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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삼천포행 아이폰 이야기 - 1

 

2009.9.18.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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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편집회의에서 소녀시대 글을 써야 한다는 총수님 이하 전 편집부원(너부리, 신짱)으로부터의 압력에 굴복한 파토님이 못내 안쓰러웠는지, 편집장님이 소곱창을 쏘시드라구. 그래, 그 때 그 자리에만 없었더라도, 혼자서 절반을 먹어치우지만 않았더라도, 다른 거 안 익었으니 염통 먼저 드세요.라는 아주머니의 식사 개시 선포가 떨어지기 무섭게 염통을 혼자 다 쳐 먹지만 않았더라도 주말 내내 그렇게 혼자 글 쓴다며 끙끙대며 보내진 않았을 거야. 그렇게 먹고도 뭐가 또 아쉬웠는지 집에 가서 냉장고 속, 된장 뒤편에 짱박혀 있던 제주오겹살을 추가로 구워먹고 식중독으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면서도 난 글을 쓸 수 밖에 없었어. 그래 곱창과 염통 때문에. 딴지에 입사한지 반년이 다되는 동안 광기에 사로잡힌 편집부의 미친 일일업데이트를 지켜보면서도, 이따금 재떨이를 비워 주는 거 외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었는데 말이야.

 

A4 넉 장으로 글을 다 쓰고 뭔가 께름칙한 기분을 안고 숙제검사 받는 심정으로 편집장님께 글을 디밀었는데, 빠꾸를 맞고 말았어. 글 쓰면서도 내내 걸리긴 했어, 역시나 편집장님의 내공을 피하지는 못했지.(딸랑딸랑) "글이 쉽게 안 읽혀, 힘 빼고 쉽게 써봐." 아이폰 나온다고 지를 것도 아닌데, 2년을 끌어온 아이폰 떡밥에 나도 적잖이 물려 있었나봐. 다 써놓고 보니 무슨 민주노동당 대변인 논평처럼 되어 있더라고. 아이폰 빨리 내놔 이 *$^&#(@... 딱 걸렸던 게지. 그래도 한마디쯤은 변명하고 싶었어.

 

나 - "얼리(얼리어답터)들은 다 아는 얘기란 말이에요."
편집장 - "딴지에는 얼리 없다."

 

아, 딴지에는 얼리가 없다. 가공할 역습이었어. 딴지 독자 중에 얼리가 있는지 없는지를 누가 알겠어. 얼리가 얼리라고 마빡에 써 붙이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딴지독자 중에도 얼리가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칙적으로 소음이 발생한 모든 기간에 대해 정확한 측정이 이뤄지거나 적어도 소음이 지속적으로 발생했음을 엿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측정이 이뤄져야 하지만 일반인에게 기대하기 여려운 일"이라면서 "공사장 소음으로 인한 소송에서는 주민에게 요구되는 입증의 정도를 상당한 정도 완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 공사장 소음피해 주민 입증책임 완화 (2009.8.31 법률신문)

 

옆에서 시끄럽게 하면 시끄럽게 한만큼 스트레스 받은 손해를 갚아줘야 하는 게 법이야. 그럼 중요한 건 과연 시끄럽게 했는지 안 했는지겠지? 그걸 누가 증명하겠어? 이건 형사가 아니라 민사니까 시끄럽다고 먼저 시비건 사람이 증명해야 하는 거야. 그런데 재판부는 사뭇 놀라운 판결을 내리고 있어.

 

"일반인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일."

 

그래. 누가 공사장 소음이 시끄럽다고 소음측정기를 주구장창 들이대고 있겠어. 그런 건 전문가들이 하는 게 맞고 공사판에서 시끄러운 건 당연하니까 너희 공사장이 조용하게 공사한게 맞고 따라서 주민들한테 땡전 한 푼 배상하지 못하겠으면 조용하게 공사했다는 증거를 대보라는 거지. 좀 당연한 얘기인 것 같은데 이렇게 판례가 바뀐 게 지난달이네. 어머 씨발.

 


이런 건 전문가가 할 일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의피법(의료사고 피해구제법)의 가장 큰 문제는 의사의 입증책임이다. 의료사고를 미리 예측하고, 사전에 예방하는 주의의 의무와 설명의 의무는 다했는지 적절한 인력과 장비로 최선의 진료를 했는지, 의사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법의 틀 속에서 감시한다는 것이다. (중략) 환자가 근육주사를 맞고 집에 가다가 부주의로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골절이 되었다고 했을 때, 주사에 의한 부작용으로 환자측에서 의료소송을 제기한다면 의사는 의료사고가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탐정처럼 환자의 집까지 가는 길을 더듬어서 문제의 돌부리를 찾아내고, 돌에 묻은 혈흔을 감정의뢰해 환자의 혈액임을 밝혀내야 의료분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중략) 왜 포퓰리즘에 밀려 자유민주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우향좌 하는가? 남의 눈 속의 티끌은 잘도 보면서 자기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함이다. 역지사지 해야한다.

 

- 역지사지 (2009.9.11) 의협신문

 

전문가들 입장에서야 귀찮기도 하겠지. 딱 그 정도까지는 나도 이해해. 그런데 이건 좀 너무하잖아. 분명히 수술 잘못한 게 맞는데 수술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일반인이 어떻게 증명하겠어. 수술실에 들여는 보내줬어? 보면 뭐 알기는 하겠어? 골절상을 주사에 의한 부작용으로 소송할 거라니. 포퓰리즘은 뭐고, 사회주의는 뭘까? 역지사지의 의미는 알까?

 

입증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실제 민사재판에서는 판결을 좌우할만큼 중요해. 결론 뻔한 경우야 뻔하게 처리되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고. 사안이 복잡하니까 재판까지 가는 걸 텐데, 그 복잡한 걸 풀어내서 내가 이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니까 소송 걸린 사람들보면 다들 얼굴이 노란 거겠지.

 

굳이 입증책임 이야기를 왜 하냐면, 딴지생활 10년 다 되가는 편집장님이 전문가니까 딴지에는 얼리들이 없다는 걸 증명하셔야 된다는 얘기는 아니고.(정말입니다요.) 두발제한에 저항해서 머리 빡빡 밀고 등교하듯이 글 분량을 폭발적으로 늘이려는 것도 아니야.(정말입니다요.)

 

아이폰이 안 나오는 이유 분석을 왜 소비자들이 하고 있어야 하냐는 거야. 위피가 어떻고, 위치정보법이 어떻고. GPS는 뭐고 와이파이는 뭐냔 말이지. 그냥 좋은 휴대폰 돈 치를 거니까 사겠다는데, 왜 못 들어오냐고. 사겠다는 사람 있고 팔겠다는 사람 있고 그럼 된거지. 뭔 잡소리들이 그렇게 많냐고. 그것도 2년을 질질 끌면서. 아이폰이 안 들어오데 관련된 것들. SK, KT, LGT 요 세 통신사들. 삼성, LG, 팬택 요 제조사들. 그리고 방송통신위원회 최시중과 그 일당들 니들이 전문가니까 니들이 입증하고 개선해서 얼른 내놔. 잡소리들 말고. 자유시장경제 자본주의 대한민국에서 물건 맘대로 사는 건 당연한 거니깐. 알간? 끝.

 

이라고 하면, 편집장님이 날 불판에 구워버리겠지?

 


이달 1일 출시 떡밥 (떡밥도 2년 되면 발전한다)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에는 앱스토어(아이폰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자와 사용자간에 사고 팔 수 있는 시장, 애플은 이걸로 중간상인 노릇하여 떼돈 버는 중)가 있었던 것도 아니였고, 어차피 아이폰에서 구현되는 기능은 이미 발매된 국내의 다른 휴대폰이나 PMP 등의 제품에도 다 구현되어 있었지. 그리고, 준비과정을 거쳐 정식발매한 것도 아니였기에 한국사용자들이 좋아라 할 만한 기능은 하나도 없었구. 사전, 음성인식, MAP, 오피스뷰어, 등등. 기본기능을 활용하는 것 만해도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어.

 

동영상파일을 재생하기 위해서는 코덱이란 걸 깔아야 하잖아. 동영상파일을 만들 때 필요하고(인코딩), 볼 때 필요한 거(디코딩). 웹하드나 P2P 같은데서 못 본 드라마나 야동 다운받아 볼 때 거의 다 AVI파일인데 아이폰은 이런 것도 지원을 안 해. 그래서 MP4형식의 동영상파일로 다시 인코딩을 해야 하는데 이거 해 본 사람들은 알거야. 최신으로 슝슝 날아다니는 컴퓨터 아니면 인코딩하는 동안 컴퓨터도 느려지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 1시간짜리 드라마 하나 인코딩하는데 1시간 넘게 걸리면 그냥 그 시간에 큰 모니터로 보고 치우는 게 좋아. 그 때 이미 국내에서 출시된 PMP는 코덱을 95%이상 지원해줬어. 파일만 갖다 옮기면 바로 볼 수 있었지.

 

음악파일은 또 어떻고. 아이팟 / 아이폰을 활용하려면 PC에 I-TUNES라는 프로그램을 필수적으로 깔아서 활용해야해. 이거 안 써보던 사람들은 여간 불편하지 않아. 보통 MP3에서는 음악파일 그냥 복사해 넣어 들으면 되었는데, 이건 처음 음악파일을 불러온 순간 파일이 뒤죽박죽 뒤엉켜버려서 처음엔 누구나 패닉상태에 놓이게 되지.

 


풍부한 코덱지원으로 한 시절을 풍미한 V43. 디지털큐브, 아직 망하지는 않았다.

 

그 밖에도 아이폰이 짜증날만한 이유는 셀 수도 없어. 한국 사용자들 까칠하기로는 세계최고 수준이니 아이폰이 못마땅한 이유도 하나하나 다 까발려졌지. 물론 이런 내용들이 또다시 하나하나 기사화되어 떡밥이 되었어. 만약에 아이폰이 같은 기술스펙으로 한국에서 출시됐으면 출시하기도 전에 매장 됐을 거야.

 

그런데 이상도 하지. 아이폰은 아직 출시되지 않아서 직접 논할 수는 없지만, 아이팟과 아이팟터치(아이폰에서 폰/카메라 기능만 뺀 것)에 사람들이 서서히 적응해 가는거야. 아이팟이 후진 이유 같은 건 진작에 인터넷에 다 까발려진 상태였으니 속아서 산 건 분명 아니였어. 코덱지원 안 되니까 인코딩을 해야했는데 나중되니까 아예 처음부터 아이팟용으로 인코딩한 파일을 공유하는 업로더들이 등장하더라고. 아이튠즈에서 음악파일 태그(음악을 곡명/앨범명/장르/가수별 등으로 정리할 수 있도록 넣어주는 꼬리말) 정리하는 것도 밤낮없이 다 해치우고 오히려 중독성을 호소하는 사람까지 나타기까지 했어.

 

지금까지의 한국 사용자들의 성격을 직접 겪어왔던 사람들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였지. 국내 모바일 제조업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억울하고 분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우리가 뭐 쫌 잘 못 만들거나 마음에 안 들게 만들면 그 생난리를 쳐놓고, 아이팟은 아무리 후져도 거기에 적응해 버리네? 너무 불공평하잖아!

 

아이팟과 국산 모바일제품의 가장 큰 차이는 말 그대로 미제냐 국산이냐잖아. 그래서인지, 한국 사용자들이 아이팟에 서서히 빠져 드는 이유를 거기서 찾는 사람들도 많았어. 미제라 좋아하는 거라고. 물론 그것도 한 이유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스타벅스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라 미국의 문화를 마신다느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처럼 아이팟이나 아이폰으로 길에서 음악 들으면 뉴욕 맨하탄을 거니는 것처럼 느끼는 사람이 없으란 법은 없겠지.

 


마이클잭슨이 문워크로 세상을 떠난 날. 메디컬센터 앞에서 주저앉은 여성팬.
이 사진기사 밑에는 아이폰을 들고 있으니 뭘 해도 간지난다.는 리플이 수두룩했다.

 

내가 아이폰을 처음 만난 건 미국에서 아이폰이 발매된 지 딱 일주일 되는 날 이었어. 뉴욕 애플샾에서 줄서서 사가지고 인편으로 비행기타고 날아왔으니 대한민국 본토에 살면서 아이폰 만져본 순서로는 나름 순위권일거야. 아이폰을 처음 들고 지하철 탄 날. 난 여자들이 명품빽 사들고 처음 지하철 탄 날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어. 지하철 탄 사람들 중에서 명품을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이 단 한 사람 뿐일지라도, 설령 등 뒤에서 서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 시선을 느낄 수 있다더군. 아이폰을 들고 깨작대고 있을 때, 두 눈을 반짝이며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어. "저기... 그거 아이폰인가요?" 지하철을 수천 번을 타면서 모르는 사람이 말 걸어온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였지.

 

최근에도 아이폰 떡밥 중에 아이폰 사대주의 VS 국수주의 떡밥이란 게 있었어. 말 그대로 아이폰 좋아라하는 게 사대주의 아니냐하는 문제제기에서 비롯된 떡밥이였지. 요새도 복날되면 가끔 뉴스에 나오기는 하는 거 같든데, 왜 우리가 개고기를 먹는다고 외국에서 가끔 시비 걸고 그러잖아. 근데 개고기를 우리만 먹는 건 아니더라고. 베트남도 먹고, 카자흐스탄도 먹고, 스위스도 먹고. 필리핀도 개고기 먹는 나라인데, 여기도 외국 동물보호단체에서 시비 걸고 그랬나봐. 그날 필리핀 중앙일간지 사설에 이렇게 실렸대. 아, 일단 잡숴보시고 말씀하세요.

 

미제 우주선이 달에 착륙한 날, 그날 우리나라는 임시공휴일이였어. 그해 여름에 대유행한 눈병은 아폴로를 타고 우주에서 병균이 날아왔다하여 아폴로눈병이라고 불리게 되었지. 사대주의도 이쯤은 돼야 사대주의지. 미제 휴대폰 하나 갖겠다는 작은 바램에 사대주의란 이름을 붙이기엔 너무 거창해. 그리고 갖고 싶어하는 이유를 알고 싶다면, "아, 일단 써보시고 말씀하세요."라고 먼저 말하고 싶어. 미국문화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게 다는 아니란 말이지.

 

아이폰이 나오기 전에는 애플의 주력상품은 아이팟이였어. 애플이 주목받고 주가가 급등하면서 소위 애플빠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건 아이팟이 잘 나가면서 부터였지. 사실 아이팟이 처음 나왔을 때 국내 사용자들에게서는 이건 뭐... 소리를 듣게 되었어.

 


2001년 최초 출시된 아이팟. 중앙 클릭휠이 기계식으로 실제 돌아간다.

 

 

 


아이팟 초창기, 한국시장에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한국 MP3 전성기 시절을
대표하는 아이리버 크래프트.

 

128MB 용량에 알뜰살뜰 선곡해 넣고 목에 걸고 다니면 갖고 다니기도 편하고 나름 디자인도 깔삼했지. MP3플레이어 초창기면 CD플레이어에서 이어지던 시기라 CD플레이어와 확연히 비교되는 제품 크기만으로도 먹어주던 때였어. 그런데 명색이 미국의 컴퓨터회사에서 맘먹고 나왔다는 MP3플레이어가 디자인도 재미없고 크기와 무게도 다시 CD플레이어로 회귀하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무식했으니 안 사게 되었던게지. 장점이라면 저장공간이 플래시메모리가 아니라 하드디스크라서 용량이 크다는 것 정도?

 

그 시절 우리 제품, 우리 IT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은 참 대단했어. 정부가 부추긴 부분도 있지만, 실제로도 아이리버 뿐 아니라 다른 다양한 제품들이 나름 수출도 잘되고 할 시기였지. 그때는 뭐 미제라고 좋아라 하는 사람이 없었겠냐고. 그런데도 다들 국산 쓰는 거 그때는 자랑스러워했잖아. 사람이 변하면 얼마나 변한다고. 지금은 팝송 들을 데라곤 [배철수의 음악캠프] 밖에 없는데, 팝송 틀어주는 음악다방이 성행하던 시절과 비교하여 지금이 더 미국문화에 쩔어 들었다고 볼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어쨌거나, 어느 순간 야금야금 아이팟의 MP3플레이어 시장 점유율이 늘었어. 그래도 꽤 오랜 동안 10%대로 국산브랜드에 밀려 3~4위를 유지하는 수준이였는데, 그러다가 아이팟 미니, 아이팟 나노, 아이팟 터치가 줄줄이 출시되면서, 분위기는 급반전. 지금은 아이리버, 삼성, 코원을 따돌리고 시장점유율, 판매점유율 1위를 유지하게 되었지. (환율 영향으로 가격이 상승하면 1위를 내줄 때도 있음) 지금은 그저 다른 나라들처럼 점유율이 70%를 넘지는 않는다는 데 만족하고 있지. 나름 선방하고 있다고 자위하면서.

 

아이팟이 북미, 유럽을 휩쓸고, 까칠한 국내 한국 사용자들까지 적응시킨 그 놀라운 저력은 어디서 나왔던 걸까? 칩기술? 프로그래밍? 다 맞는 이야기기는 해. 다 그게 받쳐주니까 가능한 거기도 하고. 하지만 구매자 입장에서 이야기를 푸는 게 좋을 것 같아. 가끔 비싼 돈 들여 구매해서는 금형부터 까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은 안에 뭐가 들었는지, 어떤 식으로 프로그램이 구현되는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기 마련이니까. 소비자가 만나게 되는 건 딱 3가지야. 디자인, 기능, 언어.

 

디자인이라면 외관 디자인과 GUI(Graphic User Interface)를 보통 이야기하는데, 외관 디자인만 보자면, 아이팟, 상당히 매력적이지. 간결한 화이트와 미려한 크롬 도금 같은 게 엘레강스하고 퐌타스틱하다는 평이 많더라고. 하지만 디자인은 취향 따라 가는 거잖아. 저 변기 디자인(난 그냥 변기가 생각나, 실제로 아이팟을 디자인한 디자이너는 애플에서 스카웃한 욕실 디자이너임)을 좋아할 사람도 있겠지만, 꼭 캐릭터가 박혀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핑크 아니면 거들떠도 안보는 사람도 있지 않겠어?

 

아이폰의 저력에는 물론 디자인의 힘도 있겠지만 광적인 추종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원천은 아닌 것 같아. 비슷한 디자인으로 나와봐야 다 인기 끄는 건 아니더라고. 문제는 기능. 활용성 부분인데, 이건 앞에서 줄창 이야기했지만, 더 훌륭한 제품 많아. 더 속도 빠르고, 더 안정적이고 그런 제품들.

 

난 아이팟 저력의 핵심은 언어와 그 언어를 받쳐주기 위한 기술력, 디자인이라고 봐. 여기서 언어의 개념이 좀 모호할 것 같아. 분명한 건 C++니, 자바니 하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의미하는 건 아니야. 프로그래밍 언어가 개발자와 제품(컴퓨터, MP3, 폰 등)을 소통하게 해주는 언어라면, 아이팟 성공의 핵심으로서의 언어는 사용자와 제품을 소통하게 해주는 언어라고 한정 지어서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개발자와 제품과의 대화

 


사용자와 제품과의 대화(?)

 

매트릭스는 0과 1의 조합일 뿐이지만, 네오는 저렇게 죽어라 싸우잖아. 안철수씨가 바이러스 잡을 때 저런 식으로 바이러스와 싸우지는 않았을 거라고. 하지만 일반 사용자들이 모바일 제품하나 이용하자고 제품과의 복잡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해가면서 제품과 대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사용자에게 맞는 언어가 필요하게 돼. 바이러스를 잡고 싶으면 그냥 눈앞에 보이는 바이러스의 목을 졸라버리면 된다는 식의 언어.

 


글자 참 굿이다.

 

한글 참 간결하고 쓰기도 편하지. 일제강점기에 일본 애들이 세종대왕께서 화장실에서 똥 싸다가 문살 무늬를 보고 한글을 만들었다는 악의적인 유언비어를 퍼트리긴 했지만, (실제로는 구강구조의 변화를 본 따 만들었다) 글자야 사실 어떤 모양으로 만들던 무슨 상관이겠어. 좋은 글자와 나쁜 글자의 차이는 단지 간결하게 힘들이지 않고 쓰기 편하냐 아니냐 밖에 없을 성 싶어. 그런 면에서 애플이 갖고 있는 힘은 사용자와 제품과의 소통을 간결하게 해주는 언어, 즉, 일상언어로 따지자면 일종의 한글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MP3플레이어를 처음 만든 건 우리가 먼저였지만 (새한미디어, 1998), 애플은 그 다음을 내다봤어. LP → CD → MP3(음악파일)로 이어지는 변화가 단지 기술적 편의성의 증대로만 이어진 것이 아니라, 사용자들의 음악청취패턴 자체를 바꾸게 될 것이고, 그런 변화는 세상이 변해가면서 필요한 언어가 변해가듯이, 사용자와 제품 간의 언어도 변해야 함을 의미한다는 걸 직시한거지.

 



 

CD → MP3 로의 변화는 사용패턴의 변화 측면에서 두 가지를 수반하게 돼. 하나는 이동성의 극대화, 하나는 앨범개념의 해체. 즉, CD 1000장을 들고 다니는 무게는 MP3로 변화하면서 0으로 소실되어 버리게 되고, 앨범의 단위성은 앨범을 제작하는 사람의 기획 단위로서의 의미만 남게 될 뿐이지. 그냥 MP3 플레이어 하나에 다 때려 넣으면 되니까. 이렇게 되면 이제 단위는 음악>앨범>곡 이 아니라 음악>곡 이 되고 이때 절실하게 요구되는 사용자 - MP3플레이어 간의 소통은 곧 찾기(Searching)가 되는데, 애플은 그 찾기에 부여된 중요성의 비중만큼 당황스러울 정도의 크기로 찾기의 소통로를 아이팟에 설계해버린거야.

 


클릭휠. 아이팟의 모든 것

 



 
 

 

도시국가들(communes)이 개화(開花)함에 따라 지방언어들이 발전하였으며 그 중 피렌체가 지적인 헤게모니를 잡자 하나의 통일된 지방어, 곧 귀족언어가 생겼다. (중략) 코뮌의 붕괴와 왕후(王侯)제도의 등장, 곧 민중으로부터 유리된 통치계층의 창출은, 문어체 라틴어가 고정화되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지방어를 고정화시켰다. 이탈리아어는 다시 한번 구어체 언어가 아니라 문어체 언어가 되었으며, 민족의 언어가 아니라 학자들의 언어가 되었다.

 

- 안토니오 그람시 Quadeni에서 인용

 

이탈리아가 프랑스나 스페인처럼 통일적 국민국가의 형성이 늦어지고, 위태위태한 상황에서 결국 파시즘으로 전환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분석하면서 그람시는 지적 헤게모니(지배권)로서의 언어 문제를 들고 나오고 있어. 바티칸을 품고 있었던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문어체인 라틴어가 이탈리아에서는 오랫동안 강요되었는데, 바티칸이 약화되고 피렌체가 헤게모니를 잡은 이후에도 또다시 문어체가 표준어가 되어버리니까, 막상 소통에 적절한 지방방언들이 그대로 존속하게 되고, 그래서 국민국가 형성이 지체될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야.

 

애플은 클릭휠이라는 사용자 - MP3플레이어 간의 언어를 특허의 형식으로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봐야 해. 소통의 간결성과 편의성은 다른 소통방식을 압도하는데, 그건 클릭휠이 유일하게 한번의 입력(Input - Scrolling) 으로 찾기를 무한으로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수단인 원(Circle)이기 때문이지. 천 개의 파일 중에서 팔백마흔다섯번째 곡을 찾는 언어가 클릭휠에서는 스르륵, 틱이야.

 


아이팟 대항마로 빌게이츠가 들고 나온 아이리버 H10.
H10은 스르륵, 스르륵, 스르륵, 스륵, 스륵, 틱
이미 게임은 끝난 상황이였다.

 

애플은 이후 다른 측면에서의 디지털 패러다임의 변화를 예견하고 뛰어들게 되는데, 그게 바로 아이폰이야. 이건 굳이 여기서 구체적으로 논하지 않아도 될 만큼 널리 알려져 있는 Digital Convergence (디지털 컨버전스, 정보통신기술의 융합) 인데, 정보통신기술의 중심에는 융합의 루트라 할 수 있는 통신, 즉 Phone이 있다는 걸 애플이 모를 리 없었겠지.

 

애플이 처음 아이폰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어. (사실 아이팟 때문에 배 아픈 쪽의 바램이였을지도...) 이미 세계시장은 거대 제조사, 통신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졌었고, 컴퓨터, MP3 플레이어나 만들던 애플이 그 시장에서 과연 더 이상의 새로운 무엇을 내놓을 수 있겠냐는 이야기도 많았지. 하지만 역시나 애플은 자신이 있었던 것 같아. 사용자와 제품을 소통시키는 가장 간결하고도 효과적인 언어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

 

애플의 비쥬얼 인터페이스를 향한 애착은 애플의 역사 전체를 관통한다고 봐도 무방할거야. 초등학교시절 컴퓨터실을 차지하고 있었던 건 애플 맥킨토시였고, 거기서 처음 컴퓨터라는 걸 만져본 기억이 나. 이후 애플과 과연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있는 나이가 되기 전에 내가 만질 수 있는 컴퓨터는 오직 IBM 밖에 남지 않게 되었지. 이후에 애플은 잊혀졌어. 이따금 을지로나 충무로에 가면 맥킨토시가 출판/인쇄물디자인용으로 쓰인다더라 하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나랑은 별 상관없는 이야기였지. 한 때 초등학교 컴퓨터실을 차지할 만큼의 표준적 지위를 갖고 있던 맥킨토시가 초라한 구석자리로 밀려난 데 대한 분석도 많았었어. 호환성을 너무 무시한다. 소스를 너무 오픈하지 않는다. 비쥬얼에만 너무 집착하는 거 아니냐.

 

홍진호가 화려한 폭풍플레이를 그대로 보여주면서 감격의 1승을 올렸던 것처럼, (기사 링크) 애플도 컴퓨터산업의 물적 확장 기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지켜온 자신들의 플레이를 아이폰으로 제대로 선보이게 돼.

 

  
얼핏 보면 LG아레나폰이 더 멋져 보인다.
이것도 일단 써 보면 안다. 말이 잘 안 통한다.

 

있었으면 하는 곳에 있었으면 하는 크기의 버튼이, 너무 성급하지도, 너무 답답하지도 않을 만큼의 속도로 정확하게 작동할 때의 느낌은 이야기가 잘 통하는 친구와 대화할 때의 느낌과 같다. 클릭휠처럼 독점적으로 전유하고 있는 강력한 언어가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멀티터치 같은 건 비중이 작다) 작은 느낌 하나하나를 살리기 위해 엄청난 고민과 검증이 있었을 거라는 건 분명해 보여. 그리고 그것이 비디오시대의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의 전부이기도 하고.

 


한 손으로 조작할 경우의 키배치.
사용자 편의성은 1>2>3>4 순으로 높아진다.
3번 위치에는 [앨범리스트] 버튼이, 4번 위치에는 [뒤로] 버튼이 배치되어 있는데,
[앨범리스트] 버튼은 [뒤로] 버튼 보다 중요도가 높으므로
애플이 오른손 사용자를 기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삼성과 LG도 해외시장에서 나름 선전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OS(운영체제)를 만들어 본 회사, 그것도 비쥬얼에 유난히도 집착하면서 쌓아온 애플의 인터페이스 기술력을 쫓아가는 건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 같아. 삼성만 해도 자신들의 IT기술의 역사가 반도체 설비투자의 역사와 맥락을 같이 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용자 - 제품간 인터페이스 내공 쌓는데는 큰 관심이 없어 보여. (그래도 천지인 자판을 갖고 있는 건 큰 자산인 듯)

 

어쨌거나 애플은 호환성과 개방성을 통한 IT산업의 대중적 발전에서는 밀려나 있었지만 끝끝내 버텨냈고, 새로운 패러다임에 먼저 선착할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냈어. 플라톤이 꿈꾸었던 철인왕이나 마키아벨리의 대장같은 존재가 되어서. (스티브 잡스의 제품발표 프리젠테이션이나 애플샾앞에서 줄서서 날 새는 사람들을 볼 때 마치 무슨 나치선동집회처럼 느껴지기도 하더군)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난 아이폰이 나온다고 해도 살 생각이 없어. 아이폰을 쓰게 된다면, 전화통화 한 번 할 때마다 마치 뜨거운 후라이팬에 버터를 살짝 녹인 듯 얇게 발라지는 개기름을 매번 닦아 쓰고 있느니 그냥 지금처럼 폴더폰을 계속 쓰겠다고 마음먹은지 이미 오래니까. 아이폰이 이렇게 좋으니까 그래서 빨리 들여와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할 생각은 전혀 없어. 맞대응을 하더라도 뭘 좀 알아야 맞대응을 하지 않겠어? 아이폰 미발매에 관한 본격적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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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키핑키 (pinkypinky@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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