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5. 15. 금요일
좌린
[편집부 주]
나에 대해 묻는 질문지(검사지)에 나의 생각을 작성하면 그 과정을 통해 '내가 누군지'를 알려주는, 마음의 검진을 통해 나를 성찰하고 치유의 기회를 제공받는 <내 마음 보고서>
마인드프리즘은 바로 이렇게 사람과 사람이 서로 치유를 나누는 <내 마음 보고서>를 주력상품으로 하는 심리치유 전문기업이다. 하지만 마인드프리즘에서 전해온 소식은 안타깝게도 '폐업'이었다. 이유는 고질적인 적자누적도, 경영진의 회사돈 횡령도, 판매부진으로 인한 불투명한 전망도 아니었다. 김범수 다음카카오 의장이라는 든든한 투자자가 있었고, 지난해 경영정상화를 위한 구조조정도 진행되었으며, <내 마음 보고서>의 판매실적은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인드프리즘이 폐업을 결정한 이유로 밝혀진 것은 오직 하나, 비노조원들이 노조원들과는 함께 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함께 일할 수 없다는 생각이 '기업의 폐업'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말이다.
과연 그들에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좌린이 마인드프리즘 노조의 폐업 철회 농성장을 찾아 그들의 모습과 이야기를 담았다.
한 트위터 유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이러저러한 일이 있으니 역삼동 마인드프리즘 사무실로 사진을 찍으러 올 수 있는가 하는. 마인드프리즘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했다. 정혜신 박사, 와락, 쌍용자동차와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를 흘러가는 SNS 타임라인에서 본 게 다였다. 잠깐 일정을 확인하고서 가겠노라고 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예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구절은 볼 때마다 갸웃거리게 된다.
보다 보면 뭐라도 알게 되겠지 싶었다.
5월 6일 D-10
오후 한 시, 다음카카오가 운영하는 테마카페 '카페톡'에
긴장한 표정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이들은 와락의 정혜신 박사가 창립하고 다음카카오 김범수 의장이 투자했으며 이제 열흘 후에 폐업하기로 예정된 심리치유기업 '마인드프리즘'의
'해고노동자'와 '해고예정노동자'들.
그들이 사측의 '위장폐업'에 맞선
점거농성을 시작하기 위해 회사 현관 앞에 모였다.
마지막으로 마음을 다잡고
사무실 문을 연다.
십 수 명 또는 수십 명 규모의 IT 벤처기업을 다녀온 나로서는
무척 익숙한 분위기의 사무실이다.
별다른 충돌 없이 이들은 회의실을 점거했다.
의자를 바깥 사무실로 빼고
책상 위치를 바꿔 회의실이었던 공간을 '농성장'으로 만든다.
대표가 경찰을 부르고
농성장에는 현수막이 걸린다.
"위장폐업-전원해고 철회 촉구 철야농성 _일차"
경찰을 기다리던 대표가 답답했는지 집기를 옮기는 직원을 직접 저지해본다.
사람과 마음이 우선이라던
심리치유기업 마인드프리즘이 '경영상의 이유'로 문을 닫으려 하고 있고
직원들 중 노조를 결성한 직원들은 그 폐업 '위장폐업'이라 규정하고 있다.
기자들이 몇 왔고
경찰도 몇 왔다.
간혹 비 노조원 직원들이 노조원들에게 날선 비난의 목소리를 낸다.
경찰이 교섭을 중재해보려 하나 대표는 교섭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나처럼 매해 매월이 위기인 IT 벤처기업에서 항상 '을, 병, 정'으로 일하다 보면 '해고'라는 단어의 무게를 크게 못 느끼게 된다. 간혹 이직이 원활하지 않아 실업급여를 받을 필요가 있을 때 해고로 처리해줄 것을 회사에 요청할 뿐, 경영 형편이 어려우면 어련히 개인이 다른 곳을 알아볼 일인 것이다.
'노조'라는 말 역시 나나 나를 고용했던 사람들 모두에게 생소할 터인데, '위장 폐업'이나 '진짜 사장'이라는 말은 더더욱 어렵다.
국민게임 한게임에서 애니팡 열풍, 그리고 다음커뮤니케이션 합병까지 한국 IT 역사의 중심에 있어왔던 다음카카오 김범수 의장과,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며 명성을 쌓은 정혜신박사가 만든 마인드프리즘의 노조원들은 대체 왜 이런 '점거 농성'까지 하게 된 것일까
마인드프리즘 노조는, 직원에게 주식을 분배한 후 의견불일치로 폐업 수순을 밟는 것을 신종 노조 파괴 공작이라 설명하고 있고, 나는 열흘 뒤 이 과정을 과연 한 편의 기사로 정리해낼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마인드프리즘의 설립자와 직원들로부터 오랜 도움을 받아온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왔다.
김정우 전 지부장이 거액의 투쟁기금 전달한다는 농담과 함께 음료수 상자를 건넨다.
대표와 노조의 면담을 끝내 성사시키지 못한 경찰은 그저 직원이 아닌 사람들이 사무실을 나가야 한다는 것을 통보하며 철수했지만 예고했던 시간이 되어도 경찰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사무실로 돌아왔다. '농성장'에 남겨두고 온 이들이 주총에서 폐업 결정을 막지 못한 소수파 주주들인지, 해고를 앞둔 노조 소속 종업원인지가 헷갈렸다. 이들이 점거를 한 것인지 출근을 한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5월 10일 D-5
다시 농성장을 찾았다.
'옳은 것은 관철된다'는 메시지가 눈에 밟혔다.
나는 옳은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모르겠고
옳다고 관철되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다.
다만 알 수 있는 사실은, 해고자와 그 가족을 도와주는 일을 하던 회사의 직원들이 그 일을 계속 하고 싶어도 더 이상 그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도 있지만, 또한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제대로 돈을 들여야 해낼 수 있는 일들이 있다. 하지만 지금 진행되어 온 상황대로라면, 이들은 자신이 주주로 있는 회사의 폐업 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설립자와 투자자의 의지는 절차에 따라 실현되고 있고, 종업원은 그렇지 못하다.
자본주의를 전면 부정하지 않는 한 너무 당연한 일 아니냐고?
마인드프리즘 노조는 그것이 당연해서만은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 있던 민우 아버지가 왔다.
노조원들은 오전 내내 울다 웃다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발 떨어진 거리에서 세월호 행진을 촬영하면서도 가장 마음 아픈 것이,
'이제 그만 좀 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노조원들은 민우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감정적으로 훨씬 더 많이 공감을 한 것 같았다.
"연대를 할 때는 언제나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만, 나의 문제로 싸우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이기적'이라는 시선까지 감수해가면서까지 이 싸움을 이어갈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내게 닥친 문제를 좋게좋게 타협한 채 앞으로 계속 부당하게 해고된 사람들과 함께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비노조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는 연휴여서 그나마 마음이 조금 가볍다고 한다.
폐업을 결정한 회사기 때문에 주요 집기들은 중고장터에 내놓고 팔았다.
자신의 PC를 자신이 사간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노조원들은 김범수 다음카카오 의장이 이틀 전 발표한
사회공헌활동재단 추진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하고 있었다.
김범수 다음카카오 의장, 사회공헌재단 추진
김범수 다음카카오 의장(49·사진)이 사회공헌활동재단 설립을 추진 중이다. 6일 다음카카오는 김 의장이 올해 초부터 아쇼카한국 등 사회공헌활동 관련 단체 관계자들과 만나 재단 설립 관련 정보를 주고받는 등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쇼카한국은 국제적 사회적 기업가 지원단체인 ‘아쇼카’의 한국지부다.
김 의장이 지난해 자신이 제시한 사회공헌 사업 개념인 ‘소셜 임팩트’를 실현하기 위해 재단 설립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해 11월 ‘스타트업 네이션스 서밋’ 행사에서 “재무적 성과를 나누는 기존 방식이 아닌, 재무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의 교집합인 ‘소셜 임팩트’를 이용하는 사회공헌 사업을 하면 규모나 지속성 면에서 엄청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상급조직인 보건의료노조, 민주노총 담당자와 함께 회의를 한다.
지지방문도 계속 이어지고,
노조 가입원서를 쓰는 사람들도 있다.
보건의료노조 마인드프리즘 지부는 심리 치유와 관계되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 모두 가입할 수 있다.
여성 듀오 <말없는 라디오>가 공연을 시작했다.
이들은 '내마음 보고서'의 초창기 고객이기도 하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시민단체 회원, 학생들이 단체로, 혹은 개별적으로 지지방문을 왔다.
곳곳에서 갖가지 이유로 사람들이 은박매트에서 잔다.
저녁 식사 준비
종이 상자 테이블에서 또 하루 저녁을 먹는다.
어두워진 농성장을 뒤로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역삼역은 1998년 입사한 첫 직장과, 딴지일보 직전 직장까지 해서 십여 년을 출퇴근한 곳이기도 하다. 마인드프리즘 노조의 점거와 농성 과정을 사진에 담고 싶었던 것이, 내가 일하던 동네에서 비슷한 규모, 비슷한 경영 방식의 회사에 일어난 일기에 더 일었던 개인적 관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5월 15일 D-0
폐업 예고일이 도래한 오늘에도 , 단지 심리 치유 기업이라는 마인드프리즘의 상징적 의미 때문에 이전 경영자들의 노력이 필요한 문제인지, '노조 파괴 의도'를 가진 위장 폐업이자 신종 노동탄압 수법이기에 맞서 싸워야 할 문제인지 나는 결국 판단 내리지 못했다.
내막을 알고 사랑할지 말지 결정은 어쩌면 두 번째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선 곁에서 바라보기라도 해야 할 곳이 많다. 독자들이 사진 스크롤을 내리며, 그나마 함께 시간 보낸 것 같은 느낌을 조금이나마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좌린
트위터 : @zwarin
편집 : 딴지일보 너클볼러,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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