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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개방성은 유명하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개방적인 민족은 없다. 개방도 폐쇄도 관념이 되기 전까지는 실용적 이유에서 시작된다. 네덜란드는 국제 무역 허브가 되기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개방을 택했다. 지금은 민족적 습관이자 어느 정도는 관념이 되었지만 이때는 아니었다.

 

네덜란드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도망 온 유대인들에게 꿈의 땅이었다. 그러나 이때의 네덜란드에 있어 개방은 민족성이 아니었다. 그들은 유대인을 사랑하지도, 종교적 자유를 지금처럼 당연시하지도 않았다. 유대인의 상업 네트워크가 필요했을 뿐이다. 이런 미묘한 기류를 유대인들이 몰랐을까?

 

암스테르담의 유대인들은 네덜란드에서만큼은 쫓겨나지 않기 위해 암묵적인 태도를 합의했다.

 

'까불지 않는다'

 

그들은 지나고그(유대인 자치 거주지. 네덜란드 어로 요덴뷔르트) 바깥에서는 네덜란드 사회에 토를 달지 않고 유순하게 굴었다. 그러나 자치권을 허락받은 내부에서는 급격히 우경화되었다. 그들은 콤베르소, 콩베르수들이다.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유대교를 버린 '전향자'들이었지만 유대인의 기준에서는 '변절자'였다.

 

한 번 변절한 사람들은 과거를 부정하기 위해서라도 극렬해진다. 과거 우리 역사의 친일파들이 친일을 반공으로 덮기 위해 어떤 짓을 했는가. 그들은 '애국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이승만과 성조기 앞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릴 정도로 스스로를 개조했다. 나치에 순응했던 프랑스인들은 독립 후 적폐 청산 목록에서 빠지자마자 나치 잔당은 모두 때려죽여야 한다며 악을 썼다.

 

17세기 암스테르담의 유대인들이 그랬다. 그들은 역사상 어떤 유대인들보다도 더 강력하게 유대교 외의 가치를 배척했다. 지나고그 바깥에서 유순했던 만큼이나 내부에서는 극우주의가 당연시 되었다.

 

1632년 출생해 암스테르담 지나고그의 일원이 된 스피노자는 이런 분위기를 순순히 체화하기에는 지나치게 좋은 두뇌를 타고났다. 재능이 곧 저주가 되는 가장 좋은 예가 스피노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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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노숙생활을 하다가 번듯한 집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이것만은 반드시 구비하고 싶었을 가구나 가전이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냉장고 정도는 반드시 집안에 두고 싶지 않을까? 암스테르담 지나고그도 그렇게 원하는 존재가 있었다. 자신들을 일으켜 세워줄 무리의 지도자, 지나고그를 제2의 예루살렘으로 부흥시켜 줄 율법학자 겸 장로였다. 즉 랍비였다.

 

그리고 랍비가 되어줄 뛰어난 아이를 물색했다. 누구겠는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스피노자는 다섯 살 때 이미 랍비로 낙점되었다. 데카르트가 <방법 서설>을 출간해 편지풍파를 일으킨 해다. 그러나 방법적 회의의 태풍은 암스테르담 지나고그엔 불어오지 않았다.

 

"이 아이다."

 

그렇다. 스피노자는 머리가 너무 좋았다. 미래를 미리 이야기하자면 히브리어는 당대 최고의 교본을 썼을 정도다. 모국어는 네덜란드어이고 글은 라틴어로 썼다. 스페인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를 조금 할 줄 알았다고 한다. 헌데 이 '조금'은 회화 완벽 가능 수준으로, 스피노자 본인의 기준이다. 이 외에 그리스어로도 의사소통과 책읽기가 가능했지만 그리스어는 대충 하다가 말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가 없어서.'

 

아버지 미겔은 성공한 무역업자였지만 스피노자는 이미 한 가정이 아니라 지나고그의 미래였다. 돈 있는 유대인 상인들이 십시일반으로 스피노자에게 최고의 교육을 제공했다. 수학, 광학, 물리학, 종교학, 어학... 어학의 경우는 네이티브 선생님을 수입해 붙여주었다.

 

다시 말해, 스피노자는 다섯 살 때부터 한 명의 개인이 아니라 공동의 자산 취급을 받았다.

 

스피노자는 호기심을 참지 못했고, 참지 않으며 자라났다. 네덜란드라는 특유의 환경 속에서 가톨릭 교도는 물론 다양한 교파의 개신교도들과 교류했다. 심지어 소수파인 퀘이커 교도와도 알고 지냈다. 물론 스피노자 자신은 최고의 랍비를 목표로 한 철저한 유대교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유대교 교육의 '하늘천 따지'는 구약성서(히브리어로 '타나그') 달달 외우기였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구약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첫째, 인격신. 신이 있을 수는 있겠다. 그런데 신이 왜 하나의 인간에 해당하는, 그것도 화 잘내는 남성으로서의 인격이어야 하는지? 그는 모든 학문 분야의 신동이었다. 수학적으로 접근해보자. 신은 '인격'이 아니라 수학적 질서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아무 이유 없이 인간과 인간의 삶이 있을 수 없다 치자. 세상 모든 게 꼭 지금 이 상태로 존재해야 한다면 그 이유가 있어야 할 텐데 그러면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있어야 하고 <이유의 이유의 이유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의 원인이 있어야 하고 그 모든 원인의 최종적인 근원이 신이라 치자.

 

그런데 신이 왜 인간의 형상과 성격을 지닌 캐릭터여야 한단 말인가? 물론 구약 말씀에 야훼가 자신의 모습으로 아담을 빚었단다. 증거 있는가? 구약이 증거다. 그런데 내가 일기장에 '나는 오늘도 미남이었다'라고 적는다고 내가 미남이 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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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신이 존재하는가?

 

어떻게 신존재 증명을 할 것인가?

 

위의 두 질문은 접근법이 완전히 다르다. 스피노자가 보기에 어른들의 가르침은 신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왜 존재하실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는 식이다.

 

결론에 과정을 맞추는 것이다.

 

소년 스피노자의 눈에는 기이했다. 그건 신존재증명이 아니다. 인간과 우주가 어떤 존재이고 왜 그런지 사유를 전개하다가, 그 사유의 끝에서 신이 있겠다는 결론이 나오면 있는 것이요,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 없는 거 아닌가!

 

추론이 먼저고 결론이 나중이어야 하지 않은가? 이런 태도를 소년 스피노자는 유일신이 지배하는 유럽 대륙에서, 그것도 가장 보수적인 유대인 공동체 내에서 가졌던 것이다.

 

청소년에게는 자신만의 세계가 있고, 이것이 취미의 형태로 나타난다. 스피노자는 청소년기에 빛에 심취했다. 순수하고 결백한 질서같으면서도 신비한, 물질인듯 아닌듯 자연을 비추는 그것. 그것을 모으고 퍼트리고 가두며 수학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물건이 있었다.

 

렌즈였다.

 

렌즈는 갈릴레이 이후로 천체관찰의 도구로 주목받은 망원경의 핵심 부품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반도체 정도에 해당하는 첨단 산업 제품이다.

 

원래 유럽과 아랍의 유대인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무일푼으로 외지에 추방당해도 먹고 살 수 있도록 확고한 직업기술 하나를 연마하면서 성장하는 게 불문율이었다. 보통 서민층 유대인은 기능공이 되었고 상류층은 거칠게 나누면 둘 중 하나였다. 교육비가 많이 드는 것들이다. '문돌이'는 변호사를 시켰고 '이과인'은 의사를 시켰다.

 

스피노자는 자신의 의지로 유리세공을 배웠다. 렌즈를 깎기 위해서였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아버지 미겔도 스피노자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렌즈라면 최고급 과학제품이었으니 다른 걸 시킬 명분도 못 됐다.

 

스피노자에게 렌즈란 무엇이었을까?

 

나는 요새로 치면 일종의 피규어라고 확신한다. 렌즈는 잘 깎으면 정확하게 빛의 움직임을 반영하고, 어떻게 깎느냐에 따라 빛의 범위와 성격을 변화시킨다. 스피노자는 렌즈 오타쿠다. 게다가 렌즈는 수학적인데, 렌즈의 각도와 빛의 밀도는 정확히 비례한다. 스피노자에게 빛은 일종의 장난감이었다.

 

렌즈 깎는 도구 세트는 현대로 치면 90년대 부잣집 애들만 갖고 있었던 386컴퓨터랄까? 아니 그 이상이다. 정밀기계란 것은 지금도 상당한 재산이다. 유리제품은 대롱을 통해 입으로 부는 방식으로 이탈리아 유리장인들이 만드는데, 렌즈의 초기 형태도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것을 아버지 미겔이 아들을 위해 따로 직수입품 목록에 추가시켜주었고 아들 바뤼흐는 하루 종일 깎으며 놀았다.

 

... 그러나 스피노자 인생 최초의 부침이 발생했다.

 

스피노자가 17세였을 때. 형이 폐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이 집안이 폐에 있어서 운이 안 좋다. 훗날 스피노자 역시 규폐증에 의한 결핵으로 사망한다(조성식 (Seongsik Cho)님이 알려주신 사인이다. 결핵은 주로 호흡기로 전파되는 감염성 질환이지 유전적 질환이 아니라고 알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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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는 좋아하는 공부, 철학, 외국어, 렌즈 세공을 하다가 갑자기 장남이 되었다. 갑자기 얘기가 달라진다. 아버지 미겔은 사업을 이어 받게 하기 위해 스피노자를 강제로 붙잡아 경영 수업을 시켰다. 후계자 없는 사업은 미래가 없다. 지속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신용을 잃는다. 그리고 물려주지도 못할 사업에 왜 인생을 매몰하는가. 사업가에게 사업은 인생이다.

 

이러면 유대교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운해진다.

 

스피노자네 집 바뤼흐는 애초에 랍비가 되기로 한 애가 아니었냔 말이다. 사업가 되는 거 보자고 이 청년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봐 온 게 아니었다. 암스테르담 지나고그의 원로들은 그들대로 스피노자를 랍비로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갈등은 필연이었다. 지나고그에서 유대인이 '마이 웨이'를 외치긴 힘들다. 그렇다고 남의 집 자식을 업어 올 순 없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공동체는 공동체대로 스피노자를 소유하려고 했다. 그는 경영수업과 랍비수업이라는 양극단으로 일상이 쪼개져 버렸다.

 

여기에도 스피노자 개인은 없었다. 그는 아마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렌즈나 원없이 깎았으면...'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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