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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1. 20. 화요일

스파이시 박











0. 꿈의 장소


비행기가 눈 앞에 있고 면세점 출입이 자유롭고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로 가득찬 곳. 그곳을 좋아해 혼자 놀러 다니러 가곤 하는 내겐 심장이 콩닥대는 장소, 공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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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 계속해서 원서를 넣고 면접을 봤지만 돌아오는 건 불합격 통지서뿐. 인천공항에 발이라도 담그자는 생각에 좀 더 쉬운 길을 알게 되었고 그 방법은 아시아나 협력업체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동일 유니폼 지급이란 말에 더 욕심이 생겼다.


2011년 3월, 꿈에 그리던 인천공항 지상직에 합격. 거울 속 예쁘게 입은 유니폼과 단정한 내 모습은 완벽한 아시아나 항공직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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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을 위해 모자이크. 왼쪽이 나다.


명찰만 빼고.



1. 나는 아시아나 비정규직


나는 얼마 전까지 공항 비정규직이었다. 협력업체에선 정규직이지만 인천공항에선 비정규직. 협력업체는 나름 대기업이라 고용노동부에서 중소기업에 지원해주는 교육비 지원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인천공항의 도급직원들은 계약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하는 식이라 고용불안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인천공항이 근무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 들어가는데 무슨 소리냐고? 정규직 얘기일 뿐, 80%가 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겐 아니다.


공항에는 많은 공항공사 직원, 항공사 및 여러 종류의 회사가 있다. 각 회사의 정규직 혹은 공무원은 자기가 소속된 그룹의 휴게공간이 명확히 확보되어 휴식 시간에 부담 없이 쉴 수 있다. 공항이란 장소의 특성상 24시간 운영되는 곳이라 직원들에겐 잠을 자고 샤워를 하는 휴식공간 및 편의 시설이 중요하기에 당연한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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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렇게 생겨먹었다.


비정규직은 어떨까? 비정규직을 위한 휴게실은 상주직원 소속휴게실(모든 공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곳)에서 자리확보가 되었을 때만 쉴 수 있다. 사람이 많다면 다른 곳을 알아봐야 한다. 직원들은 허용된 구역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오픈된 몇몇 휴게실을 이용한다. 내가 쉬려면 보이지 않는 경쟁을 뚫어야 하니 쉬기 위해 또 경쟁하는 셈이다.


더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들의 쉴 곳도 보장되어 있지 않다. 같은 옷을 입고 업무도 비슷하지만 급여도 다르고 복리후생도 다르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빛 좋은 개살구. 비행기 지연, 결항, 회항이라도 하면 오후 근무자들은 거의 밤을 새고 다음 날 아침이나 오전에 퇴근한다. 인원이 부족하다 싶으면 부르는 사람들은? 거의 나 같은 비정규직이다.


유니폼을 입는지라 항상 밝은 얼굴에 화장기 가득한 얼굴을 요구한다. 모든 직장이 그렇겠지만 처음 입사할 때의 설레는 마음은 점점 사그라져간다.



2. 당신이 공항에서 만나는 이들, 모두 비정규직


내 업무는 도착시 수하물 찾는 곳에서의 1차응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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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보다 많은 수하물.


책임이 가중되는 데미지 접수 및 불만 폭발 등의 업무는 정규직이 맡아서 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따로 구분되어 있었지만 업무는 비슷하고 정규직이 하는 전산시스템 업무도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았다. 정규직이 바쁘면 우리가 데미지 손님을 접수하는 일은 있었지만 반대로 정규직 직원들이 일차 손님응대를 도와주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즉, 중요 책임을 지는 업무는 정규직이 도맡아 담당했다.


결국 비행기가 착륙하여 수하물을 찾는 케로셀(벨트)에 있는 직원들은 모두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도착하는 손님 중 80%가 별 일 없는 한 비정규직 직원들만 보고 나가는 것이다.


흔히 지상직 하면 떠올리는 체크인카운터(발권하는곳) 직원들도 대부분 비정규직이고 비행기 표를 보여주고 통과하는 게이트나 X-ray 직원들도 모두 협력업체다. 이렇듯 고객접점 부서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거의 비정규직이다.


수하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First class의 짐이 먼저 나온다. 다만 체크인 과정에서 혹은 운반과정에서 Priority Tag가 애초에 붙지 않거나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전산상의 문제로 제일 먼저 나와야 할 수하물이 먼저 안 나오는 경우는 그야말로 대략 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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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거(태그) 떨어지면 난감 그 자체.


먼저 나와야 할 짐은 짐표 말고 옆에 다른 Tag가 붙어있는데 First, Priority, Business 등 항공사 별로 형형색색의 택이 추가로 붙어있다. 이 사람들은 돈이 많거나, 비행기를 많이 타서 짐이 먼저 나오는 혜택을 누린다.


짐이 먼저 나오지 않을 경우, 고상하던 사모님도 점잖으신 사장님도 모두 흥분한다.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게 잘 말씀 드리고 짐을 빨리 찾아드리는 일이 1차 대응인데, 사람 상대하는 일이 어디 쉬운가?


겨울에 폭설이 내려 비행기도어가 꽁꽁 얼어 문이 열리지 않거나 짐을 뺄 수 없어 수취시간이 지연 된다면 더욱 각오해야 한다. 공항에서 일한다는 건 많은 외국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글로벌하게 욕도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Such an idiot, 빠가야로 등.


오래 일하면 일 할수록 멱살잡이를 당할 가능성은 커진다. 2년을 일하는 동안 직원들에게 손찌검을 하려는 사람들을 종종 봐왔다. 가방이 조금 긁혔다고 부모를 운운하며 십 원짜리 욕을 하고 개인신변을 할퀴는 사람들을 만나면 자존심이 상하고 속이 상하는 게 사실이다.


특히 한국사람은 조금이라도 실수나 손해가 가면 뭐 하나라도 얻어내기 위해서 억지를 부리는데 선수다. 가령 회사의 규정상 가방에 사소한 스크래치는 보상할 수 없다고 설명했는데 다짜고짜 '내가 준 월급으로 일하는데 빨리 알아서 물어내라'며 막무가내로 화를 내는 사람도 있고, 금전적인 배상과 함께 '정신적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 여러분이 fragile 스티커를 붙이거나 수화물을 조심히 취급해달라고 부탁해도 정말 고가의 물건이 아니거나 공문이 내려오지 않는 한 그냥 짐짝 취급을 받는다는 건, 암묵적인 비밀이다.



3. 공항의 디테일


공항에 관심 많은 사람들을 위해 좀 더 썰을 풀어보련다.


첫째, 공항의 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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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초의 반려동물 전용 화장실 (샌디에고 공항)


나도 동물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세상에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정말 많다. 여행을 하거나 이민 갈 때 생동물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 많은데(공항에서는 생동물이라는 표현을 쓴다. 비행기에 데려갈 수 있는 생동물로는 개, 고양이, 새 등이 있다. 코끼리나 코뿔소는 안되고 돌고래는 더더욱 안 된다) 그 녀석들은 비행기 밑 화물칸에 같이 실리게 된다.


한 번은 고양이가 여행 갔다가 죽어서 돌아온 경우가 있었다. 주인에게나 우리에게나 공항에서 겪을 수 있는 가장 가슴 아픈 일 중 하나다.


공항에서 동물을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는 탐지견이다. 마약이나 국내 반입이 안 되는 고기류, 생선, 생과일을 냄새로 맡아 찾는 훈련된 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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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지마라. 쉬운 게 아니다.


이 녀석들, 참 불쌍하다. 평생 훈련만 받고 제대로 된 식사도 산책도 하지 못한 채 훈련만 죽도록하고 정말 ‘개처럼’ 일하다 죽으면 탐지견 연구에 필요한 해부를 당하고 나서야 본인의 일을 끝낸다.




둘째, 엄청난 수의 중국인(조선족)


조선족은 중국인인데 한국에서 거주하거나 생활하는 사람이 많다. 학교에서의 한국어 교육이 한국의 영어교육처럼 활발하며 중국말도 한국말도 아닌 언어를 구사한다. 모 개그프로에서 소재로 삼은 바 있듯 조선족은 사기를 치는 종족 또는 믿지 못할 사람들로 비춰지고 있다.


요즘 식당이나 옷가게 등 우리가 생활하는 모든 업계에 그들이 있고 해마다 한국 내 조선족 수가 늘고 있다. 공항에서는 정말 많은 중국인과 조선족을 볼 수 있는데 지극히 개인적 편견으로 적어도 그들은 공항에서 사람 말을 잘 믿지 않는 듯하다. 아는 것도 물어보고 모르는 것도 물어본다. 묻고 또 묻는다. 다른 곳에서 도착한 사람들은 10명에 1~2명꼴로 수취대가 어딘지, 출구가 어딘지 물어보는데 조선족들은 10명 중 9~10명이 어디서 수하물을 수취하는지 출구는 어디인지 세관신고서는 어디에 제출하는지 물어본다.


그럴 거면 안내문구는 뭐 하러 만들고 안내방송은 왜 하는 건지. 편견에 불과하지만 내가 본 조선족은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챙기는데 급급해 본인들의 이미지를 깎아 내리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인천행 비행기를 타고 도착했지만 개인적 문제(비자, 재산부족, 전과 등)로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하지 못하고 다시 연변이나 하얼빈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무척 안타까운 것도 사실이다.


법무부 사람들은 입국심사할 때 이들을 이미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듯한 느낌도 많이 받았다.


만감이 교차하는 사람들이다.



셋째, 분실물


노트북 분실해 보신 분 있나? 수하물로 처리된 귀중품은 분실 시 보상이 안 된다. 한 손님이 노트북을 수하물에 붙이고 베트남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한국에 도착해서 수하물을 확인했는데 다른 건 다 있고 노트북만 없어졌다. 가방이 찢어진 흔적도 없고, 열린 흔적도 없다.


Maybe지만 베트남에서 수하물을 옮기는 직원의 소행으로 보였다. (가끔, 아주 가끔 이런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귀중품은 수하물 처리를 하면 안된다. 그에 대한 안내문구는 체크인 카운터에 쓰여있다. (너무 길어서 사람들이 잘 안 읽는다. 약관 같은 거. 너 님도 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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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런 안내문 읽어 본 사람 '풋쳐 핸접' 


그래서 보상이 안된다고 말하면 난동이 시작된다. 이럴 땐 역시 마일리지 지급이라든지 소정의 서비스 (다음 이용 시 자리 업그레이드)등의 보상으로 사죄한다. 음지의 팁이긴 하지만 한국에선 진상을 부리면 부릴수록 많은 것을 취득할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잃는 대신 눈에 보이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선택은 각자의 가치관에 달려있을 따름이다.



넷째, 서비스직 종사자들에 대한 무한무시


한 아주머니가 사랑하는 따님과 발권을 하기 위해 체크인 데스크로 갔다.


절차에 따라 발권을 하던 중 아시아나 직원이 버벅 대는 모습을 보이니까, 아주머니가 딸에게 조금은 크게 얘기했다.


"XX야. 너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커서 저렇게 된다."


그걸 들은 아시아나 직원 왈


"저 서울대 나왔는데요?"


속물근성에 속물근성으로 맞서는, 부끄러운 일로 볼 수 있지만 갠적으로 통쾌한 장면이었다. 결론은 서비스직 종사자는 무시부터 하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정말 많다. 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항상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할까.


비행기에서 승무원에게 성추행, 폭행, 주취 난동 등의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수갑을 차고 돌아오는 경우가 있는데 일전의 왕상무 사건이나 이번에 땅콩회항 사건을 당한 분이 비정규직 승무원이었다면 그렇게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까 싶다. 아마 쉬쉬하며 넘어가지 않았을까. 직장을 잃는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나 같은 사람은 더욱 그렇다. 이런 구조 속에서 완벽한 서비스를 기대하는 게 정상적인 일일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 와중에 자기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 사람들이 대단할 뿐이다.


지금도 없어지지 않는 나의 직업병은 누군가 길을 물어보거나 질문했을 때 나도 모르게 성심성의껏 대답하고 있는 모습이다. 외국인에겐 손짓발짓까지 해가며.


2년 동안의 공항생활, 즐겁고도 피곤했다. 다만 세계1위 공항에 걸맞는 행복은 아닌듯해서 씁쓸하다. 죽지않는돌고래 부편집장이 땅콩회항 사건을 이야기하며 정규직 승무원도 저리 서러운데 비정규직은 얼마나 서러운 일이 많겠냐며 한번 써보라고 하는 통에 없는 글빨에 써서 보낸다. 편견이 많이 담긴 내용일 테고  최근 1년 사이에 근무환경이 달라졌을 가능성도 있다.


딴지 마빡에 오를 만큼 깊이 있는 글이 아니라 부끄럽지만, 사회적 이슈가 될 때 거론조차 되지 않는 사람들을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게끔 만드는 것 자체로 가치가 있을 거라는 말에 경험을 써본 것이니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한 공항, 밝고 활기차고 신날 것만 같았던 곳, 모든 곳이 그렇듯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가 있기 마련.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모든 비정규직에게 응원을 보낸다.







스파이시 박


편집 : 딴지일보 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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