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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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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Metro UK

 

문재인 대통령은 국제사회가 북핵 문제에 응하는 무대에 주요 배역으로 강제 소환됐다. 정부는 필연적인 곤란을 겪을 것이다. 미국은 북핵을 용인할 수 없고 북한은 핵을 포기할 수 없으며, 한국은 태도가 이미 정해져 있는 보스와 한 지붕 탕아 사이에서 외통수에 걸려 있는 것이다. 

 

핵에 대한 북한의 집착은 미국의 가혹한 대북제재로 심해졌을 뿐 그 근원은 하나다. 중국의 양탄일성이다. 중국은 1960년대에 양탄, 즉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을 개발했다. 핵폭탄만으로는 수류탄에 불과하다. 눈앞에 얼쩡대는 적에게만 던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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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둥팡스줴(東方視覺)

 

대륙에서 대륙으로 이동하는 미사일은 이동 거리만큼이나 포물선의 고점이 너무 높아 대기를 뚫고 우주 공간으로 넘어간다. 우주미아가 되지 않기 위해 길을 안내해주는 인공위성이 있어야 한다. 중국은 1970년에 인공위성을 띄웠다. 이것이 일성이다. 

 

두 종의 핵폭탄과 인공위성 - 양탄일성으로 중국은 미국을 직접 타격할 수 있게 되었다. 중국은 많은 것을 얻었다. 

 

 

2.

 

한국전쟁 중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보며 맥아더는 중국 핵 폭격을 고려했다. 물론 그렇다면 소련이 핵 대 핵으로 복수해줄 요량이 높았다. 그러나 만에 하나 미국이 소련의 눈치를 봐 주지 않는다면? 소련이 자국의 상호확증파괴를 피하기 위해 공산주의 블록에서 중국을 잃는 것을 감수한다면?

 

중국은 자국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두 번째 충격파는 1959년 중소분쟁이었다. 애초에 중국은 소련의 위성국으로 남기에는 사이즈가 너무 컸다. 흐루쇼프가 마오쩌둥의 롤모델 을 벌이자 중국은 소련을 맹비난하며 이참에 공산주의 종주국을 자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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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Daily Kos

 

먼 옛날이야기지만 결과적으로 이때 중국은 소련에게 핵을 맞을뻔 했다. 중국이 살아난 건 전적으로 미국이 개입해 확전을 막은 덕분이다. '그쪽이 중국에 핵을 쏘면 우리는 중국 편을 들어 그쪽에 핵을 쏘겠다.'

 

중국이 예뻐서가 아니다. 공산주의 블록의 두 덩치, 불곰과 판다가 드잡이하고 있어야 냉전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서방 진영은 미국 이하로 일렬종대하고 있었으니, 상대진영의 내분을 위해 2인자를 살려두고 싶었다. 

 

중국은 또다시 충격에 빠졌다. 미국의 입장에서 중국은 장기말에 불과하고, 그 때문에 살아났다는 비정한 진실. 중국은 양탄일성을 보유하지 못한다면 막대한 인구만 끌어안은 허깨비임을 자각했다. 

 

 

3.

 

양탄일성의 결과 중국은 전쟁억제력과 함께 미국의 핑퐁외교를 이끌어냈다. 현대의 세계제국 미국과 대등한 외교 관계를 튼 것이다. 불과 십여 년 전 쓸모를 인정받아 구원받은 중국은 이제 실력으로 미국과 마주 보고 소련을 소외시켰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중국에 유화적일 수밖에 없었다. 공산 블록 인구의 반 이상이 중국 인민이었으니까. 그러나 양탄일성 없이 탁구시합이 벌어질 일은 없었다.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하며 빼먹을 것은 전부 빼먹은 북한은 양탄일성 앞에서 갑자기 친절한 신사가 된 미국의 태도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때부터 북한은 양탄일성을 꿈꾸었다. 미국의 가혹한 경제제재도, 고난의 행군도 양탄일성만 성취하면 해결될 과정이었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왔다. 핵은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보루다. 핵에 의해 미국은 손을 내밀어 줄 것이고 남한도 눈치를 봐 줄 것이며, 대화와 시작되고 장벽이 열리고 물자가 유입되고 경제가 돌아갈 것이다. 핵을 확보한다고 그들의 믿음대로 될까?

 

슈뢰딩거의 양탄일성이다. 핵이 북한을 살릴지 아닐지는 아무도 모른다. 적어도 북한 입장에서는, 상자를 열어보기 전에는 희망이 있다고 믿을 수 있다. 핵을 포기한다면? 희망의 가능성조차 없다고 북한은 믿는다. 

 

 

4.

 

문제는 중국과 북한의 양탄일성이 처한 다른 상황이다. 

 

첫째, 미국의 군사기술과 국력은 지난 50여 년 간 지속적으로 팽창했다. 중국이 양탄일성을 가졌을 때와 지금의 기술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다. 미국이 그때만큼 긴장할까?

 

둘째, 중국제 양탄일성은 소련의 존재가 있었기에 효과가 컸다. 미국은 핑퐁외교로 중국이 대화가 가능한 예측가능한 국가라는 것도 확인해야 했지만, 소련도 견제할 수 있었다. 북한의 경우 로컬라이징한 번외편이 너무 늦게 나왔다. 미국은 이미 체제경쟁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둔 지 오래이며 소련은 해체되었다. 북한의 목소리를 들어줌으로써 견제할 최종 보스가 없다. 

 

미국에 있어 2018년의 북한은 1970년대의 중국만 한 가치가 없다. 여기에는 냉전의 근본 구조도 고려해야 한다. 냉전은 2차대전의 결과물이며, 2차대전은 정치적 진보세력이 파시즘에 대항해 승리를 거둔 전쟁이다. 현실이야 어떻든 중국의 정식 국명에는 '민주주의'가 포함되어 있다(북한도 그렇지만.). 

 

냉전은 승리한 진영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나뉘어 세계를 양분한 경쟁이다. 핑퐁외교는 크게 보면 진보 승전국 사이의 대화다. 이에 비해 3대 세습 중인 북한은 미국에 뭐란 말인가?

 

 

5.

 

핵에 올인해온 북한은 이제는 지금까지의 믿음을 버릴 수 없다. 여기에 체제와 백두혈통의 안위 그리고 국운이 모두 걸려 있다. 어떻게 신앙을 버리겠는가? 

 

중국이 북한의 패악질을 모두 인내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2000년대 이후만 보자면 미국의 대중국 포위망 때문이다. 숨 막히는 대중국 포위망이 완성되어가면서 이제 중국에 남은 유일한 숨구멍은 북한이 되고 말았다. 비좁긴 하지만 서해와 동해를 끼고, 38선에 막힌 반도의 중간까지만이라도 태평양과 일본을 찌르고 있다. 

 

저자세였던 북한은 이제 중국의 심기도 고의적으로 거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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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백 년의 적이지만 중국은 천 년의 적이다."

 

김정은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야말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는 금언(?)이 생각난다. 이 발언에는 북한의 고구려사 집착과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감정도 실려 있지만, 무엇보다 왜 저런 감정을 드러내도 된다고 판단한 걸까?

 

답은 당연히 완성 단계에 진입한 양탄일성이다. 북한은 핵을 통해 더 이상 구걸이 아니라 평화의 통행세를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제 와 신앙을 버리기에 그들은 너무 오래 믿었다. 

 

 

6.

 

중국은 경제성장은 양탄일성과 어떤 관련을 맺는가? 너무나 복잡한 일이라 추측하기도 힘들다. 적어도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느슨하다고 보는 편이 상식일 것이다. 허나 북한은 제2의 양탄일성으로 제2의 중국을 꿈꾼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 겸 세계의 시장이 되어 국제경제에 절대적인 위상을 차지했다. 중국은 돈과 기술을 투자받고 물건을 찍어내 팔아치우며 덩치를 불리고 이제는 고급 물건도 만들어낸다. 막대한 구매력까지 갖추었다. 이는 중국과 세계 자본주의 진영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가능했다. 

 

북한에는 남한이 있다. 중국에 대한 자본주의 선진국의 역할을 남한이 해 줄 거라는 그들만의 기대가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 있겠지만 북의 눈으로 보자. 북한의 1년 예산은 전라남도 구례군의 그것과 같은 수준이다. 북의 입장에서 남한은 무궁무진한 자본의 바다다. 

 

일본은 더 큰 자본의 바다다. 일본은 북한에는 아직 식민 통치 배상을 하지 않았다. 이왕 미뤄진 보험, 핵보유국이 돼서 결산한다면 북한의 기대 속에서야 당연히 환금액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다.

 

북한 내적인 이유는 보다 치명적이다. 북의 수뇌는 지금껏 주민들이 겪은 모든 고통을 핵 보유를 향한 불가피한 여정으로 포장해왔다. 핵으로 무마하고 핵으로 단결을 촉구했다. 핵은 김씨 왕조와 체제의 존립 근거다. 이제 와 핵 포기를 선언하면 집권세력의 정당성이 무너진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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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BC news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해도 북한이 핵을 포기할 리는 없다. 문재인은 한반도 핵확산을 막을 방도가 없다. 따라서 미국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기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한국이 외교적 입지를 잃지 않고 문 대통령이 손해를 피할 바늘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에 그들의 기대대로 부응해줄 일도 요원하다. 한국과 미국이 핵 포기의 대가로 무엇을 제시하든 북한은 핵 보유의 대가가 그것보다 풍성하다고 믿을 것이다. 한국은 외통수에 걸렸다. 

 

이런 상황에서 올림픽에서 남북 단일 컨셉을 세계에 보여주는 일은 아마도 문재인 정권이 생각해낼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이자 미봉책이었을 것이다. 구현하는 과정에 실수가 많았지만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동기 자체는 이해한다. 

 

올림픽 이후가 문제다. 북한은 내달릴 것이며 미국은 강경할 것이다. 우리는 북을 달래려고 하다가 미국에 더 바짝 엎드리기를 반복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중국이 우리에게 보복을 가할 공산이 크다. 이런 차원에서 문 정권이 지금 정도의 긴장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자 양호한 결과라 인정받아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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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허나 다시 말하자면 이제부터 정말 큰일이다. 북에 대화의 손길을 내밀 때마다 매정하게 떨어지려는 젊은 층의 표심은 그것대로 정권 차원의 문제다. 북한의 행동은 이미 그들이 문재인 대통령을 쉽게 괴롭힐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라도 대통령도 '내우외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