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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출동 SOS 24>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종방된 지 7년이 돼 가니 기억에 가물가물하신 분들이 많을 거라 짤막한 설명을 드리면 <긴급출동 SOS 24>는 가정폭력, 아동학대, 노인학대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고발한다는 의도로 대략 5년 동안 사회의 바닥을 쓸었던 프로그램입니다.

 

제작하던 당시 이런 항의를 종종 들었습니다. “왜 가난한 동네만 나와요?” 열혈 시청자가들이 충성도 있게 방송을 지켜보다 보니 ‘부자 동네’는 도무지 안 나오더라는 거지요. 햇수로 5년을 하면서 수백 개의 아이템을 했지만 놀랍게도 강남 3구 아이템은 거의 없었으니 시청자의 항의도 충분히 이해할 만 했습니다.

 

PD들끼리 얘기하다 보면 각 도시의 ‘암울한 동네’ 이름이 반복될 때가 많았죠. 부산 00동? 아이고 거기 칼 들고 설치던 남편 있던 데 아니냐. 대전 00동? 아이고 그 동네 분위기 알지. 수원 00동? 거기 알아. 그 동네 무슨 70년대 세트장 같어. 뭐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뒤이어 이렇게 시청자는 이렇게 항의했습니다. “강남에도 폭력 남편들 많을 텐데 왜 거긴 취재 안 하냐구요. 거기도 아동학대 있을 거 아니냐구요.”

 

지극히 옳은 말씀이었습니다마는 우리로서도 이유가 있었습니다. 언젠가 만난 가정폭력 피해 아주머니는 거의 뼈만 남았다 할 만큼 말라 있었는데 목에 심한 상처가 아문 흔적이 보입니다. 뭐냐고 물어 보니 남편이 술 먹고 툭하면 두들겨 패는데 좀 심하게 먹은 날은 실실 웃으면서 유리창을 뗀답니다. 그리고 가운데를 깨고는 아주머니 목에 끼운답니다. 역시 실실 웃으면서 이런답니다.

 

“돌릴까 말까 크흐흐흐”

 

상상을 잠깐 하다가 그만 소름이 온몸을 덮고 말았습니다. 저 깡마른 아주머니가 오들오들 떨면서 깨진 유리창 목에 끼우고 선 모습을 그리다보니 무슨 아이언맨이라도 돼서 그 남편을 들고 북극으로 날아가설랑 싹 발가벗겨 빙산 속에 파묻어 버리고 싶더군요. 어떻게 그렇게 사느냐 하니 대답이 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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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도 해 봤어요. 그런데 남편 잡혀가면 당장 누가 애들 먹여 살려요? 벌금 나오면 그거 누가 내요? 친정요? 저 고아예요. 이혼요? 변호사비가 600만 원이래요. 육십도 없어요. 쉼터요? 거기서 평생 살 수 있어요? 또 내가 없으면 애들한테 고스란히 화풀이 갈 텐데 어떡해요?”

 

즉 이런 분들, 손을 쓰려니 방법이 없고 뭔가에 기댈 대상도 없고, 도움을 청할 구멍도 없는 사람들이 자기 사생활이 드러날 부담을 감수하고, 작은 전기라도 마련해 볼까 하고 방송에 SOS를 치는 거였거든요. 그러니 강남 3구 사람들이 아이템에 등장할 일이 적을 수밖에요.

 

이른바 잘 사는 동네에도 당연히 가정폭력이 사회적 평균 이상으로 존재할 겁니다. 아동학대는 말할 것도 없구요. 그러나 그게 새어나오기에는 성벽이 너무 높고 자체 해결(해결이라는 단어가 좀 어색한데)할 역량이 충분했습니다. ‘동네 창피하고 집안 망신인’ 방송을 구태여 이용할 이유가 없었던 거지요.

 

이렇게 설명을 드리는데 어떤 분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오해할 것 같아요. 방송 보면 알콜중독에 무능하고 직장도 없고 지지리 못 살고 정신이 살짝 이상한 사람들만 마누라 두들겨 패는 걸로 생각할 것 같아.”

 

오늘 근 10년 전의 시청자와의 통화가 기억회로에서 빛난 이유는 “블랙리스트란 게 결국 이런 인간들 모듬이었구만.” 하며 이른바 ‘진보’ 판을 비웃는 보수의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괴물이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했던 존재들이 연달아 들어메쳐지는 가운데 진보 쪽이라고 평가됐던 이들이 그 알몸을 큰 대 자로 드러냈으니 그렇게 얘기할만도 하죠. 하지만 저는 좀 삐딱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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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보수랄지 수구랄지 이 나라의 ‘지도층’이랄지 ‘지배층’이랄지, 하여간 헤게모니랄지 권력이랄지 재력이랄지 기타 등등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미투'로 나오지 않는 게 그들의 도덕성이 높기 때문일까요?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단지 그 폭로를 차단할 만큼 그들의 성벽이 높고, 또 문제가 생기기 전에 문제를 해결(아까와 마찬가지로 어색한 단어입니다만)해버리기 때문이겠죠. 영화 <베테랑>에서 유아인의 대사처럼요.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되는데 문제를 삼으니까 문제가 되는 거예요”

 

즉 문제를 삼지 않게 만드는 방법을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을 거라는 얘깁니다. <긴급출동...>에서 강남 3구 아이템이 적었던 이유처럼 말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는 ‘진보’ 영역에서 터져 나오는 ‘미투’가 소중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미투’는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는 문제이며, 여당과 야당의 문제가 아니며 빈자와 부자의 문제를 벗어나 한 나라와 사회 전체가 고민해야 할 사안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진보적 영역에서 터져나오는 ‘미투’에 대해서 진보란 것들이 왜 이래! 탄식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미투에 진보 내지 이 정권을 공격하는 공작이 개입될 수도 있다는 경고는 오히려 있으면 안되는 장애물로 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미투는 편 갈라 생각할 문제가 아니고 어느 진영을 이롭게 하느냐에 따라 판단을 가늠할 사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지하에서 이글거리다가 솟아오른 인간성 회복의 분화라 할 ‘미투’ 사태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깨우치고 해결해 나가면서 오히려 ‘진보’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깊고도 넓은 이 나라의 폭력과 은폐의 갑옷자락 깊숙한 곳으로부터 ‘미투’를 끌어내고 우리 사회가 속한 ‘차원’을 끌어올리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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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출동 SOS 24> 할 때 제보자들이나 피해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표현은 “세상에 이럴 수는 없어.”였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을 목격하고 그를 응시한 사람들의 절규고 폭로였습니다. “나도 맞았어”였고 “여기도 그런 사람 있어요”였죠.

 

그렇게 세상에 알리고 드러낸다고 세상이 뭐 나아진 게 있느냐 누군가 냉소할 수도 있습니다. 저도 가끔 그러니까요. 그러나 이거 하나는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90년대만 해도 한국에는 ‘아동학대’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제가 <긴급출동 SOS 24>를 시작할 즈음만 해도 그리 광범위한 ‘보캐뷸러리’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 프로그램을 끝마칠 즈음에는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이거는 아동학대라카이!”, “이거는 아동학대랑게!” 하면서 흥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세상은 더디지만 바뀝니다. ‘미투’도 그렇게 되기를 믿고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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