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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결심의 문제다.

 

2009.9.14.월요일
김지룡

 

 

아내가 애를 키우면서 하는 일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경이롭기 짝이 없다. 아내는 팔방미인이다. 집안에서 요리사, 보모, 교사, 가족 주치의, 안전 요원, 위생 담당관, 의상 코디 역할을 척척 해낸다. 그 중 아빠인 내가 제대로 하는 일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내가 일주일 정도 집을 비워도 집안은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잘 돌아가지만, 아내가 하루만 없어도 집안이 엉망이 된다.

 

그래서 가정이 행복하려면 먼저 엄마가 행복해야 한다. 가정을 유지하는 일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들고, 끝이 없고, 어렵고, 재미도 없다. 한마디로 지긋지긋한 일이다. 이런 일을 하면서 행복을 느끼기는 어렵다. 집안일에서 손을 놔버리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들 것이다. 아빠가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가정이 행복할 수 있다.

 

아빠들은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회사에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이 고객 만족일 테니까. 별 이유도 없이 성깔을 부리는 고객에게도 깍듯이 대해야 한다. 아빠들은 고객만족의 원칙과 방법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집에서는 아내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일까.

 

고객들은 조금만 심기를 건드려도 곧장 나가버리거나 윗사람에게 항의하지만, 아내는 계속 자신의 곁에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내도 고객도 사람이다. 고객은 만족시켜주지 못하면 떠난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만족시켜주지 않으면 떠나기 마련이다. 지금 떠날지 나중에 떠날지 모를 뿐이다.

 

아내를 만족시키고 행복하게 해주려면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해야 한다. 하지만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고객을 사랑하는 일이 훨씬 쉬울 것이다. 여성인데다, 외모가 받쳐준다면... 아니, 외모와 관계없이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몇 년 전까지 부부싸움을 무척 많이 했다. 이유를 대자면 끝도 없이 많지만,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열정적인 사랑이 식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열정적인 사랑의 수명은 18개월 정도라고 한다. "아니, 그렇게 길단 말이야"라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아내와 처음 만난 것은 15년 전이고, 결혼생활은 14년째다. 연구 결과가 맞든 지나치게 길게 잡았든, 아내와 나와의 사이에 열정적인 사랑은 이미 식은 지 오래다. 성격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른 두 사람이 사랑이 식은 채로 살고 있으니 티격태격 싸우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부부싸움을 하는 것이 지겨워져서 다시 아내를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고민해 보았다. 기억상실에 걸리거나 미쳐 버린다면 가능한 일일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다.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일까. 불현듯 한 가지 방법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내를 사랑하기로 결심하면 된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결심의 문제다. 아내를 다시 뜨겁게 사랑할 수는 없지만, 따스하게 사랑할 수는 있다.

 

아내를 사랑하겠다고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다. 먼저 자기 암시를 걸었다. 나는 정말 아내를 사랑한다고 의식적으로 자주 생각했다. 그러니까 진짜로 그런 것 같았다. 자기 암시는 일종의 최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자신을 속이기 시작했다. 아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았다. 아내의 결점을 보통과는 다른 잣대로 보기로 했다.

 

* 설거지나 청소를 대충하는 것은 지저분한 것이 아니라 소탈한 것이다.
* 잠이 많은 것은 게으른 것이 아니라 느긋한 것이다.
* 신경질이 많은 것은 감수성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아내를 사랑하기로 결심을 한 뒤로 예전의 열정 비슷한 것이 다시 생긴 것 같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지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옆집 아이가 똑똑하고 예의바르고 얼굴이 예뻐도 "이 아이가 내 아이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괜찮은 여성을 보거나 만나면 "저 여자랑 결혼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자주 했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상상을 하지 않게 되었다. 아내도 아이들처럼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예전에는 아내와 심하게 다투면 나도 모르게 "확 이혼해 버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내와 헤어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무의식 속에 굳게 박힌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부부싸움을 크게 하다보면 문득 "이 여편네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를 사랑하기로 한 결심의 후유증이다.

 

1년 전 쯤 아내와 싸우다가 나도 모르게 "당신,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뱉었다. 아내는 나에게 일주일이 넘도록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말이 극진한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을 왜 모르는 것일까.

 

애 키우는 일에 미쳐서
문화평론에서 자녀교육으로 직업을 바꾼
김지룡(blog.naver.com/edu_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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