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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가 천안함기념관을 방문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현재 몹시 슬프다고 한다. 공산주의 무뢰배 앞에서 고개를 숙이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는 색깔론은 전통적이고 식상하다. 이보다는 천안함기념관을 방문하기 전까지의 태도가 좀 더 나았다. ‘정치보복’이다.

 

MB는 자신을 조여 오는 수사를 ‘정치보복’으로 규정했다. 충분히 예상된 일이었고, 효과 유무와 상관없이 특별히 손해 볼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MB를 위시한 지난 보수정권세력이 주장하는 바가 옳다고 가정해보자.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좌우는 물론 도덕성과 법적 정의 여부와 상관없이 정치적 보복이며, 계산기를 놓고 벌이는 이익추구 게임이라고 치자. MB측의 시각을 전격 수용해 보는 것이다.

 

이제껏 한국 정치사에서 좌우는 보복과 보복을 주고받는 핑퐁게임을 하지 않았다. 거칠게 현재의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을 진보와 보수로 나누고 역사를 추적하면 보복은 언제나 보수 세력에 의해서만 실행되었다. 노태우는 전두환을 백담사에 보냈고 김영삼의 문민정부는 두 전임자를 한 법정에 세웠다.

 

보복이 멈춘 건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르러서였다. IMF를 극복하기 위해 국론통합의 필요성이 간절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부세력에 대한 정의구현의 흐름이 끊긴 데에는 비판의 여지가 많다. 하지만 게임의 차원에서 DJ는 숱한 빈볼을 맞고도 자신이 마운드에 섰을 때 빈볼을 던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여기서 보복이 중지되었어야 자연스럽다.

 

국민의 정부를 승계한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는 MB에게 호의적이었다. MB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서울시장 시절의 두 업적, 청계천 복원사업과 서울시 버스 개혁은 참여정부의 지원과 승인 없이는 불가능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MB의 사업에 공개적으로 긍정적인 언급을 해 가며 물심양면으로 그를 지원해주었다.

 

BBK 사건이 터졌을 때 MB 선거캠프 측에서는 ‘(정권과) 거래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 공론화될 정도로 위기감을 느꼈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아무 거래 없이 MB를 내버려두었고 그는 편안히 청와대에 입성했다. 노무현은 박근혜의 육영재단의 불법성도 눈감아주었다. 사법정의를 방기한 책임은 그 자체로 문제일 것이다. 그럼에도 어쨌거나 두 번의 민주정권은 권력을 통한 보복과 견제를 구시대의 유물로 박제하고자 했고, 그렇게 된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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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보수 세력의 역습은 민주화정권의 구성원들에게 충격이었을 것이다. 정치보복은 그들의 기대 속에서나 끝나 있었다. 다시 민주정권이 들어섰을 때 MB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서양근대철학을 대표하는 칸트는 엄숙한 신존재증명에 파격적으로 게임이론을 적용했다. 이를 ‘도박사 논증’이라고 한다. 신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신앙 역시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네 가지 경우의 수가 나온다.

 

1) 신이 존재하고 내게 신앙이 있다면 천국에 갈 것이다.

2) 신이 부재하고 내게 신앙이 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3) 신이 부재하고 내게 신앙이 없다면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4) 신이 존재하고 내게 신앙이 없다면 지옥에 갈 것이다.

 

1)은 몹시 좋고 4)는 극단적으로 나쁘다. 2)의 경우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가고 회개기도를 하는 것은 분명한 손해지만, 영원이라는 시간 앞에서는 미미한 불편이다. 신앙이 없는 쪽은 리스크가 너무 큰 반면 있는 쪽은 손해는 적고 보상은 막대하다. 이 조건이 주식시장이라면 상식적인 투자자는 모두 신앙을 유지하는 편이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라고 확신할 것이다.

 

마찬가지다. 보수 세력의 보복은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됐다. 상대 진영이 마운드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든 기회가 주어지는 한 빈볼을 던지는 선수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권이 왜, MB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정치보복’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오히려 MB 자신을 적극적으로 응징하지 않는다면 정치 집단이라 불릴 조건도 충족하지 못한다. ‘정치보복’을 하고 싶지 않아도 억지로라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간단한 산수다.

 

잠시 게임의 관점에서 벗어나보자. MB 측이 자신을 향한 수사망을 정치보복으로 규정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하나다. 유권자들의 눈앞에서 문재인 정권의 순수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즉 계산대로라면 문재인 정권은 ‘자신들과 도낀개낀으로 비춰지는 게 두려워서’ 수사를 멈추도록 검찰을 압박해야 한다. 사고방식이 몹시 독특해야 벌어질 일이다.

 

이 경우 문재인 정권은 정치보복이라는 레토릭이 두려워 불법을 좌시하고 사법정의를 무시했다는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어디까지나 MB를 위해서 말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온당하지도 않다. 도덕성이나 품위의 문제가 아니다. MB에게는 기적이 될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현 정권은 정신병동이다.

 

또 다른 관점에서 도박사 논증을 대입해보자. 문재인 정권의 지지층 상당수는 노무현 지지층과 겹쳐 있다. 정치보복이라 하든 정의구현이라 하든 그들은 MB가 응징되기를 바랄 것이다. 노무현 지지자가 아니더라도 현 정권에 우호적인 유권자는 대체로 적폐 청산에 대한 바람이 강하다. 이들을 실망시킬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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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와 보수 세력을 지지하는 유권층은 어떨까. MB 수사가 흐지부지된다고 문재인에게 고마워할까. 상식적으로 접근해 봐도 그들은 문재인이 MB 타격에 실패했거나 그의 심지가 약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면 MB의 결백이 증명됐다고 믿을 텐데, 이 경우 결백한 전 대통령을 괴롭힌 것이 되기 때문에 더더욱 정치보복으로 비난받게 된다. 게임의 관점을 다시 가져오면 ‘정치보복 행위자가 되지 않기 위해 정치보복 카드를 버려야 한다.’ 다시 말해 청와대가 간단한 산수도 못하는 백치로 채워져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유권자의 기대반응을 하나 더 가져와보겠다. MB와 박근혜를 지지했던 유권자 그룹은 노무현-문재인 지지층에 비해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이 전통적이고 보수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절차적 정당성보다는 봉건적 인간관계에 보다 천착하는 연령대와 성향을 지녔다. 그들에게 문재인 대통령이 MB를 놓아주는 그림은 관용이나 상생이 아니다. ‘제 주군이 그렇게 죽었는데도 칼질 하나 못 하는’ 나약하고 비겁한 인물이 될 뿐이다.

 

MB의 몰락으로 문재인 정권이 얻을 것은 많을지언정 잃을 것은 하나도 없다. 그의 운명은 정해졌고, 자신이 정했다. 당황할 일이 아니다.

 

혹시 MB와 보수 세력은 지금까지의 역사적 경험으로 자신들과 진보세력을 공수(攻守)로 관념화한 것일까. 공세는 자신들만의 배타적 특권이고 당하는 역할은 민주화세력이 전담 마크하는 게 한국 정치의 당연한 조건이라고 믿었을까. 아니면 현 대통령과 집권세력은 권력을 사용하는 법을 모르거나 필요 이상으로 착한 순백의 천사로 본 걸까. 허면 노무현 대통령이 건넨 무언의 제안을 무기력함으로 해석했다는 뜻일 터인데, 그럴 리가 없잖은가.

 

MB의 천안함기념관 방문 사진을 보고 문득 궁금해진다. 그는 이 상황에서 자신의 수가 정말로 통할 거라고 기대하는 걸까, 아니면 무작정 가만있을 수는 없으니 일단 거기라도 가 본 걸까. 어쩌면 타이밍이 공교로울 뿐, 진심으로 천안함의 영령들을 뵙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MB에게는 곤란하게도, 청와대에 있는 사람들의 산수 실력은 초등학교 이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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