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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외로 쉬운 기자되기

 

국회 본청 건물을 정면에서 봤을 때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국회 기자실로 통하는 입구가 있다. 입구 옆에는 작은 정자와 휴식 공간이 있는데, 주로 기자들은 그곳에서 담배를 피운다.

 

담배도 안 피우는 내가 한 여름, 그곳에 앉아 몇 몇 기자들이 뿜어내는 담배연기를 마시며 국장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 내 모습은 일반적인 면접을 보는 사람의 복장이 아니었다. 당시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해 본 적이 없어 기본 정장을 갖추고 있지도 않았다. 미색의 큰 꽃무늬가 들어간 햅번스타일 원피스에 민트색 볼레로를 입고, 노트북 가방과 핸드백을 들고 찾아갔다.

 

도착했다고 문자를 보내니 국장은 바로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기사 마감 중이라서요.”라는 답문자를 보냈다. 약 이십분쯤 기다리자, <내 이름은 김삼순>이란 드라마에 나왔던 현빈과 비슷한 스타일의 맞춤 정장을 한 사람이 나와서 나를 보며 “김현정 씨?”하고 묻는 것이었다.

 

맞다고 하자, 본청 뒤쪽으로 나 있는 내외빈 출입실로 데려가 출입절차를 마친 후 국회기자실 뒤에 마련된 휴게실로 나를 데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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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전 국장 A라고 합니다”라고 인사를 하더니 “타자는 좀 칩니까?”라는 말과 “뚱뚱하진 않네요”라는 말을 하고는 “우리가 바로 채용해줄 수도 있는데, 정치부 기자가 생각보다 힘들다. 3개월 인턴 기자를 하고, 정식 수습기자로 채용해주겠다”고 했다.

 

어쨌든 취업이 급했던 나이기에, 그리고 바로 정치부 현장, 소위 기자들이 ‘필드’라고 말하는 곳에서 일하게 해준다니, 나도 바로 오케이 해버렸다. 인턴 월급은 월 50만원 밖에 못 준다고 했고, 이후에도 수습기자 때 100만원, 정식기자가 되면 130만원을 준다고 했다. 엄청난 박봉이었지만, 그래도 고정적인 급여를 받고, 집에서 생활하니 따로 생활비가 들지 않아 그게 박봉인 줄도 몰랐고, 급여에는 불만도 없었다. 그 때까지 내 씀씀이가 그리 크지도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오케이 하자마자 바로 “잘해 봅시다”라며 국장은 악수를 청했다. 나도 악수를 하고 얼마 있지 않아 국장의 브리핑 룸에서 동영상 편집을 하고 있던 동영상 촬영, 편집 기자를 데리고 와서 인사를 시켰다. 나와 동갑이었고 공중파 방송국에서 계약직 카메라 기자로 일했던 경험이 있는 기자였다.

 

그리고는 바로 정론관이라고 하는 국회 브리핑 룸으로 데리고 갔다. 면접 보러 나간 날 바로 일을 시작했다. 국회출입 기자들은 대부분 오래 출입한 언론사 소속 기자에겐 년 단위의 상주기자증과 짧게는 일주일에서 몇 개월 단위로 갱신을 해야 하는 기자증을 발급한다. 그리고 오래된 언론사는 국회 브리핑 룸이 아닌 언론사별로 지정된 자리를 주는데, 이를 통상 ‘부스’라고 표현한다.

 

내가 들어간 매체는 얼마 되지 않은 매체라 국회에 부스가 없었다. 모두가 이용하는 정론관 브리핑 룸에 마련된 좌석을 이용했다. 지정 좌석이 아니지만, 평시에는 매일 출근하는 기자들이 정해져 있어, 거의 지정된 좌석처럼 활용하고 있었다.

 

어쨌든 처음 입사해 기사도 못 쓰는 내가 옆에서 국장이 어설프게 속성으로 가르쳐 주는 스트레이트 기사 쓰는 법을 배워서 -말이 배웠다곤 하지만 국장이 다 썼다-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바이라인을 달고 기사가 나갔다.

 

대변인의 논평을 그대로 스트레이트화 시킨 기사였는데, 이게 내 기자 생활의 독약이 될 줄은 기자 생활 시작 7개월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각 당에서는 그 날 그 날 대변인과 부대변인이 논평과 브리핑을 한다. 그럼 그 논평과 브리핑을 토대로 추가 취재를 해서 기사로 구성해야 한다. 그 말을 그냥 그대로 받아서 전달하는 건 아주 초보 수준의 기사고, 기사로서 가치가 떨어진다. 더더군다나 요즘처럼 각 당에서 대변인 논평, 브리핑을 홈페이지나 SNS를 통해 바로 바로 원문으로 올리는데 그걸 그대로 전달하는 게 기사로서 무슨 가치가 있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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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받아쓰기, 언론사가 먹고사는 법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더불어민주당의 논평이 있다고 치자.

 

“서울시 선거구제 개편과 관련한 이정미 대표 발언 유감이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서울시 자치구의원 선거를 현행 2~3인 선거구제에서 4인으로 늘리는 안이 지지부진하자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탓을 했다. 심지어 추 대표에게는 기득권 수호를 위한 비겁한 침묵이라는 말로, 민주당을 향해서는 제 눈의 들보도 빼내지 못하면서 무슨 적폐청산이냐며 감정적인 언사를 쏟아냈다.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선거구제 문제를 추미애 대표 탓으로 돌리는 건 공당의 대표로서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다.

 

더불어민주당은 헌법 개정 및 정치개혁을 위한 논의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합리적인 선거구제 개편이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 국민과 함께 촛불시민혁명을 함께 한 정의당은 적폐청산과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함께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2018년 2월 5일 더불어민주당 부대변인 김효은(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에서 발췌)

 

그럼 제대로 된 괜찮은 기사라면, 저 논평을 토대로 선거구제 개편을 두고 각 당의 입장이 왜 다른지, 올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어떤 정치적 이해와 이념 때문에 저렇게 비교적 입장이 같은 정의당이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공격을 하는지를 심층취재해서 기사에 실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벌써 기사의 제목이나 첫 문장부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6월 지방선거 ‘룰의 전쟁’ 신호탄! 여야 기초자치구의원 선거구제안 두고 공방 가열… 왜?” 이런 식으로 기사가 나오게 된다. 그런데 나와 같은 경우는 앵무새처럼 그 발언 그대로를 기사화 하는 방식만 배워서 6개월 동안 그런 기사만 써냈고, ‘킬’ 당하는 일도 없이 출고되었다.

 

이런 식이었다.

 

민주당 “선거구제 개편, 정의당 이정미 대표 발언 유감” 표명

 

더불어민주당이 6월 지방선거에서 서울시 자치구의원 선거구제 개편이 지지부진 하자 추미애 대표 탓을 하는 이정미 정의당 대표를 향해 유감 표명을 했다.

 

더불어민주당 김효은 부대변인은 5일 논평을 통해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서울시 자치구의원 선거를 현행 2~3인 선거구제에서 4인으로 늘리는 안이 지지부진하자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탓을 했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그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선거구제 문제를 추미애 대표 탓으로 돌리는 건 공당의 대표로서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라며 “더불어민주당은 헌법 개정 및 정치개혁을 위한 논의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합리적인 선거구제 개편이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과 함께 촛불시민혁명을 함께 한 정의당은 적폐청산과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함께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고기를 던져주면, 이를 다지고, 양념하고, 구워서 떡갈비를 만들어 먹어야 하는데, 나는 그냥 주어진 고기에서 못 먹는 부위만 떼어 내고 날로 먹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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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신이 뭘 몰라서 가능했던 일이었고, 당시 언론사로서는 홈페이지 메인 화면을 바꾸는 게 급선무였고, 무엇보다 돈이 되는 영업을 하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사실상 돈 안 되는 기사를 쓰는 정치부 기자의 기사 퀄리티는 그리 중요하지 않게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클릭수를 올리는 자극적인 기사일수록 좋았고, 편집기사도 홈페이지 배치와 이미지 삽입만 신경을 썼고, 기사에 오·탈자가 수두룩했어도 정정되지 않고 출고되는 일이 일상이었다. 편집국장도 기사 내용에 대해 제대로 된 데스크를 볼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클릭수를 높이는 연예 기사나 -당시로선 TV 독후감이라 불림- 레이싱 걸을 회사로 불러 사진과 동영상 촬영을 해서 올리는 동영상 기사는 회사차원에서 열정적으로 나섰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언론사에서 사람이 자주 바뀜은 물론, 국장은 입지전적인 인물로 업계에 소문이 나 있었다. 국장은 제대로 된 취재기자를 해 본 일이 없었고, 광고 일을 담당하다 웬만큼 돈을 벌어 인터넷 언론사를 차려 얼렁뚱땅 사장 겸 국장이 되고, 내친 김에 국회까지 나와서 취재기자를 하고 있었다. 이 언론사는 실상 인터넷 종합일간지를 표방하면서, 수익은 광고보다 ‘아름다운 한국인상(가칭)’ 이런 시상식을 주최하면서 수상자들에게 일종의 참가비를 받아 수익을 올리는 구조였다. 그래서인지 국장은 돈이 많았다. 옷과 지갑, 가방, 구두가 모조리 명품이었고, -당시 국장은 30대 후반이었다- 외제차를 끌고 다녔다. 겉모습은 딱 잘 꾸민 양아치였다.

 

요즘 많은 언론사가 하는 무슨무슨 어워드의 시초였던 것이다. 당시 이 언론사는 이 어워드의 주관사로 정부를 끼고 해서 당시로서는 꽤 괜찮은 수익이 창출되었다.

 

그러니 내부에서 일하는 연예부 기자나, 사회부 기자 등은 오전에는 각 출입부처에서 발송해주는 보도 자료만 베껴서 기사를 써 내고, 오후에는 기업이나, 유명한 사람들을 찾아서 -전화번호 데이터베이스를 어디서 받는지는 모르지만- 전화해 “oo님이 아름다운 한국인상에 우수상 수상자로 내정되었습니다. 시상식은 11월 6일 공군회관에서 열립니다. 참석해 주십사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일종의 참가비를 조금씩 받습니다” 이런 식으로 영업을 하는 방식이었다. 여기에 낚인 사람들은 참가비로 적게는 50만원에서 많게는 기 백 만원을 냈다. 한 마디로 돈 주고 상을 사는 거였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수상자가 영 엉뚱한 사람들도 많았다. 예를 들면, 무당이나, 어느 디스크 치료용 베개(물론 홍보관에서 판매할 법한 제품들이었다) 개발, 판매업자 등등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악하고, 기괴하기 짝이 없는 시상식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돈 주고 상을 살 사람들을 섭외한 기자들은 -당시 내부에서 이 일을 하는 기자들과 국장은 이를 ‘꼭지’ 딴다고 했었다- 몇 프로의 영업 수당이 주어졌다. 몇 백씩 받아가는 기자도 있었다. 물론, 본 기자는 국회에 나와 있었고, 토요일에나 회사로 출근했기에 이 업무에서 배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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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에서 이 일을 하는 기자들은 대부분 초대졸 졸업자나, 4년제 졸업자라도 주요 언론사나 좋은 곳에 취업이 잘 안 되는 지방 4년제 대학 졸업자들이었다. 아픈 현실이지만, 기자로 일해보고 싶은 열정이 있으나, 스펙 높은 직종인 언론사 기자로 취직하기엔 1차 서류에서 탈락할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어느 매체든 들어가 열심히 일을 하면서 경력을 쌓은 뒤, 좋은 매체로 이직하고 싶다는 열망을 한 자락 마음 깊은 곳에 깔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열망을 회사는 십분 이용했던 것이다.

 

필자는 소위 아주 명문의 대학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알려진 4년제 대학의 법학과를 나와서, 이 회사에서는 가장 고스펙에 속했고, 정치부 기자로 배치하기에 ‘아주 볼 품 없지는 않아’ -당시 국장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이었다- 이만하면 알맞겠다 싶어 얼렁뚱땅 채용된 것이었다.

 

 

 

3. 모두가 그만두라고 했지만

 

이전에도 많은 기자들이 채용되었지만, 회사의 주먹구구식 운영, 국장과의 마찰로 며칠을 못 버티고 나간 기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내가 처음 일을 시작하고 3주 사이에만 세 명이 그만두었는데, 사유가 한 명은 국장이 실제로 보니 여기자의 ‘키가 너무 작아서’ 내보냈고, -물론, 명목상은 경력 기자치고 기사를 너무 못 쓴다는 이유로 사흘 만에 잘랐다- 한 명은 어디 스튜어디스 학과를 졸업한 키 크고, 늘씬한 미녀를 채용했지만, 국장이 성희롱 발언을 대놓고 해서 스스로 나갔다. 물론 성희롱 당한 이 여기자도 홀복 비슷한 원피스를 입고 국회에 오는가 하면, 대놓고 농땡이를 부리고, 국장과 맞먹고, 국장에게 용돈도 타 쓰면서, 막 나가는 부류였다.

 

그리고 성실하고, 제대로 기자를 하고 싶었던 한 명의 여기자는 이곳의 상황을 파악하고 빨리 발을 뺐다.

 

그 기자가 나가면서 문자를 보냈다.

 

“언니, 언니는 공부해서 언론사 제대로 입사하면 좋은 데 가실 거 같아요. 그렇게 하세요.”

 

입사하고 3개월 만에 들어온 동료 남자 기자도 2주 만에 그만두고 나가면서 본 기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현정아 나 인사도 못하고 간다. 잘 지내고. 너도 빨리 결정하는 게 좋을 거 같아. 거기 있어봐야 도움 안 될 거 같아. 넌 감각도 있고, 똑똑한데. 아깝다”

 

말이 쉽지 남자들도 군대 갔다 와서 입사하고 1, 2년차일 나이에,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내가, 다시 취업을 하기 위한 준비 기간을 갖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부모님께도 죄송한 일이었고. 두 달까지는 정말정말 괴로웠고, 옆에서 무식한 말과 때론 성희롱성 발언도 불사하며, 시답지 않은 기사를 써대는 국장이 싫었고, 그런 국장과 죽이 맞는 동영상 촬영/편집기자도 싫었고, 내부의 기자들에게도 미운털이 박혔고, 회사 동료들과 잘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없기는 본 기자도 매한가지였지만, 나에겐 돌아갈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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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로 처음 일을 시작한 그 해 아버지가 환갑이었지만, 장녀인 나는 아버지에게 아무것도 해줄 능력이 없었다. 도리어 아버지가 환갑 생일 때 받은 돈을 나에게 용돈으로 주었다. 그리고 공장에서 일하는 어머니도 적은 나이가 아니었으며, 정년퇴직을 불과 몇 년 앞두고 있었다. 그런 부모님을 생각하고 참아야했다.

 

물론 한 명의 경력기자가 잘리고 두 명의 인턴 기자도 빠른 시일 안에 나가는 바람에 본 기자는 출근한 지 2주일 만에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 말진(취재 담당구역(라인)에서 가장 연차가 낮은 막내기자) -말이 말진이지 국장하고 둘이 한나라당을 커버했었다- 에서 민주당과 당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을 혼자 담당하게 되었다.

 

물론, 기사의 수준은 엉망이었다. 매일 매일 열리는 민주당 회의에 들어가, 당대표, 원내대표, 최고위원, 원내수석부대표 등등의 발언을 받아치고 -이를 ‘워딩’이라 표현한다- 그걸 토대로 스트레이트 기사를 한 꼭지씩 작성했다. 좋은 기사가 나올 리 만무했다.

 

정세균 대표 “MB 독재식 운영 하지 말라” 맹비난, 송영길 최고위원 “광우병 촛불집회 유모차 부대 형사기소 개탄”, 민노 박승흡 “촛불 강경진압 경찰 정신 차려!” 따위의 기사나 쏟아냈다.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듯, 기자 업무의 트레이닝은 ‘도제식’으로 이루어진다. ‘도제식’ 교육의 사전적 정의는 ‘장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장인으로부터 훈련을 받는 교육방식’을 말한다. 그러므로 입사해서 어떤 사수로부터 배우냐가 매우 중요하다.

 

조/중/동을 비롯한 정통의 종합일간지와 공중파 방송사들의 장점은 이 수습기자들 교육방식이 잘 돼 있다는 점이다. 오랜 세월 축적된 노하우를 수습기자들이 그 기간만 잘 버티면 아주 수준 낮은 기사나, 기사의 형식에서 벗어난 기사를 쓰는 일은 어지간하면 벌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수습기자가 자기 바이라인을 달고 기사를 출고하기까지는 상당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인터넷 언론이 발달하면서, 기자가 되는 일도 상대적으로 쉬워졌지만, 과거처럼 엄격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아, 기사 수준이 많이 하락한 것 또한 사실이다. 물론, 인터넷언론사로서도 역사가 오래된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 같은 경우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나름의 관점을 갖고 있어서 기사가 훌륭했고, 출입처나 업계에서도 평이 좋았다. 뛰어난 기자들도 많다.

 

필자와 같은 경우가 가장 ‘후루쿠’로 기자가 된 케이스였다. 물론, 회사 체계가 그리 믿을만 하거나 잘 갖춰져 있지도 않았다. 소위 말해 ‘언론고시’라고 부르는 대형 언론사의 공채를 통해 기자가 된 기자들 대부분은 ‘스펙’이 좋았다. 대학교 학력도 90% 이상이 명문대 출신이었고, 토익 점수 고득점자에, 시사상식, 논술 등 많이 준비가 된 인재들이었다. 이들은 어렵게 기자가 된 만큼, 기자로서 열심히 일했고, 힘든 수습 기간 사스마와리(경찰서로 출근하는 기자)도 잘 견뎌냈다. 매체 전체로 볼 땐 요즘에는 좋은 평가를 줄 순 없지만 -회사 차원의 편집 방향 때문에- 개개인으로 볼 때 그들은 훌륭한 기자들이다. 시스템이 이들을 변화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후지게 만들었을지는 몰라도.

 

나야 말로 ‘개나 소나 기자되는 세상’의 그 ‘개나 소’와 같은 기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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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기자 업무에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아 국회출입기자에 대해 조금 상세히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국회출입기자는 대부분 정당출입기자라고 보면 된다. 기자 한 사람이 어느 한 당을 맞는다. 취재기자 풀이 많은 언론사에서는 정의당 같은 소수 정당엔 통상 한 사람 정도를 배치하지만, 여당에는 1진, 2진, 3진 해서 적게는 3명부터 많게는 4명까지 배치하고, 야당에도 제1야당 같은 경우는 1진, 2진, 3진해서 적게는 2명부터 많게는 4명까지 배치한다.

 

그런데 취재기자가 적은 인터넷 언론사는 각 당에 한 명씩은 배치하던가, 여당에 1명, 야당 통틀어 1명, 이렇게 담당자를 둔다. 물론 취재 기자 한 명이 여,야 전체를 커버하는 소규모 영세한 매체도 많이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정치부 기자는 대부분 정당의 당사 기자실로 출입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국회에서 많은 일들을 하고, 정당에서도 국회에서 공보지원을 많이 하다 보니, 당사보다는 국회로 출입하는 게 대세가 되었다. 각 당이 당사에서 특별한 아침회의를 하는 경우는 당사로 가서 아침 회의 취재와 기사송고를 하지만, 그 경우에도 대부분은 당사가 여의도 국회 앞에 있어, 오후에는 국회로 넘어와서 국회 기자실에서 업무를 본다.

 

각 당 공보실에 출입기자 등록을 하고 이메일링 서비스 신청을 하면 보도자료를 메일로 보내준다. 각 당마다 매일 아침 열리는 회의 발언과 결과도 기자들 메일로 보내준다. 그 메일 내용을 전부 기사로 다룰 수는 없고, 거르고 걸러서, 추가 취재가 필요하면 추가 취재를 통해 기사로 다룬다.

 

국회출입기자는 본회의가 열리면 본회의 내용, 각 상임위 회의 내용, 각 당 차원의 당론, 국정감사시기에 벌어지는 이슈, 선거 시기에 벌어지는 사건 등을 기사로 주로 다룬다.

 

기자는 법학과를 졸업했고, 헌법을 전공해 국회법이나 선거법 등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어서 입법부 시스템을 익히는 건 남들보다 수월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았고, 정치외교학을 부전공할 정도로 정치인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괴로운 와중에도 국회기자 생활 자체는 재미있게 했다. 어느 정도 열정적으로 임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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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