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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모든 예술과 자연과 인간의 미래 - 줄리언 스팰딩

 

2009.09.18.금요일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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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경계를 뛰어넘은 한국 연극, 에딘버러를 홀리다

 

 

 

 

 

 

줄리안 스팰딩과의 인터뷰는 아주 우연히 이루어졌다. 극단의 PD와 인터뷰를 나누는 동안 줄리안은 소극장 입구에서 서류봉투에 꽁꽁 싼 것을 떠맡기고는 자리를 떠났다. 당신은 누구세요? 이건 뭔가요? PD의 질문이 이어졌으나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밝히지 않고, 봉투 안에 다 있다고만 답할 뿐, 그저 아름다운 연극을 선사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한다면서 손을 흔들며 사라져갔다. 열어본 봉투 속에는 한국어로 번역된 그의 저서 <미술, 세상에 홀리다>와 그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주소와 이메일을 메모해 두었다가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메일을 보냈다.

한국 연극이 당신에게 어떻게 다가갔는지 궁금하다, 당신이 어떻게 몽연에 매료되었는지 이유를 자세히 듣고 싶다 고 했다. 다음날 휴대폰 액정에 낯선 영국번호가 떴다. 정중한 목소리, 줄리안이었다.

나는 연극전문가가 아니오. 그저 정원을 가꾸며 틈틈이 글을 쓰는 사람에 불과하지. 나를 만나는 건 어렵지 않아요. 허나 내가 뭔가 아주 대단하고 근사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는 마시오.

 

 

 

 

그가 직접 체임버 스트릿에 위치한 극장에 찾아와 편지와 책을 주고 간지 대략 24시간 후, 나는 그의 아파트 옥상정원 옆 작업실에서 숏브레드와 중국차를 놓고 그를 마주하게 되었다. 생과 사를 관통하는 연극으로부터 출발해서 영원과 지속, 문명의 보존, 우리가 잃고 놓친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하느라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고백하는데 지금껏 나눴던 어떤 대화보다도 흥미롭고 충만하게 교감하는 순간이었다.

 

 

 

 


 

 

 

 

 

 

 

 

-줄리안, 반갑습니다. 당신의 책을 다 읽지 못했으나 탄생과 죽음, 재생, 상징주의에 대한 당신의 해박한 지식에 감탄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나요? 다 읽은건 아니지만 어쨌든 책을 읽고 나니 나는 왜 당신이 몽연에 감동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숙녀에게 몇 살인지 물어봐도 되나요? (웃음) 나는 늙었고 당신보다 오래 살았어요. 그러니 아는 것이 좀 더 많을 지도 모릅니다. 몽연은 내가 이야기하려던 것으로 가득 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상징이었어요. 무대 연출을 볼까요? 광목천으로 소극장의 무대를 분할하고 그림자인 남편과 실재인 미망인은 그 천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닿지 못합니다. 꿈에라도 제발 나타나 달라고 말하는 미망인의 목소리는 한국어를 모르는 내가 들어도 애절하지요. 그리고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발성하는 그 노래, 그걸 뭐라고 하죠?

 

 

-판소리에요. (발음을 어려워 하는 줄리안) 판.소.리. 맘에 들었나요?

 

 

그래요 판소리! 정말 매혹적이었어요. 지금까지 들었던 음악과는 차원이 다른 음악이에요. 그 노래가 더 길었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을 했어요. 아쉬웠어요.

 

 

-노래뿐만이 아니라 이야기 전달조의 나레이션, 약간의 손동작, 북소리와 함께 진행됩니다. 심지어 청중들이 끼어들 수도 있어요. 한사람이 진행하는 한국적인 오페라라고 하면 이해가 갈까요? 정식으로 완창을 들으면 6시간도 넘어요.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 만큼은 아니지만 길죠? 그래도 듣다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답니다. 음악의 매력은 그렇게 강하죠.

 

 

 

 

결혼식 의상도 아름다웠고 꿈속을 헤매이며 남편을 찾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펄럭이는 천은 정말 관능적이었습니다. 내가 오랫동안 주시해온 심볼리즘을 관통하는 작품이에요. 정말 잘 된 작품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작품에 대해 더 이야기 할 수 있어서 기쁘고 반가울 뿐이에요.

 

 

-미장센 역시 뛰어나요. 까다로운 당신의 심미안을 매혹시켰으니... 당신의 책을 훑어보았는데 곳곳에 직접 그린 수채화 도안들이 들어있더군요. 어제 받은 편지에 그려진 신라금관도요. 빠리에서 아주 인상깊게 보았다고요?

 

 

그 금관의 형태는 무척 안정적이면서 조화로웠어요. 직선과 곡선과 금속과 비금속이 모조리 들어가 있더군요. 그리고 관 아래로 늘어뜨린 장식은 확실히 서양의 것과는 다른 것이었어요.

 

 


보내온 편지 - 금관에 대한 이야기

 

 

-우리 조상들은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분들이었으니까요. 중국과 일본과는 다른 치우치지 않은 균형미는 우리의 문화유산에서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이미지에요. 정확한 연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5세기 경 제작되었고요. 당신의 책에서처럼 알타미라 벽화나 라스코 벽화도 놀랍지만 그 당시의 신라의 정교한 금속공예기술은 상상을 초월해요. 금관 외에도 숱한 것들이 있죠. 아직까지도 대체 어떻게 만들었는지 신비를 풀지 못하는 커다란 종도 있어요. 당신을 매혹시킨 금관이 만들어진 신라의 고도인 경주는 제 고향은 아니지만 가장 좋아하는 도시 중 하나에요. 도시 전체가 유적지이고 끝없이 볼 것들이 있어요. 한국에 가게 된다면 꼭 한번 가보기를 권해요.

 

 

언제 처음 그 금관을 봤어요?

 

 

-어릴 적 종종 티비에서 해주는 사극에서 처음 보았고, 그 이후 실물로 본건 박물관에서였어요. 가족여행이었고 여섯 살 즈음으로 기억해요.

 

 

이런, 당신이 부럽군요. 나에게는 그저 신기하고 새로운 미지의 아름다움을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접했다니. 꼭 한국에 가보고 싶군요.  

 

 

-당신에게는 북방의 아테네라 불리우는 에딘버러가 있잖아요. 당신이 한국적인 것에 반한 것처럼, 저 역시 에딘버러를 매일 조금씩 더 발견하고 있어요. 당신의 이 옥상정원에서 에딘버러 성을 한눈에 볼 수 있다니! 나는 당신이 부럽습니다.

 

 

 

 

프린지에서 좋은 공연을 만나기를 기대하는 건, 일종의 제비뽑기와도 같아요. 사실 에딘버러의 페스티발은 페스티발을 위한 페스티발이 되어버렸죠. 그런데 나는 <몽연>을 만났으니 행운이 함께했던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평상시라면 절대 만날 수 없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극단의 작품을 집 근처를 걸어가는 수고만으로 볼 수 있다니, 좋은 세상이에요.

 

 

-올해는 3만여개의 공연이 한달동안 쏟아졌어요. 페스티벌 사무국에서 전해들었는데, 한사람이 맘먹고 매일매일 3-4편씩 대략 3년을 봐도 다 못 본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리고 퀄리티는 보장되지 않아요. 확실히 어떤 공연은 시간낭비에요. 길거리 위의 지나친 광고와 쏟아지는 팜플렛은 공해에 가깝고, 사람들은 다들 들떠있어요. 아뇨, 들떴다기 보단 이건 일종의 광기이기도 해요. 프린지가 에딘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발처럼 큰 극장에서 규모있게 진행되는게 아니니 일종의 모험을 감수해야 하기도 하지만, 그 발견의 가능성이 역설적으로 프린지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는 아직도 운명과 우주 전체의 알 수 없는 원리에 의해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죠. 이렇게 다른 문화권에서 온 서로가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새삼스럽게 다시 그런 생각이 들어요. 요즘 새로 쓰고 있는 책은 별과 우주와 자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몽연에서 내가 주목한 건, 실제 발견된 원이엄마의 사부곡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거에요. 서양문화권에서도 늘 여성을 지칭할때 누구의 엄마, 로 이름이 치환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대체로 큰 아들의 이름이 되지요. 그 큰 아들이 가족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니까요. 아들이냐 딸이냐에 상관없이 적통도 중요합니다. 지금의 엘리자베스 여왕을 봐도 그래요. 그녀가 스물 초입의 나이에 여왕이 된건 단 하나의 이유, 적통이었기 때문이었어요.
한국에서도 그렇게 결혼한 여자는 누구의 엄마로 불리게 되나요?

 

 

-네. 집안의 가풍에 따라 조금 다르겠지만 보통은 큰아이, 큰 아들의 이름을 넣어 누구의 엄마로 부릅니다. 저희 어머니도 제 3자에 의해 종종 그렇게 지칭되지요.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전환되면서 인류의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볼 수 있죠. 태양과 달처럼요. 한국에서도 아들을 갖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문제입니까?

 

 

-전통적으로는 아들을 낳아 성을 물려주고 대를 잇는 것이 여성의 의무였어요. 그런 재생산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여성의 죄로 취급했을 정도로요. 아들에 대한 선호는 여전히 곳곳에 남아있다고 봐요. 특히 윗세대에서는 이런 선호도가 심했죠. 결국엔 성비 불균형이라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내가 가장 끌렸던 것은 바로 이런 몇가지 공통점들이에요 우리는 무척이나 다르지만 또 한편으론 비슷한 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더 그렇고요. 문명의 발원 이후 동양과 서양에서 전혀 다르게 이룩되어온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들을 보면 정말 신기합니다. <몽연>에서 드러난 것처럼 한국의 전통 문화는 참 매력적입니다. 나는 한국을 가본적이 없으니 중국을 예로 들어도 될까요?

 

 

중국의 경우, 20세기 이후 전통과는 완전히 단절되어 버렸죠. 사람들은 유럽과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스스로의 고유성을 잃어버렸지요. 그들은 경제적으로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가난은 상태를 보존해줍니다.
그들의 삶은 윤택해졌지만 현재 중국에서 천자가 통치하던 시절의 모습은 전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칼로 썰어낸 듯이 과거의 역사와 단절되어 있죠. 지난 역사는 유적으로 박제되었습니다. 음력을 따르며 농사를 짓고, 제사를 모시고 자연의 일부로서 살던 그들은 이제 서방국가의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삽니다. 전통의상과 가옥은 일상생활 속에서 사라져버렸고, 음력이 아닌 태양력을 쓰며, 도시의 한복판에서 녹지와는 분리된 삶을 살지요. 더욱 놀라운 건 그들이 그런 단절에 대해 무감하다는 겁니다. 오히려 서방국가처럼 되기를 꿈꾸며, 상하이의 마천루와 현대적인 도시를 자랑으로 내세웁니다. 그렇게 고유의 문화를 잃어가는 건 세계화가 아니라 서구화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콜럼버스의 말대로 지구가 둥근 것이 아니라, 이제는 어딜가나 편평하다는, 한 마디로 세상 어디를 가도 별다를 게 없이 비슷하게 살고있다는 말이 있죠.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시아의 근대화는 자발적으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친 유럽에서도 내부적인 진통을 겪으며 근대화를 이루지 않았나요? 아시아는 탐욕스러운 제국주의의 논리에 식민지로 몰락하거나 유린당하며 타의적인 근대화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데올로기의 충돌과 냉전시대까지 겪어내야만 했죠. 어쨌든 그것은 자발성을 상실한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짧은 시간이었어요. 그 과정에서 개방과 계몽을 강요받았습니다. 자신들이 지니고 있던 것에 대한 가치를 재고할 틈도 없이, 쥐고 있는 것을 버리고 서구화를 추구할 수 밖에 없도록 내몰렸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공안정부에 대해서는 저도 할말이 없습니다만, 1940년대의 역사를 살펴보면 왜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동의하게 됩니다.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요즘 한국에서는 다시 전통가옥을 선호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햇볕과 바람과 사계절의 기후변화를 고려한, 종이와 나무와 기와로 만들어진 집이에요. 물론 불편한 점이 있을지 모르지만 한옥은 굉장히 우수한 가옥입니다. 인간으로서 이성에 대한 무한한 믿음으로 오만하기 보다는 자연의 일부로서 살아가고자 했던 우리 조상의 자세가 곳곳에 배어있어요. 무작정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루고자 했던 사람들은 이제 여유를 찾았습니다. 가난이 보존의 역할을 한다는 데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가난을 떨쳐버린 대신 전통과의 단절이란 댓가를 치른 걸지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이제는 사람들이 다시 자연의 일부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야 할 시점이기도 하고요.

 

 

 

 

에딘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발에서는 계몽주의를 바탕으로 포럼을 열고 있습니다. 나는 계몽주의 시대가 인간의 이성, 빛으로 밝혀진 시대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때는 여전한 어둠이었어요. 왜냐면 계몽주의가 우리가 자연에서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앗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건 여전히 암흑의 세상이었습니다. 밝힐 필요가 있다는 표현을 쓴것도 같은 원리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중세에 살던 시절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습니다. 물론 위대한 사상가나 철학가들이 나타났고 과학적 발견들이 이어졌습니다. 다윈이 바로 저 쪽 언덕을 걸어다니며 <종의 기원>을 구상했고요. 하지만 그것이 과연 진정으로 인간의 삶을 밝혀주었느냐, 아니냐를 따지기 전에 나는 이 표현 자체가 인간의 오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연을 존중해야 합니다. 자연의 일부임에 불과하다는 걸 자각하고 그 순리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보다시피 나는 이곳에 내 정원을 가지고 있지만, 다만 그것을 돌보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 생명의 힘과 에너지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지요. 비가 오거나 태양이 내리쬐거나 바람이 불거나 춥거나 덥거나 하는 일은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내 정원의 식물들은 저 하늘의 별, 우주의 태양과 달과 다를바가 없어요. 우리 개개인도 그렇습니다. 씨앗으로부터 싹이 나고 잎이 피어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처럼 우리는 크게 순환하는 생명의 질서 안에 있습니다. 즉, 과거로부터 늘 이어지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과거와 단절되어버렸고, 나아가 그것을 짓밟았습니다. 어쩌면 희망이 없다고도 볼 수 있는 상황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아직 자연을 가지고 있어요. 다만 그 연결을 잃었을 뿐입니다. 제멋대로 이용하고 훼손시켰지요.

 

 

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이 자연을 유지하고 훼손된 것을 복구하고, 연결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생명이 질서 안에서 재생산(생식)을 하는 것도 중요해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다 사라져버리니까요. 우리가 가진 세상은 단 하나 뿐입니다. 우리가 이 연결을 찾지 않으면 스스로를 파괴하는 셈입니다. 이미 과거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어요.

 

 

-지금 한국에서는 새로운 정책으로 인공운하 조성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상당히 구체적인 진행안이 제시되고 있죠.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고 있지만 이 사업으로 경기를 부양시켜 경제위기를 타개하겠다는 것이 큰 그림입니다.

 

 

물질주의에 병든 정책이군요. 나는 공산주의나 물질주의가 본질적으로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존엄성을 위협하고 우리가 있어야 할 자연에서의 원래 위치에서 우리를 분리시킨다는 점,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킨다는 점은 정말 다르지 않습니다. 설령 인력으로 운하를 만든다 하고 그것이 대단한 경제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할지라도, 그 경제적인 효과가 새로운 부를 가져오는 것 이상으로 치러야 할 댓가는 더 혹독할 겁니다. 한국은 아직 자연환경 손상을 무릅쓰고, 노동자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그들을 착취하며 더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나라인가요? <몽연> 같은 연극을 보면 그 문화적 기반이 얼마나 자연친화적이며 비옥한지 상상이 가는데...

 

 

- 경치도 수려하고, 문화적으로도 비옥한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이기적인 욕망도 끝을 모르지요. 저도 이 질문에 대해서는 확답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왜곡된 시장경제 중심의 자본의 논리가 일부 대중들로부터 설득력을 얻고 있기 때문이에요. 분단의 상황도 정치적으로 자주 이용되어 왔습니다.

 

 

분단이 가져오는 긴장감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추구해야 할 목표를 흐리는데 한 몫을 하지요. 어쨌거나 효율성을 추구하고,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무시되어도 상관없으며, 도덕적으로 문제가 생기더라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윤을 창출하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논리에요. 그 과정에 언론탄압도 행해지고 있어요.

 

 

이런! 끔찍하군요. 아담 스미스는 스코틀랜드 사람입니다. 맑스는 아니지만요. (웃음) 국부론을 읽었나요? 그가 틀렸다는 건 이미 역사가 증명하고 있어요. 그의 논리는 이미 시대를 한참 지나쳐왔지요. 하다못해 스펜서의 사회진화론도, 신자유주의도 틀린 논리인것을... 우리는 과거로부터 오류와 과오를 경험하지만, 때로는 다시 반복하기도 하죠. 두 번에 걸친 세계 대전만 봐도 그렇고요.

 

 

만약 이런 과오의 반복이 계속된다면, 현대 예술이 몰락한 것처럼 어쩌면 우리 인간의 문명도 서서히 몰락할지도 모릅니다. 슬픈일이지만 큐레이터로서 아주 솔직하게, 나는 대다수의 현대 미술에서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합니다. 언젠가 상하이의 전시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어요. 그건 시체들의 향연이었습니다.

 

 

잭슨 폴록이나 줄리안 슈나벨을 흉내내거나, 인상파의 기법을 다시 차용하거나, 뒤샹처럼 기발한 척을 하고 싶어하는, 서양의 유명작가 워너비들의 수많은 가짜들만을 보고 돌아왔지요. 그들은 우수한 젊은 작가들의 전시라며 나에게 소감을 물었지만 나는 아무 코멘트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이지 단 한 점도 진정으로 이 작품을 통해 뭔가 말하려고 한다,는 인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나는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데도 <몽연>을 보는 내내 감동받았습니다. 생기넘치는 반짝이는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그 안에서 별을 보는 것처럼 우주적인 경험이었죠. 뭔가 전하고 소통하고자 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설령 언어의 제약이 있더라도 전해지는 법이에요.

 

 

그런데, 언어가 필요하지 않은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원초적인 감각에 호소하는 미술임에도 나는 빛이 꺼진 망자의 눈을 보는 것처럼 막막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때의 경험은 사실 끔찍했지요. 프린지의 3만여개에 달하는 공연중 시간낭비이거나 쓰레기인 것이 있다고 했지요? 과격하게 말하자면 그 거대한 전시는 과잉된 에고가 넘쳐나는 쓰레기장이었습니다.

 

 

-그래요. 소통할 수 없는 것은 가장 큰 형벌입니다. 이곳에서 공연을 보면서, 기대와는 달리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경험은 괴롭고 고문에 가까울 지경이었어요. 당신의 말 대로, 오랜 신화 속에서처럼 우리 하나하나는 별처럼, 서로가 서로를 알아챌 수 있도록 빛을 내야하는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줄리안, 당신은 한국의 연극으로부터 시작해서 우주와 자연 속의 인간, 문화의 몰락까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습니다. 장담컨대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이렇게 빨리 지나간 적은 처음이에요. 당신의 책을 다 읽고 오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습니다. 귀한 시간을 내주어서 감사합니다.

 

 

 

 

여전히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은데 아쉽군요. 늘 나는 이렇게나 할 이야기가 많으므로 책을 쓰는 걸지도 모릅니다. 지금 쓰고 있는 나의 다음 책에서 한참 다룰 생각이에요. 나 역시 무척 즐거운 대화였습니다. 이 아름다운 연극에서 시작된 이야기이므로 즐거운 대화가 될거란 건 예상하고 있었지만요. 에딘버러에서 또 만나기를 바랍니다.

 

 

 

 

 

 

 

 

 

 


 

 

 

 

 

 

 

 

바람이 몰아치는 옥상 정원을 잠시 구경하고 내려와 온 집안에 가득한 그림을 구경하며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책을 선물로 받았다. 책 표지에 사인을 하던 그가 잠시 망설이더니 모든 예술의 미래를 위하여 라는 메시지를 적었다. 인터뷰가 끝난 뒤 1시간 후, 저녁 공연을 보기 위해 동행을 기다리며 페스티벌 씨어터 앞을 헤매는데 다시 그와 마주쳤다. 에딘버러에서 다시 나를 만날 줄 몰랐다며 놀란 표정을 한 그와 반갑게 비주를 했다. 두번째 작별 인사를 나누는데 메시지를 다시 적을 걸 그랬다며, 그가 힘있게 말했다.

 

 

모든 예술과 자연과 인간의 미래를 위해 라고.  

 

 

 

 

 

 

 

 

 

줄리안 스팰딩(Julian Spalding)

 

작가이자 독립 큐레이터. 셰필드, 글래스고, 맨체스터 등 영국 여러 도시의 미술관과 갤러리의 관장으로 일했다. 러스킨 미술관, 오픈 뮤지엄, 세인트 멍고 종교 미술 및 생활 박물관, 글래스고 현대미술관 등을 설립했고, 2000년에는 캠페인 퍼 드로잉(Campaign For Drawing)을 출범시켰다. 스팰딩은 현재 에딘버러에 살면서 정원을 가꾸고, 독서를 하고 또 세계 곳곳을 여행한다. 저서로는 [The Poetic Museum- Reviving Historic Collections], [The Eclipse of Art- Tackling the Crisis in Art Today], [The Art of Wonder; (미술, 세상에 홀리다 /김병화 역)] 으로 2006년 영국작가클럽(the Authors Club)이 우수한 예술분야저서에 수여하는 Sir Banister Fletcher 상을 받았다.  

 

 

 

 

 

나나(mllenahu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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