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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경반전지음] 반노정서와 반노주의

2002.10.25.금요일
딴지 사설

편집자 주 :
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도의 의미로 과거 본지 기사 속에 비춰졌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을 소개한다. 본지의 과거 기사에서도 드러나듯 그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정치적 지향에 따라 극명한 애증이 교차하는 바, 본지에서도 향후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업데이트시킬 예정이다.


오늘의 텍스트는 좃선 김데중 주필의 10월 21일자 칼럼 <반미정서와 반미주의>다. 김데중 주필에게는 참으로 배울 바가 많다. 일등신문 주필되는 거 껌이구나, 나도 주필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 고양에 특히 좋다.


우리의 훌륭한 교보재이니 자알 정독하도록 하자.






[김데중 칼럼] 反美정서와 反美主義


반미(反美)에는 대체로 두 개의 범주가 있다. 하나는 반미정서 또는 반미감정(anti-American sentiment)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반미주의(反美主義·anti-Americanism)다. 반미정서는 미국의 어떤 부분을 마땅치 않게 여기거나 싫어하는 소극적인 감정이고 반미주의는 미국을 적극적으로 배척하고 공격적으로 반대하는 신념이라고 볼 수 있다.


강대국 패권주의, 배타적 이기주의, 약소국에 대한 편파적 태도, 세계 경찰국임을 자처하는 독단주의, 인종차별, 배금만능의식 등 미국의 어두운 면을 비난은 하면서도 미국 자체를 부인하거나 거부하지 않는 것이 반미정서라면, 북한 또는 일부 아랍권 또는 일부 NGO들이 가진 미국체제와 존재에 대한 거부론은 반미주의의 소산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근자에 와서 한국 또는 한국민의 대미관(對美觀)은 심상치 않은 변화를 겪고 있다. 미국에 대한 비판적 견해라고 해야 반미정서의 차원을 넘지 않았던 대미관이 부분적으로 점차 경계선을 넘어 반미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을 목격할 수 있다. 이것은 한국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부인하는 반미주의 세력의 집요한 접근에 기인하는 측면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월드컵 등을 통해 자각된 한국의 민족적 저력과 원동력, 자긍심과 열정 앞에 미국의 존재가 장애물로 존재한다는 인식과 연관이 있다.


한국의 반미만이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한국기피도 심상치 않다. 미 국방부와 접촉이 있는 한 한국 예비역장성은 “근자에 와서 한국으로 전근발령을 받은 미군 장교들이 전역을 신청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전하면서 한국은 미군이 가장 싫어하는 근무지가 됐다고 했다. “최근 미군병사와 서경원씨 사건과 이에 대한 한국언론의 보도로 주한미군이 주재국에 대해 이렇게 분개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과 미국의 리더십은 사태의 심각성에 민감하지 않은 것 같다. 부시 행정부는 한국인의 이율적(二律的)인 정서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일반적 한국인은 북한이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존재인 동시에 같은 민족이라는 사실에 늘 당혹스러워한다. 김정일 정권은 비난하면서도 북한동포는 끌어안으려 한다. “북한을 총체적으로 악(惡)으로 몰아세워서 미국은 무슨 구체적 실리를 얻고 있는가”라는 물음은 민족논리에 경도돼 있는 사람들을 이율배반적 심리상태에 빠지게 한다. 6·25전쟁을 미국의 남북전쟁과 비교하게끔 된 한국의 전후세대들에게 특히 그렇다.


최근 NYT는 칼럼에서 미국은 이라크의 침공을 물리쳐준 쿠웨이트에서 반미테러를 당하고 있고 미국의 우방인 파키스탄 선거에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득세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는 심지어 9·11 이후 아프간에서 태어난 남자아이의 이름이 대부분 오사마임을 지적하면서 미국은 도와주고 욕먹는실수를 저지르고 있다고 했다.


몇주전 미군병사와 서씨 충돌사건과 관련해 미국대사관이 조선일보에 기고한 독자편지에는 미국측이 한국시위대의 정서를 헤아려야 한다는 조선일보 사설에 강한 이의를 제기하면서 한국의 자유수호를 위해 이 땅에 온 세 명의 (미군)병사라는 표현을 썼다. 아마도 젊은 세대를 포함해 많은 한국인들이 그 표현에 실소했을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그 현실은 한국에 더 절실하다는 것을 한국인들은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가정치고 한집 건너 미국과 관련이 없는 집이 없다. 미국에는 150만명의 동포가 살고 있다. 미국이 한국으로부터 투자를 빼가면 한국경제가 큰 파탄을 겪게 돼 있다. 안보문제에 있어 주한미군의 존재는 동북아의 견제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에 있어 미국에 대한 호불호(好不好)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현실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의 햇볕을 가리려는 부시와 미국의 구름을 싫어하는 나머지, 한국 내의 반미에 어쩌면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반미에 대해 별로 언급하지도 않고 주변의 권고로 마지못한 듯 몇 마디 해도 어쩐지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미국인들은 세계 도처에서 미국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성조기가 불태워지고 미국 대통령 초상화가 망가지는 광경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한국에서의 반미도 강대국의 통과의례정도로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미 지도층의 이 같은 무의식과 무관심의 공간 사이에서 한국의 반미는 점차 그 반경을 넓혀가며 중대한 전환점을 넘고 있다.


(김데중/편집인)


자, 잘 정독했다면 우리도 한번 따라해 보자.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졸라 껌이다.
 






[음경반전지음] 반노정서와 반노주의


반노에는 대체로 두개의 범주가 있다. 하나는 반노정서 또는 반노감정이라는 것이고, 또하나는 반노주의다. 반노정서는 노무현의 어떤 부분을 마땅치 않게 여기거나 싫어하는 소극적인 감정이고, 반노주의는 노무현을 적극적으로 배척하고 공격적으로 반대하는 신념이라고 볼 수 있다.


민주당 내의 후단협-후보단일화 협의회-처럼 노무현의 당선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노무현 흔들기를 시도하고, 정몽준에게 추파를 던지는 게 반노정서라면, 조선일보를 필두로 한 보수언론들이 가진 노무현에 대한 총체적 거부론은 반노주의의 소산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근자에 와서 보수언론, 특히 조선일보가 노무현을 보는 시각은 심상치 않은 변화를 겪고 있다. 실제로 한 말을 앞뒤 문맥은 고려하지 않은 채 대서특필함으로써 부정적 인상을 덮어씌우려는 수작에 불과했던 것이 점차 경계선을 넘어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우기면서 그를 공격하는 것으로 확대되고 있다.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자는 발언이 전자의 예라면, 조선일보가 1면 톱으로 보도했던 언론사 국유화 발언은 후자의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것은 평소에도 왜곡을 밥먹듯 자행하는 조선일보의 평소 실력에 기인하는 측면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노무현이 당선되면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자신들의 입지가 흔들린다는 인식과 관련이 있다.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노무현은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는지라, 노무현의 조선일보 기피도 심상치 않다. 노무현의 팬클럽 회장이었던 명계남 씨는 "조선일보 절독운동"을 선언하기도 했고, 노무현은 아예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는 걸 천명해 버렸다. 언론에 찍히면 죽는다는 것이 정설로 나도는 한국 정치사에서 일등신문을 자칭하는 조선일보에 이렇듯 저항하는 정치인은 없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뿐이 아니다. 조선일보의 친일, 친독재 전력이 어느덧 세간의 상식이 되어 버렸고, 우리모두를 비롯한 언론개혁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조선일보의 입지를 점점 약화시키고 있다.


상황이 이럴진대 조선일보는 이를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힘만이 최고"라는 신화에 매몰되어 결국에는 정의가 이긴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한 초등학생은 조선일보가 그들이 주장하듯 민족지가 아니라 친일을 밥먹듯이 했으며, 민주주의에 기여하기는커녕 독재정권의 나팔수였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워했다. "남에게는 도덕성을 요구하면서 천문학적 탈세를 하는 게 말이 되나"는 그의 물음은 조선일보 독자들을 한없는 자괴감에 빠지게 한다. 특히나 "30년째 조선일보를 봐왔다"는 걸 자랑으로 아는 장기 독자들에게 특히 그렇다.


최근 민경진이라는 논객이 인터넷 매거진 대자보에 조선일보가 기사회생하는 법을 공개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난 몇 년간 조선일보의 공신력은 심지어 독자들조차 믿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추락했"으며 "매체 환경 자체가 혼자 목소리 높인다고 다른 매체들이 멍청하게 따라가는 그런 시절은 이미 지나간 지 오래"라는 것이다. 또한 "미래의 독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20~30대가 도무지 종이신문을 읽지 않고 있으며 그나마 읽는 신문 중에서도 조선일보는 최악의 평판을 받고 있다는 것도 큰 두통거리"란다. 그러면서 그는 조선일보의 살길을 이렇게 훈수한다. "조선일보가 유일하게 바랄 수 있는 희망은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또 다시 정권과 원수지간으로 5년을 지내는 것이다. 그간 쌓아온 야당지의 명성에다 대통령과의 흥미진진한 일진공방이 세간의 흥미를 자극해 궁금해서라도 조선일보를 사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분의 말에 따른다면, 조선일보가 지금 하고 있는 반노주의는 한마디로 말해 닭짓이다. 조선일보가 냉전을 부추기고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하며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정치인을 미는 게 너무 익숙한 나머지 지역통합과 서민의 삶 향상을 주장하는 노무현을 공격하는 게 당연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조선일보 스스로가 무덤을 파는 행위이며, 그들이 그럴수록 조선일보가 문을 닫을 날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일등신문 차기 주필 마태우스
(bbbenji@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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