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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좌 오딧세이 AV편] 5화 : 이이지마 아이, 어느 예능인의 죽음 


2009.5.20.수요일 



내가 고자는 아닐텐테...


지적(知的) 발기 부전증 라고 들어보셨을랑가 모르겠다. 학계에서 공인된 병리학적 증상은 아니니 몰랐다고 뜨악해 하실 필요도 없고 이제와 열심히 찾아본다고 나오지도 않을 게다. 단지 내가 목격했던 누군가의 증상에 대해 한번 명명해본 것이니 "뭐야 이 새끼야, 그럴 거면 뭐 하러 물어봤어?" 라고 너무 나무라진 마시라.
 
그러니까 그 정신적 발기 부전증을 앓던 환자의 용태는 대략 이러했다. 지금부터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그 환자를 갑 이라고 부르겠다. 갑은 글을 써서 먹고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글이 안 나오더란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갑은 픽션을 쓰는 작가는 아니었고 딱딱한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그게 창작을 위한 영감이 고갈되었다거나 의욕을 상실했다는 말이 아니라 예를 들어 서평을 한권 쓰려고 타이핑을 시작하면 전체적 내용 요약, 저자의 논지, 그리고 그것에 대한 본인의 호불호, 양념 삼아 얹을 수 있는 소재들 - 가령 월남전에 대해서 글을 쓴다면 PTSD를 겪는 참전용사들의 워크숍 참관, <지옥의 묵시록>과 <풀 메탈 재킷>, , 브루스 스프링스턴의 Born in the U.S.A 등등 -을 혼자 주르륵 나열할 수는 있는데 이것들을 대체 어떻게 엮어야 할이지 막막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예전에는 그걸 아주 잘하던 사람이. 급기야는 관련된 팩트를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그러니까 도입부에는 이러저러한 사례들을 인용하고 전체적으로 저자의 논지에 공감하지만 구체적인 실천 방안에는 동의하지는 않는다는 방향으로 글 좀 써줘" 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청탁을 하고 다녔다.

모른척 할 수도 없는 사이라 나도 팔자에 없던 갑의 고스트라이터 노릇을 몇 번하게 되었는데 이대로는 이 친구가 영영 정신적 고자 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름대로 진단을 내려줬다. 갑이 할 말은 많은데 갑자기 글이 막히게 된 이유는 팩트의 과잉 때문이다 라고. 구슬이 서 말이면 꿰기가 어렵다. 그런데 그걸 아깝다고 골라내지도 않고 죄다 한 줄에 꿰려고 드니 모양과 색이 제각각인 것들이 제대로 어울릴 리가 없다. 요것이 본인의 진단이었다. 실제로 당시 갑이 대필을 부탁하며 물어다준 자료들은 그가 요청한 분량으로 각기 다른 글 세 편은 뽑을 수 있을 만큼 양이 넘쳤다. 갑이 나의 진단에 적극적으로 동감하고 이를 수용한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뒤로 더 이상 고스트라이터들을 수소문하고 다닌다는 소식은 없는 것으로 보아 갑의 문제는 아마 팩트의 과잉이 맞았던 듯 싶다.


그런데 이번 [본좌오딧세이, 이이지마아이편]을 쓰기 위해 타이핑을 시작하는 순간, 갑이 겪었던 것과 같은 그런 증상이 나를 엄습한 것이다. 나는 갑자기 쓸 수가 없게 되었다. 사실 요번 다섯 번째 본좌 오딧세이의 시작은 아래와 같이 아주 쾌활하고도 발랄하게 시작하고 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숫자 3은 조화와 안정의 상징이다. 그리스에는 미의 3여신이, 석굴암에는 삼존불이, 성당에 가면 삼위일체가 있으며, 제갈공명은 천하를 삼분하자고 했고 달타냥은 삼총사의 꼬붕이었다. 헤겔철학은 正,反,合, 성악계에는 쓰리 테너, 동굴에는 아빠곰, 엄마곰, 애기곰, 교과서엔 철수,영희,바둑이, 샘숭(SAMSUNG)이 원하는 세계는 Talk, Play, Love, 그리고 남자의 쏘울푸드는 술,∙고기, 쎄..쎄..쎆...... 아무튼 여배우들 역시 시대를 막론하고 트로이카, 세명씩 묶는다. 그래서 90년대 초를 풍미했던 AV 본좌들로 한번 트로이카를 뽑아 보라면 나는 주저 없이 시라이시 히토미, 유키 마이코에 이어서 이이지마 아이를 뽑겠다......"


딱 여기까지 쓰고 난 다음 나는 지적 고자 가 되어버린 갑처럼 무슨 얘기를 해야 할 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이이지마 아이(飯島愛). 참으로 복잡 미묘하게 살다 가버린 여자. 나는 이 복잡한 여자의 삶을 어찌어찌 엮어보려 했지만 이내 포기하고 그냥 풀어놓는다.


인생역정



성폭행, 가출, 2번의 임신중절과 자살기도, 접대부 생활, 이후 빚을 갚기 위해 AV 배우로 전향. 인생 막장이라는 말이 어울릴 법했던 이이지마 아이. 이후 "사랑하는 사람과의 진실된 섹스만이 나를 정화할 수 있다"고 말한 회고록 <플라토닉 섹스> 가 일본에서 출간되어 대히트. 동명의 TV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다. 영화판에서는 풋사과 시절의 오다기리 죠가 남자 주인공으로 출연한 것을 볼 수 있다. 


티백의 여왕


지난 [본좌 오딧세이 AV편 2회 : 선사시대 편]에 소개된 심야 TV쇼 길가메쉬 나이트의 영상을 보면 전성기 시절의 이이지마 아이를 확인해 볼 수 있다. "미나상~" 하며 뒤뚱 뒤뚱 걸어나와 시작하자마자 치마를 걷어올리고 끈팬티(뒤에서 봤을 때 속옷 실루엣이 영어 알파벳 T모양이라 하여 일본에선 이를 T-Back이라고 부른다)를 보여주며 엉덩이로 인사하는 여자가 바로 이이지마 아이다. 이이지마 아이의 이 독특한 장기 덕분에 그녀는 AV계에서 활동하던 90년대 초반 당시 T백의 여왕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T백의 여왕, 이이지마 아이



연예계 진출




AV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93년 그녀는 음반을 취입한다. 、「ナイショ DE アイ!アイ!」라는 곡으로 당시 오리콘차트 87위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예능진출 AV배우 1호


여기서 성공이란 AV 내에서의 성공이라는 의미보다는 이후 더 큰 부와 명성을 얻었다는 뜻이다. 물론 AV 내에서의 입지와 인기를 두고 봤을 때도 단연 퀸이었지만 이이지마는 AV 이후의 활동이 더욱 두드러진다. 비유를 하자면 처음엔 보디빌더로 시작했으나 보디빌딩계의 명성을 이용해 영화, 정치로 점점 자리를 옮겨간 아놀드슈워제네거와 비슷한 동선을 밟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이지마 아이는 AV 배우로서의 인기를 발판으로 심야 성인 방송인 길가메쉬 나이트로 방송에 진출하고 여기서 왕성한 활동을 펼쳐 음반을 취입하고, 전국적으로 인지도를 확보해 이제 몇몇 쇼프로에 게스트로 출연하고, 게스트로 출연한 뒤로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어 고정출연자로 자리잡는 패턴을 밟았다.



런던하츠에 고정출연 하던 시절의 이이지마 아이


여기선 그녀의 능력 또한 한몫 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AV 배우 가 처음 진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란 뻔한 것이고 맡을 수 있는 역할이란 몸으로 때우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심야 방송 시절부터 그녀는 꾸준히 자기가 할 수 있는 한가지를 확실하게 밀었고 이를 통해서 인지도를 확보해서 다른 방송으로 진출 할 수 있게 되면 한번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초기에는 AV 배우라는 지위(?)를 적극 활용하여 다른 출연자들은 몸을 사려야하는 비 방송용 멘트를 내뱉는 막말로 승부해 사람들의 눈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이것이 차후에는 화통함과 솔직함 으로 자리 잡도록 꾸준히 말발로 승부했다. 국내 방송에 몇몇 레이싱걸들이 출연 기회를 얻어도 결국 그냥 화사하게 웃고 포즈 잡는 것 이외에는 할 줄 아는게 없어 1회용 출연자로 그치는 것과 대조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이지마 아이는 1회용 출연자로 시작했으나 그때마다 기를 쓰고 자신의 예능감각을 폭발해 고정으로 말뚝을 박았다. 2000년대 즈음되자 이제 그녀는 AV 배우라기 보다 그냥 입담좋고 화통한 게스트 언니 정도로 인식되게 되었다.



2007년 초 방송 은퇴를 결정하고 킨스마(金smap)에서 하차하며
SMAP 멤버 나카이 마사히로에게서 꽃다발을 받는 이이지마 아이


대략 어느정도 위치였나



히로스에 료코 주연의 영화 <버블로 고!> 에 자기 자신으로 분장한 이이지마 아이


영화 <버블로 고! 타임머신은 드럼방식(http://www.go-bubble.com/index.html)> 에는 재미있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는 주인공이 드럼세탁기 모양의 타임머신을 타고 일본의 버블경제 시절인 1990년으로 돌아가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여기에 이이지마 아이가 카메오로 깜짝 출연한다. AV 배우 이전 한창 풍속업소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데 극중에서 이이지마를 만난 주인공이 "언니 나중에 책쓰면 대박나요! 꼭 책쓰세요" 라며 예언 아닌 예언을 해준다. 그녀의 회고록 <플라토닉 섹스>가 히트하게 되는 것을 언급하는 것이다. 영화상에서 이런 개그가 가능할 정도로 이이지마 아이의 인지도는 높다. 런던하츠 같이 자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방송 부터 일본 최고의 남자 그룹인 SMAP 멤버들이 진행하는 쇼프로 킨스마의 고정 게스트까지, 현재 드라마 단역 혹은 심야드라마나 전전하는 아오이 소라, 니시노 쇼가와는 규모가 다른 성공을 예능계에서 거두었다.


가토 타카의 코멘트



그러나 이런 성공 뒤에는 철저하게 자신의 과거를 터부시한 그녀의 태도가 있다. 그녀는 자신이 AV 퀸이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거부 했다. 2000년대 들어 90년대 출연작들이 DVD 복각판으로 나온다고 하자 소송을 제기했다는 루머도 있었을 정도다. 그런 그녀의 태도에 대해서 골드핑거 가토 타카는 "자신을 키워준 AV계를 배신하고 거짓말로 가득한 책(회고록 플라토닉 섹스)을 통해 AV계를 비하한 배은망덕한 여자"라고 이이지마 아이를 평한 바 있다.


우울했던 여자


성공적인 인생 전환에도 불구하고 이이지마 아이는 그다지 행복했던 것 같지 않다. 그녀는 건강을 문제로 2007년초 방송을 모두 정리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이 후 블로그에 등장한 말로 "이번에도 키우던 화분이 죽는다면 더 이상 화분을 키우지 않을 거다. 나는 결혼하지 않을 거다. 엄마가 될 자격이 없다. 화분 하나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내가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같은 자학성 발언을 여러차례 남겨 팬들의 우려를 얻었다. 가슴과 얼굴 성형 사실도 먼저 자신있게 커밍아웃한 당당하고 화끈한 양키(양아치라는 원뜻이지만 약간 장난스러운 의미로 그녀에겐 붙은 수식어)언니라는 이미지와 다른 모습을 종종 보여줘 여러사람을 뜨악하게 했었다.


죽음


2008년 12월 24일, 이이지마 아이의 사망이 확인되었다. 소식이 없어 집을 방문한 지인이 경비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가 처음 그녀를 발견했다고 한다. 의자에 앉아있다 그대로 앞으로 엎드린 상태로 있었다는 그녀의 사인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제일 먼저 자살이 지목되었고 확정되지 않은 사실로 이이지마 아이 자살 이라는 추측성 기사가 몇몇 나가기도 했다. 경찰은 사인을 알기 위해 2번의 부검을 실시했고 공식적으로 "폐렴에 의한 쇠약으로 인해 사망했고 사망한지 약 1주일 정도 지났다" 라고 발표했다. 이이지마 아이의 죽음은 고독사(孤獨死)였다.


이후


우리가 장자연 사건을 두고 "그냥 그랬다더라" 고 믿지 않듯이 일본인들도 이 일을 액면 그대로 믿지는 않는다. 유명인의 자살이 어떤 사회적 현상을 일으키는지 우리는 작년말부터 올해까지 주욱 경험해봤다. 모방자살의 유행 등을 우려해 일본 언론에선 자율규제라는 묘한 불문율 비슷한게 있는데 유명인의 자살사건은 사인을 자연사나 사고사로 바꿔 보도하는 것이다. 이런 음모론 비슷한 이야기를 믿는 이들은 그녀의 블로그에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외로움, 우울함에 대한 호소와 몇가지 정황증거를 내세워 그녀가 자살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제 다시 못볼 엉덩이


그녀의 사망은 AV 배우의 사망이 아닌 예능인(연예인) 의 사망으로 다루어졌다. 그녀가 고정출연했던 킨스마에서는 300회 특집을 그녀의 추모방송으로 꾸몄고 나카이 마사히로는 방송중에 그녀를 언급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 정도면 이이지마도 저편에서 그랜드 피날레라고 생각할 것이다.


김용의 변명


지나가는 얘기지만 <영웅문> 으로 유명한 김용은 절필한 이후 일체의 언론과의 접촉을 꺼리고 있다. 한때 그를 무협소설의 대부로 부르는 기획기사를 준비중인 대만의 언론사가 계속해서 접촉해오자 이렇게 코멘트한 적이 있다.


"가난한 여대생이 학비를 벌기위해 호스티스로 일한 적이 있다고 치자. 그 시절 얘기를 자꾸 물어보면 좋아할 것 같은가?"


무협의 아버지라는 김용이 스스로 대중문화 컨텐츠의 제작자였다는 사실 자체를 스스로 저렇게 못마땅하게 생각한다는데 성인문화 컨텐츠 제작자였던 이이지마 아이가 AV시절을 끊임없이 부정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참고로 자신의 호스티스 시절을 부끄러워 하는 김용 선생은 이미 십수년 전에 절필하시고 뉴질랜드 어딘가로 이민을 간 뒤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기고 계신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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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용무쌍(dbscnddyd@naver.com)
딴지 본좌 오딧세이 편찬위원회(woolala74@gmail.com)


운영수뇌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