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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사진1.PNG

고려시대 저택 그림으로 추정되는 회화

 

 

연재 목차

 

1. 이자겸 비긴즈 : 동생이 왕비가 됐는데... 바람을 폈다네?(feat.이자겸) - 링크

2. 훈요십조 코드 : 조선과는 게임의 룰이 다르다

3. 고려판 왕좌의 게임

4. 여진족 맞춤형 특수부대의 탄생

5. 피의 연회

6. 북방의 댑바람

7. 이자겸 라이즈

8. 이자겸 난의 전말

9. 왕의 반란

10. 묘청의 재림

11. 묘청의 난

 

 

<지난 편 역사 요약>

 

1. 이자겸의 여동생은 고려 12대 왕 순종의 세 번째 계비로 들어갔다.

 

2. 순종은 3개월 만에 죽었고, 이자겸의 여동생은 궁노의 아이를 임신했다.

 

3. 여동생은 폐비가 되어 사가로 쫓겨났고, 이자겸 집안도 정계에서 물러나야 했다.

 

4. 화가 난 이자겸이 여동생을 죽였다(정사에선 이자겸이 여동생을 어떻게 했는지 나와 있지 않다. 해당 부분은 이자겸의 성격을 참조, 역사 속 블록 처리된 부분을 각색한 것이다).    

 


 

2. 훈요십조 코드 : 조선과는 게임의 룰이 다르다

 

고려 11대 왕 문종(재위 1046~1083년)은 자신의 왕위를 장자인 12대 순종에게 양위하였으나, 즉위 3개월 만에 사망하게 된다. 이로써 자신의 조카를 다음 왕으로 만들어 고려를 먹어버리겠다는 이자겸의 꿈은 물거품이 된다. 

 

자녀가 없던 순종의 뒤를 이어, 순종의 동생이 새로운 왕으로 즉위했다. 그가 고려 13대 왕 ‘선종’이다.

 

고려 왕 계보도 자른거.PNG

고려 왕조 계보

출처-<doopedia>

 

그런데, 순종에게 아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선종이 왕위를 이어받았을 수도 있다. 여기서 고려와 조선의 차이점이 있다. 고려의 태조 왕건은 왕위를 물려줌에 장자 계승 원칙을 고수하지 않았다. 따라서 고려에선 선왕의 아들이 있음에도 동생이 왕위를 물려받는다고 하여, 정통성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이러한 내용은 훈요십조로 문서화되어 후대에 전해지고 있다. 훈요십조는 태조 왕건이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담은 유훈이라고 할 수 있는데, 3조에는 왕위승계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가 있다.

 

왕위 계승은 맏아들로 함이 상례이지만, 만일 맏아들이 불초할 때에는 둘째 아들에게, 둘째 아들이 그러할 때에는 그 형제 중에서 중망을 받는 자에게 대통을 잇게 하라.

 

-훈요 3조-

 

왕건 청동상.jpg

951년(광종 2년)에 제작된 것으로 왕건을 형상화한 청동상

고려가 멸망할 때까지 왕실 최고 상징물이었다.

현재 평양 조선중앙역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사기업이 경영권을 세습하는 것보다 전문경영인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효율적이듯이, 고려 태조 왕건은 장자 계승 원칙을 고집하지 않음으로써 국가의 발전을 도모했다. 암튼, 형의 왕위를 이어받은 ‘선종’은 10년이 넘는 재위 기간을 잘 이어갔으나, 1094년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한다. 이로써 고려판 왕좌의 게임이 본격화된다. 

 

선종은 자신의 병이 위중해졌을 때 양날의 검을 손에 쥐고 있었다. 먼저 태자가 갓 열 살을 넘겼을 정도로 어렸고, 잔병치레까지 심하였다. 동시에 자신의 동생인 ‘계림공’은 그야말로 왕위를 물려받을 준비된 후보였다. 계림공은 아버지 문종으로부터 형들(순종, 선종)에 버금가는 총애를 받았으며, 두 형이 왕위를 세습 받는 동안 차분히 기다린 뛰어난 정치가였다. 

 

계림공의 사저에 모인 측근들은 이번에야말로 자신들이 모시는 이가 왕위에 오를 마지막이자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다.

 

회의.PNG

 

“나리, 폐하의 병이 생각보다 위중한 듯하옵니다. 저희 쪽에서도 서서히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경거망동은 절대 아니 된다. 십 년을 넘게 기다렸다. 몇 달을 더 못 기다리겠느냐? 지금은 폐하의 쾌유를 기원해야 할 때이다. 조금이라도 조카의 왕위를 노리는 인상을 주어서는 아니 된다. 민심을 얻지 못한 왕권은 오래갈 수 없다. 폐하는 훈요십조에 따라 합당한 결론을 내릴 것이니 기다려 보자.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한다.”

 

“알겠습니다. 태자마마뿐만 아니라 이자의 쪽 동태도 계속해서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이자의는 또 누구인가? 이자겸과 이름만 유사할 뿐만 아니라, 이자겸처럼 집안의 여자들을 이용하여 어떻게든 권력을 잡으려 한 인물로 욕망의 화신이다. 

 

이자의는 11대 왕 문종 때부터 자신의 딸과 여동생을 궁으로 시집보내며 혼인업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여동생은 현재 병석에 누워있는 13대 왕, 선종의 후궁으로 들어가 왕자까지 생산하며 왕실에 무사히 연착륙한 상태였다. 그는 태자가 엄연히 살아있지만, 자신의 동생이 낳은 왕윤을 다음 왕위 계승자로 만들기 위해 그야말로 사활을 걸고 있었다. 

 

훈요십조와 고려의 지난 왕위 세습 과정을 고려하면, 차기 왕 서열에서 병석에 누워있는 선종의 동생 계림공이 가장 앞섰고, 어리고 병약한 태자와 왕자 왕윤을 등에 업은 외척 이자의가 뒤를 쫓는 형국이었다. 그래서 계림공 측에서는 이자의의 대한 감시와 경계도 늦추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요 며칠 못 보던 자가 보이던데. 행동거지는 아직 설익어 보여도 눈빛이나 기개가 보통이 아니던데?”

 

“역시 나리께서는 사람 보는 안목마저도 탁월하십니다. 척준경이라고 주리 집안의 망나니 같은 아들입니다. 집안이 가난하여 서리도 되지 못하고 그 한을 무뢰배들과 다니며 풀고 있기에 제가 거두어 들였습니다. 아직은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저도 나리처럼 그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필시 요긴하게 쓰실 날이 올 것입니다.”

 

척준경은 훗날 계림공이 예상한 정도를 뛰어넘어 우리 역사상 개인 전투력으로는 최고 경지에 이르는 무인이 된다. 귀신같은 검술로 여진족 정벌에 큰 공을 세워 권력의 정점까지 다다르게 됨은 물론 ‘곡산 척 씨’의 시조가 되는 인물이지만, 그 시작은 계림공의 종자였다.

 

한편 외척 이자의는 계림공과 달리 좌불안석이었다.

 

회의222.PNG

 

“왕의 건강은 좀 어떠냐? 설마 차도가 있는 건 아니겠지?”

 

“차도는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당장 내일이라도 승하하실 상태는 아니신 듯하옵니다.”

 

“그래? 우리가 먼저 선수를 쳐야 하는 것 아니냐? 병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날랜 자들을 데리고 네가 야밤에 기습을 하는 것은 어떻겠느냐?”

 

“그 방법은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하시는 것이 합당한 줄 아뢰옵니다.”

 

“겁나는 건 아니고?”

 

“제 한 목숨 지키자고 드리는 말씀이 아니옵니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관군이 아니라 계림공에게 먼저 당할 수 있습니다.”

 

“그자는 완전히 손 털고 나온 듯한데?”

 

“그렇지 않사옵니다. 특별한 움직임은 없사오나 계림공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자이옵니다.”

 

“그놈은 태자의 숙부가 아니더냐. 민심이 등을 돌릴 수도 있을 텐데.”

 

“계림공의 뒤에는 훈요십조가 있고, 섣불리 움직이지도 않아 민심을 잃지도 않고 있습니다.”

 

“제기랄. 조카 왕 한 번 만들기 참으로 어렵구나. 여기저기 감시하고 챙겨야 할 놈들이 왜 이리 많은 것이냐. 내 조카를 왕으로 만들기만 하면 그날로 죄다 쓸어 버릴 것이다.”

 

“지금까지 잘 해오셨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곧 천하가 나리의 손안에 들어올 것입니다.”

 

“가당치 않게 어디서 훈계질이냐? 피곤하다. 그만 나가보거라.”

 

왕은 정녕 하늘이 내리는 것일까? 계림공의 끈질긴 기다림과 이자의의 조급함, 어느 쪽도 정답이 아니었다. 선종은 결국 11살의 어린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세상을 떠났다. 나라를 위한 이성적인 선택이라고 여겼을까? 아니면 핏줄에 끌린 본능적인 선택이었을까? 왕비와 어리고 병약한 아들이 노련한 숙부와 노골적으로 야욕을 드러내는 외척 사이에서 왕좌를 지켜낼 거라고 믿었을까? 인생은 복수의 선택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어린 왕(정도전).jpg

출처-<KBS1>

 

결국 1094년 어린 태자는 기대보다는 세간의 우려를 짊어지고 고려의 14대 왕으로 즉위하게 되었다. 그가 바로 ‘헌종’이다. 그리고 그해 6월부터 사후 사숙태후로 불리게 되는 왕의 친모가 섭정하게 되며 왕좌를 향한 새로운 막이 오르게 되었다. 정상은 오르기보다 지키기가 더 어려운 법이다. 사숙태후가 머무는 궁전 중화의 근심은 어두운 밤에도 감추기가 어려웠다.

 

“어마마마. 제가 훌륭한 왕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 왕위를 지킬 수나 있을까요?”

 

“폐하! 어찌 이리 약한 소리를 하십니까? 이 어미가 있잖습니까? 아무 걱정 마시고 잠을 푹 주무세요. 요즘 통 드시지도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우선 잘 드시고 잘 주무시는 것에만 집중하세요. 그리고 어서 자라서 이 어미를 지켜주세요. 그때까지는 그 어떤 자라도 폐하에게 손끝 하나 못 건들게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어마마마만 아니라면 저는 이까짓 왕 자리 내버리고 싶습니다. 소자는 두렵습니다. 인주 이씨 가문도 두렵고 잘난 숙부도 두렵습니다.”

 

“이리 와서 누우세요. 오늘은 여기서 주무세요. 용안이 말이 아닙니다.”

 

백성들은 왕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세상에 무심했으며, 문벌귀족들은 왕권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어느 쪽에 줄을 대어야 할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결정하셨소? 왕께서 아직 어린 것뿐 아니라 건강까지 좋지 않다고 하시던데, 왕위를 지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건강을 지키는 것이 우선 아니오? 계림공이 너무 조용한 것이 오히려 수상하기도 하고, 그냥 그자는 간이 작은 것인가 싶기도 하고 속을 모르겠단 말이지.”

 

“지금 당장은 사태를 지켜봅시다. 누가 되든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되지요. 그래도 이자의 집안에 이 나라가 넘어가면 배가 아플 듯합니다.”

 

“아무래도 그렇지요? 그 인간이 수완은 좋으나 워낙 무식해서 말이야... 나라 밖도 여진족 때문에 뒤숭숭한데, 술이나 합시다.”

 

“좋지요.” 

 

1094년의 고려는 섭정 왕후와 계림공, 외척이 힘의 균형을 이루어 평화로워 보였고, 그 기간이 당분간 지속될 듯 보였다. 그러나 역사와 인생은 늘 하찮은 인간의 예상을 벗어 나는 법이다. 이듬해 삼분지계의 한 축이 일어나며, 고려는 혼란의 시대를 맞이한다.

 

<계속>

 

 

<오늘의 역사, 한 줄 요약>

 

1. 11대 왕 문종의 장남이 12대 왕 순종으로 즉위 후, 3개월 만에 급사하자 차남이 13대 왕 선종으로 즉위했다.  

 

2. 선종 즉위 10년 뒤, 선종의 건강이 안 좋아지며 태자와 계림공, 왕자 왕윤(이자의) 세력 간 왕위를 물려받기 위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3. 10살을 갓 넘긴 태자가 왕위를 이어받으며 14대 왕 ‘헌종’으로 즉위한다. 선종의 아내이자 헌종의 어머니인 사숙태후가 섭정을 맡는다.

 

4. 사숙태후, 계림공, 이자의 세력이 균형을 유지하고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