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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에 대한 부조리를 처음으로 느꼈던 것은, 2001년, 대학교 3학년 때다. 

 

새로 생긴 지 얼마 안 된 뮤지컬 동아리가 있다고 해서 호기심에 참여했었다.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1년 선배였지만 나보다 10살 이상 많았던 리더가 ‘카리스마’ 있게 나름 동아리를 잘 운영했었다. 연륜과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진취적인 리더 덕에 동아리는 급속도로 발전(?)해 나갔다. 짧은 시간 동안 규모도 커져서 학교에서 가장 많은 회원 수를 갖게 되기도 했다. 한마디로 잘 나가는 동아리였던 것. 

 

어느 날, 나와 동갑인  멤버 여학생이 리더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밤에 영화를 보자고 불러내어 영화를 보면서 몸의 특정 부위를 계속 만지고,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조용한 곳에 데려가 강제로 입을 맞추었다는 것이다.

 

한국형 ‘미투’(#Metoo)가 시작된 이후에 성폭력 사례들이 터져 나오고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성폭력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지금 같진 않았다. 이제서야 폭로가 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예전에는 밝힐 수 없는 환경이었다는 뜻 아니겠는가. 내 기억에도 당시는 피해자가 지금보다 더 움츠려야만 했던 때였다. 피해 사실을 알린 같은 여학생도 그랬다.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아 했다. 어차피 더 수치스러워지는 건 본인이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자, 리더의 언행은 지속적으로 수위를 넘나들었다. ‘여동생 같다’ 혹은 ‘조카 같다’라는 말로 어린 여학생들을 껴안고 볼에 입을 맞추었고, 공개적인 자리에서까지 서슴없이 행동하는 것을 보고,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와 교수들을 만나 상담을 하고 조언도 구했지만, 이렇다 할 해결방안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정면 승부를 택했다. 동아리의 각 분과장과 리더를 모아 여러 사실을 공개했다. 지금이라면 다른 방식으로 해결을 해 보려고 했을 거다. 그때 나는 20대 초반이었다. 옳은 일이면 누구나 나를 지지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현실은 달랐다. 연륜 있던 그 선배는 선후배와 교수들을 찾아다니며 방어기제를 마련했다. 본인은 그런 적 없고, 불만을 가진 누군가 자신을 음해하고 있다고, 허위사실을 퍼뜨리고 있다고 미리 손을 썼다. 나이도 많고, 선배인 데다가 얽혀 있는 인간관계도 많았던 터라, 나보다 리더의 말에 무게를 두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걸 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한창 잘 나가던 동아리를 쑥대밭으로 만든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많은 이의 미움과 질타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물론, 친구도 잃고, 선후배 관계도 망가졌다. 다들 왜 그리도 “좋은 게 좋은거지”하며 살아가는지 그때 알았다. 그리고 결심했었다. 다시는, 내 일이 아닌 타인의 일에, 알량한 ‘정의’를 위해 나서지 않겠다고.

 

 

영국 유학: 가치관을 바꿔버린 영국 여성

 

대학을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칠 때까지, 내 여성관은 매우 보수적이었다. 부엌에는 발도 붙이지 못하게 했던 할머니의 영향도 있었고, 집안에 유일한 남자라는 이유로 온갖 혜택을 다 누리며 살았던 영향도 있었으리라. 나는 일반적인 한국 남자였다. 대학 때 겪었던 일도 성폭력에 대한 부조리를 밝히겠다는 의지보단,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정의’를 위해 했던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09년, 대학 때부터 준비하던 영국 유학을 떠날 수 있었다. 막상 영국에 와 보니, 밖에서 알던 영국은 실제 영국과는 거리가 있었다. 특히, 뚜렷하게 구분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성’(Gender)에 대한 관념이었다. 흔히 영국은 ‘젠틀맨’(Gentleman)의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 역시 철저한 남성의 시각에서 본 영국이었다. 

 

귀족 문화가 시민사회로 흡수되면서 남성 귀족,  ‘젠틀맨’이라는 칭호가 일반 남성들에게까지 불리게 되었다. 그래서 마치 영국에 있는 모든 남성이 다 ‘젠틀맨’인 것처럼 포장한 것인데, 이는 현실과는 매우 동떨어진 말이다. 10년 가까이 영국에 체류하며 느끼는 대로라면, 이제 영국은 ‘젠틀맨’이 아니라 ‘레이디’(Lady)의 나라다. 

 

영국인 가정에 식사 초대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영국인들은 누군가를 집에 초대를 하면 보통 식사 전에 먼저 차를 마신다. 그날도 어김없이 식전 쿠키와 함께 차를 마시는데, 이런저런 대화를 하던 중, 집주인 부부 중 여자분이 물으셨다. 

 

“주차장이 비좁아 주차하기 힘들지 않았어요?” 

 

“네 괜찮았어요. 주차하는데 별 무리 없었습니다. 별로 비좁아 보이지 않았고요.

보기에 좁아 보일지 모르지만, 전 남자라 괜찮습니다.”

 

순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아주머니의 표정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사실, 처음으로 초대받은 집이라 긴장을 했던 영향도 있었겠다.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탈출해 보고자 몇 마디 말을 이어 갔는데, … ‘전 남자라 괜찮습니다’라는 말이 화근이었다.

 

“남자라 괜찮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아아 다른 건 아니고요. 모 과학 저널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성이 남성보다 공간 지각 능력이 낮아 주차를 하는 데 애를 먹는다고 하더라고요. 상대적으로 남자들이 여자보단 주차를 잘 한다고 해서요. 제가 보기엔 주차장이 좁아 보이지는 않는 것 같았는데, 좁다고 하셔서 …”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주머니가 눈으로 레이저를 쏘며  말했다. 

 

“혹여 내 딸 앞에서 절대 그런 얘기하지 마세요.

만약 이 얘기를 우리 딸 아이가 들었으면 아마 당신을 죽였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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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지각 능력에 대한 남녀 차이는 없다.

출처 - 허핑턴포스트코리아(링크)

 

 

고요했다.

 

대화를 듣던 아주머니의 남편 되는 분이 급기야 밥이나 먹자고 말을 돌렸다. 아직도 그 아주머니의 눈빛과 말투를 잊을 수 없다. ‘실례는 내가 아니라 네가 했다’는 표정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돌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상인 대화 내용이 이렇게 무례함이 될 줄은, 당시만 해도 몰랐다. 

 

난 그저, 모 과학 저널에 실린 기사를 토대로 얘기한 건데, 내가 보기엔 하나도 안 비좁아 보이는데… 등등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뒤엉켜 있었던 그때가,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다.  

 

 

영국: ‘서프러제트’(Suffraette)의 나라

 

영국은 여성들이 직접 참정권 운동을 했던 대표적인 나라 중 하나다. 그것도 아주 처절한 저항정신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을 무렵, 영국 여성들은 여성 참정권 운동을 했었다. 표독스럽고 악랄했던, 교만하고 이기적이던 19세기 영국의 남성들 속에서, 영국 여성들은 자신과 가족, 심지어 자녀들의 희생을 감내하면서까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고자 노력했다. 

 

이와 관련, 2016년 6월에 개봉한 영화 ‘서프러제트’(Suffraette)는 20세기 초, 영국의 상황을 잘 묘사했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영국의 여성들이 어떻게 투표권을 얻게 되었는지, 또 자신들의 기본권리를 찾기 위해 어떤 싸움을 해 왔는지를 잘 묘사했던 영화, 서프러제트. 

 

 

 

 

 

 

이 영화의 여주인공인 ‘모드 와츠’(캐리 멀리건 역)는 평범한 서민층 맞벌이 가정주부다. 고등교육도 받지 못하고, 어려서부터 노동을 착취당해온, 수동적이고 힘없는 여자. 20세기 초, 영국 여성들은 그렇게 반복적이고 무료한 삶을 기계적으로 살아내던, 노예 정도에 불과했다. 영국의 대표적인 여성운동가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가 언급했던 것처럼, 당시 영국의 여성들은 남성들의 ‘성’(Sex)적 대상이거나 가정부, 혹은 어머니 정도만 여겨졌다. 영화는 그 단면을 잘 그려내고 있다. 

 

어느 날, 이 영화의 주인공 와츠는 함께 일하던 동료의 딸이 자신이 일하는 공장 관리자에게 성추행을 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어리기도 어린, 곱디고운 여자아이가 힘없이 당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 와츠는 여성이라는 이름 앞에 무너져버린 정의와 인권 유린의 세태에 분노한다. 그렇게 시작된 평범한 여성들의 참정권 운동은 영국 전역으로 이어지게 된다. 

 

따지고 보면, 인간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찾는데, 고난과 고통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불공평했다. 그러나 영국의 여성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현실 앞에 주어진 불공평에 무너지지 않았던 것. 그리고 끝끝내 영국 여성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참정권을 얻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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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남성들의 카르텔을 무너뜨리고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싸워 부조리를 이겨낸 영국 여성들에게 ‘서프러제트’(Suffragette)는 긍지와 자부심이고 정체성이다. 영국 여성들의 콧대가 높은 이유도 여기 있다. 오죽하면, 유럽에는 세 가지 성이 있는데 남성, 여성, 그리고 ‘영국 여성’이 있다는 말이 나왔을까.

 

식사 초대를 받아 방문했던 영국인 집에서 내가 들었던 말, “혹여 내 딸 앞에서 절대 그런 얘기하지 마세요. 만약 이 얘기를 우리 딸 아이가 들었으면 아마 당신을 죽였을지도 몰라요.”는 단순히 “당신은 무례합니다”라는 뜻이 아니었다. 조금 더 직접적으로, 이 말은 “당신은 개념이 없군요”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