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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문화사] 잉글랜드편 3 - 경기 끝났습니다!


 


2009.09.14 월요일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영국은 우루과이, 멕시코, 프랑스를 상대로 2승 1무를 기록하며 8강에 진출한다. 십여 년 전, 잉글랜드가 예상외로 형편없는 팀이라는 사실에 놀랐던 참가국들은 이번엔 동네축구를 구사하던 약체가 갑자기 강해졌다는 사실에 놀랐다. 2편에서 설명했듯 위협적인 킥 앤 러시로 진화한 뻥축구는 상대 문전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주장 바비 무어의 지휘는 훌륭했고 바비 찰튼은 주특기인 캐논 슈팅 으로 골을 뽑아냈다.


 


바비 찰튼은 잉글랜드 역사상 가장 성공하고 가장 많은 영광을 누린 축구선수다. 1994년 기사 작위를 받아 Sir(경)가 된 그의 본명은 로버트 찰튼. 바비는 잉글랜드인들이 붙여준 애칭이다. 바비 찰튼의 A매치 49골 기록은 아직까지 잉글랜드에서 깨지지 않고 있다. 월드컵 2년 뒤인 68년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장으로 팀을 지휘, 챔피언스 리그(European Cup) 우승컵을 거머쥐기도 한다. 그는 이때 결승전에서 두 골을 몰아쳤다.


 


바비 찰튼에게는 특이한 이력이 하나 있다. 1958년 원정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을 태운 여객기가 연료충전을 위해 뮌헨에 들른다. 이 비행기는 이륙 실패로 인해 폭발하고 말았다. 이 사건을 뮌헨 비행기 참사(Munich air disaster)라고 부른다. 비행기 안의 44명 중 23명이 사망했고, 맨유 선수 8명이 사망자에 포함되었다. 이 참사에서 바비 찰튼은 행운의 생존자 중 하나였다. 이 때의 심리적 충격 때문에 그는 같은 해에 개최된 스웨덴 월드컵에서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지 못한다.


 


그러나 1966년은 그의 해였다. 바비 찰튼은 왼발의 명수였다. 중요한 순간마다 그의 왼발이 폭발했다. 왼발을 쓰는 축구선수는 흔치 않은데 당시에는 더 귀했다. 오른발에 신경이 집중된 상대 선수들은 갑작스런 왼발 슛에 대응할 타이밍을 잃어버리게 된다. 순간적으로 온 몸을 뒤틀며 시전하는 그의 왼발 슛은 상대 수비의 흐름을 깨트리기에 충분할 만큼 돌발적이었고, 파괴력은 대포알 급이었다. 


 



이것이 그 전설적인 레프트 캐논 슈팅


 


그런가하면 당시의 골키퍼 고든 뱅크스는 잉글랜드 역사상 최고의 수호신으로 꼽힌다. 그가 국민들에게 어찌나 신뢰감을 주었던지 그의 별명은 잉글랜드의 은행(Bank of England)이었다. 그의 성 뱅크스(Banks)에서 따온 별명이다. 또한 아직까지도 세계경제에 있어 그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영국의 금융 산업에 대한 자국민들의 자부심을 반영한 표현이기도 하다.


 



은행의 선방 장면


 


축구가 정치적인 게임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 아르헨티나와의 8강전은 그야말로 대리전쟁이라 할 수 있었다. 당시 영국과 아르헨티나는 포클랜드 전쟁의 영유권을 놓고 분쟁 중이었다. 언제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것도 월드컵 토너먼트에서 맞붙게 되었으니 반드시 이겨야 했다. 결과는 잉글랜드의 1:0 승리. 영국인들은 상대에게 기분 나뿐 승리를 했을 때 더 기뻐하는 경향이 있다. 선수들이 국민들의 승리감에 확실한 마침표를 찍어주었다. 경기 후 아르헨티나 선수들과의 티셔츠 교환을 거부한 것이다. 이 전례 없는 무례함에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기분이 얼마나 더러웠을지는 상상하고도 남는다. 반면 이 경기를 기점으로 잉글랜드의 월드컵 열기는 걷잡을 수 없이 고조되기 시작한다. 어쩌면 큰소리 전문가 알프 람지가 호언장담한 월드컵 우승도 꿈이 아니었다.


 


 



 


4강전 상대 포르투갈에는 유럽의 펠레, 흑진주, 흑표범 등 화려한 별명을 자랑하는 에우제비오가 있었다. 에우제비오는 축구역사상 최초로 불어 닥친 아시아 돌풍을 잠재운 주인공이었다. 돌풍의 주역은 바로 북한. 북한의 기계처럼 정확한 플레이와 빠른 스피드, 개미 같은 조직력, 근성과 투쟁심은 강호들을 패닉의 세계로 안내했다. 거기에 체력의 열세를 두 명의 선수가 업히고 띄워주는 고공플레이인 일명 사다리 전법 등,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까지 겸비한 팀이었다.


 


북한은 조별예선에서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에 3:0으로 대패했다. 하지만 강호 칠레와는 1:1로 비기며 선전했다. 1:0 승리로 우승후보인 이탈리아를 예선 탈락시킨 사건은 가히 전설적이다. 이 한 골의 주인공은 박두익. 당시 이탈리아 국민들은 끔찍한 고통을 선사했다는 뜻으로 박두익을 치과의사라고 불렀다.



재미있게도 칠레를 상대로 승리했던 이탈리아는 소련과 북한, 두 공산국가에 연달아 어이없는 패배를 당하며 예선 탈락했다. 극우의 대명사인 파시즘의 발명국 치고는 공교로운 인연이다. 그리고 먼 훗날 2002년에는 남한을 만나 고배를 마시니 이중으로 더블펀치를 먹은 셈이다.


 


북한은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서 전반 25분까지 3골을 몰아치며 기세를 올린다. 경기장이었던 구디슨 파크는 흥분과 경악에 휩싸인다. 경기는 이대로 끝나는 듯 했다. 그러던 중 에우제비오가 동료선수들에게 정신 똑바로 차리라며 고함을 친다. 포르투갈의 식민지 모잠비크 태생인 그는 십대에 부모님과 함께 포르투갈로 이주해온 이민 1세다. 팀 내 유일한 흑인선수이기도 했다. 동료들을 한바탕 갈군 에우제비오는 북한의 세 번째 골이 터진 후 2분 만에 골을 터뜨려버린다. 하프타임, 흑표범의 일장연설에 포르투갈 선수들이 각성한다. 에우제비오는 후반전에 내리 세 골을 몰아쳐 경기를 4:3으로 뒤집어버린다. 흑표범의 독주에 와해되어버린 북한 팀은 결국 3:5로 패배했고 돌풍은 그렇게 끝나고 만다.


 


그러다보니 잉글랜드에 있어 승부의 관건은 에우제비오를 어떻게 상대하는가에 달려 있었다. 에우제비오는 역시 굉장했다. 4경기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던 영국의 은행 은 흑표범에게 이번 대회 최초의 실점을 당했다.


 


바비 찰튼이 에우제비오보다 잘했냐 하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뱅크스는 에우제비오와의 대결에서 졌지만 포르투갈의 골키퍼는 그보다 훨씬 못했다. 에우제비오가 한 골을 기록할 동안 바비 찰튼은 2득점을 했고 잉글랜드는 2:1로 승리한 것이다. (포르투갈은 소련과의 3/4위전에서 승리한다. 포르투갈은 두 공산국가 모두를 상대로 승리, 이탈리아와 대조를 이뤘다.)마지막 남은 결승전 상대는 서독이었다.


 


역사상 최강의 라인업을 구축한 잉글랜드는 모든 경기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소화하며 경기장에 완벽히 적응한 상태였다. 물론 결승전 구장도 웸블리 스타디움이었다. 한편 서독은 이곳에서 한 번도 경기를 하지 못했다. 참으로 뻔뻔한 홈 어드밴티지였다. 게다가 경기장에 운집한 홈 관중은 무려 9만 3000 명이었다.


 


결승전은 서유럽 최대 라이벌의 대결이라는 점 외에도 중요한 이슈를 지니고 있었다. 잉글랜드는 2차 대전에서 나치독일을 패망시킨 주역이었다. 당시는 전쟁이 끝난 지 10년이 넘은 후였다. 다른 유럽국가에선 독일(동, 서독)을 향해 나치 운운하는 행위가 금기시되어 있었다. 반성할 줄 아는 패전국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차원이었다.


 


그런데 유독 영국인들은 나치에 대한 조롱을 서슴지 않았다. 전쟁에서 승리한데다가 전후 독일을 분할통지하기도 했으니 그 우월감에서 나오는 쾌감이란 실로 짜릿했을 것이다. 그렇게 놀려먹은 상대에게 진다는 건 정말이지 한심한 일이었다. 반대로 이긴다면 두고두고 우려먹을 수 있는 신나는 화젯감이었다. 경기에 임하는 잉글랜드 선수들의 비장함은 하늘을 찔렀다. 물론 상처 입은 서독 팀도 이를 갈고 있었다. 그리하여 양 팀은 역사적인 명승부를 펼치게 된다.


 


 




경기가 시작되자 윙 포지션을 비운 잉글랜드는 두터운 공격진을 적진에 투입, 킥 앤 러시의 진수를 보여주며 총공세를 펼친다. 서독은 서독대로 잉글랜드가 비워놓은 중원을 잠식하고 상대 골문을 압박했다.



이날 경기의 최대의 관건은 바비 찰튼과 프란츠 베켄바워의 대결이었다. 독일축구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기억되는 프란츠 베켄바워의 별명은 카이저(Kaiser 황제). 축구역사상 최고의 리베로로 기억되기도 한다(리베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탈리아편을 위해 남겨두도록 한다.).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의 대선배격이다. 한마디로 둘의 대결은 당대 최고의 공격수와 최고의 수비수의 외나무다리 미팅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서로를 집요하게 전담마크하며 무력화시켰고, 결국은 시합에서 사이좋게 지워졌다.(이야기전개에 해를 끼치는 밑의 Q&A는 보고 싶은 독자들만 보라.).


 


Q&A
베켄바워가 찰튼을 전담 마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어째서 공격수가 수비수를 전담마크 했을까? 리베로는 중심 수비수이지만 포지션의 특성상 공격의 시발점이 되기도 하며, 특히 베켄바워처럼 뛰어난 리베로는 상대의 허를 찌르는 역습을 하게 마련이다. 당시 시합에서 리베로에서 시작된 공격은 단숨에 잉글랜드의 골문을 위협하게 된다. 윙 포지션의 부재로 중원이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베켄바워의 마크맨은 적진 깊숙이 있는(그래서 그와 가까이 있는) 바비 찰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명승부의 주인공은 에이스 이외의 선수들이 맡게 된다. 전반 12분, 서독의 헬무트 할러가 잉글랜드의 초반 공세에 열광하던 관중석을 얼려버린다. 동료 지그프리트 헬트의 슛을 은행 고든 뱅크스가 훌륭히 쳐낸다. 그러나 흘러나온 공을 마침 근처에 있던 할러가 잡아 이삭줍기 골에 성공한 것이다.



이에 잉글랜드는 윙 포지션을 비운 대가로 구축한 공격진-로저 헌트, 피터스, 제프 허스트(베켄바워와 동반 자살한 바비 찰튼은 제외)-을 죄다 동원한 총공세를 펼친다. 간신히 버티던 서독 수비진은 불과 5분 만에 붕괴, 골문에서 36미터 지점에 프리킥을 내주고 만다. 프리킥은 제프 허스트의 헤딩골로 연결되면서 1:1 동점 상황이 된다. 이후 전반전이 끝날 때까지 양 팀은 시종일관 위협적인 슈팅을 선보였다. 양측 공격수 모두 거친 수비에 차단당하다보니 롱슛이 대안이었다. 그러나 두 팀 골키퍼 뱅크스와 틸코브스키의 선방을 뚫지는 못했다. 특히 뱅크스는 골이나 다름없는 슛을 두 번이나 막아냈다.


 


후반전의 양상은 전반전과 동일했다. 다만 선수들의 움직임이 오히려 더 격렬해졌다. 경기종료 15분 전, 잉글랜드의 파상공세로 공이 독일 문전에서 왔다 갔다 하는 사이, 잉글랜드의 피터스가 자신에게 흘러오는 공을 잡아 리벤지 이삭줍기에 성공한다. 이때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피터스의 골이 터진 골문 왼편에 자리한 귀빈석에 있었다. 그리고 곧 승리를 확신한 9만 3000명의 백성들이 합창하는 잉글랜드 국가를 듣는다.



잉글랜드 국가는 군주가 바뀔 때마다 새로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현 군주인 엘리자베스 2세를 위한 국가의 가사엔 당연히 여왕이 등장한다. 이 국가의 제목은 God Save the Queen, 신이시여 여왕을 보우하소서이다.


 


국가 듣기





존귀한 여왕이시여 만수무강하소서
신이시여 여왕을 보우하소서
그녀에게 승리, 행복, 영광을 주소서
우리를 오래도록 다스리게 하소서
... 우리 진심으로 목청껏 부르노니
신이시여 여왕을 보우하소서


 


이때 엘리자베스 2세의 기분이 어땠을 지를 상상하면 역시 군주란 참 할 만 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가는 시합종료 1분 전까지 우렁차게 계속된다. 그리고 충격 속에 뚝 끊긴다. 경기 시작 89분, 서독 미드필더 볼프강 웨버가 골을 터뜨린 것이다. 관중석에선 여왕을 찬양하는 국가 대신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때 엘리자베스 2세의 기분은 어땠을까. 군주에 대한 민중의 충성심은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다. 어쨌든 관중들에게는 그들의 여왕보다는 월드컵 우승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월드컵 결승전 역사상 최초의 연장전에 돌입한 잉글랜드 선수들은 다 잡은 승리를 놓친 터라 낙심한 상태였다. 서독 선수들은 그들대로 진이 빠져 있었다. 그러나 연장전에서도 죽어라 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월드컵사상 가장 논란거리가 되는 장면이 연출된다.



잉글랜드의 센터포워드 제프 허스트가 쏜 슛이 서독 골대 크로스바에 맞았다. 공은 그대로 수직낙하 하더니 골라인, 혹은 골라인 어디쯤을 찍고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골인가 아닌가? 수학적으로 설명하자면, 골의 중심은 골라인의 중심을 넘어갔거나, 넘어가지 못했을 수밖에 없다. 중간은 없고 0.5골이란 득점도 없다. 주심과 부심의 눈은 현미경이 아니지만 그들은 누군가의 손을 들어줘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골. 공은 어디에 떨어졌단 말인가?


 


스위스의 고트프리드 디엔스트 주심이 소련의 토피크 바하라모프 부심과 의논하는 동안 22명의 선수 대부분이 두 사람을 겹겹이 에워쌌다. 잠시 후 잉글랜드 선수 11명이 환호성을 지르며 하프라인으로 되돌아갔다. 독일 선수들은 심판에게 격하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결국 득점으로 인정된 것이다. 이때 경기를 중계하던 BBC의 전설적인 축구 해설가 케네스 울스텔놀므는 호들갑의 진수를 보여준다.


 



"네, 네, 그래요...[기대] 안 돼! 선심이 (골이)아니랍니다. 선심이 아니라고 말합니다...[절망] 골이에요! 골이에요![환호] 오, 저 독일인들 주심에게 열 받았군요! 선심한테도 열 받았습니다. 러시아어와 터키어밖에 할 줄 모르는(두 선심의 국적) 선심들한테 독일어로 떠들어봤자...[통쾌함]"


 


이 골은 영국인과 독일인 사이에서 40년이 넘게 논쟁중이다. 물론 잉글랜드인은 골이라고, 독일인은 노골이라고 주장하며 실제로 그렇게 믿는다. 양측 다 할 말은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때 홈 어드밴티지가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월드컵역사상 잉글랜드만큼 홈의 이점을 국물까지 빼먹은 나라는 아마 아르헨티나 말고는 없을 것이다(이 이야기는 차후 아르헨티나 편에서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연장전 남은 시간, 독일은 동점골을 위한 공격에, 잉글랜드는 승리를 굳히기 위한 수비에 마지막까지 사력을 다했다. 2002년 한국-이탈리아전을 경험한 우리로서는 이 결승전의 에너지와 밀도가 어땠는지 쉽게 상상이 갈 것이다.



시합 종료 직전, 관중들이 경기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우승도 좋지만 9만 2999명을 뚫고 집에 돌아가기란 보통 일이 아니었을 테니까. 그 모습은 케네스 울스텔놀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이 사람들 경기가 끝났다고 생각하나 보군요.(They think its all over ... )"



그가 위의 멘트를 하는 순간, 독일의 마지막 맹공에 시달리던 잉글랜드의 공이 제프 허스트에게 흘러간다. 그는 가능한 한 시간을 벌어보려는 심산으로 공을 적진 쪽으로 멀리 차 보냈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그 공이 서독의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케네스 울스텔놀므가 반사적으로 외쳤다.


"경기 끝났습니다!( ... It is now!)"



이 멘트는 당시 잉글랜드에서 크게 유행했고 지금도 종종 사용된다. 영국엔 "They think its all over"라는 제목의 TV 쇼도 있다. 여담이지만 축구황제 펠레가 뛰던 시합을 중계하던 케네스의 멘트도 전설의 하나로 남아있다.



“뭐... 뭐 이런 천재가!"



그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어쨌든 전문 해설가다운 반응은 아니었다.
이 시합에서 케네스보다 중요한 인물은 조련사 알프 람지, 그리고 제프 허스트였다. 이 시합 전까지 무명에 가까웠던 허스트는 유일무이한 월드컵 결승전 해트트릭을 기록, 일약 잉글랜드의 영웅으로 떠오른다. 이렇게, 종주국은 종주국에서 우승했다.


 



이 사진은 잉글랜드 역사상 가장 많이 소비된 이미지 중 하나이다.


 


홈에서의 우승이니 잉글랜드 국민들이 얼마나 흥분했는지는 충분히 상상이 간다. 우승의 기쁨에 "짝퉁"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며 수십 년 간의 망신을 만회한 통쾌함이 더해졌다. 또 한 번 자신들에게 진 나치를 비웃을 수 있는 기회도 덤으로 얻었다. 잉글랜드 언론은 "2차 대전의 승리를 재현했다."는 식의 언행으로 유럽인들의 눈총을 샀다. 종주국의 즐거운 비명에 신사도는 없었다.



반면 서독은 충분히 억울한 구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서독 팀 주장 우베 실러는 "결승 진출은 멋진 경험이었다. 잉글랜드는 우승할 가치가 있는 팀이었다."라고 말했다. 이런 서독 축구인들의 태도는 다른 유럽인들의 찬사를 얻었다. 경기에선 졌지만 매너에선 이긴 셈이다.



그러나 서독이 복수심마저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잉글랜드는 그 강력한 서독(그리고 지금의 독일)을 원수로 만들고 말았다. 필드 위의 게르만 전사들은 월드컵 우승으로 기고만장해진 잉글랜드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다음 편에서는 중요한 길목마다 서독(독일)을 만나 짓밟히는 잉글랜드의 모습과 잉글랜드 축구의 날개 없는 추락, 그리고 현재까지를 설명할 예정이다. 4편으로 잉글랜드를 마무리 짓고 어서 다른 나라로 넘어가고 싶지만 지면이 허락될지 모르겠다. 가능하면 프리미어리그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은데 말이다. 그럼 여러분, 다음 시간에 보십시다.


 


 


 


필독(the.dog.on.the.fiel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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