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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1. 29. 목요일

펜더









시작하기 전에


1. 이 기사는 필자와 필자 주변 지인들의 주장과 푸념을 기반으로 한 지극히 주관적인 이야기이다. 이들이 사회적 대표성을 가지고 책임있는 발언을 한 것이 아니므로 지극히 개인적인 주장과 감상이란 것을 유의하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다.


2. 여성들과 전업주부들에 대한 폄훼의 의도는 없으며, 여성 폄하나 남녀차별을 염두에 두고 작성한 글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이 기사는 어디까지나 30대 후반부터 50대 초반까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몇몇 '남성'들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다. 여기에 어떤 대표성이 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이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어떤 '막막함'이나 '분노'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기혼 남성들의 심리 기저에 깔려있는 게 아닌가란 추측에서 기사를 쓰는 것이다. 


3. 주변인들과 지인들이 사이코 패스나, 소시오 패스 성향을 가진 것이 아닌가란 의심을 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 수십 년간의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 유추해 보건대, 지극히 보편타당한 상식을 가진 이 시대의 남성들이다. (그들의 정치적 성향 역시 제각각이며, 사회경제적 상황 역시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생각과 주장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예외적인' 경우라고 말하고 싶다. 그들의 속내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30~40대 가장들의 생각을 모두 다 대변한다고 말하면, 너무 아프기 때문이다. 그저 술자리 푸념 정도로만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


<서초동 세 모녀 살인사건>과 <귀농 반대 살인사건>.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일상으로 듣게 되는 존속살인, 가족 살인 사건들. 혹자는 자식을 자신의 '부속물'로 바라보는 병든 마음이 문제라 말하고, 누군가는 이 시대의 팍팍한 현실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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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 연합뉴스


다른 나라에 비해 유달리 높은 가족 살인 사건들. (전체 살인 사건의 5%를 넘게 차지하는 걸로 알고 있다. 구미선진국의 경우 명예살인을 제외하면 2% 후반대를 찍는 걸로 나와 있다.) 그 이유를 분석하기 위해 수많은 매체들이 들고 일어나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지만, 나오는 대답은 언제나 '뻔한 교과서적 대답'뿐이었다. 


'자식을 자신의 부속물로 바라본다.'


'엘리트로서의 삶을 살았기에 엘리트가 아닌 삶에 대한 두려움을 가졌다.'


'타인의 평가에 너무 민감했다.'


'상대적 박탈감이 문제다.'


'가정을 이끌고 가야 한다는 강박이 너무 심했다.'


'혼자 모든 짐을 다 지려고 했다.'


등등의 '뻔한' 답변들.


며칠 전 일이다. 동문회를 나갔다. 51살의 반늙은이가 다 된 선배부터 시작해 37살에 벌써 머리가 까진 철없는 애 아빠, 46살에 아직도 결혼을 꿈꾸는 '작가', 41살의 세 딸의 아버지, 42살에 두 딸을 홀로 키우는 '싱글 파더'까지 몇몇의 남자들이 모였다. (거기엔 41살의 별거 상태인 나도 포함 돼 있었다.) 


몇 순배의 폭탄주가 돌고, 다들 불콰해진 얼굴 속에서 '분노'와 '동정', '연민'의 표정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술잔이 돌기 전부터 우리들의 화제는 '서초동 세 모녀 살인사건'에 모아졌다.)


모임의 최 연장자였던 51세의 선배는 연신 '못 난 계백새끼...'라며 푸념을 했다. 처음엔 '못난 개새끼'라고 알아들었지만, 주어 넘기는 폼새가 분노가 아니라 연민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불편한 마음에 (그때까지 설명하지 못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참다못하고 대거리를 했다.   


"형, 지금 개새끼라고 한 거야?"


"개새끼는 무슨 개새끼?"


"지금 개새끼라고 안했어?"


"개새끼? 아, 계백새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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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새끼?


<계백이>... 요즘 온 가족을 죽이고, 자신도 죽으려고 (혹은 죽음을 선택하는) 하는 가장들을 지칭하는 말이란다. 누가 시작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51세의 H형네 회사에서는 일가족을 죽인 가장들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됐다고 한다. 1400여 년 전 황산벌에서 장렬히 산화한 계백 장군은 출정 전 자신의 가족들을 다 죽였다. 결사의 항전의지의 외적 승화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1400여 년 후의 우리 가장들은 삶과의 전투 끝에 '항복'과 '까닭모를 분노'를 이유로 (이건 어디까지나 나와 내 주변 지인들의 주관적 판단이다.) 가족들을 죽였다. 




***


작년 10월이었을 것이다. 외국에서 작가활동을 하다 귀국한 한 여성 작가(50세)가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한국 여자들 참 편하지."


무슨 소린가 했다. 열혈 페미니스트라 생각했는데, 술 한 잔에 이렇게 무너지는 건가? 평소 보여주던 한국 사회에 대한 날 선 비판도, 시대를 좀 먹는 가부장적 사회구조에 대한 비난도 아니었다. 작가도, 여자도 아닌 한 사람의 '생활인'으로 '전업주부'에 대한 품평을 한 것이다. 


(이 역시도 전업주부에 대한 비난이나 폄훼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이 여성작가는 '생활'과 '경제적'인 부분에서 자신의 체험을 말한 것이다. 그녀 역시 한국 남성과 결혼했고,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자신의 남편 덕분에 별 걱정 없이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가 말하고 싶은 핵심은 '책임감'이었다.)


"한국 남자들...불쌍해."


그녀의 주장은 간단했다. 외국 남자들의 경우 '결혼'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혼이 단순히 '족쇄'가 아니라 인생을 망치는 최악의 선택이라는 위험성을 늘 머릿속에 집어넣고 다닌다는 것이다. 결혼을 잘못했다가는 자신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긴장감. 때문에 동거는 하더라도 결혼은 최대한 늦추는 것이 현실이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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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초혼 연령 증가 추세

자료 출처 - 미국 Census Bureau


결혼을 해도 문제인 것이, 한국의 경우는 '보편타당한' 가정교육을 받았다는 전제 하에서, 


'이 가정을 내가 이끈다.'


혹은, 


'일단 먹여 살려야 한다.'


라는 강박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결혼식장에서 여자는 안도의 한숨을 남자는 체념의 한숨을 쉬는 이유가 그것이란 것이다. (이 설명에 대해서는 조심스런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녀의 나이대를 고려한다면, 최근 신세대 부부들의 결혼관이나 남자들의 의식변화에 대해서는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다는 걸 고려해야 하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남자들은 '가장'이란 이름의 타이틀의 무게감을 현실적으로 느껴야 한다. 




***


데이비드 버스가 37개 문화권을 조사해 여성의 배우자 선택조건을 확인해 본 결과 내놓은 연구결과가 있다. 핵심만 추려보겠다.


1. 능력


2. 성실


여성이 남성을 선택하는 기준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들은 남성들의 능력을 배우자 선택의 최우선 고려사항으로 꼽는다. 그 다음 '성실'항목은 그 능력을 다른 여자에게 나눠주지 말고,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걸 의미한다. 여성들이 바람 핀 남성에게 처음으로 물어보는 한 가지, 


"그 년 사랑한 거야?"


라는 질문의 의도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랑한다는 건 장기적으로 내게 돌아올 '남성능력의 결과물'이 상대방에게 갈 수도 있다는 위협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안위를 걱정한다. 이는 여성들이 속물이기 때문이 아니다. 구석기 시대부터 여성들은 남성의 '도움'이 필요했다. 왜?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고기'의 공급이 필요했다. 생리를 하고, 임신을 하고, 양육을 하기 위해서는 철분과 단백질이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선 고기가 필요했다. 그 고기를 안정적으로 구해 줄 남성이 필요했다. 그 대가로 여성은 '섹스'와 '정조'를 담보했다. 


그렇다. 문제는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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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아이는 미숙아로 태어난다. 만약 정상적인 사이즈(!?)로 태어났다간 여성의 질은 모두 찢어졌을 테고, 인류는 멸종했을 것이다. 인간이 인간다운 이유는 커다란 뇌와 자유로운 두 팔이다. 문제는 인간사라는 것이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뇌를 얻기 위해서는 커다란 머리를 담보해야 하는데, 그 머리가 통과할 정도의 질의 크기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미숙아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족보행은 또 어떤가? 두 팔을 얻기 위해 일어서야 했던 인류는 인간 '암컷'들에게 '산고의 고통'이란 대가를 치르게 했다. 4족 보행을 하는 다른 영장류의 경우 산도가 직선이다. 즉, 몇 번 힘주면 손쉽게 출산을 할 수 있었지만, 인간의 경우는 허리를 펴는 순간 산도가 구부러지게 됐다. 결국 출산은 목숨을 건 투쟁이 됐고, 난산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았다. 


더 중요한 건 그 다음이었다. 인간의 아이는 혼자서 키울 수가 없게 됐다는 것. 


아프리카 초원의 누를 보자. 그들은 태어나서 몇 분 안에 두발로 서고, 며칠 지나면 온 천지사방을 뛰어다닌다. 그러나 인간의 아이는 어떤가? 혼자 제대로 서는 데만 3년이 걸린다. 이런 아이를 어떻게 여자 혼자서 키운다는 말인가? 필연적으로 '남성'의 도움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4천 여 종의 포유류, 그리고 200여 종의 영장류 중에서 수컷의 부성투자는 극히 짧다. 정말 짧은 것들은 '3초 내외'다. 즉, 싸고 도망가는 것이다. 아이의 탄생과 양육에 이바지하는 것은 자신들의 '유전자'를 제공하는 것 뿐인 경우라는 의미다. 그 이후에는 도망을 가는 것이다.  


인간은 어떨까? 포유류와 영장류, 아니 전 생물 종 중에서 가장 많은 부성투자를 하는 것이 인간이다. 최소한 18년 이상 키워야지만 자식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것일까? 


진화인류학자들이 하는 농담 중에서 재미있는 말이 하나 있다. 


"여자들이 만들어낸 발명품 중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아버지'란 단어를 만들어 낸 것이다."


기본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것이 36억대 1이라는 생산량의 차이다. 이게 뭘 의미할까? 여자가 난자 1개를 생산하는 기간 동안, 남성이 만들어내는 정자의 생산량이다. 


여자는 1개의 난자를 잘 만들어서 능력 있고, 성실한 남성을 만나 2세를 생산하는 번식전략이라면, 남자는 여기저기 씨를 뿌리는 전략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설계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했다간 여성들은 출산을 할 수 없게 된다. 왜? 남성의 지원 없이는 양육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거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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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남녀 간의 결혼은 거래다. 남성의 능력과 여성의 섹스를 등가로 매겨 거래를 하는 것이다. 여기에 계약조건이 들어가는 게 '정조'다. 남성은 여성이 출산한 아이가 자신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아이인가에 대한 담보가 필요했다. 유전자 검사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 여성의 정조를 강조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8년간 투자를 했는데, 알고 보니 옆집 남자의 애라면, 그 남자는 불량채권에 평생을 투자한 것이 된다. 


(독일에서 무분별한 친자확인 금지 법안을 내놨을 때 독일 아버지연합이 들고 일어나 헌법소원을 냈던 사건이 있었다. 당시 헌법재판소에서 아버지들 손을 들어줬던 기억이 난다. 인류 전체 중에서 생물학적 아버지와 법적 아버지가 다른 경우가 약 10%를 차지한다. 독일과 유럽에서는 이혼 후 양육비를 내지 않기 위해 유전자 검사를 시도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시도해 보니 정말 남의 자식인 경우가 나왔던 것이다.)


각설하자. 


어쨌든 이 36억대 1의 차이. 남녀 간의 번식전략의 차이를 메워줬던 것이 여성들이 발명한(?) '아버지'란 단어이다. 설계상으로라면 수컷은(포유류의 경우) '싸고 난 다음'이 없는 존재들이다. 그런 수컷들을 '아버지'란 이름으로 강제한 것이다. (이는 여성을 탓하자는 게 아니다. 그 강제가 없었다면, 인류는 멸종했을지도 모르니까.)


여성은 인류의 존속을 위해 자신들의 정조를 희생해 남성들을 가정에 눌러 앉혔다. 그리고 '아버지'란 이름의 족쇄를 남자들에게 씌웠다. 


이렇게 250만 년의 시간이 흘렀다. 


아버지란 이름은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내포한 단어였다. 가장, 아버지란 단어는 권위의 상징이며, 또한 무한책임과 같음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권위와 권리는 사라지고, 그 빈자리에 의무와 책임만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의무와 책임의 사이로 '분노'와 '좌절'이란 단어들이 비집고 들어와 똬리를 틀고 앉아있게 된 것 같다. 









펜더


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