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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움문화가 근래 화제였다. 나는 이 화제가 화제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다고 제도를 바꿀 힘은 없다. 병원 생활 20년 차의 주관적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겪은 상황을 말할 뿐이다. 

 

겁도 난다. 생업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겪는, 누군가에겐 별 거 아닌 글이지만 혹시 이 글을 누군가 알아보고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제도를 바꾸는 분들이 실제 병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무엇때문에 이런 상황이 되는지 인지라도 했으면 하는 마음에, 딴지일보에 기고한다. 

 

인간에겐 인격이 있지만 신입 간호사는 예외란 건, 사실이니까.

 

 

아무것도 실습하지 않는 실습

 

일반적 교육과 조금 다르길 기대하는 시선도 있겠지만, 의학계에서도 교육의 목적은 취업이다.

 

학교에선 최대한 많은 학생이 국가고시에 합격하고 면허증을 취득해 취업하기 바란다. 취업률에 따라 학교 존폐여부가 결정되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교육은 이 목표를 따라간다. 부서에 따라 특화된 수업을 가르치기 보다는 국가고시에 나오는 과목이다 보니, 병원에서 필요하는 전문적 지식이기 보다는 공통적이고 일반적인 지식을 가르치기에도 빠듯해진다.

 

 

3년제든 4년제든 매년 많은 의료인을 배출하고 있지만, 병원은 늘 인력난에 시달린다. 들어오는 사람도 많지만 나가는 사람도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대학을 졸업하고 면허를 취득했다곤 하지만, 병원에서 하는 일은 학교에서 행해지는 수업만으로 커버할 수 없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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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밖의 실무를 배우기 위해 학교 졸업반 무렵 병원으로 실습 간다. 학교에선 졸업반 학생들을 실습 보내길 원하고, 병원에선 학교로부터 임상실습비를 받기에 윈윈인 셈이다. 학기마다 혹은 방학마다 몇 십명의 학생들이 실습이라는 이름으로 대형병원에 투입된다.

 

문제는 실습중인 학생들이 아직 면허가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똑같은 비용을 내고 간호사가 아닌 학생에게서 처치를 받았다면 좋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상황에다 학생이 실수라도 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은 미비한 보조 역할, 그도 아니면 직원을 따라다니는 데 시간을 보낸다. 일반 회사에서 복사하는 인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직원 입장에서도 일주일 정도 머물다 가는 학생에게 매번 자세하게 병원 업무를 가르쳐 주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더욱이 환자 중에는 실습나온 학생이 옆에 있는 것 자체를 꺼리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환자들에게 학생들의 존재에 대해 양해를 구하는 것부터가 스트레스이기에 감정적으로 예민해 질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의사는 왕이다

 

1차 의료기관(의원급)에서부터 3차 의료기관(종합병원)에 모두 근무 해봤지만 어느 곳에 일하든 한가했던 적은 없다. 실제 병원에서 하는 노동 시간은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것과 다르다. 근무를 하기 전에 준비해야할 것이 많아 약속된 출근시간보다 일찍 올 수밖에 없고, 환자가 있거나 일이 끝나지 않아 퇴근을 제때 하기 어렵다. 회의는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근무시간 이전 혹은 이후에 진행하고, 필요하다면 주말에도 나와야 한다. 물론 수당은 지급되지 않는다. 오히려 주말 출근도 당연히 하는 게 병원의 일원으로서 해야 할 행동쯤으로 여겨진다.

 

병원업무는 환자를 직접 대면하면서 하는 일과 차트를 쓰고, 계획안을 쓰는 사무적인 일이 있다. 연차가 많을수록 실제 하는 업무보다 관리업무가 많아지고 연차가 낮을수록 환자와 직접 대면하는 시간이 많다. 다시 말해 아래 연차일수록 환자와 대면하는 시간이 가장 많고, 잡일도 가장 많다. 그런 상황에 신입직원과 실습학생 교육까지 주어진다.

 

내 기준으로 보면 한 시간 이상 일찍 와서 업무 준비를 하고, 업무 후에도 남은 차트 쓰고, 기구 소독, 정리를 하다보면 14~16시간이상 병원에 있었던 것 같다. 심한 경우는 아예 속옷 싸 들고 병원에서 숙박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일하다 다치거나 아프면 병원 직원이 자기 몸 관리 못한다고 막말을 듣기 일쑤다. 그래도 아파서 근무가 어렵다면 병원 상황을 둘러봐야 한다. 병상 가동률이 높아 업무량이 많거나 각종 휴가로 인력 부족인 경우에 병가는 거의 불가능하다. 굳이 병가를 내야한다면 사유가 막연한 것이여서는 안된다. 결정권자에게 여러번 상황 설명을 해야 하고, 일차 승낙이 떨어져야 비로소  진료를 보고, 처방전을 제출한다. 진단명이 있는 것이어야 병가 휴가가 가능하고, 그나마도 자신의 휴가를 먼저 소비한 후에 가능해진다. 산재처리는 남의 나라 일이다.

 

근무중 하지의 마비증세를 느껴 과장급되는 사람에게 진료를 봐야 한다고 세 번이상 찾아갔으나 병원에 중요한 일이 있어 바쁘다며 만나주질 않았다. 5일 후 잠에서 깨어나 보니 갑작스런 하지마비 증세로 응급 입원을 했는데 직접 보고를 안했다는 이유로 병가 복귀하자마자 팀내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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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직원은 휴가 중 탈장이 되어 급히 입원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보고를 받은 과장은 윗선에 보고해야 하기에 ‘직접 확인해봐야겠다’고 대답했다. 직원은 식은 땀 범벅에 거의 누운 상태로 실려와 직접 보고를 한 후에 겨우 입원할 수 있었다.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법률상 의사의 지도하에 있다. 업무가 힘들어질지, 승진이 될지는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의사의 성향에 따라 결정된다.

 

좋은 팀 분위기 형성을 위해 의사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사가 원할 때 바로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일처리가 느리거나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통제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 팀 내 강력한 위계질서가 요구된다. 개개인의 성향이나 배려보다 팀 분위기가 우선이다. 만약 사고가 나면 해결하기보다는 더 커지지 않도록 단속하는 것이 우선이다. 여의치 않을 경우, 해당 직원에게 책임을 묻는다. 직원은 보호받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다른 의견이 있어도 말할 수 없고, 말을 해서도 안 된다. 의사와 동급이 아니면, 까라면 까야한다. 검진실에서 임신 중인 직원이 있어도 흡연에 대해 말 한마디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젠 전자차트를 쓰고 있지만 수기로 작성할 때, 의사가 손으로 날려 쓴 처방지시를 파악하는 데 한참이나 걸린 적도 있다. 의사는, 왕이다.

 

사람 사는 곳이 그렇듯 이런 왕님 중엔 다양한 사람이 있다. 내가 만난 이는, 회식만 가면 직원을 때리는 게 주사인 사람이다. 의사라는 직업만으로도 이미 왕이었는데 하필 부서의 장이었고, 하나 더 얹자면 대외적으로도 유명하기까지 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을 보려고 지원하는 직원도 있었고, 치료를 받기 위해 오는 환자들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병원에서도 상황을 시끄럽게 만들기보다 덮는 편을 택했다. 회식 때마다 직원들 때리기를 몇 년, 소문이 나자 진상조사나 처벌 없이 조용히 퇴사처리 되었다.

 

왕은 가는 길도 남달랐다.

 

 

끈끈한 병원과 학교 사이

 

병원에 근무하기 위해서는 그 일에 맞는 학과를 졸업해야 한다. 병원과 학교 사이에는 선후배가 많고, 전국 어디든 전화 한 통으로 얼마든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병원 출신에 따라 입사 합격률, 업무 배정, 직원을 대하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같은 일을 하는 직원 간에도 등급이 정해진다. 간호부서인 경우 간호사와 조무사가 있고, 간호사간에도 3년제, 4년제에 따라 다르며, 병원간에도 어느 학교 출신이 많느냐에 따라 신입직원의 대우가 달라진다.

 

현 병원을 기준으로 보면, 매년 해당 학과 학교에서 학교 로고가 들어간 물건을 박스로 보낸다. 좀 더 적극적인 교수들은 병원에서 실습 중인 학생을 보러 온다는 명목 하에 병원을 방문해 부서 전부, 혹은 부서장에게 은밀히 선물을 전달하기도 한다. 논문 기재나 번역서에 공동저자로 이름을 넣어 주거나 정직자리가 생길 경우 학교로 불러 주는 친절을 베풀기도 한다.

 

병원에서도 받은 게 있으니 가만히 있지 않는다. 대학병원에 근무할 때의 경험으로 보면 매 년 직원을 채용할 때 해당 학교 학생을 우선적으로, 혹은 많이 뽑는다. 국공립 병원은 인사권자와 외부 면접관이 결과를 점수화해서 채용하지만, 이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인사권을 가진 사람의 결정이 절대적이다. 예전에 집에 일이 생겨 면접에 가지 못한 졸업생이 있었다. 그 학생은 바로 학교로 전화했고, 다음날 그 학생만을 위한 면접이 있었다. 학생의 당락은 굳이 말하지 않겠다.

 

가끔 대학병원 중 모교 학생을 입사시키지 않는 곳도 있다. 예전에 실습갔던 학생이 병원에서 겪은 성희롱 건을 학교 홈페이지에 게재했는데, 병원 측에서 괘씸죄(?)로, 그 학생은 물론 학교 후배들조차 입사시키지 않았다. 성희롱 폭로가 아니더라도 병원에서 찍히면 그 사람과 그 후배들이 취업에 제한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운이 좋아 취업이 되더라도 곱지 않은 시선을 감수해야 한다.


 

 

신입간호사 ‘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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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직원은 수습기간을 거친다. 물론 수습기간은 월급을 적게 준다는 개념이지, 일까지 적게 시킨다는 뜻이 아니다. 신입이 뽑히기 전까지는 기존에 있는 직원들이 부족한 인력으로 평소보다 더 많은 일을 하며 버티고 있었을 것이기에 분위기가 좋을 리 없다.

 

신입직원 입장에서는 일반적인 내용만 배우고 갓 졸업했고, 입사하자마자 팀내 제 몫을 하기엔 무리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이 고려되질 않는 게 태움문화의 핵심이다. 팀내 적응, 숙련된 기술의 빠른 습득, 의료사고 예방이라는 미명 아래, 군대 못지않는 군기(?)를 잡는다. 또한 선임 직원들 역시 그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입사하자마자 강력한 위계질서를 확립하고자 한다.

 

감정적인 폭언정도는 점점 일상이 된다. 모두에게.   


 

자체정화, 불가능하다

 

병원엔 정기적인 감사는 많지만, 대부분이 환자의 의료기록 사항, 의료비 청구, 감염 및 안전사고 체계에 관한 것이라 내부 문제와 관련없다. 성희롱, 직장 내 인격모독 등 근무 중 고충사항을 알리는 곳이 있긴 하지만, 이곳에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직원이 없다. 건의사항이 접수되었을 때만 위원회가 움직이고, 병원 내에서 자체 운영되기에 해결보다는 사건을 조용히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경험을 근거로 하면, 술만 마시면 여직원의 몸을 만지는 의사가 있었다. 병원 개원 멤버에, 원장직도 여러 번 했다. 십년이 넘도록 그저 옆자리에 여자직원이 앉지 않도록 남자직원들이 전담마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권력이 있는 사람에게, 평직원이 그 자리에서 문제를 말하기 어렵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추행을 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제기한 사람에게 가해질 보복을 막을 시스템이, 병원에는 전무하다. 어디나 그렇겠지만 병원은 폐쇄적인 탓인지 더욱 그렇게 다가온다.   

 

병원 일에 보람이 있고 자긍심도 갖고 살아 왔다. 다만 한편으로는 관행적으로 행해지는 옳지 않은 일에 대해 항상 답답함을 느낀다. 지금이라도 자체 조사가 아닌, 외부에서의 면밀한 조사와 제도적 개편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진작 알려졌어야 했고, 그래서 ‘관행’으로 남지 않았어야 할 일들이다.

 

나의 후배들은 지옥같은 환경에서, 단지 자부심과 보람만으로 버티며 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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