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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주


이 글은 재미난 과학 교양 잡지 스켑틱(SKEPTIC) 7호에 실린 '무엇이 아이의 건강을 위협하는가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비판'의 전문입니다. 글쓴이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강병철 선생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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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연요법’ 또는 ‘약 안 쓰는 육아’라는 움직임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 사이에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중심에는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1]-각주 (이하 《안아키》로 표기)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저자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회원수가 3만 명을 넘고, 이들을 중심으로 시민단체가 결성되는 등 세를 불려가고 있다. 되도록 약을 쓰지 말고 아이를 키우자는 말에 반대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책에서 주장하는 근거나 치료법이 황당하고, 백신에 대한 거부감을 조장하는 등 자칫 어린이 건강을 해칠 가능성이 있기에 과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우연한 기회에 한 웹진에 글을 쓰게 되었다. 어떤 내용을 쓸까 고민하던 중 아이가 열이 나도 해열제를 쓰지 않고 버티는 것이 더 좋다는 말이 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나치게 쓰면 좋을 것이 없겠지만, 그렇다고 열이 높은 아이에게 해열제를 주지 않고 버틴 다고 좋을 것도 없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고 써도 된다고 적었다. [2]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칼럼이랍시고 쓴 것이 아닌가 했으나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었다. 악플이 주렁주렁 달렸던 것이다. 이유인 즉 열이 나는 것은 면역을 강화시키기 위한 신체의 자연적인 반응인데 해열제를 써서 인위적으로 열을 떨어뜨리면 몸이 병을 이기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현대의학은 항생제 등 약물을 남용하여 내성을 유발하고 인체의 면역을 저하시키므로 가급적 약을 쓰지 않고 ‘자연적’인 방법을 추구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러한 가르침이 내가 의대에서 배우지 못하고, 수많은 환자를 보면서도 깨닫지 못한 중요한 사실을 깨우쳐주었다면 좋았겠지만 아무런 근거도 없는 잘못된 믿음에 불과하다. 솔직히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악플을 달거나 여러 가지 경로로 격렬하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호기심이 일었다.


결국 읽기 싫은 책을 사서 읽고, 카페도 들어가 보았다. 해독요 법을 강조하기에 저자가 운영하는 한의원에 전화도 해보고, 인터넷에 떠 있는 ‘해독 체험기’도 읽어보았다.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인간의 몸과 질병, 그리고 약물에 대한 이해가 너무나 원시적인데다 사고의 틀이 ‘편가르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약은 모두 ‘내성’을 일으키는 ‘나쁜 편’이므로 약을 쓰는 의사도 ‘나쁜 편’이고, 약을 만드는 제약회사도 ‘나쁜 편’이며 그들이 만드는 백신도 ‘나쁜 편’이라는 논리였다. 성인의 병을 빌어 어린이의 병을 해석하고,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은 채 자극적인 언사를 동원하여 현대의학을 공격하며, 병원이 건강한 아이를 아픈 아이로 만든다는 비방도 서슴지 않았다. 대부분의 처방은 “30년간이나 동네 한의원을 운영하며 네 아이를 건강하게 길러낸” 저자의 ‘의견’과 ‘개인적 경험’을 근거로 제시할 뿐, 과학적 배경은 전혀 없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피부는 호흡을 하는데 로션을 발라 호흡을 못하게 하면 호흡기관인 폐가 나빠진다는 말(《안아키》 93쪽)도 있다. 언제부터 인간이 개구리나 도롱뇽처럼 피부 호흡을 하는 동물 이 되었는지 모르겠으나(극히 미미한 피부호흡을 제외하고), 그렇다고 한들 피부에 뭔가를 바르면 폐가 나빠진다는 논리는 노벨상 감이 다. 입증되기만 한다면 말이다. (차라리 ‘파충류맨’ 같은 소설을 써서 휴 고 상을 노려보면 어떨까?) 아토피는 긁게 두어야 한다는 부분(《안아키》112쪽)도 재미있다. 아토피는 피부에 열이 쌓여 생기므로 땀을 내어 열을 빼야 하는데, 긁어서 큰 상처가 나면 땀구멍보다 더 큰 구멍이 나므로 더욱 좋다는 것이다. (잔혹하면서도 웃긴다는 점에서 이 책 의 장르를 블랙 코미디라고 해도 좋겠다.) 아토피만 나으면 성장 지연이 일어나도,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신장이 망가져도 괜찮느냐(《안아키》 30쪽)는 협박도 잊지 않는다. 아토피에 처방대로 국소 스테로 이드를 발라 성장 지연이 오기는 매우 어려우며, 신장이 망가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려울 것이다. 공장에서 일하다 팔이 잘려 충격을 받은 나머지 천식이 생긴 사람 이야기( 《안아키》 142~144쪽)도 있다. 며칠간 계속 기절해 가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운동을 계속했더니 천식이 나아 경운기를 몰고 가더라는 감동 스토리다. 필자는 조절되지 않은 천식으로 무리한 운동을 하다가 생명을 잃은 사람을 여럿 알고 있거니와 충격으로 천식이 생긴다거나, 기절할 정도로 운동을 하면 천식이 낫는다는 소리는 난생 처음 듣는다. 이 책에 실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리자면 한이 없겠으나, 과학에 관한 말을 하는 자리이므로 중요한 점 세 가지를 지적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다만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는 널리 공유하는 것이 미덕이므로 블로그나 SNS 등 적절한 매체를 이용하여 이 책에 대한 심층 분석을 계획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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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확한 개념어가 빚은 촌극 – 내성


전문적인 분야일수록 개념어의 정립이 중요하다. 개념어를 신중하게 정하지 않으면 무수한 오해와 낭비가 빚어진다. 인플루엔자를 ‘독감’이라고 정의하는 순간 ‘독한 감기’가 되어버린다. 사실 인플 루엔자와 감기는 전혀 다른 질병인데도 말이다. 뇌 속에서 신경전달물질이 교란되어 극심한 신체적 고통과 무력감을 일으키고 자살을 유발하는 질병에 ‘우울증’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야, 가끔 우울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 내지는 “우울하다고 자살할 정도로 의지가 약하다니”하는 반응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용어의 힘은 강력해서 이렇게 잘못된 개념이 뿌리내리면 사실상 바로잡기가 불가능하다. 그렇게 잘못 만들어진 용어 중 하나가 바로 ‘내성’이다.


내성은 견딜 내耐, 성품 성性으로 적는다. 말 그대로 ‘견디는 성질’이다. 그런데 누가 무엇을 견딘다는 뜻일까? 의학적인 맥락에서 내성이란 다음 네 가지 개념 중 하나를 가리킨다.



1) 약물을 반복 사용하면 점점 약효가 줄어드는 현상. 이것은 사람의 몸이 변하는 것이다.


2) 항생제를 반복 사용하면 그 항생제에 듣지 않는 균주가 생기는 현상. 이것은 균 자체가 변하는 것이다. 사람의 몸은 변화가 없 다. 헛갈리지 않으려면 ‘(항생제) 저항성’이라고 쓰는 게 좋다.


3) 사람이 약물을 얼마나 잘 견디는지 측정한 것. 이것은 약물 고유의 성질이다. 헛갈리지 않으려면 ‘내약성’이라고 쓰는 게 좋 다. 예를 들면 항암제는 내약성이 나쁘고 해열제 같은 약은 내 약성이 우수하다.


4) 사람의 몸이 특정 물질에 견디는 성질. 이것은 사람의 몸이 지닌 고유의 성질 또는 질병에 의해 유발되는 성질이다. ‘유당 불 내성’, ‘포도당 불내성’ 등 주로 ‘불내성’이라는 말로 쓴다.



3), 4)번은 이 글과 별 관계없으니 1)번과 2)번만 보자. 많은 약이 어느 정도 내성을 갖는다. 그 이유는 이렇다. 약을 쓰면 신체의 기능이 변한다. 하지만 반복 투여하면 우리 몸은 약을 쓰기 전 상태로 돌아가려고 한다. 처음 썼을 때 약의 효과를 100%라고 한다면 반복해서 장기간 사용하면 90%, 80%로 줄어든다. 예를 들어, 이뇨제를 쓰면 소변량이 늘면서 체액량이 약간 줄어든다. 이 상태가 지 속되면 우리 몸은 원래대로 돌아가기 위해 콩팥으로 나가는 수분을 더 많이 회수한다. (자세한 기전은 훨씬 복잡하지만 개념만 짚고 넘어 가자.) 결국 이뇨제의 효과가 약간 줄어든다. 하지만 네 가지를 알아 둘 필요가 있다. 1) 약의 효과가 0으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2) 반드시 약을 써야 하는데 효과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약을 바꾸거나, 다른 약을 같이 써서 원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3) 내성이 별로 생기지 않는 약도 많다. 해열제 같은 것은 사람에 따라 잘 듣는 약이 따로 있어 A라는 약을 먹으면 열이 떨어지지 않던 아이가 B를 먹으면 항상 신기하게 열이 떨어지기도 한다. 4) 약을 끊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 효과가 나타난다. 마치 몸이 망가져 평생 안 좋은 상태로 지낼 것처럼 겁을 주는데 그렇지 않다.


항생제 내성은 전혀 다른 얘기다. 항생제를 너무 자주 사용하면 세균은 항생제에 적응하여 결국 항생제에 듣지 않는 균이 된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안다. 그런데 역시 세 가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1) 항생제 내성균은 항생제를 썼을 때만 생긴다. 해열제나 감기약을 먹는다고 항생제 내성균이 생기지는 않는다. 2) 항생제 내성은 인간의 몸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세균이 변하는 것이다. 약을 썼다고 해서 몸을 버리고, 그 균이 몸속에 살아남아 있다가 나중에 더 큰 병을 일으키거나, 약을 써도 듣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다. 내성균이 다른 사람을 감염시켜 사회적으로 위험이 커지는 것이다. 3) 항생제 내성이 생겼다고 병이 낫지 않는 게 아니다. 폐렴에 걸려 항생제 치료를 받는데 약을 제대로 먹지 않아 내성균이 생겼다. 하지만 불완전하게나마 약을 먹은 덕에 세균의 숫자가 어느 정도 줄 었다면 몸속의 면역계가 나머지 일을 처리한다. 항생제 내성균이 생겼더라도 병은 낫는 것이다. 문제는 이미 생긴 내성균이 기침을 할 때 튀어나가거나, 오염된 손으로 만진 곳 등에서 살아남았다가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면 그 사회에서 그 항생제가 듣지 않게 된다. 그래서 항생제를 한번 썼다면 끝까지 쓰라고 하는 것이다. 


소위 자연요법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어떤 약이든 자꾸 쓰면 면역이 약해지고 내성균이 생길 것처럼 얘기한다. 약에 대한 인체의 내성과 항생제에 대한 세균의 저항성이란 개념을 마구 뒤섞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쓰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다른 개념을 모두 ‘내성’이라고 옮긴 데 따른 촌극이거니와,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지, 알고도 그런 말을 하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전자는 무지요, 후자는 사기다. 둘 다 죄다.



미안, 해독 치료 같은 건 없단다

해독 치료라는 개념은 오래되었다. 몸속에 뭔지 모를 독이 쌓이는 것이 질병의 원인이라는 개념은 언뜻 생각하면 매우 자연스럽다. 모든 물질은 물과 불과 흙과 공기로 이루어졌다거나, 모든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했던 것만큼이나 자연스럽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틀린 생각이다.


피 속의 독을 빼낸다고 정맥을 잘라 피를 흘려버리는 사혈瀉血, 위장관 속의 독을 빼낸다고 구토를 시키거나, 하제를 써서 설사를 일으키는 치료는 이렇게 자연스러운 생각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고대부터 있어왔다. 그리고 깊게 생각하기를 싫어하고 직관적인 해 법을 좇는 인간의 속성에 의해 1930년대까지도 이어졌다. 절대왕권을 지닌 군주를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이 그런 치료를 받다가 목숨을 잃었는데도 말이다. [3]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면서 이렇게 무지한 방법은 줄어들었지만 단 한번도 완전히 자취를 감춘 적은 없다. 지금은 환경오염과 상업주의에 물든 기업들의 탐욕, 규제기관의 무능 등으로 먹거리부터 생활환경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믿을 수 없는 시대다. 해독요 법이라는 환상적인 이름이 각광받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 몸은 어떠한 요법이나 첨단 기계도 따라올 수 없는 해독 기관을 이미 갖추고 있다! 바로 간肝이다. 기본적인 생리학을 복습 해보자.


심장에서 나간 혈액은 동맥을 타고 신체 각 부위에 도달한 후, 모세혈관을 통과하면서 사실상 모든 세포 사이를 누비며 노폐물을 수거한다. 장에서 흡수된 영양소도 알뜰하게 모은다. 그리고 정맥을 타고 심장으로 돌아간다. 여기까지는 초등학생도 안다. 그런데, 심장으로 돌아가기 전에 반드시 거치는 곳이 있다. 바로 간이다. 우리 몸에서 가장 큰 장기인 간은 온갖 효소를 갖추고 피 속으로 들어온 거의 모든 독소를 분해해 버린다. 간기능을 향상시켜 준다는 온갖 약이나 건강식품, 한약 등이 난무하지만 미안하게도 확실한 효능이 입증된 것은 하나도 없다. 간이 평소에도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런 것들을 먹지 않는 편이 오히려 낫다. 간은 건강하기만 하다면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하므로, 해독을 바란다면 간의 기능을 유지하는 데 힘써야 한다. 간기능이 망가지는 대 표적인 원인은 어린이에서는 간염이고, 어른에서는 알코올, 즉 술이다. 따라서 자녀에게 해독요법을 시킬 돈으로 A형과 B형 간염예방 접종을 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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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흘려보냄으로써 몸속의 나쁜 성분을 배출시킨다는 발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부터 이어 져왔으며 현재도 죽은 피(어혈)를 뽑는다거나 부항을 뜨는 형태로 남아 있다. 하지만 피를 내보내 는 것이 병의 치료에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오염된 도구를 쓰거나 피를 뽑아낸 자리가 제대로 아물지 않을 경우 감염을 일으켜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해독요법이라는 게 대부분 관장인 모양이다. 장을 깨끗하게 한다는 것이다. 하긴 그런 것 말고 뭘 할 수 있겠는가만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관장은 대장을 비우는 일이다. 문제는 독성물질을 섭취 했다면 이미 소장에서 흡수된 뒤라는 점이다. 관장에 의한 해독요 법은 안전하지도 않다. 구역, 구토, 설사, 복통 등은 매우 흔하며[4] 신부전, 간부전, 공기색전, 장파열, 패혈증, 사망 등 치명적인 합병증이 보고된 적도 있다.[5] 자연요법 옹호자들은 항생제를 쓰면 장내 유익균이 사멸하여 해롭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장내인간미생물 총에 대해 얼마나 알고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관장을 하면 장 내미생물총이 몽땅 씻겨 내려간다. 그건 몰랐지?


해독요법이 없다는 것은 한의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해독쥬스, 비타민, 단식, 해독주사 등 일부 건강식품 판매업자나 ‘건강’을 내세우는 업체들, 심지어 병의원에서 열심히 파는 주사나 온갖 희한한 ‘요법’도 모두 마찬가지다. 마땅히 반성하고 단죄받아야 겠지만 인류 역사상 야바위가 없어진 적은 없다. 정의가 실현될 때까지는 의료소비자의 현명한 판단이 중요한 것이다.



백신, 안 맞은 아이만 당한다!

백신을 맞지 말라는 주장이 많다.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라는 책은 좀 더 교묘한 방법으로 접근한다. 맞든 맞지 않든 알고 선택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백신설명서를 자세히 읽어보라고 권한다. 뭐가 두려워 이렇게 애매한 말을 늘어놓는지 모르겠으나 ‘교묘하다’는 표현을 쓴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1) 약 설명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환자용이고, 하나는 의료인용이다. 설명서를 따로 만드는 이유는 뭘 감추려는 게 아니다. 의료인이 아니면 약 설명서를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고, 불필요한 공포를 조장하여 치료에 실패하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길거리 슈퍼에서도 파는 비타민이나 해열제, 건강식품 설명서도 읽어보면 쓰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진다. 그래서 용법이나 주의사항 등 사용자가 알아야 할 정보를 수록한 일반인 용 설명서와, 이익과 위험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전문지식을 지닌 사람을 위한 의료인용설명서를 따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백신은 일반 소비자가 직접 사용하는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인용 설명서가 없다. 의료인용 설명서를 읽고 그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 는 부모들이 얼마나 있을까? 당연히 쇼크, 심정지, 사망 등 무시무시한 부작용만 눈에 들어온다. 맞지 말라는 소리와 다를 바 없다. 2) 말로는 백신에 반대하지 않는다면서 결론부에서는 악의적이고 선동적인 단어들을 동원하여 공포를 부추긴다.


“접종 한 시간 후부터 한 달 후까지 세밀하게 적힌 설명서를 보면 (…) 부작용 발현 사례가 50~70%를 넘는 것도 있습니다.” ( 《안아키》 215~216쪽)

― 있다. 맞은 자리가 아프다는 것이다. 모든 주사가 다 그렇다.


“배양액으로 쓰이는 온갖 동물의 내장 조직도 알레르기 유발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안아키》 216쪽)


― 마치 로드킬 당한 야생동물의 사체나 전염병으로 죽은 가축을 모아 백신을 만드는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사실은 부화란이나 배양한 세포를 이용한다. 오염 가능성은 없다. 오염되면 세포가 다 죽어버리기 때문에 아예 백신 제조가 불가능하다. 알레르기 유발 가능성은 계란이나 고기를 먹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백설탕과 조미료 성분까지 포함된 것들은…” (《안아키》 216쪽)


― 백설탕은 근거를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아주 옛날에 먹는 소아마비 백신에 설탕을 넣었다는 기록은 있다. (설마 포도당을 백설탕이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겠지?) 조미료 성분은 악의적인 왜곡이 다. MSG는 일부 백신에서 안정화제로 사용한다. MSG의 안전성 은 최근 매우 확고하게 입증된 바 있다.[6] 이걸 조미료 성분이라고 말하는 것은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조미료는 몸에 나쁘다’ → ‘백신에는 조미료가 들어 있다’는 식의 왜곡을 의도한 것이다.


“대표적인 방부제가 유기 수은이고, 페놀, 비소 같은 독극물은 물론 환경호르몬의 대표 물질인 포르말린까지, 게다가 중금속인 알루미늄 등…” (《안아키》 216쪽)


― 수은을 이용한 방부제 치메로살은 이제 쓰이지 않거나 극소량 만 쓰인다. 치메로살이 정말 해로운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7] 확실한 것은 생선을 통해 섭취하는 수은이 더 문제라는 점이다. 알루미늄은 항체 생성률을 향상시키기 위한 성분이다. 공기, 식품 및 물에도 존재하며 심지어 산모의 젖과 조제분유에도 들어 있다.[8] 포르말린은 살아 있는 미생물 또는 독소가 병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죽이거나 비활성화하기 위해 쓰인 후 제거된다. 백신에 잔존하는 극미량의 포르말린은 해롭지 않다. 과학적 근거를 갖고 해롭지 않 은 범위에서 쓰는 물질을 방부제, 독극물, 환경호르몬 등으로 지칭하여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판단 기준이 다르므로 누가 이상한 소리를 한다 고 일일이 신경을 쓰고 살 수는 없겠으나 이런저런 주장에 현혹되어 백신을 맞지 않기로 한 부모에게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 백 신을 맞지 않아 질병이 유행할 경우 자신의 자녀가 가장 먼저 피해를 보게 된다는 사실이다. 천연두는 실로 무서운 병이었다. 걸리면 30~35%가 사망했다. 살아남으면 보기 흉한 자국이 남아 평생 ‘곰 보’라는 놀림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 지구상에 천연두란 병은 존재하지 않는다. 백신 덕분이다. 왜 백신을 맞으면 질병 자체가 없어질까? 집단면역herd immunity이란 현상 때문이다. 한 사회나 국가에서 충분히 많은 사람이 백신을 맞아 면역을 갖추면 병이 발병해도 걸 린 사람만 앓고 끝나기 때문에 전염되지 않는다. 전염되지 않으니 유행할 수 없다. 이런 집단면역이 오랜 기간 유지되면 원인균 자체가 서식지를 잃고 결국 영원히 소멸된다. 한 집단을 안전하게 유지 할 수 있는 집단면역 수준은 질병에 따라 다른데 홍역이나 백일해는 92~95%로 비교적 높고, 볼거리나 풍진은 75~85% 정도면 간헐적인 발병은 있어도 유행은 막을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사회에서 95%의 어린이가 홍역 접종을받아야 홍역 유행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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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세계보건기구(WHO) IVB 데이터베이스(2015)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를 비롯하여 백신 반대자들은 앓고 나면 면역도 생기고 좋을 텐데 왜 백신을 맞느냐고 한다. 큰일 날 소리다. 1980년 홍역으로 인한 사망자는 전 세계적으로 260만 명이었다. 백신이 활발하게 접종된 후 많이 줄었지만 2013년에도 약 10만 명이 사망했다.[10] 백일해에 걸리면 영아 200명 중 3명이 사망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후유증은 훨씬 많다.[11] 디프테리아는 더 무섭다. 사망률이 5%에 달한다. 백신이 발명되기 전인 1911년 유럽을 휩쓴 유행 때는 100만 명의 환자가 발생하여 그중 5만 명이 죽었다. 대부분 어린이들이었다. 파상풍의 사망률은 10%에 이른다. 이런 병을 예방하는 방법이 있는데 꼭 앓아야 할까? 백일해, 디프테리아, 파상풍을 한꺼번에 예방하는 백신이 바로 DPT다. 그럼 DPT의 사망률은 얼마나 될까? 0%에 가깝다. 백신은 약이다. 세상에 100% 안전한 약은 없다. 약을 썼을 때 이익과 손해를 따져서 더 유리한 쪽을 선택할 뿐이다. 물론 보다 안전한약을 만들라고 요구할 권리는 있다. 그렇다고 백신을 맞지 말아야 할까?


이렇게 생각해보자. 백신거부운동이 맨 먼저 일어난 영국에서는 홍역이 크게 유행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많은 사람이 백신을 맞지 않는다면 언젠가 디프테리아나 홍역이 돌 것이다. 그러면 누가 피해를 볼까? 그렇다. 안타깝지만 바로 백신을 맞지 않은 아이들이다. 온갖 설명에도 눈과 귀를 닫는 사람을 어떻게 할 방도는 없다. 부모들의 현명한 판단을 바랄 뿐이다.



맺는 말


영국의 의사이자 의학사가 제임스 르 파누James Le Fanu는 저서 《현대의학의 거의 모든 역사The Rise and Fall of Modern Medicine》[12]에서 의학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신 성공을 거둔 지금, 뜻밖에도 네 가지 모순적인 현상이 관찰된다고 진단한다. 1) 점점 많은 의사가 자신의 직업에 환멸을 느끼고 있으며, 2) 대중은 갈수록 자신의 건강을 염려하고, 3) 의학의 테두리를 벗어난 대체의학의 인기는 점점 더 커지고, 4) 모든 국가에서 의료비 지출액이 끝 간 데 없이 치솟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 의사, 국가 등 모든 주체가 불만족 상태에 있는 셈이다.


현대의학이 일정한 부분에서 실패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과학은 거대한 상업주의에 휘둘리고, 변화의 속도가 인간을 소외시킬 정도로 빠르기에 믿음보다 불안감을 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람들은 과학의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는 것 같다. 과학, 그리고 그 하위학문으로서 의학은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방법이 없으면 방법이 없다고 하며,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어 기존의 지식이 잘못되었다 는 사실이 드러나면 고집부리지 않고 바로 방향을 바꾼다. 일반인들로서는 가뜩이나 불확실하고 불안한데 모른다고 하고, 방법이 없다고 하고, 어제 했던 이야기를 손바닥 뒤집듯 뒤바꾸는 과학에 실망할 법도 하다. 그러나 사실 과학의 힘은 이러한 자기부정성에서 나온다. 도그마에 굴복하지 않고 용감하게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며 오직 진실만을 추구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인류는 수많은 전염병을 극복하고 보다 건강한 상태로, 보다 오래 살게 되었다. 작금의 자연 의학 운운하는 현상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이니 ‘전통’이니 하는 좋은 말들이 하나의 도그마가 된 듯한 느낌이다. 자연으로 돌아가 자는 말은 좋으나 모든 사람이 그토록 동경하는 전통을 유지하며, 그토록 찬양하는 발효식을 먹고, 백신도 항생제도 없이 거의 성전처럼 떠받드는 <동의보감>에 따라 치료받았던 조선시대에는 왕들 조차 40대를 넘기지 못했다.[13] 백성들의 건강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의학을 이해하려면 의사의 설명이 필수적이다. 우리 나라에서 사람들이 의사를 냉담하며 무성의하다고 인식하는 이면에는 실패한 의료제도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원가에 미치지 못 하는 저수가, 고압적인 규제, 의사를 희생양으로 삼는 언론, 과학에 입각하여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정책, 문제를 외면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정부의 무능과 부패, 원칙이 없이 표를 얻기에만 몰두하는 정치인들…. 미신에 불과한 자연주의 육아가 맹위를 떨치는 데는 사실 전 세계적인 경향보다 한국만의 특수성이 더 크게 작용하는지도 모른다. 케리지Kerridge 등이 말했듯, 의료의 양상은 사회와 경제와 지성이라는 요소가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한 결과인 것이다.[14]


당장 부모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리 그럴듯하게 들려도 허황된 말에 귀 기울이지 말고 과학적으로 꼼꼼하게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정 답답하면 주변에 친절한 의사를 찾아가 묻거나, 의사 협회, 대한소아과학회 등 공신력있는 기관에서 제공하는 인터넷 상담을 받을 수도 있다.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씌어진 좋은 책들도 많다. 요컨대 옥석을 구별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또한 엉터리 정보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면 적극적으로 따져서 보상받고, 주변에 알려야 한다. 현대의학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그렇다고 그것이 엉터리 대체의학이 옳다는 증거는 아니다. <한국 스켑틱 3호>에서 해 리엇 홀Harriet Hall이 멋지게 요약했듯 ‘비행기가 가끔 사고를 일으킨다고 마법의 양탄자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증거는 아닌’ 것이다.



글 강병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영국 왕립소 아과학회의 ‘베이직 스페셜리스트(BASIC SPECIALIST)’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이기도 하다. 《서민과 닥터 강이 똑똑한 처방전을 드립니다》를 공동 저술했다. 옮긴 책으로 《현대의학의 거의 모든 역사》, 《원전, 죽음의 유혹》, 《제약회사들은 어 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 《살인단백질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이 정신 질환을 앓고 있을 때》 등이 있다.


Reference


1. 김효진,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에디터,2 016
2. 강병철, 항생제 안 먹인다고 면역력이 좋아지지 않는다, 채널 예스(http://ch.yes24. com/Article/View/31125)
3. Gerry G. The history of bloodletting. BCMJ, Vol. 52, No. 1, 2010, 12-14.
4. Michael P, “Is colon cleansing a good way to eliminate toxins from your body?”, Mayo Clinic Healthy Lifestyle, Consumer
health (http://www.mayoclinic.org/healthy-living/consumer-health/expert-answers/colon-cleansing/faq-20058435)
5. Ranit M, “The dangers of colon cleansing”, J Fam Pract. 2011 August;60(8):454- 457.
6. Brian S, “MSG is Perfectly Safe, the American Chemical Society Reminds Us”, nature World
News (http://www.natureworldnews.com/articles/12465/20150202/msg-perfectly-safe-american-chemical-society-reminds.htm)
7. Thimerosal in Vaccines,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http://www.fda.gov/ BiologicsBloodVaccines/SafetyAvailability/VaccineSafety/ucm096228.htm)
8. Childhood Vaccines: What is in the Vaccines and Why, HealthLinkBC (www. healthlinkbc.ca/healthfiles/bilingua/korean/hfile50d-K.pdf)
9. Herd Immunity Worksheet UNICEF ACT
10. Measles Fact sheet N 286. WHO, November 2014.
11. Pertussis: Complications.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24 August 2012.
12. 제임스 르 파누, 강병철 역 《현대의학의 거의 모든 역사》 알마, 2016
13. 조선닷컴 인포그래픽스팀, 역대 조선 왕들의 질병과 죽음 (http://thestory.chosun.com/ site/data/html_dir/2016/06/27/2016062702578.html?Dep0=twitter)
14. Kerridge IH, Lowe M. Bloodletting: The story of a therapeutic technique. Med J Aust 1995;163:63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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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기사 외에도 재미난 과학 기사가 마구마구 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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