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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수배 되어 향후 한국 입국 시 체포될 수도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덩그러니 남겨진 문자. 해외에 있어 피의자 신문 조사를 받지 못해 기소가 중지되어, 경찰로서는 해야 할 고지를 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지명수배’, ‘체포’ 같은 단어들이 무척 낯설게 다가왔다. 내가 뭘 그렇게까지 잘못한 걸까. 과연 내가 했던 일이 지명수배를 받고 추후 체포가 될 수 있다는 말까지 들어야만 했던 것이었을까?

 

내가 혼난 이유

 

보통 기사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이 되면 언론중재위원회(언중위)를 통해 적절성 여부를 판단, 기사를 수정하거나 삭제 후 정정보도를 낸다. 이후, 피해가 심각하다 판단되면 재판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고, 잘못한 부분에 대해 처벌받도록 하는 게 일반적인 순서. 그런데 거꾸로였다. 글이 게재되기 무섭게 고소했고, 경찰은 피고소인 조사도 하기 전에 압수수색까지 감행했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이렇게 일을 잘, 그리고 빠르게 처리했었나? 싶을 만큼, 고소 절차는 전광석화와 같이 이루어졌다. 고소인이 누군지도, 무엇 때문에 고소했는지도 모르는 상황. 쌍방의 조사도 거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고소인의 진술만을 근거로 압수수색까지 진행된 걸까. 아직도 의아하다. 이가 척척 맞춰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이미 짜인 판이 굴러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왜 누군가의 고소는 유야무야 수개월 혹은 수년씩 묵혀 두면서, 어떤 고소에는 이렇게도 빠르게 반응하고 처리하는지 지금도 이유는 알 수가 없다. 추후에 알게 되었지만, 증인으로 채택되어 재판장에 출석한 고소인이 “혼을 내주고 싶었다"라고 증언했다. 대한민국 고위공직자의 입김이 영향을 준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오랜 시간 OO과 한국을 수차례 오가며 재판받은 나는 단단히 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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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법원

  

폭로의 대가

 

나를 혼나게 한 당시 딴지일보의 기사 내용은(지금은 언중위의 중재로 내용이 일부 수정되었지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주OO대사관에서 근무했던 우리나라 외교관이자 대사관의 공사 겸 총영사였던 공직자가,

 

1) 과거, 여기자를 성추행해 외교부로부터 징계받았고,

 

2) 여직원과의 불륜 스캔들로 문제가 있었으며,

 

3) 직원을 성추행하고 이외에도 다른 부적절한 언행을 일삼았는데,

 

4) 결국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서 잊히게 될 거라는 법칙이 작용, 해당 고소인은 여전히 모 기관의 외교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런데,

 

1)과 관련해서는 이미 2004년도에 동아일보, 한국일보 등 국내 언론사들이 보도한 바 있고, 당시 반기문 외교부 장관에게도 보고되어 징계 처분이 되었던 사건이었다. 이 내용을 문제 삼으려면 최초 보도를 했던 기자에게 이의를 제기했어야 맞다. 그런데, 그때는 아무 말 없다가 왜 기사를 인용한 나에게 잘못을 묻는 것일까.  

 

경찰 조사를 받을 때, 조사관은 피해 여기자가 누구인지, 어떤 성추행을 당했는지, 증거가 있는지 물었다. 경찰은 내가 실체를 파악하지 않고 기사를 인용했으니, 상대방을 비방할 목적이있음이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아무리 시간을 돌려 다시 생각해 봐도, 납득이 어려운 대목이다. 

 

2)와 관련해서는, 해외 주재 대사관 내 고위공직자의 여직원과의 스캔들 문제로 떠들썩하여 당시 국정원에서 조사관이 파견되어 직접 조사까지 했던 일이었다. 이는 고소인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직접 언급했던 증언. 조사 결과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고는 하나 당시 두 사람의 관계를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 많아 한인회에서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스캔들’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의미는 명확하다. 무죄인지 유죄인지 알 수 없는 의심스러운 사건을 통칭하는 말. 1900년대 초 대한민국 영사관이 생긴 이래로 100여 년 동안, 공직자의 불륜 스캔들로 국가 정보기관이 직접 나서 조사에 착수한 일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직접 목격한 것이 아닌, 다른 목격자의 진술을 인용한 것을 빌미로 허위 사실이라 판단했다.

 

3)은, 재판 당시 피해자가 직접 밝힌 바 있지만, 직원 회식 후 강제로 술자리에 여직원을 데려가 화장실 위치를 알려 달라며 밖으로 유인한 후, 몸의 중요한 부위를 만지고 입을 맞추는 등의 행위를 했다. 이는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직접 진술서를 제출함으로 사실 확인이 입증된 바 있다. 하지만 경찰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고소인이 이는 허위라고 진술했다는 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4) 고소인은 대사관 내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과 관련 가해자를 문책하기는커녕 되려 피해자를 욕보이고 종국엔 대사관을 그만두도록 한 일이 있다. 이 외에도 업무 중인 여직원에게 일부 신체 부위에 대해 언급하고, 이외에도 한인회로부터 골프 및 식사 접대를 받고, 회원들과 가라오케에 드나드는 등 고위공직자로서 비난받아 마땅한 일을 일삼는 자였다. OO을 떠나 우리나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당시 환율로 보면) 수십만 원에 해당하는 식사(70만 원), 가라오케(70만 원), 송별 선물(40만 원)을 받았다. 

 

이미 밝혀지고 알려진 사안들만 보더라도 별도의 수사가 필요 없었다. 하지만, 경찰도, 그리고 기소 의견으로서 사건을 건네받은 검사도 고소인의 말에만 귀를 기울였다. 엄연하게 피해자가 존재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억울하다는 호소에도 소용없었다. 그리고 가해지는 형벌엔 가차 없었다(위 내용은 딴지에서 “저는 주OO대사관 직원이었습니다”의 총 7개 연재 중 두 번째에 삽입된 내용이다).

 

대사관을 그만두고, 그간 있었던 일들, 그중에서도 정말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싶었던 순간들의 기록들을 모아 쓰게 된 이야기들이었다.

 

목적은 하나. 알고는 있지만 알려지지 않았던 일들을 대중에게 알리고 앞으로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꼭 그랬으면 하는 진심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이렇게 한다고 누가 알아줄 것도 아니었다. 되려 미운털이 박히거나 하루에 10시간 가까이 함께 한솥밥을 먹던 동료들과 등을 지게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연재가 게재된 후, 대사관에서는 단속 아닌 단속 명령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혹여 현직에 있는 옛 동료들에게 피해가 갈까 늘 노심초사했다. 

 

쪽팔려서 그랬다

 

외교부에 근무하며 가장 분노했던 순간이 있었다.

 

2016년 9월 주칠레대사관에서 참사관 직책의 우리 외교관이 14살 미성년 여학생을 한국어를 가르쳐 준다는 명목으로 불러내 몸을 만지고 입을 맞추는 등의 성추행을 한 사건이 발생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칠레 한국 외교관 미성년자 성추행 방송 '파장' _ YTN (Yes! Top News) 0-8 screenshot.png

 

해당 사건은 해당 지역 주재 대사관 혹은 경찰의 조사로 밝혀진 사안이 아니었다. 수차례 문제 제기를 해도 개선이 되지 않자, 하다 못해 칠레의 한 언론사가 증거 동영상과 피해자를 확인해 알려지게 된 사건이었다.

 

현지 외교관들은 물론 현지 교민들까지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쉬쉬했다. 이유는 하나. 3년마다 순환근무 하는 외교관 업무 특성상 시간이 지나면 떠나게 될 테니 조금만 참으면 끝날 일이라고 여겼다.

 

결국, 다 알면서도. 국격이 손상됨은 물론, 어린아이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준 엄청난 사건을 조직의 안위를 위해 모른 척 넘어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2013년 11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영국을 국빈 방문했다. 당시 벌어졌던 일들은 이 정부의 끝이 어떻게 끝날지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하루 묵을 숙소를 위해 청와대가 했던 요청들은 상식을 한참 벗어났다. 대통령 한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어떤 식으로 세금이 낭비되고 있었는지, 단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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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링크

 

하지만, 아무도 지적하는 자가 없었다. 질문지와 질문자, 답안지가 정해진 간담회를 진행해도, 무리한 요구가 있어도, 자칫하면 우리나라와 영국 간의 관계까지 우려해야 할 만한 상황이 있었음에도 누구 하나 문제 제기하는 이 없었다. 대통령이 떠나고 나면 모든 일은 제자리로 돌아올 테니. 그렇게 다들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살았다.

 

저는 대한민국대사관 직원이었습니다3: 박근혜 대통령 영국방문, 그날의 진실

(당시 썼던 기사 - 링크)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다. 언제나 정의로웠던 것은 아니다. 가족들 생각에 이리저리 고뇌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 살 순 없었다. 없지 않은가. 권력에 맞서 싸운다는 거창하고 비장한 마음이 아니었다. 단순했다. 이렇게 비겁한 세상에서 내 아이를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사는 건, 너무 창피한 일이다.

 

그래서 딴지일보에 글을 썼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그렇게 난, 지명수배자가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