적 노동운동이라고 하니 한국에서 노동운동의 힘이 매우 세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노동운동과 공권력의 물리적 충돌은 오히려 노동자들의 힘이 약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책을 읽어내리던 중 이 말을 들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한국 노동운동이 거칠게 보이는 이유는 힘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간단한 명제이자 통찰이었다. 노동이 정부 또는 기업들과 대등한 파트너로서 협상 자리에 앉아 ‘국가지대사’를 논의할 역량이 된다면 구태여 몸 버리고 욕 먹어 가며 거리를 막을 이유도 없고, 수백일 어디 굴뚝에 올라가서 추위 더위에 몸 깎이며 목이 쉴 이유도 없고, 월급 몇 푼에 해마다 공장 세울 이유도 없는 것이다. 비정규직은 말할 것도 없지만 정규직조차 그렇다. “(그 자리에 있을 때) 잘해야 하는” 것이다. 불안한 것이다. 그러니 내 아들도 내가 받은 알랑한 정규직에 끼워넣어야 안심이 되는 것이다. (그게 노동운동의 대의와 가치를 훼손하는 짓이란 것과는 별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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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필요한 건 연대다. 참 말이 쉽지 행동하기란 어려운 단어, 연대(solidarity)다. 서로의 처지와 주장은 다르나 그 차이를 넘어서서 뭉칠 수 있어야 뭐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즐겨 착각한다. ‘나를 중심으로 뭉치는 것’이 연대라고 말이다. 중심이 다른 콤파스가 원들을 그리고 그 중의 교집합을 찾아야 하는 것이 연대라면 내 콤파스의 바늘을 축으로 원을 그려야 하고, 그 원과 일치해야 연대라고 생각한다고나 할까. 1990년 KBS에 공권력이 투입됐을 때, 구로공단의 여성 노동자들이 파업했다. 눈물겨운 연대였다. 그러나 2017년, 이 얘기는 전설의 고향의 범주에 든다. 이런 생각을 할 때 심상정은 스트레이트 한 방 같은 얘기를 내 눈에 대고 날려 버린다.

“연대라는 건 힘이 센 사람들과 힘이 약한 사람들이 (엄청나게 힘 센 사람들에 맞서) 서로 도움으로써 더 큰 이익을 얻는 것이다.”

이 통찰은 아버지의 자랑이요 이웃의 부러움을 사던 학벌과 졸업장 때려치우고 미싱사로서 보낸 나날 속에서 얻어졌을 것이다. 대학을 포기하고 친구 동생 신분증을 빌려 심상정은 위장취업을 감행했다. 나름 ‘힘 센’ 이의 ‘기득권 투척’이었다. 나는 요즘 “자본가에게 달래야지 왜 우리보고 희생하라느냐”며 뻗대는 자칭 ‘노동조합’들에게 심상정의 결단이, 그리고 대중들 사이에서 곧잘 부부사이로 오해받았던 노회찬의 삶이. 참혹한 시기 거의 죽을 각오를 하고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던 노동운동가들의 용기가 은혜로운 채찍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세상에 그 알량한 ‘희생’도 감수하지 못하면서 무슨 얼어죽을 노동해방의 깃발을 휘날린단 말인가.

이 책은 당연히 심상정의 책이다. 그녀의 삶이고 그녀 입장에서 돌아본 과거이며 그녀의 눈길이 비추는 현대사다. 그러나 그렇게 치부하기엔 너무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지나가고 그녀의 입장에만 쏠리지 않을 만큼 솔직하며 심상정의 현대사에 나의 현대사도 끼어 지나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하나 예를 들까. 1990년 1월 22일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전노협이 뜬다는 소식을 나는 하루 전 날 듣고 흥분했다. 드디어 전노협이 뜨는구나. 아직 어디가 될지 정해지지 않았고 당일 아침에야 장소를 알게 되겠으나 그게 삼수갑산이라도 가고 싶었다. 아마 심상정은 나보다 1백만 배 더 가슴이 뛰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전노협 만세를 부르짖으며 동아리방을 왔다갔다 하던 그날 전노협 건설에 목매달고 뛰던 심상정은 체포됐다. 그렇게 우리는 같은 역사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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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이 소중하다. 대중들로부터 심성정의 남편으로 오해받았다는 노회찬도 그렇고 심상정의 <난 네 편이야>에 등장하는 심상정의 동지들 모두가 애틋하고 살갑다. 나는 그 이유를 ‘심상정의 1분’에서 발견했다. 대통령 선거 토론회 과정에서 시간을 다 써 버린 후보에게 ‘마지막 1분’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심상정은 성적 소수자의 권리를 호소하는 데 1분을 투여했다.

기억한다. 홍준표의 유도심문에 깜박 넘어간 문재인 후보가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멘트를 했을 때 그 맥락에 관계없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을 수 있었는가를. 기실 표에는 도움이 안됐을 것이다. 점수를 딸 분야도 많고 호응을 불러일으킬 이슈가 분명히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심상정은 기어코 성적 소수자 이슈를 1분에 썼다.

왜? 나는 그녀가 공장에 뛰어들던 이유와 같다고 본다. 말이 안 되는 차별에 시달려야 하고 납득할 수 없는 편견에 희생돼야 하는 이들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1위 후보 정당의 간부라는 자가 “동성애 반대하지 않으나 나는 싫어한다. 싫어할 권리를 달라”고 대놓고 혐오발언을 퍼붓는 상황을 납득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찡했던 순간은 심상정이 방송에서 성적소수자의 권리를 역설한 ‘1분’을 쓴 뒤 한 청년이 일부러 행사장을 찾아와서 심상정에게 다음과 같이 외치는 순간이 아닐까 한다. “1분 써 주신 것 감사합니다. 제가 한 마디 하려고 시험 공부도 안 하고 여기에 왔습니다.” 청년은 이렇게 외쳤다.

수천년 동안 정치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며 누군가의 절박함을 대변하되 유능한 정치는 힘 쥔 자의 이해에 귀를 기울이고 올바른 정치는 힘 약한 자의 득실에 민감하다. 심상정은 지금까지 유능하지 않았는지는 모르나 (개인적으로는 유능했다고 본다) 올바른 정치를 추구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 내막이 궁금하면 이 책을 보시면 되겠다.

이미 심상정은 후원금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대선 때 후원금 한계치를 채운 탓이다. 이 책 하나를 구입하는 건 마음의 양식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실질적 양식이 된다. 부디 들여다 보시기 바란다. 유능함을 자처하는 지도자는 많으나 정작 필요한 정치인은 드물다. 심상정은 힘겹게 그 교집합에 들어 있다. 이 책에서 그 이유를 찾고 덕업도 쌓으시길. <난 네편이야>라고 심상정이 속삭인다면 이렇게 말해 두고 싶다. 나도 당신 편이라고 물론 ‘아직까지는’


https://youtu.be/-6w0P1H82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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