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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봉하] 봉하마을의 밤


2009.05.28.목요일


어스름할 무렵에 다시 찾은 봉하마을은 낮과는 달랐다. 모든 상가집은 낮에는 차분하고 조용하지만 밤이 되면 오히려 북적거리는데 이곳도 마찬가지인 걸까.


경호관의 거짓 진술로 야기된 온갖 의심과 혼란. 그리하여 수많은 의혹으로 뒤범벅이 되어 가는 고인의 마지막 길이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추모 열기는 눈에 띄게 더 해 간다. 낮보다 훨씬 많아진 사람들의 행렬은 이제 금요일 서울에서의 영결식을 앞두고, 그가 이곳에 누워 있을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연도에는 어제만 해도 보이지 않던 수백 개의 만장 깃발들이 가득하다. 고인을 사랑하는 이 나라 어딘가의 누군가가 그 며칠 동안 열심히 쓰고 만든 것이리라. 아스름한 초승달 아래 걸린 만장이 낮과는 또 다른 끈끈한 느낌을 자아낸다. 모두의 정성으로 이렇게 매일 조금씩 더 채워져 가는 봉하. 화려하진 않지만 충일하게. 마지막 길을 자칫 썰렁하지 않게.




행렬에 작지만 새로 눈에 띄는 것은, 기다리는 줄의 너비 유지를 위해 드리워진 흰 끈이다. 가끔씩 드나드는 행사 차량과 조문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의 소통을 더 원활히 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그저 얇디 얇은 끈 한 가닥이다. 그리고 그 끈이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잡고 있는 것은 바로 조문객 자신들. 참 작은 것이지만, 참 노무현 대통령의 조문객답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동영상 캡처



동영상 캡처


마을이 가까워지면서 촛불을 든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인다. 해가 떨어지면서 주최측에서 초를 나눠주고 있는 거다. 이미 조문을 마치고 나가는 사람들이 진입로의 길가에 촛농을 붓고 초를 붙여 놓고 간다. 계속 들고 갈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차마 불어서 끄거나 버리고 갈 수도 없는 섭섭함 탓이다. 그렇게 조금씩, 가느다란 촛불의 길이 꼬리를 물고 길어져 간다.



마을로 들어오니 낮에는 보이지 않던 큰 스크린이 벽면에 만들어져 있다. 고인 생전의 모습과 여러 가지 관련 영상들이 상영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 본다. 네티즌이 작곡했다는 록 형식의 추모곡, 잊혀질랑 말랑 하는 옛날 운동권 노래들도 나온다. 그렇지... 노무현의 상가집이 마냥 엄숙하고 차분하기만 한 건 솔직히 좀 안 어울리지.


옛날 5공 청문회 시절부터 서거 직전까지의 여러 영상들을 보고 있노라니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로 시작되는 대표적인 운동권 노래인 어머니를 부르는 고인의 모습은 노사모가 찍은 아마추어 영상인 것 같은데 처음 본다. 맞아. 저런 대통령이었지. 그래서 탄핵도 당했었지. 과격하고, 젊잖치 못하고, 빨갱이고, 자격 미달이고.


그래, 겉으로 무게잡고 뒷구녕으로는 오만 가지 더러운 짓거리 다 해먹는 너희들, 부자들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인 너희들이 아니면 무조건 자격 미달이지. 탄핵으로도 모자라서 바위 끝까지 쫓아왔지. 이제 속이 시원하시겠소.




그런데 그때쯤 이상한 일이 있었다. 부엉이 바위 쪽 하늘에서 커다란 불덩어리 두 개가 맞은 편으로 날아오는 것이다. 비행기라는 이도 있고 UFO 라고 웅성거리는 이도 있었는데, 마침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있던 터라 열심히 찍었다. 밤이고 거리가 멀어 않아 흐릿하지만 실물은 진한 주황색에 불길의 넘실거림 같은 것이 보였다. 절대 비행기 종류는 아니다.


그 중 하나는 낮은 산을 너머 멀리 날아갔고 하나는 산자락의 숲에 떨어졌는데, 떨어지고도 한동안 불길이 보였다. 봉화마을에서 누가 뭔가를 하늘에 쏜 건지, 과연 무엇이길래 불이 붙은 채 이런 식으로 느릿느릿 창공을 날아갈 수 있는지. 혹시 정체를 아시는 분 있으면 댓글로 남겨 주셨으면 한다. (한 두 시간 후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동영상 캡처


분향소 옆을 지나 사저 쪽으로 향한다. 사저는 마을의 끝자락에 있기에 다른 곳보다도 주변이 어두컴컴하다. 하지만 집 창문은 주인에게 벌어진 비극과는 상관없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아직 사람이 남아 있고 누군가는 저 곳에서 쉬기도 하고 대화도 하고 밥도 먹어야겠지만, 그 무정하도록 환한 창문이 나는 어째 서글프게만 느껴졌다.




낮에 봤던 부엉이 바위 쪽에는 불빛이 전혀 없어서 바위가 자체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 지금 온 분들은 저 바위를 못보고 가겠구나. 얼마나 크고 무서운 곳인지 실감나지 않겠구나. 보이지 않으니 낮에 내가 했던 괜한 상상들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하긴 그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저 곳에서 노 대통령이 떨어지는 상상만 했지만, 그새 상황이 바뀐 지금은 저 밑에서 30분이나 쓰러져 있는 그가 다시 떠 오르니 말이다. 홀로 외로이, 어쩌면 고통 속에서 미약하나마 의식이 있었을지도, 다시 살고 싶었을지도...  그만하자.



분향소 쪽으로 다시 걸어 나오는데, 참여정부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던 천호선씨가 회견을 하고 있다. 경호관 문제로 전날 밤부터 떠돌고 있는 각종 의혹과 음모론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기 위해서다. 유가족은 대통령의 자살에 대해 아무 의혹도 갖고 있지 않다고 한다.


비록 음모론을 좋아하는 딴지이긴 하지만, 이번만큼은 다들 조심했으면 한다. 자칫하면 그저 고인을 욕되게 하고 마지막 길을 지저분하게 만들 수 있다. 고인에 대한 애정과 진실에 대한 열정도 좋지만, 유서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가짜고 조작이고 음모라고 주장하는 동안 막상 노무현 대통령은 그 속에서 지워져 버리기 때문이다.



이제 나오는 길. 자정이 넘은 시간인데도 입장하는 사람의 수가 초저녁보다 두세 배로 늘어 있다. 다들 생업을 가진 사람들일 텐데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들 오는 걸까. 연령도 성별도 지역 구분도 없다. 젖먹이 아이들, 초등학생부터 7,80 먹은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이 밤 중에 그 먼 길을 와서 또 한참 걷고, 몇 시간을 줄 서서 기다리고, 그리고는 1,2분 조문하고 돌아간다. 오늘밤 아마 100만 명을 돌파할 것 같은데 그렇다면 대한민국 전체 인구 50명당 한 명이 봉하마을까지 왔다는 이야기다. 아마도 이곳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상가집이 된 것 아닐까.


정승집 개가 죽으면 조문객이 넘쳐나고 정승이 죽으면 문간이 썰렁하다는 말이 있다. 그 옛날부터 권력의 속성은 항상 그래 왔다. 하지만 이곳을 보라. 상왕 노릇은커녕, 검찰의 공세와 정권의 압박에 대해 정치적으로 대항할 힘도 조직도 세력도 남아 있지 않던 노무현. 그런 그의 죽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 든다.


민심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것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온갖 이해 관계의 얽힘과 섥힘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잊어버리고 살기도 하지만, 정작 우리들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원하는 지도자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오늘의 이곳을 이야기할 것이다.




눈에 띄는 단체 조문단. 이들은 전남 나주에서 온 분들이다. 지역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끝없이 노력했던 노대통령의 노력과 정성이 전해진 걸까. 이 한 밤중에 저 많은 분들이 단체로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저 엄청난 만장들... 저걸 다 들고 여기까지. 과연 포스가 다르다. 역시 전라도 분들은 이런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안다. 그렇게 되도록 세상이 만들었다.




들어올 때 생겨나고 있던 촛불 길은 이제 몇 배로 늘어나서, 2킬로에 이르는 마을 진입로 전체에 깔려 있다. 이걸 공중에서 보면 얼마나 장관일까 싶다. 돈 있는 언론사가 좀 하늘에서 찍어 내보내면 좋을 텐데. 달랑 둘이서 카메라 두 개 들고 기차 타고 간 본지로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분향소 앞에서 유명 인사들의 얼굴을 담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메이저 방송사들의 많은 지미집(촬영용 소형 크레인)들. 그 중 하나만 끌고 와도 얼마나 예쁜 모습이 나올까. 왜 그런 생각들을 안 하는 거지.




이제 셔틀 버스도 거의 끊겨 우리는 이틀간의 취재로 지친 몸을 이끌고 한참을 걸어 나와 숙소로 돌아가는 택시를 탔다. 출퇴근 시간의 강남을 능가하는 교통 체증이 봉하마을 주변 도로 전체를 휘감고 있다. 새벽 1시인데도 끊임없이 몰려드는 승용차와 인파. 이 지역 역사상 이런 경우가 한번이라도 있었을까? 역사의 현장.. 이라는 통속적인 말보다 잘 어울리는 표현이 없다. 거기에 우리가 있다. 아니 우리가 거기를 만들고 있다.


숙소로 가는 차 안에서 우연히 고인이 처음 실려간 그 병원을 지났다. 달리는 택시 창문을 열고 사진을 마구 찍어대자 친절하게도 병원 앞으로 차를 잠시 대 주는 기사분. 응급실 바로 정면에 섰다. 여기가 노 대통령이 실려온 그 응급실 입구다. 경호원이 혼자서 들쳐 매고, 자기 차로.




잠시 고개가 갸우뚱한다. 앰뷸란스를 부르면 너무 빨리 뉴스가 퍼질까 봐 그런 것일까? 아니면 무슨 다른 이유가? 음모론으로 가지 않더라도 분명 아직 더 명확해 질 부분들은 남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것은 그가 어떻게 죽었는가 보다는 어떻게 살았느냐는 것이다.


봉하마을 방명록에는 잊지 않겠습니다 라는 말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물론 잊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고인의 뜻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방명록에 이렇게 끝내지 않겠습니다 라고 썼다.


뭘 어떻게 해야, 이렇게 끝내지 않는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그것은 이제부터 서서히 찾아나갈 일이다. 다 같이.


추신: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진영역에는 밤을 새고 가는 조문객들이 많았다. 지친 그들 사이로 할머니 한 분이 돌아다니며 호통을 친다. 이 분, 우리가 도착할 때도 있었다. 노무현 욕을 하고, 문상 온 사람들 싸잡아 욕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다닌다. 아마 그 동안 내내 그러고 있었을 것이다.


왜 그러는지는 모른다. 약간 치매기도 있어 보이는 왜소한 할머니. 요즘 이 분위기에 자칫 싸움이 날 수도 있지 싶지만 그 분을 응징하거나 심하게 맞대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모습을 보며, 졸린 정신을 부여잡고 생각해 봤다. 만약 노무현 대통령에 상응하는 극우 꼴통의 거두가 있어서, 그 사람이 노 대통령과 똑 같은 처지에 놓인 후 똑같이 죽었다면, 그래서 전국의 보수 우익들이 여기 모였는데 이 할머니가 면전에서 감히 저러고 있었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글 - 파토 (patoworld@gmail.com), 사진 - 신짱(woolala7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