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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에서 즐길 수 있게 된 미국의 맛

 

'미국음식'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뭡니까? 아마 일본인한테 물어보면 맥도날드(McDonald’s), 켄터키프라이드치킨(KFC), 데니즈(Denny’s, 전형적 일본 패미레스의 하나이기도 함)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맥도날드는 “마쿠도(マクド)” 아니면 “맛구(マック)”로, KFC는 “켄타”로 짧게 줄여서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그만큼 익숙한 존재라는 말이겠지요(데니즈는 그냥 데니즈로 불리는 것 같아요). 그럴 수 있는 게, 일본에 처음에 출점한 연도를 보면 맥도날드가 1971년(도쿄・긴자), KFC가 1970년(나고야), 데니즈가 1974년(요코하마)으로 최소 40년 넘게 일본에서 영업을 해왔어요.

 

사람에 따라서는 피자헛(Pizza Hut)이나 도미노피자(Domino Pizza) 등 피자 체인이나 버거킹(Burger King), 서브웨이(Subway) 등을 떠올리기도 할 텐데, '미국'이라는 자체가 딱히 와닿지 않을 정도로 일본 땅에 정착된 거의 모든 미국 레스토랑은 패스트푸드 아니면 피자 배달점이죠.

 

이런 와중에 “제대로 된 미국식 레스토랑”의 전통을 지키는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바로 “빅보이(Big Boy)”입니다. 이번에는 미국 레스토랑 체인으로 빅보이를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2. 빅보이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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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보이는 1936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에서 창업된 레스토랑. 창업 당초 주력 상품은 햄버거였는데 현재는 햄버그스테이크나 스테이크를 주력으로 하는 레스토랑이랍니다. 1977년, 당시 일본에서 대형마트 체인으로 급성장하던 다이에(ダイエー)가 빅보이 운영 법인으로 '센트럴 레스토랑 시스템즈'라는 회사를 창립, 이듬해에 '빅보이 재팬'으로 이름을 바꾸고 오사카부 미노오시(箕面市)에 일본 1호점을 열었습니다(참고로 미노오시에는 미스터도넛 1호점도 있었는데 아쉽게도 얼마전에 폐점했다네요). 천장이 높고 개방적 분위기를 내세워, 햄버그스테이크나 스테이크를 주요 메뉴로 한 미국식 레스토랑으로 선보였지요. 생소하면서도 신선한 인상을 주었을 겁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모회사인 다이에가 경영위기에 빠졌고 젠쇼(ゼンショー) 그룹에 매각됐습니다. 젠쇼는 일본 외식업계에서 가장 매출액이 많은 그룹으로, 한국에서도 좀 알려진 규동 체인 '스키야(すき家)'의 모회사이기도 합니다. 공식발표에 의하면 빅보이는 전국에 277개 점포가 있고, 2000년에 인수・합병한 빅토리아 스테이션 브랜드로 주로 홋카이도 지역에서 운영되는 가게가 45개 있답니다(2016.3.기준).

 

'빅보이'라고 하면 꼭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마스코트인 바비(Bobby)군이지요. 가게 대문 앞에서 손님을 마중해주는 바비군인데, 은근히 무서워요. 환영하듯 위협하듯 애매하긴 한데 손님한테 강력한 인상을 주는 것은 확실한 것 같아요. 바비군에게는 가족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찰스, 어머니가 루시고, 큰 여동생이 빅토리아, 작은 여동생이 밀키라고 합니다. 버그라는 이름의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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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보이 마스코트 캐릭터 바비. 살짝 무서워 보이지 않아요?

 

기본정보는 이 정도로 하고 메뉴를 살펴 볼까요. 대략 햄버그스테이크랑 스테이크가 중심이라 하는데 정확히 어떤 게 있는지 궁금하지요.

 

 

3. 빅보이 메뉴 구성

 

빅보이 홈페이지에서 '메뉴'를 클릭하면 먼저 '일반메뉴', '런치메뉴', '키즈메뉴'의 대분류가 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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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는 크게 그랜드메뉴(일반메뉴), 런치메뉴, 키즈메뉴로 나뉘어져 있어요.

 

필자가 조금 놀랐던 건 런치메뉴와 키즈메뉴가 뜻밖에 충실한 점입니다. 보통 '런치'라고 하면 점포가 '런치'라고 설정한 시간 안에 가면 요일에 상관없이 먹을 수 있는 메뉴를 가리키는데, 빅보이는 요일마다 내용이 달라지는 “히가와리 런치(日替わりランチ)”도 제공하는 모양입니다. 이런 병행 런치 시스템(?)은 은근히 드문 것 같아요.

 

오후 5시까지인 점 역시 고맙지요(단 일요일・공휴일은 런치 서비스 자체가 없음). 사람에 따라 런치라 부르기가 어려운 시간이기도 한데 일단 손님 입장에서는 매우 고마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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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런치메뉴는 일요일・공휴일을 제외하고 요일에 상관없이 먹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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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와리”는 '날마다 바뀜' 정도의 뜻. 요일마다 제공되는 음식이 조금씩 달라지니 단골손님도 덜 질릴 것 같지요.

 

키즈메뉴 역시 이색적이네요. 누가봐도 아이를 대상으로 한 메뉴도 있지만 메뉴판 맨 위에 나오는 것은 다소 작아 보이지만 그릇은 어른용과 비슷한 '본격파'. 과감하게 철판으로 키즈용 음식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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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어린이용 음식. 이런 전형적 키즈메뉴는 어느 패미레스에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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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보이는 키즈용 음식에도 철판을 이용한 본격파 메뉴를 라인업. 화상만 조심하면 이렇게 먹는 게 더 맛이 있기 마련이지요.

 

빅보이의 인기요인(의 비밀) 중엔 “바이킹”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바이킹'이라고 하면 보통 뷔페 형식 일반을 일컫는데 빅보이의 바이킹은 말하자면 '샐러드와 스프 그리고 카레, 공깃밥 뷔페'입니다. 말 그대로 샐러드, 스프, 공깃밥, 카레를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거지요. 샐러드바에는 16가지 이상의 채소나 과일 등이 제공되며 스프는 상시 2가지 정도가 마련돼 있답니다. 이런 바이킹까지 세트로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점도 큰 매력인 것 같지요. 재미있게도 빅보이의 바이킹은 단품으로도 시킬 수 있네요. 카레랑 공깃밥이 포함되기 때문에 고기를 안 시켜도 카레나 카레덮밥을 먹으면서 스프, 야채, 과일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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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을 고기랑 세트로 시킬 수 있는 것은 물론, 단품으로 시킬 수도 있다는 점이 재미있어요.

 

일반메뉴를 살펴 볼까요? 요즘은 일반메뉴를 “그랜드메뉴(Grand Menu)”라고 부르는 추세던데 빅보이도 그런 모양이지요. 대충 훑어보면 오오타와라(大俵) 햄버그스테이크와 수제 햄버그스테이크가 눈에 띄고, 이어서 그릴 치킨하고 스테이크도 존재감을 호소하는 느낌이지요. 라이트밀이나 사이드메뉴(간단한 반찬・안주 류)도 있고, 술도 파는 모양이네요. 디저트류도 있지만 딱히 기대되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디저트류는 빅보이 같은 전문성이 높은 레스토랑보다 아무 메뉴나 먹을 수 있는 일반 패미레스 쪽이 더 충실하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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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메뉴판의 대분류. 햄버그스테이크 전문점이라는 이야기는 정말인 것 같네요.

 

'오오타와라(大俵) 햄버그스테이크'는 한국분들에겐 생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오타와라'는 '커다란 타와라'라는 뜻인데요, 여기서 '타와라'는 짚을 원기둥 모양으로 짠 자루를 말합니다. 옛날 일본에서 쌀 등 상품을 넣고 보존이나 운반할 때 썼기 때문에 일본 역사드라마를 보는 분이라면 타와라를 본 적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재는 주로 쌀의 무게를 표현할 때 쓰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쌀 60kg=1俵로 환산되지요(무게 단위로서의 “俵”는 음독합니다. 예를 들어 1俵는 “잇표(いっぴょう)”, 2俵는 “니효(にひょう)” 등등). 어쨌든 오오타와라 햄버그스테이크는 타와라처럼 생겼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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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江戸時代)에 그려진 그림에 나타난 타와라. 그림은 쌀을 거래하는 도매상의 모습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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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타와라 햄버그스테이크 시리즈. 메뉴 밑에 있는 방울모양은 주문 시 선택할 수 있는 소스의 종류를 나타냅니다. 불에 쬔 오오타와라 햄버그스테이크(炙り大俵ハンバーグ)의 경우 어니언, 데미그라스, 와사비 간장 중에서 선택할 수 있고, 2가지 맛 비교 햄버그스테이크는 어니언만 선택할 수 있어요. 단 주문할 때에 부탁하면 아무 소스나 제공될 겁니다.

 

빅보이 햄버그스테이크로 눈을 돌려보니, 통째로 구운 토마토를 얹은 치즈 in 햄버그스테이크가 압도적 존재감을 보이네요. 반죽을 손으로 직접 빚은 햄버그스테이크라니 그 말만으로도 맛이 있는 것 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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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 햄버그스테이크. 토마토를 통째로 구워 햄버그스테이크 위에 얹은 것은 매우 생소합니다.

 

빅보이는 미국에서 온 만큼 소고기 스테이크 메뉴도 다양한 인상. 자세히 보니까 반드시 철저히 미국식을 관철하지는 않고 일부 일본적 테이스트도 살리는 것 같고, 열량에 신경 쓰는 손님을 위해서인지 키친 스테이크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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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 스테이크 메뉴 중에 무즙과 깻잎을 얹은 “시소오로시”도 있는 모양. “시소오로시”는 “다이콩 오로시(大根おろし ; 무즙)”와 “시소(しそ ; 깻잎)”의 합성어로 기름기 많은 음식을 먹을 때에 종종 같이 먹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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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스테이크 하면 바로 떠오르는 형태의 스테이크도 있습니다. 락(Rock) 스테이크가 박력 만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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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스테이크도 있습니다. 치킨을 좋아하는 분은 물론, 열량에 신경쓰는 분한테도 인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각종 토핑 메뉴나 가볍게 한잔하면서 전채(로서는 좀 무거운 김이 있으나)로 먹을 만한 사이드 메뉴도 눈에 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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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토핑 메뉴. 필자는 스테이크나 햄버그스테이크에 튀김을 토핑한다는 개념을 따라갈 수 없지만 무언가 비결이 있는 거겠지요.

 

수요가 있는지 의아한 스파게티도 있습니다. 빅보이 하면 스테이크 전문점이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이렇게 보면 일반 패미레스와 비슷한 면도 있나 보지요. 디저트류가 의외로 충실한 부분도 패미레스임을 드러내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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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게티 메뉴도 있습니다. 나름 맛이 있어 보이기는 하는데 빅보이는 고기를 먹으러 가는 집이 아니냐는 의문도. 아마 일행 중에 고기를 먹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경우를 대비하는 것일 텐데, 메뉴의 다양화는 전문성은 낮추고 패미레스적 측면은 높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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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파는 가게에 필수적인 안주류(사이드 메뉴). 개인적으로 닭튀김이랑 베이컨 버터를 같이 시켜서 시원하게 맥주 한 잔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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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보이가 페미레스이기도 함을 방증하는 디저트 메뉴. 일반 페미레스와 비교하면 약간 떨어지지만 스테이크 전문점 수준은 훌쩍 넘는 것 같습니다. 일단 “시라타마와 단팥 미니선데”는 맛이 보장된 것 같습니다.

 

예습은 이 정도로 하고 빅보이를 찾아 실제로 먹어볼까요.

 

 

4. 현장탐방

 

이번에 찾아간 가게는 빅보이 노다츠츠미노(野田つつみ野)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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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치바가 아니라면 속상할 정도인 것 같아요

 

비교적 새로 조성된 주택가에 있는 교외형 점포인데 역시 식당 입구에서 바비군이 맞아주고 있습니다(여러 번 말하지만 좀 무섭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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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앞에는 바비군이 맞아주는 듯 위협하는 듯, 하여튼 빅보이임을 확실히 알려주는 느낌이지요.

 

혼잡한 시간대를 피해서 갔기 때문에 입점하자마자 종업원 분이 자리를 안내해줬습니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열어봤더니 거기는 마치 고기 천국. 일단 햄버그스테이크가 아니라 스테이크를 먹자고 마음 먹고 왔지만 막상 메뉴판을 보니까 햄버그스테이크도 매우 맛이 있어 보이는 겁니다. 스테이크 메뉴만으로도 우유부단한 필자한테는 고문인데 햄버그스테이크까지 마음을 흔드는 지경에 빠져버렸습니다. 깊어지기만 하는 고민, 어떻게 하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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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잡할 시간대를 피해서 갔기에 필자 일행이 앉은 쪽은 한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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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레스토랑의 넉넉한 느낌”을 실현함에 있어 빅보이가 내세우는 가장 큰 포인트 중 하나가 천장 높이라고 합니다. 이것만으로도 가게 전체 공간이 넉넉해지는 인상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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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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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스테이크를 먹으리라 마음 먹고 갔는데 정작 메뉴판을 보니까 햄버그스테이크도 맛이 있어 보여서 작심이 완전히 붕괴. 특히 치즈 in 햄버그에서 눈을 뗄 수 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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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비잭”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보는데 배가 고파서 그런지 왠지 맛이 있어 보입니다. 나중에 알아보니까 치즈의 한 종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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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와 공깃밥이 포함된 “빅보이 바이킹”. 단품으로 시킬 수도 있으므로 카레덮밥 먹으러 와도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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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류가 충실한 점은 빅보이가 패미레스이기도 하다는 걸 말해줍니다. 말차 아이스크림을 사용한 메뉴가 있는 게 일본답네요.

 

필자가 메뉴 선택 지옥에서 정신을 잃고 까무러치는 사이, 친구는 일찍이 메뉴를 결정했습니다. 빅보이 스테이크랑 햄버그스테이크 세트. 맞다! 스테이크랑 햄버그스테이크를 한 번에 먹으면 되는 거잖아! 너무나 좁은 시야를 원망하면서 필자가 고른 메뉴는 치즈 in 햄버그스테이크랑 컷스테이크 세트. 컷스테이크는 고기가 미리 잘라진 상태에서 나오기 때문에 일반적인 스테이크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는 하는데 고기는 고기입니다. 스테이크인 줄 알고 먹으면 스테이크죠. 우리가 주문한 메뉴에는 둘 다 “바이킹”이 포함돼 있어서 샐러드나 스프, 공깃밥, 야채랑 과일류가 무한리필 가능한 것도 고마운 부분이라 할 수 있겠지요.

 

주문을 마쳤으니 이제 샐러드나 공깃밥, 스프를 미리 챙겨 놓는 차레. 무한리필 가능한 샐러드를 먹을 때마다 통감하는데 “이번에야 평소와 달리 좀 창의성 있게 ‘나만의 샐러드’를 만들겠다” 생각하면서도 실제로 테이블에 놓여진 샐러드는 필자는 창의성이란 말과 전혀 인연이 없는 모양. 이번에도 다진 양배추에 마카로니,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옥수수를 많이 얹고, 드레싱 역시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참깨 드레싱. 동행 친구가 만들어 온 미역 샐러드가 빛나 보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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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나 각종 스프, 채소・과일류는 무한리필입니다. 한꺼번에 많이 갖고 오지 않는 게 포인트지만 그게 어렵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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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은커녕 겉보기에도 식욕을 부추기지 못하는 샐러드. 미역 샐러드에 충격을 받은 필자였습니다.

 

무한리필 서비스를 이용할 때마다 궁금했던 게, 새로 음식을 가져올 때마다 새로운 그릇을 쓰는 것이 매너에 어긋나는지 여부였습니다. 실제로 무한리필 서비스를 이용하는 집에서 보니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모양. 다행히 빅보이는 “새로운 그릇 이용”을 명시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에 따라 같은 음식을 리필하는데 새로운 그릇을 쓰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필자도 그렇게 생각하는 편입니다) 새로운 그릇을 써달라고 해주니 편히 빈손으로 샐러드바에 갈 수 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듯하지만 손님 입장에서는 매우 고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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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와 스프를 리필할 때에는 새로운 그릇을 이용하면 된다는 표시. 빈손으로 샐러드바에 갈 수 있어서 매우 편한 것 같습니다.

 

빅보이에서 처음 본 것이자 인상적이었던 게 있습니다. 종업원의 일에 대한 숙련도를 4단계로 구분하고, 그에 따라 넥타이 색깔을 다르게 한 거였어요. 넥타이가 금색이면 “언제든 불러 주세요! 무엇이든 대응하겠습니다”라는 뜻이고, 빨간색이면 “자신이 있습니다! 맡겨주세요”라는 뜻. 파란색은 “기본적인 일은 다 할 수 있어요! 익숙합니다.”이고, 녹색은 “연수 중입니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라는 뜻이라네요. 물론 파란색이나 녹색 종업원 분들도 충분한 교육을 받았을 테지만 종업원의 숙련도를 명시해주니 손님 입장에서는 주문이나 문의를 할 때 편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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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타이 색상을 보면 종업원의 숙련도를 아는 시스템.

 

샐러드와 스프를 챙기고 잡담을 하다 보니 식사가 나왔습니다. 동행 친구가 시킨 “빅보이 스테이크&햄버그스테이크”는 이름 그대로 스테이크랑 햄버그스테이크를 동시에 먹을 수 있는 메뉴이자 고기맛을 스트레이트하게 느낄 수 있는 “한가운데 직구”. 양파소스를 선택한 것도 놀라운 식견입니다. 양파소스의 시원함이 기름기를 상쇄하면서 고기맛을 더 깊게 해주는 것, 정답이라 하겠습니다.

 

자른 고기를 살짝 더 데울 수 있게 철판 위에 돌을 같이 올려주네요. 다른 스테이크 전문 패미레스에서도 본 적이 있는데 이제 특별한 것은 아닌 모양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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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친구가 시킨 “빅보이 스테이크&햄버그스테이크”는 순수 고기맛을 보기에 딱 좋은 메뉴. 양파소스와 가열용 돌로 맛을 조절하며 먹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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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보이 스테이크는 이름 그대로 스테이크입니다. 붉은 색깔이 살짝 남아 있을 때 먹는 게 아마 가장 맛이 있겠지요(개인적으로는 좀 더 덜 구운 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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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좀 더 데우고 싶을 때에는 철판 위에 있는 돌에 바짝 대면 됩니다.

 

필자가 시킨 메뉴는 치즈 in 햄버그스테이크&컷스테이크. 햄버그스테이크 속에 치즈가 들어 있고, 스테이크란 이름으로 제공되는 고기는 미리 잘라져있어서 스테이크라는 단어에 딱 맞지 않는 겉보기. 친구가 시킨 메뉴와 달리 순수한 고기맛이 별로 없길래 어떻게 해서 무마시키려는 노력이 살짝 보인다고 할까요. 물론 나름 맛이 있기는 한데 치즈에 고집한 나머지 고기를 먹으러 왔다는 당초 목적을 잊어버렸던 것이 아쉽습니다. 과연 필자는 이 “변화구”를 칠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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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시킨 “치즈 in 햄버그스테이크&컷스테이크. 순수한 고기맛을 즐기고 싶을 때에는 안 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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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그스테이크에는 치즈가 들어 갔어요. 결코 맛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역시 스테이크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와 좀 차이가 있는 모양.

 

필자가 시킨 메뉴입니다. 후회하거나 잔소리 해봤자 맛만 떨어질 뿐 얻을 것은 하나도 없겠지요. “변화구”에도 유난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일류 타자입니다. 일단 순수한 고기맛을 즐기는 것은 포기하고 당장 눈 앞에 있는 요리를 맛이 있게 먹어보자는 걸로 노선을 변경했습니다. 야채나 감자튀김을 같이 먹는 등 여러 시도를 해봤는데 역시 가장 강한 아군은 탄수화물인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공깃밥이랑 같이 먹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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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랑 햄버그스테이크 조합이 맛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순수한 고기맛을 즐기자는 컨셉과는 좀 거리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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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구”를 더 맛이 있게 날리기 위한 노력 중 하나. 감자튀김과 햄버그스테이크도 괜찮은 조합인 것 같습니다.

 

이리저리 맛이 있게 먹는 길을 찾다 햄버그스테이크를 공깃밥에 얹는 순간, 친구가 길을 확 열어줬습니다. “어, 카레를 뿌리면 맛이 있겠는데…” 오 마이 갓!! 수학을 전공한 그를 평소부터 천재 아닌가 의심했던 필자인데 이 때 만큼은 정말 천재 아닌가 싶을 정도 그 발상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지요. 솔직히 무한리필 할 수 있는 카레는 제대로 된 카레라 여기기는 좀 어렵다 생각해왔어요. 하지만 멤버 하나하나의 힘은 없어도 모두가 힘을 합쳐서 만들어진 '치즈 in 햄버그스테이크 카레덮밥'은 카레 전문점에서 팔아도 잘 팔리겠다 싶을 수준의 맛을 연출했던 것이었습니다. 모처럼 콜럼버스의 달걀이라는 말이 생각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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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공깃밥이랑 같이 먹어도 나름 맛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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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를 뿌리는 순간 파워업!!!

 

스페셜 카레덮밥만으로도 충분히 배부른데 인류의 지혜와 창의성을 접한 흥분상태라는 주관적 요인, 그리고 공깃밥도 무한리필이 가능하다는 객관적 요인이 서로 어울리며 필자는 컷스테이크라는 이름의 고기 조각들을 살리는 법도 생각해냈습니다. 바로 “스테이크 덮밥”입니다. 배부른 감이 있지만 공깃밥을 리필하고 위에 고기를 얹은 뒤 양파소스를 뿌려 봤지요. 고기 씹는 맛과 육즙, 쌀밥의 단맛, 그리고 살짝 시큼하면서도 감칠맛이 액센트가 돼주는 양파소스. 필자도 동행 친구 못지않은 천재였던 것 같습니다. 고기의 야성미와 소스가 딱 어울리는 판을 든든하게 뒷받침하는 쌀밥의 힘. 맛이 없을 리가 없지요. 스테이크를 먹으러 왔다는 애초 목적이 오히려 선입견이 되어 있었다는 반성, 그리고 선입견에서 벗어나면 무한의 행복이 펼쳐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게 해준 컷스테이크 덮밥. 강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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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스테이크를 공깃밥에 얹고 소스를 뿌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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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스테이크 덮밥 완성!!!

 

카레 덮밥이랑 스테이크 덮밥을 잇따라 먹고 나서 완전히 배부른 상태가 되었지만 마무리로 무슨 과일까지 먹었습니다. 당초 약간 후회가 남을 것 같았던 빅보이였는데 먹고 나서는 맛이 있는 음식을 즐기는 동시에 뭔가 삶을 살기 위한 좋은 교훈까지 얻지 않았을까 (수업료는 안 내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 만족감이 넘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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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위, 파인애플, 드래곤후르츠에 요거트를 곁들여서 만든 후식. 이것도 빅보이 바이킹에 포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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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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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갔던 노다츠츠미노점은 신용카드도 이용 가능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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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대 옆에서 장난감을 파는 것은 빅보이가 패미레스라는 걸 방증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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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하고 나가면 바비군이 배웅해 줍니다. 역시 살짝 무서운 느낌이 드는데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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