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의 한물 간 주요 이슈들의 핵심을 날카롭게 비껴 가 겉핥기식으로 대충 들여다보는 <시사변두리-이슈VS.이빨>, 9월 셋째 주 이슈들을 살펴보자.
간장종지는 잊어라, 간장게장이 왔다
<중앙일보>가 ‘간장게장’으로 간만에 전광판을 훌쩍 넘기는 엄청난 비거리의 대형 홈런을 쳤다. <한국경제>가 지난 8월 24일 “‘최저임금 부담’ 식당서 해고된 50대 여성 숨져”라는 기사로 장안의 화제가 되자 절치부심, 2주 만에 반격(?)에 나선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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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중앙일보>는 ‘넥타이부대 넘치던 강남 간장게장골목 밤 11시 되자 썰렁’이라는 심야상권 스케치 기사를 통해 ‘주52시간제’의 부작용을 짚었다. 문제는 부작용이랍시고 더듬은 지점이 남의 코끼리 다리란 점이다. 기자가 스케치한 논현동 영동시장 한신포차 본점 거리와 신사동 간장게장 골목이 심야상권인 건 맞다. 하지만 소싯적에 좀 놀아본 필자의 경험으로 그 동네 새벽시장은 유흥업소 언니들이 주된 고객이다. 기자가 상정한 넥타이의 평균 연봉이 얼마인진 몰라도 새벽녘에 쳐앉아 간장게장을 먹기엔 좀 많이 비싸다.
강남의 심야 술집 거리 이야기를 하면서 ‘건설회사 현장에서 근무하는 김모(48) 씨’의 코멘트를 딴 것도 참으로 뜬금없다. 4일 문화체육관광부가 공개한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인식 여론조사'에서 단축 이후 삶의 질과 관련 '이전과 별 차이가 없다'는 응답이 57.2%, '이전보다 나빠졌다'는 답변 8.9%를 언급하면서 ‘잘된 일’이란 답변이 64.2%였단 사실을 빼먹은 것은 기사의 의도가 빤히 보이는 수작이다. 밤 11시 썰렁이라 써놓고 새벽 3시 거리 사진을 쓴 건 그래서 차라리 애교다.
해당 기사를 쓴 함종선 기자는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조작하거나 의도한 게 아니라 어차피 주52시간 시행으로 긍정적인 것은 많이 있기 때문에 부작용 취지의 기사를 쓴 것”이라며 “자영업의 불경기에 대해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대표적으로 심야상권의 경우 회식이 줄어든 결과로 봤고 자영업자 입장에서 심야상권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는 게 기사의 취지”라고 얘기했다.
이전에 <한국경제> 조재길 기자도 비슷한 얘길 했더랬다. “제보 시점부터 20여 일 경찰에 해당 사건이 있었는지 확인을 시도했다. 이후 사실 확인과 확보한 구체적 증언에 비춰 사실로 믿을 만한 근거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정부 정책을 흠집 내려 한 것도 아니고 의도를 갖고 쓴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둘 다 없는 얘길 지어서 쓴 게 아니란 항변이다. ‘불경기’ 맞다. 자영업자 어려운 거 사실이다. 그 ‘취지’를 드러내기 위해 ‘주52시간제’로 엮은 게 무리수였단 지적을 할 따름이다. 어느 여성이 삶의 무게에 짓눌려 비극적 선택을 한 사실을 ‘최저임금’이랑 엮으려다 무리수를 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무리수’엔 현 정부를 까야한다는 강박적인 ‘의도’가 너무 빤히 보인다는 거다. 악어는 형식적이나마 눈물이라도 흘리지. 저 기사들 ‘취지’ 그 어디에 ‘자영업자의 고단함’과 ‘극빈계층의 눈물’이 있나. 비열하다고 손꾸락질 받는 이유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중앙일보> 함종선 기자가 ‘차장’이라는 점이다. <한국경제>의 조재길 기자도 ‘차장’이다. 함량 미달의 기사를 언론사 차장급 기자가 썼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는, 문재인 정부를 속 시원히 조지는 기사를 써내지 못하는 ‘무능력한’ 자사 새끼 기자들에게 시니어로서 본을 보인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각 언론사 간부급들이 그만큼 애간장이 타고 있다는 거다.
그리고 덧붙여 또 하나. 저 유명한 <조선일보> 간장종지 칼럼의 한현우 부장을 포함해, 나는 이명박근혜 10년의 세월동안 진급한 언론사 중간 간부들의 수준을 본다. 이 냥반들, 그 동안 정권이랑 짜응 맞춰 설렁거리며 좋은 시절 편하게 일한 티가 너무 난다. 그렇게 무뎌진 펜으로 마음만 앞서서 날카롭게 찌르려다 보니 이런 헛발질이 나오는 거 아니냔 얘기다. 아님 말고.
범생이들의 태생적 한계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태가 글자 그대로 점입가경이다. 영장 기각률이 90%에 달한다. 급기야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은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되자 기다렸다는 듯 수만 건의 문서를 파기하고 하드디스크를 드라이버와 가위를 이용해 해체해 내다버려 ‘증거 인멸’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벌이기에 이르렀다.
유해용 전 연구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진료 의사인 김영재 원장 부부의 소송 자료를 청와대에 넘긴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단다. 그러다 그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대법원 재판 관련 문서가 무더기로 나왔단다. 검찰은 '재판 거래' 의혹을 규명할 중요 증거라고 보고 유 변호사로부터 해당 문건을 파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서까지 받았단다. 하지만 관련 문서 압수수색 영장이 두 차례나 기각됐고 유 전 연구관은, 낼름 관련 문서와 하드디스크를 날려버린 것이다. 그 과정에서 유 전 연구관이 “아싸라비야~ 콜롬비아~‘를 외쳤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자료의 상당 부분이 개인 의견을 담은 자료로써 ‘공무상 비밀’이나 ‘공공기록물’에 해당하지 않고, 재판연구관으로부터 넘겨받은 보고서도 초안 형태라 정식 등록된 자료가 아니며 판결문 초고 의견서도 대부분 판결이 선고된 사건에 관한 것이라는 등 무죄를 주장한 유해용은, 그렇게 억울한데 ‘무죄의 증거’를 왜 버렸대?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어느 고등학교 동창 녀석이 떠오른다. 3년 내내 단 한 번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은 징글징글한 녀석. 나랑은 삶(?)의 접점이 전혀 없어서 이름은커녕 생긴 것도 기억에 없지만 학교 뒷담 언저리 골목에서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던 우리 일행 앞을 지날 때도 주눅 들지 않고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던 녀석. 바르지 않은 학창 생활을 하는 친구들에게 늘 열외의 존재, 우린 서로가 서로를 인비져블 취급했지.
대체 그 녀석은 살면서 몇 번이나 심장이 벌렁거려 봤을까. 가령 내가 술에 취해 새벽 5시에 차도 중앙분리대 수풀에 쪼그려 앉아 똥을 쌀 때 그 친구는 빨간 불도 아닌 노란 불의 횡단보도를 건너며 심장이 벌렁거려 봤을까. 내가 책상 서랍에 숨겨놓은 포르노 테잎을 엄마한테 걸려서 개쳐맞듯 쳐맞고 있을 때 그 친구는 편의점 진열장에 꽂혀 있던 스타킹 표지 사진을 흘끔거리며 심장이 벌렁거렸을까.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롤라장이나 나이트에서 이성을 후릴 때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데미안을 읽고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당구장에서 옆 동네 학교 애들과 패싸움을 할 때... 그렇게 안 살아봐서 도무지 뭘 했을지 짐작조차 못하겠을 그 아이가 자라서 서오남(서울대출신, 오십대, 남성법관)이 되어 대법원에서 일을 하다가 원장님에게서 불법적인 소지가 다분한 지시를 받았을 때, 그 얼마나 심장이 벌렁거렸을까.
지들도 사람일진대 영장 기각률 90%가 국민들 눈에 어떻게 비칠지 모를 리 없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압수수색을 당하면 당하는대로 속절없이 털릴 만큼 증거가 수북하기 때문일 게다. 또 그렇게 증거를 수북이 쌓아놓은 이유는,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살면서 심장이 벌렁거려 본 적이, 나쁜 일, 그른 일, 엄마 아빠가 하면 안 된다고 한 일을 실제로 저질러 본 적이, 그닥 없어서일 게다. 그런데 또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딴에 머리는 좋아서 법 기술자이지 않은가. 심장은 벌렁거리지만 법.적.으.로.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 사법부 수호라는 둥 법관 독립의 명분이라는 둥 그런 빅픽쳐는 사실 없고, 그냥 타조가 땅에 대가리를 처박듯이 눈앞에 벌어진 일을 법.적.으.로. 수습하기 바쁜 게 실상 아닐는지.
그 와중에 메시지 하나가 세상에 던져졌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페이스북을 통해 사법농단 의혹 사태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정치권, 법원, 언론, 동료 교수, 예비법조인 등을 차례로 소환하며 “진상규명을 위해 우리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사법농단 사태가 터진 6월 즈음 참여연대, 민주노총, 대한변협, 민변 등등의 시국선언과 규탄 성명이 나오기는 했다. 하지만 학계의 침묵이 도드라져 보인 게 사실이다. 그럴 만도 하다. 법학 교수들도 사법부 판사쟁이들처럼 범생이 출신들 아닌가.
사법부가 시민들에 의해 선출되지 않았으되 절대적인 권위와 신뢰를 갖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신뢰를 잃으면 사법부가 무너지고 사법부가 무너지면 그 사회가 무너진다. 이건 한낱 거창한 레토릭이 아니다. 최순실 따위의 레베루가 아닌 거다. 그리고 시민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검찰의 수사 결과와 ‘사법농단’ 사태의 추이를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잘 모르는 게 있다. 검찰도 범생이다. 판사도 범생이다. 게다가 이 범생이들은 하필이면 법 기술자들이다. 얼마든지 법의 단죄를 빠져나갈 수 있다. 그러므로, 수사 결과니 사태 추이니 기다려선 안 된다. 범생이들이 젤로 무서워 하는 것. 야단을 쳐야 한다. 살면서 칭찬 받는 것에만 익숙하고 선생이나 친구들한테 귀싸대기 한 대 변변히 맞아 본 적 없는 애들이다. 호통을 치고 싸다구를 날려야 한다. 그제서야 얘들은, 아 시바 뭔가 단단히 잘못 됐구나 싶어서 일을 바로잡으려 들 것이다.
양승태 학생, 앞으로 나옵니다. 어? 똑바로 안 서? 이 쉐끼 봐라? 이 악물어. 꽉 다물어. 이빨 나간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사법농단 해결의 첫 단추라 단언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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