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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5. 08. 목요일

논설우원 파토








<파토의 쿡찍어 푸욱>은 


시급한 현안에서부터 해묵은 숙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 사회 관련 문제를 다루는 코너임다.


과학 잡설 <호모 사이언티피쿠스>와 교대하면서 격주로 연재되니


 많은 사랑 주시던가.




지난 기사


<파토의 쿡찍어 푸욱> 1. 공포의 마스터플랜

<파토의 쿡찍어 푸욱> 2. 그들은 왜 변절했을까

<파토의 쿡찍어 푸욱> 3. 지금 우리에게 놓인 투쟁의 현실

<파토의 쿡찍어 푸욱> 4. 시대와 진보에 대한 단상

<파토의 쿡찍어 푸욱> 5. 사회의 품격(1)

<파토의 쿡찍어 푸욱> 6.박정희, 이승만, 일제 그리고 개드립

<파토의 쿡찍어 푸욱> 7. 사회의 품격(2)

<파토의 쿡찍어 푸욱> 8. 하는 김에 하는 교통 이야기

<파토의 쿡찍어 푸욱> 9. 우리는 그들에게 대한민국인가

<파토의 쿡찍어 푸욱> 10. 비극으로 모자라서 이렇듯 철저하게 패배할 겁니까



 

 

 



요즘처럼 수퍼맨 같은 힘을 가진 영웅을 바랐던 적도 없을 겁니다. 그가 나타나서 저 가라앉는 배를 훌쩍 들어올려 준다면, 그래서 영화에서처럼 모두가 찰과상 정도만 입고 무사히 나와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다들 이것이 헛된 상상이란 걸 압니다. 또 그런 수퍼 히어로가 존재하지 않기에 우리는 대신 많은 것을 필요로 합니다. 특히 엄청난 돈과 사람을 거느린 정부가 그 역할을 일부나마 해 주길 바라고, 그래야 마땅합니다. 국가와 정부라는 것 자체가 개인의 힘으로는 운영하거나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을 조직적으로 대신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거고, 그 명분으로 권력을 위탁받고 세금을 걷는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오늘은 정부의 역할 이야기는 안 하겠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으니까요. 그저 수퍼맨 이야기를 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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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우리가 사는 이 나라의 여러 문제점들이 종합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의 감정도 안타까움에서 어처구니없음으로, 이어 분노로 바뀌어 갔습니다. 그래서 이런 세상을 그냥 놔둘 수 없다, 어떻게든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가 많은 이들 사이에 형성됐죠. 저도 물론 그런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될까. 뭔가 기발하고도 놀랍도록 효과적인 아이디어는 없을까. 그런 걸 저 같은 사람이 발상해 내서 사회에 제시해야 한다는 의무감마저 생기더군요.


물론 기존에 하던 방법들이 있습니다. 촛불집회가 그 대표적인 예죠. 하지만 솔직히 실제적인 효과를 거둔 적이 거의 없습니다. 냉정하게 보면 우리끼리 모여 서로간의 유대를 확인하고 분위기만 잡은 거라고 말해도 할 말이 없죠. 위정자들이 그 목소리를 존중하지 않을 때는 아무 기능도 하지 못하니까요.


그런 활동들이 불필요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모든 집회가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기능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다만 진짜 변화를 만들기 위한 도구가 필요한 상황에서, 그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냐는 뜻이죠. 그 촛불이 횃불로 커져도, 그걸 어디다 집어던질 게 아닌 한 결과는 다를 바 없습니다.


그 다음에 떠오르는 건 이제 말 그대로 횃불을 집어 던지는 겁니다. 파괴와 폭력을 동반한 혁명적인 접근이죠. 하지만 어디에 던져야 할까요. 해양수산부? 해양경찰청? 청해진 해운? 구원파 교회? 방송국? 신문사? 정부종합청사? 청와대? 이렇게 생각하면 나라 전체가 불타는 그림이 그려집니다. 그 과정에서 내전에 준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수많은 사람이 다칠 수도 있어요. 아, 아무래도 이건 아니죠.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 봐도 도무지 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여요. 어떤 건 효과가 별로 없고, 어떤 건 초가삼간 다 태우겠고, 어떤 건 괴물과 싸우다 스스로 괴물이 되겠고... 제시할 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가 하나도 없더란 말입니다. 이렇듯 슬프고 갑갑하고 화가 나는데, 이 사회를 바꿔야 하는 건 분명하고 그걸 위해선 액션이 필요한데 도무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니.


우리가 너무 힘이 없는 거죠. 한스러울만치.


그러다보니 힘의 상징이라고 할 수퍼맨 생각이 다시 떠오르더군요. 지금 이 순간 그가 있다면 어떨까. 배를 건져 사람을 구하기에는 늦었을지 모르지만 이 사회를 바꾸는데 그 무한한 힘을 쓸 수는 있지 않을까.


그러면서 제가 수퍼맨이 되는 상상을 해 봤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무척 많더군요. 여기 가서 이넘을 잡아오고 저길 가서는 저넘을 겁주고, 필요하다면 좀 때려주기도 하고. 경찰도 국정원도 군대도 제 상대가 될 수 없으니 저는 원하는 대로 정의를 실현할 수 있겠죠. 나쁜 넘들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나라를 망치는 자들을 벌 주는 건, 어떤 무기로도 상처입힐 수 없는 수퍼맨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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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 바쁘게 나쁜 넘들을 다 패고 다닐 필요도 없습니다. 꼭 필요한 자들에게만 손을 대고 제가 소유한 힘의 강대함을 널리 알리기만 하면 나머지는 다 알아서 길 테니까요. 원래 힘의 속성이 그런 거잖아요? 그런 다음에 정의의 이름으로 좋은 사람들, 인격과 능력을 겸비한 이들을 골라서 요직에 앉히면 됩니다. 그리고 저는 위대한 정의의 수호자로 그 뒤에 떡 버티고 서 있는 거죠.


이렇게 이제 나쁜 넘들은 모두 제거되고, 거기에 놀아난 무지한 50%도 찍소리 못할 거고, 세상은 안전하고 공평하고 아름다운 곳이 될 겁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잠깐 하다 보니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사람을 겁준다, 끌어내린다, 나아가 두들겨 팬다? 그리고 제 손으로 정부를 개편하고 사람들에게 관직을 주고는 그 막후에 버티고 선다?



이건 그냥 독재 아닙니까.



아무리 선한 의도였다 한들, 저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힘으로 찍어 누르고 제거해서 내 맘에 드는 세상을 만든 거잖아요. 수퍼맨의 힘이라는 게 사실 알고 보면 철저한 물리력이고, 따라서 무한대의 ‘폭력’이죠. 이 힘이 총포의 힘, 돈의 힘, 조직의 힘, 증오의 힘과 다른 점이 대체 뭘까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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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런 식으로는 반대하는 사람을 설득할 수도 없죠. 그저 힘에 눌려 있을 뿐이니까요. 거기에서 점점 분노가 쌓여 나갈 겁니다. 어느 선까지는 제 힘으로 버틸 수 있겠죠. 하지만 그들 모두가 봉기한다면 하나씩 다 때려 죽일 건가요. 그리고 제가 늙어 죽기라도 하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요.


결국, 저는 제일 쉽고 빠르면서 한편으로 가장 무책임한 방법을 선택한 겁니다. 수퍼맨의 힘은 세상을 일시적으로 좋게 만들었을지 몰라도 실은 더 나쁜 세상의 단초를 제공했습니다. 수퍼맨이 힘을 잃은 후 그들의 복수는 무시무시할 것이고 그들이 만드는 세상은 끔찍할 겁니다.


그럼 가진 게 힘 밖에 없는 수퍼맨이 제대로 그 힘을 쓸 방법은 정녕 없는 걸까요.


...딱 한 가지가 떠오르더군요.





제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정말로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에 빗대어 ‘주권자’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수퍼맨은 자신의 무한한 힘 때문에 행동에도 무한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아니면 의도와 상관없이 세상을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죠.


주권자인 국민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으로서는 약하기 그지없지만, 우리가 어떤 마음을 먹고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이 나라의 현재와 미래에 항구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가 수퍼맨의 입장에서, 내가 무한한 힘도 있지만 무한한 책임도 져야 한다면 이 시점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해야 하는 거죠.


그렇다고 집회나 시위를 하지 말고 어떤 집단 행동도 자제해야 한다는 정부 대변인 같은 소리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건 절대적 물리력이 아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책임은 기껏 길이나 좀 막히는 정도죠. 국민이 분노를 표출하고 변화와 각성을 촉구하며 책임자의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합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말할 것도 없고요.


하지만 주권자로서는 그 나름대로 할 일이 또 있습니다.


위에서 수퍼맨이 힘을 쓸 방법이 하나 있다고 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그라면 주먹을 묶는 대신 날아다닐 겁니다. 아주 빠르게, 부지런히요.


전국 방방곡곡을 날아다니면서 곧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의 참여를 독려할 겁니다. 냉소와 절망 속에서 다 부질없다고 주저앉은 분들, 그넘이 그넘인데 누굴 뽑냐는 이들, 부정한 선거는 해서 뭐하냐는 사람들, 어른들의 세상에 신뢰를 잃은 젊은 친구들, 그 모든 이들에게 찾아가서 수퍼맨의 파워가 실은 당신의 손에도 있다고 이야기할 겁니다. 그 힘을 쓸 수 있고, 써야 한다고요.


압니다. 그 정도로는 답답하죠. 지금 우리 맘에 지방선거 따위는 별 느낌도 오지 않고 아무 역할도 못할 것 같죠. 이미 안 좋은 과정과 결과도 겪어 봤고요.


저도 이것 외에 세상을 당장 바꿔 나갈 대안이 있다면 그 길을 가고 싶습니다. 슬픔과 분노와 상실이 반복되지 않는 세상을 속 시원하게 만들 수 있다면요. 영화에서처럼 좋은 편이 단박에 승리하고 악당은 패망하며, 그 모습을 보면서 모든 사람들이 크게 각성해서 합심해 살기 좋은 곳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정말로 해야 하는 것은 일단 한 걸음 내딛는 겁니다. 슬픔과 분노와 상실을 차근차근 진짜 힘으로 바꿀 수 있는 한 걸음입니다. 이 걸음은 수퍼맨의 주먹보다 무겁고 비행보다 힘찬 것입니다. 그 힘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어느 곳에도 도달할 수 없습니다.


누구를 지지하라고는 말씀드리지 않습니다. 그저 주권자의 뜻을 잘 받들고 지금의 거짓된 세상을 바꿔 나가기 위해 노력할 사람이면 됩니다. 설사 흡족하지 않더라도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을 적극적으로 고르면 됩니다. 그러면 다음 총선에서는 좀 더 나아지고, 대선에서는 그보다 더 나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저, 우리가 수퍼맨이란 걸 잊지 맙시다. 혹시 잊었다면 젖먹던 힘을 다해 다시 기억해 내자구요.


이제 한 달이 채 안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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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