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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사랑법 2 ] 섹스호러 변신 이야기

 

2009.09.16. 수요일
이동현

 

원하는 상대를 얻기 위해서라면 제우스는 반인반수 사티로스나 완전금수 황소, 백조, 뻐꾸기, 독수리로 변신했고, 때로는 상대 여인이 모시는 신이나 유부녀의 남편으로도 변신했으니 정확한 상황판단과 신출귀몰한 변신에는 발군이었다. 번개나 빗물 같은 자연현상 역시 그의 변신영역에서 빠지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독수공방하게 된 기구한 처녀 다나에와의 만남이 그렇다. 다나에는 아르고스의 공주였으나 "딸이 낳은 아들에게 살해당할 것"이라는 신탁을 듣고 왕은 하나뿐인 딸을 감옥에 가두어버렸다. 보통 감옥이 아니라 지하감옥이었고 보통 지하감방도 아닌 청동으로 만든 감방이었으니 그야말로 철통같은 경계를 한 셈이다.

 


렘브란트 <다나에>

 

젊은 나이에 빛도 들지 않는 청동감방에 갇혀 남자라곤 만날 수 없다니 참으로 불운한 운명이었으나 그녀에게는 한 가지 행운이 남아 있었다. 바로 빼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 청동감방 밖에서도 다나에의 미모에 대한 소문이 돌았고 제우스가 이 귀중한 정보를 흘려들을 리 없었다.

 

그리하여 제우스는 이 난공불락의 요새에 침투하기 위해 색다른 계획을 세웠다. 그는 황금빗물로 변신해 청동감방의 틈을 파고들었고 무사히 감옥에 침투한 뒤에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다리 사이까지 파고들었다. 이렇게 태어나게 된 아이가 바로 영웅 페르세우스다.

 

바람둥이의 미친 짓

 

오직 연애를 위해 자연계의 모든 것으로 변신한 제우스는 대단한 연애술사였지만 그의 창조적 애정행각이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다른 수많은 이들처럼 제우스 역시 ‘결혼’이라는 미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제우스였기 때문에 더더욱 미친 짓이었다. 그리고 헤라와 결혼하게 되면서 제우스의 연애사는 복잡하게 얽히고 만다.

 

제우스는 헤라의 동생으로 태어났으나 헤라보다 먼저 자라난 오빠이기도 하다. 이들의 복잡한 가계도에는 사연이 있다. 제우스와 헤라의 아버지 크로노스는 자신이 아버지 우라노스를 죽인 것처럼 자식들에 의해 죽음을 맞을까 두려워 아내 레아가 자식을 낳자마자 먹어버렸다. 어머니 레아는 거듭해서 남편에게 자식을 빼앗기다가 막내아들 제우스가 태어나자 남편 몰래 빼돌려 키웠다.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성장한 제우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그 뱃속에서 자신의 형제들을 구출해냈다. 따라서 헤라는 원래 제우스보다 먼저 태어난 누나였으나 크로노스에게 먹혀버린 뒤에 장성한 제우스에 의해서 다시 세상 빛을 보았기 때문에 그보다 어린 누이동생이기도 했다.

 


고야 <자식을 잡아먹는 크로노스>

 

헤라는 아름다운 여신으로 자라났고 제우스의 작업망에 걸려들었다. 제우스는 누이였던 데메테르를 강간하기 위해 황소로 둔갑했던 전적을 떠올렸다. 이번에는 분위기를 바꿔서 우악스런 황소가 아니라 뻐꾸기로 변신했다. 사정없이 번개를 휘두르는 최고 신이면서 가녀린 한 마리 새로 변신하다니 얼굴도 두껍다. 기왕 변신을 했으니 무대도 그럴듯하게 꾸며야 했다. 그는 형제 포세이돈에게 올림포스 산에 비바람을 불러와달라고 부탁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어느 날 작은 뻐꾸기 한 마리가 애처롭게 날아들자 이를 불쌍하게 여긴 헤라는 흠뻑 젖은 새를 가슴에 품어주었다. 남자의 창조력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역시 사랑에 빠졌을 때다. 인터넷 게시판에 세 줄 이상의 글을 올려본 적이 없는 남자라도 사랑에 빠지면 구구절절한 장문의 연애편지를 쓸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물론 기후까지 조작해 가면서 완벽한 작업환경을 설정할 수 있는 제우스의 경우와 인간의 성공률을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헤라의 가슴에 안긴 뻐꾸기는 본색을 드러내 본래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헤라를 겁탈하려 들었다. 그러나 헤라는 결혼을 약속하지 않으면 절대 성관계를 맺을 수 없노라고 끝까지 저항했다. 천하의 바람둥이에게도 이 여자가 바로 나의 동반자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당장의 욕망에 눈이 멀어 앞뒤 잴 겨를이 없던 차에 임자를 만난 것인지 제우스는 결국 헤라와 결혼을 하고 말았다.

 

그리스 최고 작업남 제우스의 연애행각은 결혼으로 극적인 국면전환을 맞았다. 질펀한 총각시절은 끝나고 끈적한 불륜기가 시작된 것이다. 제우스 특유의 막무가내 들이대기 사랑법은 결혼 전이나 후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나 여기에 다른 여자, 남도 아닌 아내가 개입되면서 이전에는 소소했을 연애사건이 보다 심각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해밀턴 <제우스와 헤라>
헤라는 젊은 여인으로, 제우스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으로 설정한 모습이 흥미롭다. 노인이 아름다운 여인에게 매달려 사랑을 호소하는 모습이 마치 춘화를 보는 것 같지만 헤라를 상징하는 공작새와 제우스의 상징인 독수리를 보면 이는 분명 그들의 첫 만남을 표현한 것이다.

 

 

 

 아내의 사정

 

신들의 왕과 결혼한 헤라는 신들의 여왕이라는 빛나는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제우스와의 결혼을 원했던 헤라는 과연 현명했던 걸까? 결혼 직후부터 바람둥이 남편의 외도 때문에 지겨운 가슴앓이가 시작되었다. 유부남이 된 제우스는 일부일처 결혼제도의 원칙 따위는 과감하게 무시하고 총각시절부터 지켜온 자신의 생활방식을 유지했다. 헤라에게는 남편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런 남자와 결혼을 해버린 자신을 원망하는 수밖에.

 

제우스가 달의 여신 셀레네와 관계를 맺어 후일 아테네의 왕이 된 아들을 얻었을 때 헤라는 침묵했다. 제우스가 님프 마이아를 건드려서 아들 헤르메스를 얻어오자 헤라는 한술 더 떠서 남의 자식에게 자기 젖을 물리기까지 했다.

 

바람난 남편이 데려온 업둥이가 뭐가 예쁘다고 자기 젖을 먹여 키우겠나 싶지만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을 수 없는 법이고 이미 태어난 아기를 세포 단위로 분해해서 정충으로 돌려보낼 수도 없는 법이다. 헤라가 헤르메스를 정성스럽게 양육했던 이유는 착한 아내로서 못된 남편에게 나름대로 시위를 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헤라는 이런 식으로 남편의 바람기를 꾹꾹 참아냈지만 결국 한순간에 폭발하고 말았다.

 

헤라는 제우스의 아기를 임신한 레토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제우스가 수태시킨 아기가 쌍둥이었으니 펀치 한 방에 두 배의 데미지를 입은 셈이다. 게다가 이번에 태어날 쌍둥이들은 헤라의 자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신이 될 거라는 예언도 있었다. 친구 아들이 잘나가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 아닌데 연적의 아이들이 그렇다면 속이 뒤집어질 일이 아닌가!

 

헤라는 이 괘씸한 쌍둥이가 그리스 어디에서도 태어나지 못하도록 어디든 레토를 받아주는 곳은 그 땅을 저주해 큰 벌을 내리겠노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리하여 쌍둥이를 임신한 레토는 만삭의 몸으로 출산장소를 찾아내야 했다. 그리스 각지를 헤매던 레토는 에게 해를 둥둥 떠다니는 섬 델로스에 자리잡았다. 이곳은 예전에 연애에 실패한 제우스가 황무지로 만들어버린 섬으로 레토의 자매, 아스테리아가 죽은 곳이기도 했다. 이런 우울한 섬에서 천신만고 끝에 태어난 쌍둥이 남매가 아르테미스와 아폴론이다. 그리고 이들은 예언대로 그리스 신화에서 맹활약을 펼친다.

 

그녀의 남편이 연애에 실패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처럼 최고의 여신이 복수에 실패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으나 헤라는 고작 티탄의 딸에 불과한 레토와의 대결에서 참패했다.

 

원인은 정보유출이었다. 헤라가 출산의 여신에게 출산금지 명령을 내린 사실을 모든 신들이 알아버린 것이다. 레토가 위대한 쌍둥이 신을 낳을 거라는 예언에 잔뜩 기대한 구경꾼들은 잠자코 구경하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이 사건에 끼어들었다. 여러 신이 합심해서 출산의 여신을 매수했고 레토의 출산을 도운 것이다. 결국 헤라는 복수에 실패하고 평판만 나빠지고 말았다. 타지에서 외롭게 쌍둥이를 낳은 레토도 체면을 구겼지만 이런 상황을 만든 여신 헤라도 만만찮게 체면을 구긴 셈이다.

 

 

 

 변신괴담의 최고봉

 

제우스는 아내의 속마음을 외면한 채 다른 여자의 속살을 계속 찾아다녔고 새로운 여인과 접선하기 위해 색다른 계략을 꾸몄다.

 

암피트리온의 아내 알크메네는 정숙하기로 유명했는데 그녀의 남다른 정절에는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었다. 암피트리온은 자신의 장인이 될 알크메네의 아버지를 죽인 남자였다. 실수든 우연이든 알크메네는 자기 아버지를 살해한 남자 손에 이끌려 먼 테베 땅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결혼조건으로 전장에서 죽은 오빠들의 복수를 내세웠다. 여자는 거절을 우회해서 말하거나 시간을 벌기 위해서 이런 조건을 내민 것이었을지 모르나 남자는 진지하게 복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당시 테베에는 신출귀몰한 암여우가 출몰해 매달 남자를 하나씩 잡아 먹어치웠다. 암피트리온이 복수를 위해 테베의 왕에게 병력을 요청하자 왕은 먼저 골칫거리 여우를 제거해 달라는 조건을 걸었다.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복수를 해야 하는데 복수를 위해서는 암여우와 사생결단을 해야 할 상황에 처한 암피트리온에게 도움의 손길이 왔다. 제우스가 사건에 개입해 여우를 돌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대체 제우스는 왜 자신이 점찍은 여자와 결혼을 약속한 남자를 도와주었단 말인가? 암피트리온을 전장으로 내보내기 위해서였다. 남자가 없어야 여자를 구슬러볼 기회가 생길 테니 말이다.

 

그러나 알크메네가 전장으로 떠난 남편을 기다리며 다른 남자에게는 눈길도 안 주자, 여자 꼬시기에 도가 튼 제우스라 해도 보통의 유혹으로는 성공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제우스는 남편 암피트리온의 모습으로 변신해 알크메네의 침실로 들어갔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동물이 인간인데 그 인간이 내 남편인 척 잠자리에 들어온 신이라면 정말 무섭겠다. 이 괴담은 변신 이야기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제우스가 다른 남자 흉내까지 내면서 알크메네와 동침하려고 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거인 티탄족과의 싸움을 앞두고 자신을 도울 강력한 후계자가 필요했는데 알크메네가 영웅을 낳을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던 까닭이다. 가장 훌륭한 영웅을 얻기 위해서 제우스는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 밤의 길이를 세 배로 늘이게 했다. 남편 행색을 하는 남자와 세 배로 길어진 밤을 보낸 알크메네는 긴 밤이 끝나기도 전에 진짜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방금까지 침대에 누워 속정을 나누었던 남편이 전장에서 돌아온 갑옷차림 그대로 들이닥쳤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놀라운 그 밤은 또다시 길어지게 되었다. 하룻밤에 한 모습의 두 남자와 동침한 알크메네는 쌍둥이를 낳게 되었는데 쌍둥이 중 제우스의 아들이 영웅 헤라클레스다.

 

한편 제우스는 올림포스의 신들을 모아놓고 선언했다. "이번에 태어날 알크메네의 맏아들에게 미케네와 아르고스 지역의 지배권을 물려주겠다." 이 말을 들은 헤라 여신의 분노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엄연한 정실부인이 낳은 아들은 개차반 취급하고 외도로 얻은 아들을 후계자로 삼겠다니 괘씸해서 펄펄 뛸 노릇이다.

 

헤라는 출산을 관장하는 자신의 딸 에일레이튀이아를 다시 한 번 동원해 헤라클레스의 탄생을 저지한다. 출산의 여신은 나중에 수태된 인간의 아들을 신의 아들 헤라클레스보다 먼저 세상에 내보내 장자로 만들었다.

 


헤라클레스가 뱀을 잡는 모습을 지켜보는 암피트리온과 알크메네

 

이후로도 헤라 여신은 무수한 시험을 던져 헤라클레스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폼페이에 남아있는 한 벽화는 젖먹이였던 헤라클레스에게 헤라가 독사를 보낸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갓난아기에 불과한 녀석이 뱀을 맨손으로 때려잡는 광경을 알크메네와 암피트리온 부부가 놀란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 화면 좌측 위에 좌대에 앉은 독수리는 제우스의 화신으로 제 아들이 뱀과 씨름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다.

 

 

 

불륜의 가면무도회

 

유부녀의 남편으로 변신하면서까지 바람을 피우고 다닌 제우스는 헤라를 사랑하지 않았을까? 아니다. 그는 헤라를 얻기 위해서 조류로 변신해 폭풍우를 헤치고 날아가지 않았던가. 제우스는 그저 다른 여자도 만나고 싶었던 것뿐이다.

 

유부남이 바람을 피우는 이유는 자신의 부인보다 ‘나은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다. 이런 남자의 눈에는 어떤 여자라도 아내와는 다른 매력을 가진 여자로 보인다. 술이라도 한잔 들어가면 더욱 그렇다. 앞으로의 인생을 함께할 것도 아닌데 굳이 여자의 결점을 찾아내는 데 정력을 낭비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제우스는 "내가 신들의 왕인데 말이지~" 하면서 들이대지 않았다. 한 줄기 빗물, 한 마리의 뻐꾸기 같은 소박한 배역을 맡았다. 자신과는 전혀 다른 인간 남자, 그녀가 그리워하는 남편의 역할도 능숙하게 연기해냈다. 아내 몰래 다른 여자의 사랑을 얻는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인간계의 바람둥이 남편들도 어떤 모습으로든 변신할 수 있다. 부인 앞에서 착한 남편의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다른 여자의 벌거벗은 몸을 보고 싶어 연극을 하는 남자들, 그러나 여자가 정말로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남자의 벌거벗은 영혼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신들의 사랑법/ 이동현/오푸스/14,000원

 

 

 

이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