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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9번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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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출판>

 

 

왜 다른 나라의 5월 1일은 ‘노동절’이고, 한국은 ‘근로자의 날’일까

 

1886년 5월 1일 토요일, 미국 일리노이주의 시카고에서는 8만 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그들의 요구 조건은 하루 8시간 노동이었다. 그러나 5월 3일 경찰은 강경 진압을 했다. 경찰의 발포로 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5월 4일, 시카고 헤이마켓 광장에서는 3,000여 명의 시위 노동자들과 경찰이 대치했다. 전날의 사망 소식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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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Wikimedia>

 

곧 곤봉을 든 경찰의 무력 진압이 시작되었다. 그 순간, 누군가가 경찰을 향해 사제폭탄을 투척했다. 경찰 1명이 사망했다. 경찰은 좁은 공간에서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기 시작했다. 무차별 난사였다. 시위 노동자 4명이 사망하고, 7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대대적인 검거 바람이 미국 노동계와 진보 운동계를 휩쓸었다. 8명의 노동운동 관련자가 체포되어 7명이 사형선고를 받았고 1명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노동운동계와 진보적 지식인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졌다.

 

“세상이 죄 없는 8명의 인민을 잃어야 한다면, 그보다 오히려 일리노이 대법원의 8명 배심원을 잃어버리는 편이 나을 것이다.” 

 

- 조지 버나드 쇼, 런던 헤이마켓 재판 항의 집회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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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버나드 쇼

 

그러나 소용없었다. 재판 1년 뒤, 4명에 대한 사형 집행이 실시되었다. 1889년 국제 노동운동 조직인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제2 인터내셔널)’이 프랑스 파리에서 결성되었다. 인터내셔널은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다 죽어간 미국 노동자들을 기리기 위해 5월 1일을 세계 노동자의 날로 선언했다. 다음 해인 1890년 첫 공식 행사를 시작으로 매년 5월 1일(메이데이)은 전 세계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와 존엄성을 확인하는 날이 되었다. 이것이 지금의 노동절이다.

 

말이 생각을 만드는 것이다. ‘노동’이 아니고 ‘근로’이어야 했다. 대한민국에서는. 박정희 이후 이어진 군사정권 하에서, 그리고 군사독재를 대신해 권력을 잡은 자본과 그 하수인인 보수 언론은 ‘노동’이란 말에 담긴 저항과 변혁의 정신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 자신과 가족을 위해 스스로 ‘몸을 움직여 일하’는 ‘노동’이 아닌 주인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는 ‘근로’를 원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노동절이 ‘근로자의 날’로 되었다. 노동자도 물론 근로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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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고용노동부>

 

5월 1일 메이데이는 ‘근로자의 날’이 아니다. 이날은 전 세계 노동자들의 ‘노동절’이다.

 

“사람을 온전히 담을 만큼 큰 직업은 없다.” 

 

- 스터즈 터클의 ’일‘ 中 -

 

 

26년 근속자에 대한 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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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9번의 일』 삽화 中

 

‘그’는 26년간 통신회사 현장팀에서 일했다. 수리와 설치, 그리고 보수 업무를 담당해 성실하게 일해왔다. 그간 자그마하던 회사는 거대한 기업이 되었다. 회사의 성장은 그의 자부심이었다. 그 자부심은 오랜 세월에 걸쳐 그의 몸에 새겨진 것이었고, 회사,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 대한 그의 동지 의식은 남다른 것이었다.

 

부장은 팔짱을 끼고 몸을 젖힌 채 미소를 지었다. 그럼에도 곤혹스럽고 불편한 기색은 다 감춰지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미안함이라고 그는 짐작했다.

 

그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새 부장이 그에게 내민 것은, 그가 ‘저성과자’로 결정되었으며 ‘재교육 대상자’가 되었다는 통보서였다. 부장은 예절 바른 사람이었고 배려를 아는 사람이었다. 부장은 그에게 원칙과 법규, 통계와 지표, 수익과 매출 같은 단어들을 사용해 현재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려 했고 26년간 회사를 위해 일해온 그에게 가급적 따뜻한 말들로 퇴직금을 받는 것이 나을 것이라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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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에 대한 회사의 의도를 잘 알 수 없었다. 마트에서 2교대 근무 중인 아내 ‘해선’이 떠올랐고, 고등학생인 아들 ‘준오’의 학비, 그리고 80이 넘은 양가 부모님들의 병원비 지출, 대출금과 각종 공과금, 보험료, 경조사비 등과 같은 경제적 어려움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가 진심으로 회사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왠지 이렇게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장은 그런 그에게 이번 퇴직 조건이 좋다는 점과 한 사람이 버티면 결국 다른 사람이 나가야 하니 연장자가 자진해서 나가주는 것이 보기 좋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에게 깍듯하게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가 다만 경제적 어려움 하나뿐이라고 생각하는지, 26년간 회사와 자신을 이어주던게 겨우 얄팍한 월급 통장 하나뿐이라고 여기는지 그는 되묻고 싶었다.

 

 

재교육과 새로운 업무

 

집에서 두 시간이 걸리는 PIP 교육 센터로 가기 위해 그는 기상 시간을 두 시간 앞당겨야 했다. 처음 며칠간 힘겹게 잠을 물리치고 그를 배웅하던 아내는 사흘이 지나자 지쳐버렸고,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자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집을 나서야 했다. 

 

교육 센터의 감독관은 그에게 8분이나 늦었다고 질책했다. 교육 센터에서는 읽으라는 책이 많았는데 <불황의 경제학>, <성공하는 대화법> 등 많은 책을 읽다 보면 앞 내용을 잊어버려 언제나 첫 페이지를 다시 뒤적여야 했다. 그가 제출한 보고서도 늘 분량 미달이라며 질책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고 어쩌면 교육의 목적이 그것을 깨닫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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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최하위로 교육을 마친 그에게 추석 명절이 다가왔다. 그 추석 명절은 그에게 달갑지 않았다. 추석에 그의 앞에 마주한 장면은 다음과 같았다.

 

고향에 신고 가도 될지 고민하게 만드는 낡은 구두와 회사에서 준 싸구려 샴푸와 치약이 담긴 선물 세트. 평일 두 배에 달하는 명절 수당을 포기하지 못한 아내와 손목터널 증후군으로 풍선처럼 부푼 아내의 손.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아들. 그래서 혼자 방문한 고향, 고향의 어머니와 소질 없는 농사꾼 형님 내외. 별다른 직업 없이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조카. 한때는 정년이 보장되는 국영 기업의 기술자라는 그에게 취직 청탁을 하던 고향 사람들. 그리고 고향 집의 묵은 먼지 냄새. 

 

이것이 그의 추석 명절이었다.

 

추석 연휴를 마치고 복귀한 그는 부장의 퇴직 제안을 다시 한번 거절했다. 그는 부장이 내민 그의 상품 판매 실적이 기록된 평가서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26년간 그가 회사에서 맡은 업무는 판매나 영업이 아니었다. 통신주를 매설하고 전화선을 끌어와 인터넷 케이블을 연결하는 것이 그의 업무였다. 그런데 상품 판매가 그의 현장 업무와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어서 그가 저성과자로 낙인찍혀야 하는지, 그는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타지역 상품 판매 부서로 발령받았다.

 

남자가 가리킨 곳은 간판도 없는 사무실이었다. 철제 셔터 너머로 내부가 들여다보였다. 1인용 책상과 의자, 소형 냉장고, 미니 히터, 서류 뭉치와 프린터, 컴퓨터와 전화 한 대가 전부인 사무실 내부는 좁고 어두웠다.

 

이것이 그가 발령받은 판매 거점 센터의 모습이었다. 그는 회사가 준 자신의 새로운 업무가 그에게 일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업무도 주지 않겠다는 뜻임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마침내 회사가 만들어 놓은 시험장 한가운데로 들어왔음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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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의미 없는 시간, 모멸의 한 시간은 길었지만, 하루는 짧았다. 버티고 버틴 그를, 회사는 다시 지방 소도시 시설1팀으로 발령 냈다. 가족과 헤어지고 고속버스를 타고 도착한 그곳은 사방이 논밭인 시골 마을이었다. 2층 주택을 개조한 ‘분기국사’는 마치 버려진 가옥 같았고 외딴 창고 건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회사가 원하는 것은 명확했다. 그것은 그의 자진 퇴사였다. 

 

 

‘그’가 버티는 이유

 

포기하기가 쉽지 않지?

 

평생을 목수로 살아온 장인의 말을 듣자, 그는 이상하게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미 한 번의 무릎 수술을 받았고 수술한 자리에 여러 번 염증이 발생하여 지팡이를 짚고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장인이었다. 다리 전체를 친친 감은 보호대 탓에 장인의 두 다리는 하얀 수수깡처럼 보였다.

 

장인은 자신도 몇 번 목수 일을 그만둘 기회가 있었다고 말했다. 서른 무렵에, 마흔 지나서. 목수 일이 밉고 싫어서 뒤돌아선 게 여러 번이었지만 다시금 나무를 살피고 깎고 자르고 만지는 자신의 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며 장인은 잠시 베란다 쪽을 내다보았다.

 

이제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으나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지금껏 해온 일이 자신의 일이고 다시 처음처럼 어떤 일에 매달릴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비열하고 야비한 방식에 굴복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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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미디어오늘>

 

26년 세월을 한결같이 일하며 그는 회사의 성장에 뿌듯해했다. 출근하면 느낄 수 있었던 동질감과 소속감, 그리고 연대감 같은 것들이 좋았다. 시간이 흐르고 회사가 더 성장하면 자신에게도 그만한 대우를 해 줄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다. 그래 그만해야지. 힘들어서 더는 못 버티겠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그는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니까 그가 회사에 기대한 건 마땅히 자신에게 주어져야 하는 것들이었다. 존중과 이해, 감사와 예의 같은 거창해 보이지만 실은 너무나 당연한 것들을 바란 것뿐이었다.

  

 

‘9번’이 된 ‘그’

 

어느 날 노조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그가 제출한 월차가 결재되지 않아 그는 무단결근을 한 셈이 되었다. 연차는 법적으로 한 달에 한 번 보장되는 것이나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이튿날이 되자 출퇴근 명부에서 그의 이름이 삭제되었다. 그는 대기 발령 상태가 되었다. 회사 인사 담당자와는 통화할 수 없었고, 분기국사 국장은 그에게 더 이상 출근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리고 주말까지 사택을 비우라고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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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노조에 가입했다.

 

78구역 1조 9번, 이것이 그가 회사로부터 새롭게 배치받은 소속과 이름이었다. 그가 노조에 가입하고 반년이 지나서였다. 그가 조합원 자격으로 교육과 시위에 참여하고, 본사 앞에 농성장을 꾸리고, 퇴직을 거부하는 동료들과 끈질기게 버틴 결과였다. 본사 인사 담당자는 공손하게, 마치 그와 회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사람처럼 말했다.

 

기존 월급의 80퍼센트 보장, 단일 직무 제공. 단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은 본사 소속이 아닌 하청업체 소속이며 현장 업무가 모두 완료되면 본사 소속으로 복귀함. 이것이 인사 담당자의 제안이었다. 그는 받아들였다. 인사 담당자는 그에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말하며 자리를 떴다. 그는 아내를 설득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그는 노력하겠다고 말했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회사를 믿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해선은 내내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것이 체념과 포기에서 비롯된 어쩔 수 없는 승낙이라는 것을 그도 모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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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것이 된 9번의 일

 

그가 네 시간 가까이 차를 몰고 도착한 78구역은 변두리의 소읍이었다.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는 천막으로 막혀 있었다. 회사의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마을 주민들 때문이었다. 대부분 노인인 마을 주민들은 회사의 송전탑 건설에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천막 아래에는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사람들과 경찰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송전탑이 설치될 산은 회사 소유였으나 주민들은 대대로 살아온 이곳에 송전탑이 뿜어낼 전자파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가 머물게 될 사택은 마을을 가로지르고 뒷산으로 향하는 길 초입에 있는 버려진 단층 한옥을 수리한 것이었다. 이곳에서는 ‘3번’과 ‘7번’, 두 동료가 그를 맞이했다. 그들은 회사가 이 마을 뒷산에 몇 개의 송전탑을 박는다고 했다. 재난 시에도 끄떡없는 셀폰 타워를 조성한다는 명분이었지만, 그 일대 통신 사업을 독점하려는 의도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른 새벽 그는 3번과 7번을 따라 뒷산을 올랐다. 주민들이 설치한 움막을 철거하고, 그곳에 회사 컨테이너를 설치하는 것이 그의 첫 번째 일이었다. 그곳에서는 경찰과 주민들이 대치 중이었다. 경찰들이 구호를 외치며 시위대를 한 걸음씩 밀어냈다. 그는 경험 많은 7번과 현장 감독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경찰들이 주민들을 밀어내는 동안 좁은 길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길은 겨우 생겨났다가 사라졌고 가느다랗게 열렸다가 완전히 막혀버렸다. 발소리들이 부딪히고 뒤엉키고 미끄러졌다. 그 역시 장비와 함께 몇 번이고 고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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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경남 밀양에서 송전탑 반대 시위

출처-<MBC>

 

언젠가 뉴스에서 본 장면들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지만, 그는 오직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해치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속한 1조를 포함해 5조까지 투입되었다. 욕설과 고성 속에서 날계란과 흙더미와 돌멩이 같은 것들이 날아 왔다. 그는 몇 번이고 고꾸라졌고 온몸이 순식간에 땀에 젖었다. 결국 마을 주민들이 세운 움막은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는 회사 컨테이너가 설치되었다.

 

아니, 이제 그를 움직이는 건 복직이니 복귀니 하는 회사의 약속이 아닐지도 몰랐다. 그는 다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일했다. 일하는 동안에는 자신 내부를 뒤흔드는 어떤 것들을 잠재울 수 있었다. 그에게 일은 이제 뭔가를 지우고 잊기 위해 하는 어떤 것이 된 건지도 몰랐다.

 

그날 이후 그가 머무는 사택은 한밤에도 주민들의 기습을 받았다. 그들은 징과 꽹과리를 앞세워 마당 안까지 들어왔다. 집이 부서지는 듯한 소음에 잠을 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부분 노인은 그들은 그의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기도 했고 3번과 7번 역시 닥치는 대로 집어 던지는 주민들 덕에 여기저기 상처를 입어야 했다. 몸싸움이라도 하게 되면 여지없이 읍내 지구대에서 폭행 관련 조사를 받아야 했다. 이제 그에게 일이라는 것은 끔찍한 것이 되었다. 그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다. 

 

 

기이한 집착과 오기

 

이게 당신들이 하는 일입니까? 좋은 일, 옳은 일. 그게 당신들 일이에요? 월급 얼마 받아요? 많이 받아요? 얼마든 주는 만큼 받고 살 수 있으니 좋네요. 고맙다, 훌륭하다, 칭찬도 듣고요.

 

장마와 뙤약볕, 그리고 지지부진한 공사 진행과 날마다 되풀이되는 주민들과 싸움 속에서 오기밖에 남지 않은 그는 마을 이장이 데리고 온 젊은 사람들에게 쏘아붙였다. 그들은 호의적인 태도로 그와 동료들을 설득했다. 어차피 본사 소속도 아니니 설치되는 송전탑 개수, 공사 기간, 철탑을 지상에 설치해서 절감되는 비용 등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들 중 젊은 여자는 기사는 익명으로 나가니 안심하라는 말과 가족들이 사는 곳이라면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그의 양심에 대한 호소로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가 단호하게 거절하자 젊은 여자의 얼굴에는 그에게 보내는 것임에 틀림없을 멸시와 경멸의 기색이 어른거렸다.

 

나는 이 회사 직원이고 회사가 시키면 합니다. 뭐든 해요. 그게 잘못됐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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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은 더디게 이어졌고 어느덧 가을이 되었다. 본사 직원이 그들을 찾아왔다. 직원은 회사가 지금처럼 인력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했다. 7번은 사정했고 3번은 말을 더듬으며 직원에게 회사의 약속을 상기시키려 애썼다. 직원 서류 몇 장을 꺼내 보이며 다른 곳의 공사 진척 상황과 78구역을 비교했다. 그리고 10월 10일이라는 회사의 최종 시한을 제시하며 그때까지 마무리된다면 셋 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날은 크레인이 들어오기로 한 날이었고 주민들의 대규모 집회가 예고되어 있었다. 주민들만이 아닌 시민단체 사람들과 기자들도 진을 치고 있었다. 대형 크레인 두 대와 작업용 트럭 몇 대가 진입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저 날이 저물어 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한밤이 되었다. 그는 작업용 트럭에 올라 시동을 걸고 가속페달을 밟았다. 그는 몰랐다. 트럭 뒤에는 등산용 로프가 설치되어 있었고 마을 주민들은 그 로프에 몸을 묶은 채였다. 그리고 7번은 그 로프를 풀려고 트럭 뒤편에 서 있다가 마을 주민들에게 휩쓸렸다. 80대 노인 한 명이 숨졌고 7번은 오른쪽 어깨뼈가 부서졌다. 사유지 무단 침입과 기업 사유재산 무단 점유로 로프에 매달린 주민들에게 벌금이 부과되는 것으로 사건은 종결되었다.

 

어깨에 철심을 박은 채로 7번이 사택을 떠났다. 의사는 그에게 완치가 어려울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두 주 뒤에는 3번이 떠났다. 그는 죄책감에 시달렸고 사람 죽이는 일에 동원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제 78구역 1조에는 그, 9번만이 남게 되었다.

 

다만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지. 그래서 마침내 닿게 되는 곳이 어디인지.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거기까지 이르러야만 이 기이한 집착과 이상한 오기를 모두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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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라는 것의 실체

 

그는 그곳에 1년을 더 머물렀다. 그동안 몇몇이 새로 배치되었으나 모두 버티지 못하고 떠났다. 그가 78구역 1조에 속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동안 철탑은 마침내 다섯 개가 세워졌다. 그러나 그 철탑을 바라보는 그의 내부에는 알 수 없는 조바심과 두려움과 공포심이 몸집을 키워갔다. 그는 철탑을 보면서도 자신의 손으로 뭔가를 완성했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없었다. 그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매서운 한파가 예고된 어느 날 아침 드디어 여섯 번째 철탑 구조물이 현장에 도착했다. 이것이 설치되면 현장은 철수였다. 일이 끝난 어느 날 아들 준오에게서 연락이 왔다. 대학에 합격했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들뜬 기색을 억누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현장 철수 전에 인사 담당자를 만나 확답을 들어야 했다. 회사로부터 이곳 작업이 예상외로 지체됐고, 그가 복직이 된다 하더라도 이처럼 긴 시간을 보장받을 수는 없었을 거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것이 그의 복직에 대한 거절임을 알 수 있었다. 인사 담당자는 그와의 만남을 피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밤 그는 한파 속에서 방한복으로 무장하고 철탑이 설치된 현장으로 올랐다.

 

캄캄한 산길을 오르며 그는 아들 준오를 생각했다. 준오도 언젠가 자신의 일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일 때문에 원하지도 않는 것을 하게 될 것이고 자신이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것을 깨닫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산을 오르던 그의 눈앞에 거대한 통신탑이 나타났다.

 

그는 잠시 멈춰 서서 높이와 너비를 가늠할 수 없는 그것을 올려다보았다. 혼자 힘으로는 결코 부서뜨리거나 망가뜨릴 수 없는 철과 쇠로 무장한 거대한 구조물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몸을 숨기듯 언급했던 회사라는 것의 실체가 마침내 눈앞에 드러난 것 같았다. 그래, 너로구나. 너였구나.

 

그는 안전모에 끼운 랜턴의 위치를 조절하고 공구 벨트를 찬 다음 통신탑에 붙은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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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中

 

팔을 뻗을 때마다 전파가 오고 가는 전기 자극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랜턴 불빛에 철제 구조물 위에 엷게 덮인 얼음 조각들이 반짝였다. 그는 철탑 구조물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시린 바람이 들어왔다. 그는 안전 버클을 채우고 스패너를 꺼내 들었다.

 

구조물 양 끝에는 여섯 개씩 모두 열두 개의 너트와 볼트가 박혀 있었다. 그는 너트에 스패너를 끼우고 망치로 힘껏 내려쳤다. 탕 탕 소리가 멀리까지 퍼져나가며 단단하게 조여진 너트가 풀리기 시작했다. 그는 스패너를 쥔 손에 온 체중을 실었고 힘과 기운을 모두 쏟았다. 마침내 그가 열두 번째 너트를 풀었을 때 구조물이 완전히 분리되었고 그것은 추락했다. 그는 떨어지지 않도록 철탑 지지대에 바짝 붙었다. 그리고는 곧 발아래 어둠 속에서 분리된 구조물이 바닥에 내려꽂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어쩌면 이런 식으로 아주 오랫동안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그는 했다. 정말이지 이런 식으로. 그동안 자신이 세워 올린 것을 무너뜨리면서. 이 일을 길게, 아주 길게 이어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그는 하고 있었다.

 

 

노동과 인생, 나는 왜 일하는가

 

직장인이란 곧 임금 노동자를 말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소유한 것을 팔거나 무언가를 생산해야 하는데, 그들은 자본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노동력을 팔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합니다. 그러나 노동의 필요성을 단순 생계유지로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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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현대 문명 사회에서 인간이란 존재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자신이 존재해야 할 이유입니다. 그래서 일을 합니다. 인간은 일을 통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 삶의 질을 높이며 자신을 발전시켜 나갑니다. 직장은 소속감을 주며 그 속에서 동료들에게 피어나는 연대감은 오직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높은 수준의 행복입니다. 직립, 언어, 정치, 예술, 유희 등 인간이 다른 고등 동물과 다른 점은 많이 있지만 정말 중요한 차이점은 ‘노동’입니다. 오직 인간만이 자신의 노동이 가져온 결과물에 뿌듯한 성취감을 느끼며 그 과정에서 실현되어 가는 자아를 확인합니다. 이것이 노동의 기쁨입니다.

 

“대지와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기도가 아니라 노동이다.”

 

- 막심 고리키 -

 

그러나 자본이 원하는 것은 임금 노동자들의 자아실현이 아닙니다. 자본은 오직 이익만을 원합니다. 무한경쟁, 고도의 효율성, 낮출 수 있을 만큼 낮춰야 하는 지출, 이것이 자본이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입니다. 회사는 같은 일을 하고도 더 낮은 임금을 지불할 수 있다면, 더 적은 수의 노동자로 동일한 이익을 낼 수 있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구조조정을 단행합니다. 호봉 높은 50대를 해고하고 그와 동일한 일을 할 수 있는 호봉 낮은 20대를 채용하는 것은 자본에게 있어서는 악덕이 아닌 미덕일 뿐입니다.

 

노동의 기쁨이 큰 만큼 노동의 소외가 주는 비참함과 자기 모멸감도 같이 커집니다. 영화 ‘모던 타임스’에서 주인공인 ‘떠돌이’는 하루 종일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나사를 조입니다. 그는 자신의 노동이 만들어 낸 성과물에서 기쁨을 느끼기는커녕 무엇을 만드는지도 모릅니다. 위 소설 속 ‘그’는 모진 고통을 감내하며 만들어 낸 거대한 통신탑 앞에서 성취감이 아닌 공포심을 느낍니다.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어느 날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자책감과 비참함입니다. 이것이 노동의 소외입니다.

 

이야기는 아주 먼 쪽에서부터 성큼성큼 그들 내부로 걸어 들어왔다. 그건 외부를 향한 분노라기보다는 자신의 무능함과 미련스러움에 대한 자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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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장’

 

인간은 일하는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자신이 존중받는 직장에 소속되어 있는 것, 노동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이보다 더 큰 인생의 행복이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도 가슴 속 한구석에 사직서를 품고 출근하고 있다면, 어느 날 실체를 알 수 없는 실직의 공포에 맞서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면, 단지 때가 되면 정확히 날아오는 카드 청구서 때문에 일하고 있다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그 어떤 기쁨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나는 왜 일하고 있는가.

 

임금 노동자들이 판 것은 노동력이지 자신의 인격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하는 이유는 생계유지와 더불어 자신과 자신의 인생을 지켜나가기 위한 것이지 일에 인생을 갈아 넣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일하는 이유,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지 일하려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5월 1일은 노동자의 날, 노동절입니다. 이날은 19세기 미국에서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던 노동자들이 공권력에 희생된 날입니다. 놀랍고 참담하지만 69시간 근무제 같은 말들이 권력자의 입에서 거리낌 없이 나오는 현실이 바로 21세기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은 시계를 짐승 같은 초기 자본주의의 태동기인 18세기로 되돌렸습니다. 이 땅의 모든 직장인, 일하는 사람들에게 19세기만도 못 한 21세기가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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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한 번째 인생으로 ‘그’의 인생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끝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익명으로 남은 ‘그’입니다. 26년간 일했던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다가 끝내는 ‘자신이 아닐 거라 믿었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그’입니다. ‘그’와 또 다른 ‘그’들이 노동의 기쁨을 누리게 되는 사회,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가 오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일곱 개의 문을 가진 테베는 누가 지었을까?

 

책들에는 왕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왕들이 돌덩이를 날랐을까?

 

그리고 여러 번 파괴되었던 바빌론―

 

그 바빌론을 누가 그렇게 여러 번 세웠을까? 건축노동자들은

 

황금빛 도시 리마의 어떤 집에서 살았을까?

 

만리장성을 다 쌓은 날 저녁,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을까? 위대한 로마는

 

개선문으로 가득 차 있다. 카이사르들은

 

누구를 무찌르고 개선했을까? 

 

-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中, 베르톨트 브레히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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