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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의 기생충 얘기] 엠비네이터(4)


2009.8.17.월요일







[돌아온 마태우스] 엠비네이터 제 1화 보기


[돌아온 마태우스] 엠비네이터 제 2화 보기


[돌아온 마태우스] 엠비네이터 제 3화 보기


지난 줄거리


대운하를 중단시키기 위해 미래에서 온 송정호, 그는 마태우스에게 도움을 청한다. 마태우스는 수면병을 유발시키는 체체파리를 뿌렸지만, 대통령과 외모가 흡사한 해태제과 김준태(링크)가 대신 물려버렸다. 과연 12월 19일로 예정된 심판의 날은 막을 수가 있을까?







"고생이 많으시죠?"
병원에 입원 중인 김준태는 가물가물한 의식 속에서 문병객을 쳐다봤다. "누구..?"
간병을 하던 부인이 묻자 사내는 고개를 숙였다.
"저는 마태우스라고 합니다. 지금 김준태 씨가 무슨 병인지 전혀 진단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겠지요?"
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병원 측에서는 단순한 몸살이라고..."
"바깥양반은 몸살이 아닙니다. 여기 목 뒤를 만져보세요. 약간 부어 있지요? 이게 바로 수면병의 특징적인 증상인 윈터보텀 징후(Winterbottoms sign)예요. 그러니까 댁의 남편은 지금 수면병이라는 고약한 병에 걸려 있어요."
부인은 무슨 말인지 이해를 잘 못해 눈만 깜빡거렸다.
"자세한 사정은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이 약을 주사하는 거예요."
아내는 약병을 바라보았다. 펜타미딘(pentamidine)이라는 글귀가 보였다.
"이걸 2cc 주사기에 담은 다음 이렇게..."
마태우스는 김준태의 바지를 내리고 주사를 놨다. 김준태가 "아야!" 하고 비명을 질렀다.
"앞으로 열흘 동안 계속 주사를 놔주셔야 합니다. 병원 측에는 얘기하지 말고요."
"근데 댁은 정말 누구세요? 왜 이러시는 거죠?"
부인의 말에 마태우스는 가방에서 봉투를 꺼냈다.
"부군이 아프게 된 건 다 제 잘못입니다. 제 딴에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한 건데, 김준태 씨한테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죄송합니다."
마태우스는 명함을 꺼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으시면 연락 주십시오. 제가 다 책임지겠습니다."
마태우스가 나간 뒤 부인은 봉투를 열어 보았다. 꾸깃꾸깃한 만원짜리 지폐 열장이 들어 있었다.







마태우스가 나간 사이 송정호는 집에서 혼자 TV를 보고 있었다.
"하하하. 이 시절 예능 프로는 정말 재밌군! 다들 말빨이 장난이 아닌데."
갑자기 배가 고파진 송정호는 냄비에 물을 얹은 뒤 라면을 찾았다.
"이게 어디 있냐... 여기쯤 있을 것 같은데..."
그때 누군가가 다가와 송정호의 두 팔을 뒤로 꺾었다.
"어? 누, 누구야? 지금 뭐하는 거야?"
송정호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상대는 끄덕 하지 않았다. 송정호는 입에 재갈을 물린 채 검은색 차에 태워졌다.







"그러니까 체체파리가 대통령을 닮은 사람을 대신 물었단 말이지? 차암 운도 좋네."
양박사가 어이없다는 듯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러게 말이야. 괜히 애꿎은 사람만 병원에 가고,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는지."
양박사가 마태우스의 어깨를 두들겼다.
"너무 걱정 말게. 곤충을 이용하는 것보다 좀 더 확실한 방법을 시도해 보자고."
양박사는 인큐베이터 문을 열고 조그만 병 하나를 꺼냈다.
"이 병에는 이질아메바라는 기생충이 잔뜩 들어있지. 자네도 잘 알지?"
마태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먹으면 1주 내에 피가 섞인 설사를 하게 만드는 거잖아. 나도 이거 실험할 때 먹은 적이 있는데, 대단하더라고. 조금밖에 안먹었는데 말야."
양박사가 빙긋이 웃었다.
"자네가 얼마나 먹었는지 몰라도, 엄청나게 농축해 줄게. 이걸 각하가 마시는 물에 탈 수만 있다면 일은 다 된거나 마찬가지야."
마태우스가 양박사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내가 말이야, 이래봬도 인맥이 넓어. 대통령은 에비앙 생수 (특)만 마시는데, 내가 그 공급업자를 알지. 음하하하하."







대통령 경호실에 설치된 조사실.
요원1: 이름?
송정호: 송정호요.
요원1: 주민등록번호는?
송정호: 그, 그게요... 제가 그런 게 없거든요.
요원1: 뭐야? 이 자식이 지금 장난해? 빨랑 불어.
송정호: 저, 정말 없는데...
그때 다른 요원 하나가 들어와 귀엣말을 했다.
"뭐야? 등록된 지문과 일치하는 게 없다고?"
요원1은 눈을 가늘게 뜨고 송정호를 바라보았다.
"혹시 너, 북에서 온 거 아냐?"
송정호가 몸을 떨었다.
"그, 그게 아니라.... 사실 전 몽고에서 왔습니다. 저를 낳아 준 어머니를 찾으러 왔어요. 여권을 받을 수가 없어서 몰래 왔고... 여기 몽고반점도 있습니다."
송정호는 일어나서 엉덩이를 까보였다.
"어디서 개수작이야!"
머리에 곤봉을 맞은 송정호는 바지를 올릴 새도 없이 기절하고 말았다.







"야야, 송정호!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왔는지 알아? 심판의 날은 막은 거나 다름없다고."
집에 돌아온 마태우스는 큰소리로 송정호를 불렀다.
"이봐! 효과가 직빵인 기생충을 가져왔어. 잉? 이방에도 없네? 녀석이 어디 갔지? 근데...이게 무슨 냄새야?"
부엌으로 갔더니 냄비가 불에 타고 있었다. 마태우스는 잽싸게 현관에 있던 소화기를 들고와 뿌려댔다.
"이자식! 물 얹어놓고 라면 사러 갔구나! 오기만 해봐라 그냥."
불을 끈 마태우스는 구멍이 뻥 뚫린 냄비를 슬픈 눈으로 바라봤다.
"이 냄비에 끓여먹은 라면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헤어지는구나. 꺼이꺼이."
마태우스는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근데 이 자식은 도대체 어딜 간 거야? 피씨방이라도 갔나?"
등을 기대고 앉은 마태우스의 눈에 마루에 어지럽게 찍힌 구두자국이 보였다.
"저, 저 모양새는...?"
순간적으로 위기감을 느낀 마태우스는 잽싸게 옷가지를 챙겼다. 그가 집을 나서는 데는 그로부터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송정호가 잡혀간 모양이야. 이제 어떡하지? 나 혼자 해야 하나?







"차를 찾았답니다."
요원의 말에 차지철은 벌떡 일어났다.
"어디서 발견했어?"
요원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 그게요, 송정호를 데려온 집에 세워져 있었답니다."
"이런 바보같은 놈들!"
차지철이 재떨이를 집어던지자 요원은 허리를 숙여 재떨이를 피했다.
"몇 놈 붙여서 잠복을 시켜야지, 무턱대고 애만 데리고 오면 어떡해? 니들이 사람이야?"
차지철이 나무로 된 두꺼비 인형을 던졌다. 두꺼비는 몸을 옆으로 비튼 요원의 귓가를 스치고 벽에 가서 부딪혔다. 차지철이 던질 물건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는 사이 요원은 잽싸게 밖으로 빠져나갔다. 요원의 등 뒤로 차지철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너 거기 안서! 저놈 잡아, 잡으라고!"







"저, 한번만 더 생각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태우스는 울 듯한 표정이었다. 생수 배달업자와 실랑이를 벌인 지 벌써 40분째, 생수업자는 완강했다.
"아 글쎄 안된다니까. 생수 배달하는 사람이 나라는 걸 아는데, 이질에 걸리면 날 의심할 거 아니요?"
마태우스는 남자의 손을 잡았다.
"대통령이 물을 청와대에서만 먹습니까? 다른 데 가서도 얼마든지 먹잖아요. 더구나 며칠 후 대통령은 동남아 순방길에 오릅니다. 그러니, 한번만 더 생각해 주시면 안되나요? 님도 대운하 반대하잖아요?"
남자가 냉정히 손을 뿌리쳤다.
"대운하는 반대하지만 이런다고 해서 뭐가 달라진다고 그래요? 각하가 기생충에 걸린다 쳐요. 그런다고 대운하를 그만둘 것 같아요? 고집이 얼마나 센 양반인데... 하여간 안되요. 난 처자식이 있고, 생수를 배달해야 먹고 살 수 있으니 말이오."
마태우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잇 정말 쫀쫀한 사람 같으니. 나라의 흥망이 걸려 있는데 계속 처자식 타령이네. 아니 그럼 당신네 후손들이 기생충이 우글거리는 세상에서 사는 건 괜찮다는 건가요?"
마태우스는 주머니에서 약병을 꺼내 절반을 자신의 잔에 넣었다.
"당신이 협조하지 않으면 이 물을 마셔버리겠소!"
남자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이 뭘 하건 그건 내 알 바 아니요. 난 그저 오늘의 생수를 성실히 공급하는 게 임무니까. 행여 이 생수에 기생충을 넣을 생각일랑 하지 마시오. 지금 당신을 고발하지 않는 것만 해도 내가 크게 인심을 쓰는 거요."
말을 마친 남자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카페에 혼자 남겨진 마태우스는 분을 삭이지 못해 부들부들 떨었다.
"쫀쫀한 놈! 먹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모르다니."
"그런 게 어딨어요?"
갑작스런 목소리에 마태우스는 정신을 차렸다. 카페 종업원이 생수업자가 남긴 커피잔을 치우고 있었다.
"뭐라고 했어요, 지금?"
"먹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냐고요. 대의니 명분이니 해도, 사흘만 굶어 보세요. 어떻게 되나."
종업원이 잔을 들고 주방으로 가자 마태우스는 더더욱 열이 받았다.
"좋아! 다들 잘 먹고 잘 살아라. 정의는 나 혼자라도 세울 거니깐!"
마태우스는 잔에 든 물을 한입에 털어넣었다.
"다 필요없어! 전부 다!"







"이거, 죄송해서 어쩌죠?"
요원2는 송정호의 손을 잡았다.
"아,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나라를 위해 애쓰시는 분들인데, 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요. 님들이 계시니 우리가 이렇게 발뻗고 잘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하하하. 이해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요원2가 과장되게 웃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제가 송선생님 엉덩이에 있는 몽고반점을 보지 못했다면 큰일날뻔 했지요. 하하하."
송정호가 풀려난 동기는 이러했다. 송정호가 쓰러지고 난 후 우연히 그방에 들어간 요원 2는 송정호의 엉덩이에 새겨진 반점을 보게 되었다.
"아니 저건....몽.고.반.점?"




요원2는 송정호를 취조하던 요원 1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이 바보같은 자식아! 아무리 무식해도 그렇지 몽고반점을 모르냐?"
요원 1이 머리를 긁적였다.
"전 그게 중국집 이름인 줄만..."
요원 2가 요원 1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이 무식한 놈! 몽고반점이 있으면 몽고사람이란 건 알아야지. 왜 그래, 아마츄어같이?"
요원 1이 머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가방끈이 짧다보니..."
요원 2의 지시로 요원 1은 송정호에게 머리를 조아렸고, 송정호는 5시간만에 다시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걸 마시다니, 내가 미쳤지.
마태우스는 아랫배를 움켜쥐었다. 기생충이 든 물을 마시면 며칠의 잠복기는 있게 마련이건만, 그 약병에 들어있는 아메바의 숫자가 너무 많아 잠복기를 필요로 하지 않았던 거였다. 벌써 여섯번이나 피가 섞인 설사를 했지만, 배는 점점 더 아파왔다. 안되겠다 싶어 벤치에 앉아 있으려는데, 벤치가 움직이더니 자신의 얼굴을 내리쳤다. 마태우스의 의식이 점점 혼미해졌다.







마태우스는 꿈을 꾸고 있었다. 기생충으로 가득한 방안에 대통령과 자신이 서 있다. 어서 피하라고 말했더니 대통령이 웃고 있다.
"당장 피해야 합니다."
대통령은 더 큰소리로 웃었다. 웃는 와중에 대통령의 입에서 30센티 가량의 벌레가 나왔다.
"당신 도대체..."
마태우스가 놀라서 뒤로 물러나는데, 그 벌레가 날아서 마태우스에게 다가와 목을 칭칭 감았다. 대통령이 다시 입을 벌리자 십여마리의 기생충이 마태우스를 향해 날아왔다.
"으악!"
땀에 젖은 채 마태우스가 잠에서 깼다. 팬티가 축축했다. 이걸 어쩌나 싶어 두리번거리는데, 어디선가 은방울을 굴리는 소리가 났다.
"일어나셨나요?"
마태우스가 바라보니, 웬 젊은 처자가 마태우스를 향해 웃으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계속-


기생충 전문의
마태우스(bbbenji@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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