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좌 오딧세이] 조선시대 처녀귀신 본좌(4) 2009.5.20.수요일 어느 독자께서 주신 제보 2주 전 어느 독자께서 담과 같이 제보 주셨다.
"한방에 해결" 되기를 기대하며 읽었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 내용이 좀 길지만 핵심은 이거다. ≪몽골비사≫에는 알랑-고아의 설화가 있지요. ... 알랑-고아(Alan-Goa)라는 분은 몽골민족의 성녀(聖女)로 알랑 미인(美人)이라는 말입니다. 이 분의 이름 가운데 알랑이란 우리가 자주 들어온 아랑설화의 그 아랑이고 고아는 곱다(beautiful)는 뜻입니다. 그리고 알랑-고아의 12대 손이 바로 칭기즈칸입니다. 흥미로운 주장이나 단정은 이르다. 우선 돗자리가 이 분야에 전혀 문외한이라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근데 알랑=아랑이 아름다운 처녀를 뜻한다면 밀양이든 경남이든 조선이든 그 어딘가에 이런 용례가 남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감사하기 이를 데 없다. 소복귀신, 여전히 잘 안보이네 계속 진도 나가자. 3탄에서 디볐듯 1920년대 이후 아랑이란 고운 이름을 얻은 밀양의 처녀귀신, 여전히 산발을 하고 온몸에 피칠을 한 채 나타난다. 그럼 소복(素服)은 언제부터 입게 되시나. 돗자리가 대충 디벼본 바, 아랑형 전설이란 표현을 첨으로 쓴 손진태의 ≪한국민족설화의 연구≫(을유문화사, 1947)에서가 아닐까 싶다. 밤중이 되었을 때 별안간 찬 기운에 방에 돌더니 일진광풍(一陣狂風)이 일어나며 굳게 닫힌 문이 화닥닥 열리고 촉(燭)불은 꺼질락말락 하였다. 상당히 담대한 그도 잠간은 기절할 번 하였다. 하나 그는 다시 정신을 차려서 급히 주역을 읽기 시작하였다. 그는 높은 소리로 주문을 읽었다. 방은 조금 동안 깊은 정적을 계속하였다. 또 조금 있더니 이번에는 한편 방문이 소리없이 슬그머니 열리면서 뼈를 찌르는 듯한 찬 기운과 함께 머리를 산발하고 전신에 피를 흘리는 요괴가 눈 앞에 우뚝 나타났다. 그는 연(連)해 주문만을 높이 읽었다. 그 요괴는 다시 사라지고 사위(四圍)는 다시 침묵하였다. 세 번째는 어떤 여인의 소리가 문밖에서 나며 방안에 있는 사람을 불렀다. 그는 재삼 생각하다가 누구이냐고 대답하였다. 여인은 애원하는 듯한 말소리로 "나는 귀신도 아니요 사람도 아니나 호원(呼冤)할 말이 있으니 문을 열어주시오" 하였다. 그는 비로소 그 요괴가 원귀임을 알았다. 그리고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대담하게 방문을 열어주었다. 어떤 소복한 미녀가 목에 칼을 꽂은 채 방안으로 들어와서 그의 앞에 절하였다(1923년 7월 경북 칠곡군 왜관 김영석씨 담). 손진태가 1923년에 들은 전설이라지만 책이 나온 건 한참 뒤인 1947년이고, 더욱이 녹음기도 없던 1920년대의 구술이라 얼마나 정확하게 옮겼을 지도 의문이다. 원귀가 출현하는 장면도 오락가락 어지럽다. 여기서 주인공은 밀양부사의 딸 아랑이 아닌 어느 고을의 기생이다. 그러니 처녀귀신보다는 미혼귀신에 가깝다. 이 설화의 생산연대를 1920년대로 봐야 할지 1940년대로 봐야 할지 애매하다만, 암튼 소복이 나온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아랑)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머리를 풀어 산발하고, 목은 칼로 찔린 채 피를 흘리며 들어온다(<원혼이 된 아랑낭자>, ≪한국구비문학대계≫ 2-2). (아랑) 피투성이를 하고 산발을 하여 원에게 원수를 갚아달라고 절을 하니 …(<밀양 아랑각 전설>, ≪한국구비문학대계≫ 7-13). (윤씨) 대문 열리는 소리가 나서 보니까 여자가 산발을 하고 전신에 피칠하고 들어온다(<아랑의 설원>, ≪한국구비문학대계≫ 8-7). 1960년대 이후 공포영화, 원귀에게 소복을 입히다 그럼 어쩌다 우리에게 처녀귀신=소복귀신으로 인식되었을까. 아무래도 공포영화 땜시 아녔겠나. "현재 우리에게 친숙한 여귀의 모습은 근대 시각문화가 발달한 1960년대 이후의 산물이다"(김정숙, <조선시대 필기,야담집 속 귀신,요괴담의 변화 양상>, ≪한자한문교육≫ 21, 2008, p.556)는 논문도 그 점을 지적한다. 최근 나온 백문임의 ≪월하의 여곡성≫(책세상, 2009)에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아랑형 전설에서 공포영화로의 변이>, pp.167~185). 그리하야 1960년대 이후에는 시대와 무대를 뛰어넘어 원한이 맺힌 처녀귀신의 이미지는 오랫동안 소복,산발로 각인된다. 뭐 약간의 변형도 있다. 예컨대 <월하의 공동묘지>(1967)에서처럼 송곳니가 돌출한 경우도 있는데 이는 처녀귀신 중 손각시라 하여, 결혼 못하고 죽은 게 원통해서 귀신이 된 케이스다(영화 내용과 맞는진 모르겠다). <목없는 여살인마>(1985)에서는 고양이를 소품으로 안고 나온다. 이 둘은 고전극이 아닌데, 조선시대가 무대인 <전설의 고향>(2007) 포스터는 생전 녹의홍상(綠衣紅裳) 사후 산발소복의 이미지를 잘 대비해서 보여준다(담탄에서 나오겠지만 장화·홍련은 생전 사후 모두 녹의홍상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 스토리상 아랑형 전설은 아니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문헌설화를 보면 처녀귀신이 나타날 때 울음소리가 나지 웃음소리는 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부턴가 에코효과를 동반한 "이히히히... 아하하하"라는 음향에 더 익숙하다. 왜일까? 이건 도서관에서 책이나 뒤적대는 돗자리가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닌지라 부득이 다른 연구를 소개한다. 몇몇 영화에서 악명 높은 여곡성이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스크린은 여귀의 히스테리컬한 웃음소리가 장악했던 것이 사실이다. 생전에는 조신하고 가련하기까지 했던 여주인공들이 귀신이 되어 귀환한 후에는 자유자재로 출몰하며 공간을 웃음소리로 채움으로써 악한들을 혼미하게 만든다. 이 웃음소리는 평범한 인간들이 지르는 비명과 대조를 이루면서 이제 여귀가 우월하고 능동적인 위치로 옮겨갔음을 공표하는 동시에, 공포영화라는 장르가 공공영역의 청각장場을 여성의 웃음소리로 메우는 유일한 장르임을 공표하는 것이었다(백문임, ≪월하의 여곡성≫, p.345). 아, 글쿠나. 하긴 "어흐흐흐" 하며 청승맞게 징징대는 것보담 미친듯 웃어제끼며 "니들 이제 다 죽었써 쓰바들아" 라는 메시지를 쌔려주는 게 멋지긴 하다. 그치만 아랑형전설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이런다면 좀 곤란하다. 신임사또는 복수가 아닌 호소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아랑, 나비소녀가 되다 해방 이후 아랑형 전설에는 이전에 없던 내용이 덧붙는다. 아랑의 영혼이 나비가 되어 범인을 갈쳐준단다. 다음이 그런 경우다. (아랑) 밤이 깊어오자 갈갈이 찢어진 옷을 입은 데다가 피투성이로 머리를 풀어헤친 한 처녀가 나타나 부사에게 공손히 예를 하고는 이르기를 ... 흰나비로 화하여 원수의 갓에 앉을테니 꼭 원수를 갚아달라. 최상도, ≪한국민간전설집≫(통문관, 1958) ≪한국구비문학대계≫(1980)에 실린 아랑형설화에도 그런 사례가 여럿 나타난다. 8개 설화 중 5개에서 나비가 범인을 꼰지른다.
아랑형 설화를 소재로 한 KBS <전설의 고향> 나비의 한(1996)에서는 하얀나비, 현재 밀양 아랑각에 걸려 있는 그림에서는 노란나비가 나온다. 해방 이후 나타난 새로운 Version인 셈이다. 말하자면 변종인 셈인데, 자칫하면 이게 오리지날 클래식으로 오인될 수 있으니 조심하자(담탄에서 장화,홍련 디비고 아랑이랑 함께 종합정리한 뒤 쫑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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