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글은 고대 국가에서 현대 국가에 이르는 세계사를 다루는 글이 아니다. 일각의 예상처럼 사회학을 다루는 글도 아니다. 이 글은
인류를 지배하는 진정한 힘을 다루는 글이다. 차라리 군사학이나 무기학, 그리고 경제학에 가깝다고 봐도 무방하다.
1) 인류의 등장
인류가 침팬지와 비슷한 유인원에서 분화된 게 약 500~600만 년 전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약 300~400만 년 전에 출현했고, 약 150만 년 전의 호모에렉투스에 이르러선 언어와 불을 쓰기 시작했다.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는 약 20만 년 전에 나타났다. 호모사피엔스는 어떤 이유에선지 약 4~5만 년 전에 지구 곳곳에 흩어졌고 지금의 인류가 되었다. 그들은 기껏해야 수백 명 단위의 군락을 이루면서 씨족사회를 구성했다. 원시 군락사회를 지배하는 룰은 굉장히 자연적인 것들이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약 7천 년 전인 기원전 5천 년 경부터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에 최초의 국가 비스무리한 것들이 탄생했다. 거대 사회인 국가가 탄생하면서 드디어 인류는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로 본격적으로 나뉘어 왕-귀족(기득권층)-평민-노예 등 계급이 생긴다. 씨족사회에서도 계급은 존재했지만 그것에 비해 국가체제에서의 계급은 더욱 확고하고 세습되는, 진화된 형태였다.
사회생활을 하는 많은 동물들에게도 투쟁과 계급이 존재한다. 무리에서 보다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종족번식을 하기 위함이다. 그에 반해 인류의 사회계급체계는 두뇌게임의 양상을 보인다. 형이상학적인 요소까지 대입시키면서 룰과 세뇌, 종교 등까지 개입하곤 한다.
2) 반골(反骨)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등의 문명은 공통적으로 종교가 국가의 체제를 유지하는 주요한 룰이었다. 원시적인 인류가 경외하고 두려워하던 존재들은 불, 태양, 달, 별 등의 자연현상이 아니었던가? 다른 인간들을 설득하고 자신에게 복종하게 만드는데 가장 효과가 높은 방법은 경외의 대상을 설정하는 것이다(심리학적으로 권위에 호소한 뭐라고 하던데).
종교는 다양한 소규모 사회집단이 거대한 국가로 합쳐졌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내부 분쟁을 막아주고 단결하게 만들었다. 만약 왕이나 귀족들이 신의 보호 하에 있지 않았다면 언제든 피지배계층의 쿠데타로 한순간에 고깃덩이가 됐을 것이고, 종교의 보호막이 없었다면 국가체제도 오래 가지 못했을 것이다.
‘반골’이라는 용어가 있다. 반골은 쉽게 말해서 뒤통수가 튀어나온 상을 말한다. 후두엽(?) 정도가 위치하는 부위로, 후두엽 등이 발달해서 쉽게 세뇌되지 않고 독자적인 판단능력과 분석력이 강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 능력으로 인해서 기득권층이 정한 룰에 세뇌되지 않고 사회체제에 대한 반감을 가지며, 독자적인 새로운 룰의 개발 내지는 국가 전복을 기도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사실 뒤통수가 튀어났다고 해서 딱히 기득권층에게 체제 위협요소가 될 이유가 없다. 그릇된 관상학에서 비롯된 오랜 미신일 뿐이다. 정작 반골이란 단어의 의미는 다른 데 있다.
수천 년 동안 각 국가의 기득권을 점유한 극소수 인간들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특정한 룰을 내세워서 대다수 피지배계층을 세뇌하고 순응하게 만들며 지배해왔고, 허점을 간파하는 똑똑한(?) 인간들을 위협으로 느꼈다. 그러니까 ‘반골’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 교묘하게 포장되어 국가를 유지시키는 핵심 룰의 정체성을 간파하고, 그것을 깨부술 수 있는 새로운 룰을 고안할 수 있는 능력자를 말한다. 즉, 기득권자들 입장에서 볼 때 잠재적인 반체제인사들이다.
3) 문명의 발달
인류의 문명 발달과정은 그리스-로마로 이어지는 서구 문명의 줄기와 이집트-페르시아로 이어지는 오리엔트 문명의 줄기, 은둔의 인도 문명, 마지막으로 중국의 고대 문명까지 네 가지의 큰 줄기로 나눌 수 있다.
중국의 고대 문명은 각종 사회학파가 위주가 된 편이라 약간 다르지만, 유럽-오리엔트-인도의 문명은 주로 종교 중심의 문명이다. 그러다가 그리스 문명이 차츰 발전해 인문학이 발전하면서 후세의 서구문명(현재 지구를 점령한)의 기반을 제공한다.
현재 인류의 문명과 사회체제, 그리고 국가를 이루는 주된 룰을 논하려면 서구문명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왜냐면 ‘자본주의’라는 이론으로 포장된 어떤 국가의 룰이 세계 여러 국가의 룰보다 위에 있기 때문이다. 바로, 미국의 룰 말이다. 이 기묘한 상황을 이해하려면 세계사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그리고 군사학과 정치학, 외교학의 연관성을 파악해야 하고, 지구를 지배하는 공포의 무기들에 대한 기술적인 이해도 해야 한다.
그럼 한 가지 묻자.
“과연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세상이 진짜 세상일까?”
위 질문에 무슨 헷소리냐는 생각부터 든다면 조용히 이 글에서 떠나라! 혹시 위 질문에 조금 흥미가 든다면 당신은 반골의 기질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물론 어떤 나라의 정부나 기득권자들도 그런 사람들은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수천억 은하계 중에서 또다시 수천억 태양들, 그리고 수십 개의 행성들 중에서 이곳 지구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무한한 우주의 신비를 풀기 이전에 이 좁아터진 지구에서 나를 억압하고 있는 룰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겠는가?
2.
1) 대제국의 힘
앗시리아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 그리고 알렉산더 제국은 최초로 여러 문명권을 통합한 고대의 대제국들이다. 현재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고대 제국은 로마 제국이다. 로마 제국은 서구 문명의 주요국들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러시아, 그리고 미국까지도 이어지는 후계 라인을 갖고 있다.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는 꽤 흥미롭다. 로마 제국의 팽창 과정은 문명과 비문명의 대립으로 보면 이해하기 쉽다. 로마 제국의 인구는 최전성기에 (식민지를 포함) 5천만 명을 넘겼다. 이는 동시대 중국의 한 인구와 비슷한 수준이다.
로마 제국의 최대 영역
고작 수만 명 단위 또는 원시적 도시 국가들의 연합 형태로 인구 수십~수백만 명이 전부였던 나라들에 비해 로마 제국은 너무 거대해 복잡한 사회·정치 시스템이 필요했다. 수많은 신들에 덧붙여서 해외 식민지에서 직수입한 신들까지 몽땅 로마로 모이면서 로마는 신들의 전시회가 되었다.
로마 제국은 과연 무엇을 바탕으로 유럽 전역과 북아프리카, 그리고 중동 일부 지역까지 몽땅 차지한 것일까? 과학기술력? 높은 문명 수준? 개소리다. 한마디로 그 근원은 힘이다. ‘힘’이라는 게 단순히 군사력만 뜻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력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국가의 잠재적인 생산능력까지 포함한다.
로마 제국이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2천 년 전 무렵, 중국의 한 제국은 유목민족 국가인 흉노와의 군사력 전쟁에서 참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등한 인구와 생산력을 이용하여 군사력 격차를 무마하고 경제 전쟁으로 혈투를 벌인 끝에 승리했다.
하지만 보통 경제력과 군사력은 서로 비례하는 측면이 있다. 특히 경제력은 군사력의 선행 지표가 된다.
2) 로마 제국
로마 제국이 팽창할 무렵, 인근에는 로마를 위협할 대규모 국가나 세력이 별로 없었다. 이미 지중해의 해상 경제권을 장악했던 로마는 경제적으로 급성장했고, 이를 바탕으로 군사력을 높였다. 규모가 차츰 커지면서 그리스-오리엔트에서 이어받은 발전된 문명을 이용해 거대 국가를 유지할 시스템을 만들었다. 다시금 식민지를 확대하고 경제력의 팽창, 군사력의 팽창을 무한 반복했다.
그러다가 서쪽으로는 대서양에 막혀서 영국, 프랑스, 스페인, 북아프리카 서부에서 확장을 멈췄다. 북쪽으로는 기후가 나쁘고 힘세고 거친 게르만 민족이 버티고 있던 라인강 유역에서 막혔다. 엄밀히 말해서 로마가 더 이상 북쪽으로 확장을 못한 이유는 점령 후에 얻을 수 있는 경제적 대가가 소모할 막대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보다 적었기 때문이다. 점령하자니 손해고, 그렇다고 방치하자니 위협이라 그냥 방어전으로 돌입한 지역이다.
남쪽으로는 사하라 사막에 막혀서 기린과 코끼리가 뛰어노는 중앙아프리카로 진출하지 못했다. 동쪽으로는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지역까지 진출하는데 그쳤다. 그걸 넘었을 때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과 넓어지는 제국의 시스템을 유지할 현실적인 문제들이 겹친 탓이겠다. 한마디로 고대의 정치·경제·사회 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고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는 최대한의 범위를 몽땅 점령하고 나서 로마 제국의 팽창은 멈춘 것이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의 시대가 되고서야 로마는 팽창을 멈췄고, 로마 본토는 그들이 지배하는 곳의 과실을 독식했다.
로마는 팍스 로마나를 유지하기 위해 고도로 훈련받은, 직업화된 엘리트 군대를 보유했다. 이들은 로마가 경제적인 가치가 없어서 점령하지 않은 외곽지역을 방어하고 야만인들과 전투를 치루는 등 거대한 방어막이 되었다. 수백년 간 이 시스템은 효율적으로 유지되었지만 제국의 힘이 약해지면서 결국 외부의 침공에 허무하게 무너졌다.
로마 제국은 한때 알려진 문명 세계의 서쪽 지역에서 혼자서 짱먹었고, 지구 반대편에서는 전혀 다른 문명이 혼자 해먹고 있었다.
3) 한 제국과 흉노
서쪽에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그리스, 마케도니아, 로마가 치고 박고 할 때 동쪽에는 중국 문명이 태동했다.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중국에선 여러 사상(철학, 사회학을 망라한 통합 정치학에 가깝다)이 발전했다. 각 제후국들을 통해 이것저것 마구 실전 테스트를 거쳤고 결과적으로 법치주의가 짱을 먹었다.
전국시대 말기 제후국들의 사회시스템은 이미 근대적인 국가총력전 개념으로까지 발전해서 일개 국가가 한 번의 전투에 십만 단위 이상의 대규모 병력을 투입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로 아수라장을 통일한 진나라의 시황제는 정말 인류 역사의 한 부분(주로 동쪽)에 큰 획을 그은 혁명가다. 천 년 넘게 분열된 나라들을 하나의 국가로 통합하는 게 쉬울 리가 없다. 그래서 진시황은 자신의 정치시스템에 반발하는 다른 사상가들을 죄다 묻었다. 아주 당연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니까.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
진시황 많은 업적들은 정복활동을 통해 이뤄졌기에 일시적으로 엄청난 유혈사태를 불러왔고, 금방 멸망한 진 제국 때문에 진시황은 후대에 큰 조명을 받지 못했다. 만약 진 제국이 100년만 지속되고 나서 멸망했다면 진시황은 지금 슈퍼스타급으로 추앙받았을지 모른다.
진 제국을 뒤이은 한 제국은 진 제국을 당연히 부정해야 했던지라 진시황이 땅속에 묻어버렸던 유교를 국가의 기본이념으로 삼았다. 사실 그것 말고는 진 제국의 따라쟁이다. 아무도 거대한 중국을 혼자 통치해본 경험이 없었기에 그나마 경험자인 진시황을 따라할 뿐이었다.
한 제국은 이제 중국을 통합하고 힘을 축적했고 넘쳐나는 힘을 외부로 발산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한고조 유방은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북방의 골칫거리인 유목민족에게 본때 보여주려고 직접 출전했다. 하지만 북방 유목민족의 뛰어난 군사력에 비해 한의 병사들은 숫자만 많았을 뿐이라 추수 때 탈곡기에 털리는 볏단처럼 쓰러져갔다. 결국 한고조는 완전 털리고 딸까지 빼앗겼다.
한고조를 이은 한무제는 말 그대로 희대의 폭군이었다. 한고조가 북방에게 털린 이후, 북방에게 상납금을 바치면서 간신히 유지하던 국경 상황을 한 번에 뒤집으려 했다. 한무제는 중국의 거대한 경제력(인구와 생산력)을 이용하면 암만 뛰어나다고 해도 흉노를 무너트릴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래서 재위 기간 내내 매년 십만 단위의 초정예 엘리트 병사들을 뽑아 초원지대로 원정을 보냈고, 매년 전멸했다. (일반 알보병 수십만 명과 북방 원정군 십만은 유지비 자체가 다르다)
결국 한무제 말년에 중국의 인구는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주민등록상 5천만 명이 넘던 인구가 3천만 명 이하로 떨어졌다. 물론 조세부담을 못 이겨 유민이 된 주민등록말소자들, 전사자들, 경제난으로 출산율이 감소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한 무제는 흉노와의 무모한 전쟁을 포기하고 국민들에게 사과문까지 발표하고 사망한다.
그런데 흉노도 멸망한다. 그 이유가 다소 아이러니 한 게 중국군과의 교전으로 사망하거나 피해 입은 국력 때문이 아니다. 원래 흉노는 중국과 서방(인도, 오리엔트 지역)과의 중간 교역로를 몽땅 점령하고 통행료를 삥 뜯으면서 경제력을 갖춰왔다. 하지만 중국과 전쟁을 하면서 통행료를 삥 뜯지 못했고, 매년 중국이 보호세 명목으로 납부하던 막대한 물자와 인력(여자들도 많았다)을 내지 않으면서 국가 재정에 큰 문제가 생긴다. 중국이 보호세를 안 내면 원래 특공대를 투입해서 국경지대 탈탈 털면서 돼지, 닭까지 몽땅 빼앗는데, 중국이 기동군단까지 투입하는 통에 싸우느라 수금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흉노는 한 제국과의 군사적 분쟁에선 전술적으로 거의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흉노의 근간을 이루는 경제 시스템이 망가져서 망한다. 한 제국은 흉노를 멸망시키긴 했는데 처음에 의도했던 군사적 승리로 인한 건 아니었다.
한 제국이 어부지리로 이룩한 팍스 차이나도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로마와 마찬가지로 내부적인 혼란과 함께 외부의 침공이 겹치면서 명나라가 등장하기 전까지 천년 이상을 북방 민족들에게 시달린다.
엘랑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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