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척 매뉴얼] 재즈 2009.9.15.화요일 본 아는 척 매뉴얼은 인기리에 연재 중이며 책으로도 엮여 나온 바 있는 너부리 편집장의 읽은 척 매뉴얼과 동일한 취지와 목적의 글 되겠다. 오래 전 본지에 한동안 연재된 적도 있었으나 그간 뜸했던 바, 이제 황색 언론 특유의 철학을 오늘에 되살려 간혹 다시 선보일까 하니 그런 줄 아시라들. ... 긴말 말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재즈. 아무리 들어봐도 이게 멀 하고 있는 건지 분간도 안되고 아무렇게나 꼴리는 대로 연주하고 있는 것만 같은, 멜로디도 안 외워지고 따라 부르기도 힘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땜에 먼가 있어 보이는 음악. 이름은 너무도 익숙하되 그저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재즈일 거다. 머 우리가 사는데 꼭 재즈를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재즈 말고도 좋은 음악 많고, 또 재즈라는 게 계보라던가 역사를 따져가면 클래식 음악에 버금가게 복잡해 지는데, 그게 또 중요한지라 막상 알아가려고 하면 할 일이 무척 많다. 그러나 그런 만큼 자리에 따라, 만나는 사람에 따라 나의 문화적 소양을 과시하는 데는 열라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것이 또한 재즈인 것이다. 그럼 이제부터 다양한 사진과 연주 동영상 등을 통해 실전 요령을 하나씩 숙지해 보자.
기초 : 재즈와 재즈 아닌 음악의 구분법 한 10여 년 전부터 소위 재즈 카페니 드라마 재즈니 머니 하면서 재즈라는 단어가 우리 귀에 깨나 익숙해졌다. 그러면서 재즈를 빙자한 많은 음악들이 수많은 경로를 통해 우리 주변에서 흘러나온 것이 현실이다. 근데 재즈에 대해 아는 척하려면 일단 이런 음악들과 진짜 재즈를 구별하는 것이 첫 번째다. 이제부터 그 기본 지식과 요령을 알려 드린다. 1) 케니 지는 재즈가 아니다 90년대 우리나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색스폰 연주자 케니 지.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음악을 재즈의 대명사로 알고 있지만, 사실 케니 지 음악은 재즈가 아니다. 소위 쉬운 재즈라고들 생각하는 퓨전 재즈도 아니다. 그냥 팝 연주 음악일 뿐이다. 이런 스타일의 연주곡들을 서구에서는 흔히 이지 리스닝(easy listening)이라고들 한다. 일반 가요보다도 더 듣기 편한 멜로디와 분위기, 멜랑꼴리하고 도시적인 세련미를 풍기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그 옛날 폴 모리아 악단의 음악과 유사한 본질을 가진 것이 바로 케니 지의 음악 되겠다. 물론 케니지 연주 잘하고 듣기 편하고 좋다. 하지만 쉽다. 마냥 쉽다. 재즈는 마냥 쉽지는 않은 음악이다. 아래를 함 비교하며 듣고 생각해 보시라. 첫 곡은 케니지의 연주고 다음 것은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의 진짜 재즈 연주다. 차이를 느끼시겠는가.
역시 90년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졌던 뉴 에이지 음악. 조지 윈스턴의 December와 데이빗 랜츠 등의 피아노 연주로도 많이 알려졌고 역시 재즈로 오인 받는 경우가 잦다. 뉴에이지는 나름대로의 우수와 분위기가 있어서 나름 고급스럽지만 쉬운 멜로디와 간단한 리듬으로 짜여진 이 음악들은 역시 모든 면에서 재즈보다는 팝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아래 조지 원스턴의 피아노 연주와 진짜 재즈인 맥코이 타이너의 연주를 비교 감상하시기 바란다.
오해 할까 봐 부연하자면, 그렇다고 케니지나 조지 윈스턴의 음악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저 재즈가 아니라는 것뿐이고, 그들도 스스로 재즈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들 사이에서 이 아티스트들의 음악이나 다른 팝 연주음악이 아무 생각 없이 재즈로 받아들여지는 현상이 문제일 뿐이며 이건 결국 착각과 무지의 소산이다. 3) 동네 학원에서 배우는 재즈 피아노는 대개 재즈가 아니다. 집 주변 음악 학원에 보면 재즈 피아노라고 붙어 있는 경우가 꽤 있다. 그리고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피아노 교본 중에서도 이런 이름의 것들이 많다. 그러나 이것들의 7~80%는 재즈와는 무관한 팝이나 가요 연주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 그저 클래식 피아노와 상반된 표현으로 편의상 쓰고 있을 뿐인 거다.
이런 학원이나 책에서 가르치는 내용이나 악보를 보면 옛날 영화음악들이나 (대부 주제가, 빠삐용 주제가 등 패떳 배경음악으로 잘 나오는 곡들) 사이먼 앤 가펑클 같은 팝, 마법의 성 같은 가요가 그 대상이다. 혹시 진짜 재즈 피아노 치고 싶은 분들은 이를 잘 구분해서 접근하시도록. 4) 재즈와 블루스는 다르다 재즈와 블루스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지만 동일한 음악은 아니다. 따라서 에릭 클랩튼이나 비비 킹, 게리 무어 등은 재즈 연주자가 아니다. 이건 우리는 잘 안 헛갈리고 오히려 미국인들이 혼동하는 부분이지만 그냥 잔소리조로 함 언급해 둔다. 그리고 단순하고 감성적인 블루스와는 달리 재즈에는 유럽 클래식의 영향과 백인 특유의 지성적, 분석적 요소가 많다.
5) 재즈와 재즈 아닌 음악의 초간단 감별법 재즈와 재즈 아닌 음악을 일차 감별하는 공식이 있다. 어떤 곡이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도 불편한 음들이 없다면 그건 십중팔구(다 그런 건 아니지만) 재즈가 아니라고 보면 된다. 반면 발라드틱한 분위기에 편한 멜로디들이 들어 있더라도 여기저기서 익숙하지 않은 음이나 불협화음 같은 코드가 불거져 나온다면 그건 재즈다. 이 감별법을 염두에 두고 위 동영상들을 다시 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다. ...머 사실 이런 이야기는 재즈를 너무 일반화하는 거긴 하지만 이 코너가 원래 그런 거니 이해하시고, 이제 좀 더 깊이 들어가보자. 중급 : 재즈에 대해 아는 척 하기 이 정도 준비가 되면 이제 제대로 아는 척을 하기 위한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차례다. 일단 역사부터 생각해 보자. 편의상 올드 스타일 재즈(60년대까지의 재즈와 그 스타일을 고수하는 현대 재즈)와 라틴/퓨전 두 가지로 나눠서 접근한다. 1) 올드 재즈의 역사 20년대부터 60년대까지의 역사는 아래 다섯 가지만 알고 있으면 대략 할 말이 생긴다. 혹시 대화가 깊어지거나 복잡해지면 동의하는 끄덕거림이나 미소로 얼버무린다. 이것도 외우기 귀찮은 넘들을 위해 주요 부분을 붉은 색으로 강조해 드리니 참고하라. ● 재즈는 19세기의 흑인 영가와 유럽 클래식을 바탕으로 20세기 초에 태동했다. ● 2,30년대 빅밴드(색스폰 트럼펫 피아노 더블베이스 등등 십여명으로 구성된) 시대의 최대 스타는 백인인 베니 굿맨이고 당시 음악은 스윙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댄스 뮤직이었다.(이 시대의 인물들로 듀크 엘링턴, 카운트 베이시 등의 이름도 기억해 두면 좋다)
● 우리가 잘 아는 루이 암스트롱(트럼펫)은 이 시대의 영웅이고, 수십 년 후 What a Wonderful World 같은 팝 음악으로 잘 알려지게 된다.
● 단순한 춤곡이었던 재즈는 40년대에 복잡하고 어려운 음악(비밥: Bebop)으로 진화하는데 이때 최대 수훈자는 찰리 파커(색스폰)와 디지 길레스피(트럼펫) 등이다.
● 50년대 이후 재즈의 발전은 쿨 재즈와 퓨전 재즈를 창시한 밴드 리더 마일즈 데이비스가 이끌었다.
2) 라틴과 퓨전 재즈 60년대부터는 그때까지와는 사뭇 다른 두 재즈 양식이 등장했는데 바로 라틴과 퓨전 재즈다. 이것 역시 아래 다섯 가지만 숙지해 보자. ● 우리에게도 익숙한 보사노바는 브라질 전통 삼바 리듬과 재즈를 결합해 브라질에서 만들어진 음악이다. 박학기의 향기로운 추억, 김현철의 춘천가는 열차 등의 가요에도 보사노바 영향이 있으니 알아두고 써먹자.
● 보사노바는 이후 미국과 유럽으로 역수입되어 많은 명곡을 낳고 재즈의 주류 스타일 중 하나로 인정받는다.
● 퓨전재즈는 60년대 말 재즈와 록의 결합이라는 기치 하에 마일즈 데이비스에 의해 시작되었고, 초기에는 상당히 난해한 음악이었다.
● 70~80년대에 퓨전 재즈는 초기에 비해 쉬운 멜로디와 도시적인 깔끔함을 가진 음악으로 변화했다. 옐로우자켓, 스파이로자이라, 데이브 그루신, 래리 칼튼, 일본의 카시오페이아 등의 밴드들이 잘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 봄여름가을겨울도 초기에는 이런 분위기의 음악이었다. ● 국내에서도 인기 많은 기타리스트 팻 매쓰니(Pat Metheny)는 퓨전 재즈의 대표주자 중 한 명이다.
이제 재즈와 관련된 논점들을 몇 개 정리함으로써 대화나 논쟁에서 튀고 또 승리할 수 있도록 가이드해 드린다. ● 재즈는 와인 바나 고급 레스토랑이 아닌, 담배 연기 자욱한 좁은 클럽에 더 어울리는 음악이다.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의 유명한 재즈 클럽들은 대부분 이런 분위기. <실전 활용 예> 총수: 야... 역시 호텔 레스토랑에 재즈가 흐르니 절라 멋지네.
● 재즈는 흑인적 블루스 감성과 백인적 음악 이론, 연주 기교 등의 지성적 측면이 만나 어우러진 음악이다. <실전 활용 예> 신짱 : 역시 음악은 흑인 음악이 최고야. 재즈... 블루스...
● 재즈의 복잡한 즉흥 연주는 결코 아무렇게나 치는 것이 아닌, 재즈 나름의 정립된 음악이론에 의해 뒷받침되는 것이다. <실전 활용 예> 너부리 : 재즈는 결국은 우연성 머 그런 거를 남발하는 전위 예술 아니냐?
● 재즈는 클래식처럼 집중해야 하는 감상음악적 측면(비밥 등)과 춤을 추기 위한 댄스뮤직(스윙), 로맨틱하거나 나른한 무드음악(쿨, 보사노바 등) 등의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 파토 : 재즈의 가치를 진짜로 이해하려면 한음도 놓치지 말고 들어야 혀.
이 정도 했으면 이제 재즈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척 할 지식은 갖춰졌다. 더 아는 척 할려면 진짜로 아는 수 밖에 없으니 본 코너의 취지를 넘어서는 영역 되겠다. 그럼 이제, 재즈의 위대한 명곡과 명 연주들을 몇 개 더 소개하고 마무리하자. 유튜브 없었으면 어쩔 뻔 했냐... 첫 연주는 마일즈 데이비스/캐넌벌 애덜리의 Autumn Leaves. 이브 몽땅이나 에디뜨 삐아프의 프랑스풍 버전, 고엽 이라는 제목 등으로 잘 알려진 이 곡의 멜로디는 아는 분들도 많을 거다. 그 유명한 멜로디를 마일즈 데이비스의 느릿느릿한 트럼펫이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한번 들어 보시기 바란다. 나는 이 곡을 듣고서야 마일즈가 진정한 천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58년 녹음. 동영상은 아니고 스틸 사진 컷만 나오니 참고하시길.
다음 곡은 드럼페터이자 보컬리스트인 쳇 베이커의 My Funny Valentine. 연주는 별로 없지만 허무의 극을 달리는 건조한 보컬이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기는 곡이다. 역시 오디오 온리.
드디어 동영상으로 간다. 오스카 피터슨의 Alice in Wonderland. 화음과 멜로디(솔로 라인)을 동시에 연주한다는 점에서 재즈 피아니스트들의 즉흥 연주 능력은 경이로울 뿐이다.
비록 피아노나 관악기류에 좀 밀리긴 하지만 재즈에서 기타의 위치 또한 녹록하진 않다. 기타 재즈는 다양한 형태가 있지만 조 패스의 코드 멜로디(코드와 멜로디를 섞어 치는 스타일) 즉흥 연주는 언제 들어도 놀랍다.
내 자신 기타 연주자다 보니 아무래도 기타 재즈에 관심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아래는 조 패스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싱글 라인 연주의 대가 팻 마르티노의 Sunny. 이건 원래 70년대 말의 디스코인데 내 세대라면 잘 알만한 곡이다. 이걸 재즈로 만들어 이렇게 멋지게 소화하고 있다.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조이 데프란체스코의 올갠 연주(왼손으로 코드, 오른 손으로 솔로, 발로 베이스 페달을 연주하는 괴물)와 곱사리 껴 있는 존 스코필드의 맛있는 기타 플레이도 같이 감상하시기 바란다.
다음은 역시 기타리스트인 스탠리 조던의 Autumn Leaves. 기타 지판을 피아노같이 치는 이 사람은 단지 묘기 연주자가 아니라 음악적으로 높은 표현력과 완성도를 가진 어엿한 재즈 아티스트이다.
마.. 이렇게 가면 끝이 없으니 이제 그만 끝내자. 이 긴 글에 저 음악과 영상을 다 듣고 볼라면 이미 한 시간도 더 걸리지 싶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이 기사에 힘입어 재즈 공연이라도 함 보러 가게 되면, 곡 중간에 한 연주자의 솔로가 끝날 때는 매번 박수를 쳐 주는 게 예의라는 사실 잊지 마시라(위 팻 마르티노 영상 등 참조). 근데 초심자 입장에서는 대체 솔로가 언제 끝난 건지 알기도 쉽지는 않다. 이때는 다른 사람들 눈치를 잘 살피고 한 박자 늦게 치는 게 요령이다. 암튼 아무도 박수 안 칠 때 혼자 치면 지금까지의 모든 아는 척이 수포로 돌아가 개망신을 당할 소지가 있으니 특히 유념하도록. 그럼 해피 아는 척. 딴지 문화부 대기자 파토 (patoworld@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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