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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후보는, 단점을 꼽기 어려운 사람이다. 그가 안경 너머로 바라보고 있는 곳은 참 괜찮은 세상이고, 그의 가지런한 치아에서 나오는 말들은 믿음직스러우면서도 훌륭하다. "그 사람이 살아온 길을 보라"는 격언을 마주하고도 부끄럽지 않을, 보기 드문 정치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민주당도 새누리당도 믿지 못해 자민련, 자유선진당 같은 제2 보수당을 찍어오던 충남에서 도지사를 역임하고 있다는 것이 그 반증일 터.


정치자금법을 제외하고는 단점 찾기가 어려운 것에 반해 소통을 게을리하지 않았던지, 이야깃거리는 풍성해서 글쓰기는 좋았다. 안 후보님, 땡큐.

 

그의 일화 속에서 빛과 그림자를 엿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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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안희정(安熙正)

 

1965년 출생

1980년 남대전고등학교 중퇴

1989년 통일민주당 김덕룡 국회의원 비서

1990년 민주당 사무총장실 비서

1995년 고려대 철학 학사

1994년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사무국 국장

2001년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 경선 캠프 사무국 국장

2003년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 열린우리당 논산.계룡.금산지구당 창당준비위원회 위원장

2005년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원

2007년 참여정부평가포럼

2008년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소장, 민주당 최고위원

2010년 제36대 충청남도 도지사


1965년, 논산에서 출생했다. 부친은 박정희의 영향을 받아, 정희란 이름을 뒤집어 희정이라고 지었다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지만, 부친은 타인에게 놀러 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초딩 때부터 나서는 걸 좋아해 반장도 아닌 주제에 먼저 자리를 정리하고 차렷! 경례!를 붙이기도 했단다. 천성 정치인이다. 심지어 중딩 때는 "나는 다른 애들과 경쟁하기 싫다. 표를 몰아줄 거면 몰아 주고, 아니면 한 표도 찍지 마라"라는 괴랄한 말을 해서 당선이 됐다고.


야당스러운 쌤을 만나 박정희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생겼고, 고1 때부턴 교과서를 죄다 팔아버리고 온갖 불온서적을 탐독하는 혁명 소년이 되었다. 반장에 취임하면서 "나는 곧 자퇴할 거니까 반장 못 할 거다"라는 해괴한 발언을 했단다. 정말 화성인이 따로 없다. 그는 말처럼 고등학교를 자퇴한다. 이후 검정고시를 보고 고려대 철학과 83학번으로 입학한다.

 

대학에 들어가 학생 운동의 지도부로 활약하며 여러 좌절을 겪는 가운데, 가세가 급격히 기우는 상황도 맞는다. 모친이 주도하는 계모임이 파탄 나는 바람에 모친이 구속되기도 했다. 어려움을 속에서 어느새 '전대협의 대부'가 되었으나, 1988년 반미청년회 사건으로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구성죄 혐의로 체포되었다. 신체적 고문과 정신적인 갈등에 무너진 끝에 동료들의 이름을 불고 감옥생활을 한다. 그의 인생에서 있었던 가장 큰 좌절이자, 첫 번째 터닝포인트다.

 

이후 정치권에 뛰어들어 보좌관으로 이리저리 애썼지만, '이런 것이 국가발전을 위해서 무슨 도움이 되는가?'라는 회의 속에 빠져 있다가 3당 합당과 꼬마 민주당을 거치며 정계를 때려친다. 여기서 노무현과 첫 만남을 이루지만, 당시의 정치 환경에서는 아무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며, 여의도 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겠다고 다짐했단다. 다시는 정치 하지 않겠다는 맹세와 함께. 그렇게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그를 괴롭히는 고민과 좌절은 떠나지 않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고려대로 복학한다. 답을 찾는 가운데서 다시, 노무현과 함께한다. 두 번째 터닝 포인트다.


참여정부의 탄생에 일조했지만, 불법 정치 자금 3억 9천만 원과 대선 이후 1억 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아, 참여정부의 탄생 과정에서 생겼던 찌꺼기를 오롯이 지게 되었다. 그가 최후진술에서 남긴 말은, "저를 무겁게 처벌해, 승리자라 하더라도 법의 정의 앞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2010년, 충남도지사에 당선된다. 그 이후의 행보는 잘 아실 것이라 믿는다.

 

 

[빛]

 

1. 고딩 안희정, 정의를 부르짖다


안 후보는 무려 고1 때, '평천하'라는 지하잡지를 만들었다. 잡지 이름, 졸라 크고 아름답다. 대권에 도전하는 현재의 모습을 생각하면 참 재밌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던 그가 고등학교 때 퇴학을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구용 교사의 회고를 들어보자.


“희정이를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고1 때 희정이는 벌써 의식적으로 운동권 대학생들과 같은 수준이었다. 80년 5월이 지나면서 희정이는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1학년생이 뭘 아느냐’고 그 애에게 물었을 때 희정이는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중략)


당시 안 씨는 학도호국단의 1학년 연대장을 맡았는데, 학교에서는 교내 ‘불량서클 학생’들을 적발해 삼청교육대로 보내기 시작했다. 학교는 호국단 간부인 안 씨에게 불량학생을 색출하라 시켰고, 안 씨가 지목한 학생은 삼청교육대로 끌려갈 판이었다. 안 씨는 이를 계기로 학교를 더 이상 다닐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가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때마침 안 씨가 충남대 운동권 학생들에게 보낸 편지가 합수부에 적발됐고, 안 씨의 전력이 학교에 알려지면서 학교측은 안 씨를 그대로 두기 어렵다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안 씨의 제적이 거론되자 안 씨는 담임에게 “선생님들이 정의를 위해 싸우라며 가르쳐 놓고 정의를 위해 싸우려는 저를 이렇게 짜르려 하느냐”고 말했다. 이 말이 김 교사에게 두고두고 가슴에 남았다.

 

- 충청투데이(2003.04.03) <23년만에 받은 고교 졸업장> 중

 

"정의를 위해 싸우려는 저를 이렇게 짜르려 하느냐!" 멘트 보시라. 지금 같으면 딱 중2병으로 몰리기 쉬운 멘트이지만, 그 시대에는 참으로 절박한 외침이었을 것이다. 고딩 안희정의 마음속에는 정의감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부당한 요구에 맞섰다. 자신이 지목하는 학생이 삼청교육대로 끌려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 신념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것, 때로는 그것이 아주 과감한 선택일 수도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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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기롭게 정의를 외치던 고딩 안희정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세상의 모든 것을 정의와 불의로 나누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2. '캠퍼스 아싸' 안희정

 

안 후보는 대학 운동권 시절, 두 번의 철저한 패배를 겪었다고 소회한 바 있다. 항상 겸손하고 젠틀하며 국민과 눈높이를 맞출 것 같은 그에게도 '꼰대'였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가 시인한 실패 중 하나의 이야기는 '꼰대' 같이 굴다가 '아싸' 가 되어버린 찌질한 이야기다.


나는 후배들에게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들었다. 내가 그들에게 바란 것은 혁혁한 혁명투사의 모습이었지만 그 일은 쉽지가 않았다. 집안이 부유하거나 사회적 진출이 보장된 좋은 학과에 다니고 있었기에 도리어 학생운동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회의와 의문을 포용하고 찬찬히 설득하기보다는 무조건 뭉개 버렸다.


당연히 나는 후배들로부터 진심 어린 신뢰와 존경을 받지 못했다. '나는 이렇게 살았어' 식으로 잘난 체나 하고 오만하게 굴었으며, 그들의 인간적 고민을 들으면서도 "야, 다 때려치우고, 인생 망가지더라도 한 번 해보는 거야" 하고 막무가내로 다그치기만 했다. 자연히 후배들은 나에게 거리를 두었고, 이런 상태가 1년이나 계속됐다.


그러다 1984년 말이 되었는데 후배들이 방학을 맞아 고향집에 내려가 버리거나 해서, 아무도 서클의 MT에 참석하지 않았다. 인간적으로 그 친구들에게 좋은 선배도 못됐고, 정치적으로 제대로 이끌지도 못한다는 엄혹한 현실 앞에 나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 <담금질, 안희정의 새로운 시작> 중에서


예나 지금이나, 꼰대의 제1 덕목으로 꼽히는 것이 '강요'다. 선택을 위한 정보 제공과 도움을 넘어서서 어떠한 결정을 강요하는 사람을 우리는 꼰대라 부른다. 젊은 날의 안희정 또한 그와 다르지 않았다. 시대의 분위기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그 누구도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 "같이 좋게 되자!" 는 선배 안희정을 따르는 후배가 없는 것도 당연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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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은 이 찌질하고 아픈 경험으로 무엇을 느꼈을까.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가 그 찌질한 과거를 '상대방을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노력보다는 지적 우월감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경향이 더 많았던 것 같다'고 회상하며 반성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지금의 안희정이 소통과 합의를 중시하며 모두를 포용하려는 것 역시 경험에서 나온 태도로 보인다. '혁명 동지'들에게 조차 신임을 얻지 못하던 외골수가 직업 정치인으로 거듭나며 성장했고, 성장하고 있다는 건 유권자로서 반가운 일이다.


 

3. 동지들을 배신하다

 

안희정은 자신의 인생에서 이 일이 아주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고백했다. 1988년, 안기부로 끌려간 그는 매일 아침 각목으로 두들겨 맞으며, "네 말대로 혁명에 성공했다고 치자. 그러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토론과 희롱에 좌절했다. 안티 테제만 갖고 있고 대안은 없던 자신을 마주했다. 혀를 깨무는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그는 동지 두세 명의 실명을 불고 말았다. 정의감 투철하던 고딩시절부터 이어온 신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1심 재판이 끝나고 안양교도소로 가는 호송차 안이었다. "우리 출옥하면 더 열심히 투쟁합시다"라는 친구의 말이 너무도 공허하게 들렸다.

 

' 이렇게 패배해놓고 나가서 어떻게 더 잘할 수 있는가. 패배한 놈은 영원히 밟히고 살아야 하는 것이 맞지. 뭐 잘했다고 감옥 나가서도 아무 일 없었던 듯 행세한단 말인가.'

 

(중략)

 

1988년 12월 대통령 특사로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나올 때까지 딱 10개월을 감옥에 살았다. 감옥생활 내내 너무 부끄러워 자다가도 일어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나 같은 놈이 남들 앞에서 지도부입내 하며 큰소리치고, '혁명은 다 이런 거야' 하며 잘난 체했던 지난날이 부끄러워 견디기 힘들었다.


짧은 감옥생활을 하면서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앞으로는 능력이 딸리고, 준비가 안 된 자리는 절대 탐하지 않겠다는 것, 책임지지 못하는 이름, 책임지지 못하는 명예로 내가 더욱 고무되어 책임질 수 없는 일을 계속 벌였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끼칠 해악을 생각하게 했다.

 

- <담금질, 안희정의 새로운 시작> 중에서

 

기세 좋게 정의와 혁명을 외치던 투사는, 그 이후를 묻는 수사관들의 질문에 무너졌다. 무너진 것을 넘어 동지들을 배신했다. 완전한 멘붕. 선과 악을 분명하게 규정짓던 그때의 안희정은 자신을 용납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 시절에 동료들을 배신한 혁명가가 한둘은 아니었다. 그 좌절을 그냥 뭉개고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안희정은 과감히 혁명을 내려놓았다.

 

그 시기를 통해 그가 얻은 교훈은, '책임을 짊어지는 자세'였다. 마지막 문단을 비춰봤을 때, 지금 대통령에 도전하는 그의 결심이 결코 사사롭거나 가볍지 않음이 느껴진다. 그는 아마도 대통령이 되기 위해, 자신이 진정 준비가 되었나 수없이 자문했을 것이다. 그 자문을 통해 자신만의 결론을 얻었기에 대권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리라.

 

 

4. 출판사 영업부장 안희정의 고민

 

3당 야합과 꼬마 민주당, 정치권의 막장, 소련 붕괴. 그는 90년대를 이렇게 회고했다. '신념은 연기처럼 흩어지고 남아있는 것은 씁쓸하고 쓰라린 젊은 날의 기억뿐' 그렇게 출판사 영업부장이라는 새로운 직업에 뛰어들게 된다. 근데, 이 생활이 졸라 어려웠나 보다. 영업부장이란 직책에 맞지 않는 그의 대인관계 스타일은 큰 걸림돌이 되었고, 수금을 위해 홀로 전국을 돌아다니는 것 역시 우울하기만 했단다. 지방의 여관방에 드러누워 담배나 폈던 그를 괴롭히던 번뇌는 무엇일까.

 

1990년대 초반 나는 자살을 고민한 적이 있다. 두 가지 절망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진보 진영의 많은 이들이 그러했듯이, 사회주의권이 붕괴되고 진보에 대한 가치가 함몰되는 것을 바라보는 참담함이었다.

 

(중략)

 

절망의 또 다른 이유는 인간에 대한 실망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살아간다는 일이 사람에 대해 실망하고 사람에 대한 끊임없는 불신을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조직을 떠나고 정치적 의지와 목적을 상실한 이후, 내가 세상으로부터 스스로 배우고 터득한 것은 섭섭, 씁쓸, 실망, 유감, 허탈, 원망, 미움, 증오, 배신, 배반, 회한, 배타, 조롱, 경멸, 결별, 적대, 간사, 위선, 비겁 같은 단어들이었다, 비단 국회에서 만났던 정치인들뿐만이 아니었다.


그를 꽉 채운 고민들을 풀기 위해 결국 대학에 복학했고, 공자를 만나 이런 결론을 얻었다.


"우리 시대가 가졌던 가치가 이뤄지지 않아도 좋다. 새로운 대안이 없어도 좋다. 사회주의가 무너져도 좋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던 도(道), 사람이 걸어야 할 바른 길, 사회와 역사적 존재로서 인간이 가진 가치의 지향, 이것이 있다면 설사 불가능한 길이라도 그냥 가야 하는 것이다. 그 목표를 이루는 데 몇 개년 계획이 서 있느냐 아니냐, 구체적 전망이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와는 별개로 말이다. 역사를 짧은 한평생의 잣대로 함부로 재단하거나 승부 지으려 하는 것은 치기일 뿐이다. 조급한 마음으로 단기간에 성과를 얻으려 급급하는 것은 객기일 뿐이다. 그저 스스로의 깨끗한 마음을 세워서, 인간을 믿고, 역사를 믿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갈 뿐"

 

- 모두 <담금질, 안희정의 새로운 시작> 중에서


위 인용문, '역사적 존재로서 인간이 가진 가치의 지향'은 안희정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구절 중 하나라 본다. 영업부장으로서 먹고 살기 바쁜 와중에도 '시대는 어디로 향하는가, 나는 시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던 그가, 결국 택한 것이 '새로운 배움'이라는 길이라는 것도 참 '안희정' 답다. 


역사적 사명을 고민하고, 역사적 기준에 자신을 부단히 맞춰 걸어나가는 것. 그것이 안희정 스타일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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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어딘가 우수에 찬 눈빛

 

 

[그림자]

 

안 후보는 단점을 찾기 힘든 사람이었다. '안희정 단점'을 검색하면 고작 나오는 것이 '인지도가 부족하다.' 정도. 이런 걸로 그를 판단할 수는 없는 일. 최선을 다해 있는 자료들을 긁어봤다.



1. 투머치토커 안희정

 

의혹이 거의 없는 안 후보일 것 같지만 찾아보니 그가 해명해야 할 의혹이 있긴 하다. 팟캐스트 '정치 신세계'를 꾸리고 있는 윤갑희 씨는 페이스북에 안 후보에 관련된 일화를 올린 바 있다. '안 지사 실종사건'. 워밍업이니 가볍게 보자.


안희정이 석방되고 나서 끈 떨어진 백수시절인데 안희정의 보좌 역할을 하시는 분으로부터 홈페이지를 만들겠다고 나에게 연락이 왔다. 하여 허름한 사무실을 찾아갔는데, 온 김에 직접 안희정을 만나보라는 것이었다. 지금같으면 심장이 콩콩할 만 한데 뭐 그때는 이런 마음이었다. '아...잽싸게 미팅끝내고 복귀해야 하는데..'


하지만 뭐 할 수 있나. 인사도 나누고 마침 점심시간이라 밥도 먹었다. 그런데 안희정이 그랬다. 아무래도 자기를 잘 이해해야 홈페이지를 잘 만들 수 있다며 

(아니에요! 이해 못해도 자료만 주시면 잘 만들 수 있어요!)


대화를 더 나누잔다. 차도 여러번 마시고 대화를 끝내고 보니 거의 저녁때가 되었다. 

먼저 자신은 지자체장으로 출마할 거인데

(아이고 분수를 알아야지! 이렇게 생각했다)


자신이 자주 충남에 다니며 사람들과 대화한 노트를 잔뜩 꺼내서 보여줬다. 
(아오! 하나도 안궁금한데)


그러면서 하나 하나 설명했다.
그리고 손으로 꾹꾹 눌러 쓴 정책 노트. 이것도 하나 하나 설명했다.
(이건 더 안궁금한데!!!)


여기까지가 한 시간 정도 경과겠고
그리고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마 이게 세시간짜리 일 것이다. 

(중략)


긴시간 동안 난 듣기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좋은 기회에 여러가지 질문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정말로 너무 너무 궁금한게 없었다.


어쨌든 돌아오는 길에 내 눈은 촉촉히 젖어 있었다. 지금부터 야근을 준비해야 하므로...
여기까지 쓰고보니 뭔가 글에 교훈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안희정은 작은 만남에도 최선을 다하고 상대를 설득하고 경청하는 겸손하고 열정적인 사람이다.
그런 모습이 지금의 자리에 오르게 된 비결일 것이다.


에필로그 : 견적서를 보냈더니 연락이 끊어졌다.

윤갑회 페이스북

 

세 시간 동안이나 하나도 안 궁금한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견적서를 보여주자 내빼버리다니. 안 후보는 필히 이 의혹에 해명해야 한다! 안희정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 는 아니고. 말이 조금 느리달까, 진심을 다하여 소통하는 것도 좋지만 듣는 사람도 사정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달까, 하는 정도의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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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람을 가려 사귄다?

 

안 후보가 노무현 캠프에서 일 할 때, 사람을 가려 사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쓴 바 있다.


그분은(노무현 대통령) 늘 "원칙과 상식을 가지고 정정당당하게 승부해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불의와 타협하며 미래에 내가 출세하면 잘하겠다는 기회주의적 사고로는 절대로 새로운 세계가 열리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그룹의 대장이 가진 기본적 마인드가 이러했으니 당연히 공적 가치를 위해서 자기를 버려본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나도 이런 덕목에 가장 무게를 두고 사람을 만나고, 평가하고,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이런 혈통주의적 성격 탓에 운동권 출신의 외연을 뛰어넘기 힘들었다. 3~4년 전까지도 과거 학생운동, 노동운동의 족보 안에 없는 사람들은 참 사귀지 못했다. 그런 사람들이 아니면 내 이야기를 잘 안 들어주거나, 들어도딴 세상 이야기인 양 재미없어 했다. 그런 족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재미없기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서로 사귈 일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들어보고, 조금이라도 출세주의나 개인주의적 성향이 보인다면 일단 거부감부터 들었다. 이러니 사람과의 교제폭이 점점 줄어들 수밖에. 그러니 만약 나 혼자서 노 캠프를 꾸려왔다면 얼마 못가 동종교배(同種交配)의 한계에 부딪쳤을 것이다. 오래 동고동락한 이광재 의원은 그런 능력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실력을 갖춘 다양한 사람들을 어떻게든 끌어들이려고 노력했고, 그만큼 좋은 사람들을 데려왔다. 

 

- <담금질, 안희정의 새로운 시작> 중에서


필자에게 있어, 이것은 또 하나의 '엘리트주의'라고 읽혔다. 학력과 지식을 토대로 뭉치는 사전적 의미가 아닌, "공적 가치를 위해서 자기를 버려본 사람들"만 상대하는 엘리트주의랄까. 본인이 썼듯, '혈통주의'든 뭐든 비슷한 맥락이라고 본다.

 

그는 총리 추천권을 국회 다수파에게 넘겨서, 국회가 선출한 총리가 장관을 임명하는 내각을 구성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꼭 그렇게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자꾸만 고개를 들지만 일단 꾹꾹 눌러놓고, 안 지사 본인이 직접 공언하고 나섰으니, 말한대로 '연정'의 상황이 온다면 그는 최악이라고 여겼던 사람, 스스로 거부감이 드는 기회주의적이고 출세적이며 이기적인 이들을 품을 수 있을까.


 

3. "옳은 말만 하는데 은근히 갑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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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이 본격적으로 조명되기 시작하며, 그의 말이 어렵다, 추상적이다, 철학적이고 거대 담론에 치우쳤다는 의견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본인 스스로도 "제 말이 어렵다고 디스하는 분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토로할 정도.


사실 필자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대선 출정식 #즉문즉답 중 '저녁이 있는 삶'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안 후보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자리를 나누는 방식, 임금을 나누는 방식, 농촌과 도시가 살아가는 방식, AI로 달걀값이 치솟는 데 소비자로서만 고민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소비자이기 전에 시민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고민을 같이하는 시민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요즘 직장인들의 '저녁이 없는 삶', 이것에 대한 대책은 우리가 그에 준하는 새로운 시민 정신과,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 소비자와 시민으로서 합의를 해내는 만큼 사회는 바뀐다, 앞으로 전 이 합의를 국민들께 드릴 겁니다.
 
새로운 노동시간, 임금 배분 구조, 도시와 농촌의 삶의 패턴 변화, 서울 공화국 체제를 극복하는 일, 이런 다양한 형태를 통해서 우리는, 평범한 한 직장인의 '저녁이 있는 삶'이 보장된다, 오르고 올라서 먹이 사슬의 절정에 서서 고급진 세단 뒷좌석에 앉아도 그 삶은 절대로 자신의 삶이 되지 않는다. 생존을 위해서 움켜쥐는 것, 내 자신에게는 절대로 빈곤을 물려주지 말아야겠다고 절대적 생존감으로 물려줬던 그 많은 기득권들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사는데 다 껍데기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사회적 계약을 맺어낼 수 있습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한 산업 구조, 임금 배분, 도시와 농촌의 불균형 해소. 일시적으로 기업을 때려잡아서 얻는 통쾌함보다, 구조를 개선해 나가는 것,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안 후보는 특정한 세력을 견제의 대상으로 지목하거나, "최저임금 만원" 류의 약속을 하지 않는다. "반값등록금 약속할 수 없다"고 말한 것도 궤를 같이 한다.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그 같은 구호 속에서 보다 중요한 것이 묻히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맞는 말이긴 한데, 필자가 듣고 싶었던 대답은 "일단 불균형 구조를 만들어내는 대기업에 대한 견제를 하겠습니다" 류였다. 허리가 아파서 침 맞으러 병원에 갔는데 침 대신 6개월간의 한약 복용과 종합적인 건강 관리 스케쥴을 제시받은 느낌이랄까. 그런 까마득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가려운 데 긁어주고 아픈 데 짚어주는 것도 정치인의 역할이라는 점에서, 가끔은 디테일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이야기도 해 주었으면 할 때도 있다.



안희정이라는 사람은, 아로니아진 마냥 시간을 꽉꽉 농축시켜 놓은 사람 같다. 그가 이야기하는 거대 담론들이 공염불로 들리지 않는 것은, 그가 지나온 시간마다 치열하게 찾았던 답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했을 고민들을 짊어지고 직업 정치인으로서 타인보다 더 많이, 더 깊게 고민했고 답을 찾았다.


툭하면 울던 세심한 문학 청년이, 비로소 스스로 준비가 되었음을 외치며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한다. 솔직히 말하면, 일말의 불안감도 있다. 다른 후보들에게서 느끼는 불안감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것인데, 이렇게 믿음직스러운 정치인마저 훗날 국민과의 약속을 어긴다고 하면 그때 느낄 좌절감은 어마어마할 것 같다는 비겁함에서 기인한다. 그 외에도 여러모로 안 후보의 글과 말을 들으며, 평소 잘 하지 않는 깊은 고민을 하게 했다. 괴롭다. 유권자를 이렇게 괴롭히는 정치인도 드물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진국'이라 할 만하다.

 

이편을 끝으로, 민주당의 주요 대선 후보들을 다 갈무리한 것 같다. 쉽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로 즐거웠다. 필자는 세 명 모두, '정의'와 '약속'이라는 부분에 있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흠결은 별로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한다. 공정하고 깨끗하며 최선의 결과가 나오는 경선이 되기를 희망하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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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담금질' 출판을 기념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축하메시지를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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