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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순환막장의 고리


서너 명이 모여서 하는 어떤 게임이 있어. 그런데 이 게임의 룰이 어찌된 일인지 무지하게 편파적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맨날 1등 하는 넘은 1등만 하게 되어 있고, 2등 하는 넘은 2등만 하게 되어 있어. 3, 4등 하는 넘들은 죽어라 발버둥을 쳐도 맨날 3, 4등이야. 그러다보니 3, 4등 이하는 맨날 순위가 엎치락 뒤치락하고 선수도 맨날 바뀌지. 어차피 못 이기니까 포기하는 경우도 많고.


그런데 더 웃기는 것은 이렇게 지독하게 편파적인 룰을 바꾸려면 일단 게임에 이겨야 돼. 그것도 겨우겨우 1등 먹는 건 안 되고 왕창 이겨서 판쓸이를 해야 겨우 바꿀 수 있을까 말까야.


누구나 다 알아. 게임의 룰이 이렇게 편파적이라는 거. 그 룰을 고치기 위한 전제조건이 게임에 이겨야 한다는 것이라는 사실도 다들 알아. 이런 개 같은 무한순환막장의 고리가 있다는 걸 누구나 아는데 아무도 그 고리를 끊으려고 나서질 않아. 세상이 원래 이런데 어쩌겠냐고 체념을 하고 무시를 해. 그러면서도 매 4년마다 돌아오는 게임에는 또 누구나 참여를 하려고 안달을 하고 있어.


이게 바로 우리 사회를 움직일 권력을 놓고 싸워 분배해 가지게 되어 있는, 4년마다 한 번 돌아오는 총선판이야. 이 총선이라는 게임이 벌어지는 판의 규칙, 게임의 룰이 바로 선거법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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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의 효력


우리나라 선거법, 특히 국회의원 선거법이 가지는 가장 큰 문제가 뭘까? 소선거구제? 비례대표제의 부족?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채택하지 못한다는 점? 권역별 비례대표?


그런 건 다 지엽말단적인 주제에 불과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나라의 국회의원선거제도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있다라는 점이야.


아니, 보통, 평등, 비밀, 직접 투표의 원칙이 지켜지고 4년마다 한번씩 모든 유권자에게 표를 행사할 권리가 주어지는데 무슨 민주주의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불평을 하냐고 묻지는 말았으면 좋겠어. 문제는 그렇게 4대 원칙이 지켜지는 투표를 한 다음에 그 한 표가 다루어지는 방식의 문제니까 말야.


한 표라고 다 같은 한 표가 아니야. 그 표가 가진 효력이 똑같아야 한다는 점, 바로 이게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잖아. 즉 다시 말하자면, 어떤 정치세력이 총선에서 득표한 표의 비율과 그 정치세력이 결과적으로 얻게 되는 권력의 비율이 일치해야 하는 거라고.


총선은 의회를 구성하는 거니까 특정 정치세력이 받게 되는 권력의 지분은 바로 '의석점유율'로 나타나겠지. 그러니까 더 현실적으로 표현하자면, 어떤 정당이 총선에서 득표한 비율과 그 정당이 총선 결과로 얻게 되는 의석수의 비율이 일치해야 한다는 거지.


대선은 좀 달라. 어차피 대통령은 한 자리니까 권력 비율 같은 게 없어. 그냥 1등만 먹으면 우리 사회의 행정권력을 100% 가지게 되어 있거든. 하지만 국회를 구성하는 총선은 그 비율이라는 것이 존재해. 존재할뿐더러 매우 중요해. 국회의 권력은 대단하다고.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고 삼권분립을 유지하는 한, 국회는 이 국가의 모든 권력을 다 가진 거나 마찬가지야. 입법권이라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거든.


그런 강력한 국회의 권한은 정당간 의석 점유율에 의해 나뉘기 마련이고, 그게 바로 권력의 비율이라고 할 수 있지. 그 권력의 비율을 총선에서 나타난 유권자들의 투표 비율과 일치시켜야 한다는 것은 민주공화국의 기본 중에서도 기본에 해당하는 일이라고. 맞잖아.


그런데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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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의석은 127+25 해서 152석이었어. 민주통합당은 106+21 해서 127석이었어. 이걸 전체 의석수 300석으로 나누어볼까?


새누리당의 의석점유율은 50.6%, 민주통합당의 의석점유율은 42.3%야.


새누리당의 지역구 득표율은 43.3%, 민주통합당의 지역구 득표율은 37.9%.


새누리당의 정당득표율은 42.8%, 민주통합당의 정당득표율은 36.45%.


아무리 숫자에 약해도 딱 보일 거야. 42~43% 정도 득표한 새누리당이 왜 의석을 50.6% 를 가지고 있지? 유권자들은 새누리당에게 40% 조금 넘는 투표를 했어. 그런데 도대체 왜 의석은 50%를 넘게 가지고 있냐고. 의석이 50%가 넘는다는 거, 과반의석이라는 거, 이게 얼마나 엄청난 권력인데, 우리나라 유권자들은 절대 새누리당에게 50% 이상의 투표를 하지 않았는데, 왜 새누리당은 과반의석,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는 거지?


이게 민주공화국이야? 이게 민주주의 국가야?


이건 새누리당이냐, 민주통합당이냐, 하는 정파적인 문제가 아니야. 어떻게 국민들이, 유권자들이 과반지지를 하지 않은 정당이 과반 의석을 가지냐는 질문이야.


이거에 대해 집권세력들은 전통적으로 뭐라고 변명을 했는지 알아? 이승만 때부터,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부터 그랬어. 집권당의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제1당에게 과반의석을 줘야 한다...


그래서 40% 지지밖에 못 받는 집권여당이 과반의석을 가져가냐? 그게 무슨 양아치 논리야?


자신들이 얻은 득표율에 정확하게 비례하는 권력, 즉 의석수를 가져가야 한다, 라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못 지키는 나라가 우리나라야.




다른 나라들은?


무지하게 복잡한 문제이긴 하지만 어지간한 선진국들의 선거제도는 적어도 이 목표를 향해 변화해 나가고 있어. 득표율과 의석점유율을 맞춰야 한다는 것.


각 나라의 선거제도는 천차만별이지만, 그 최종 목적은 동일해. 그렇기 때문에 유권자의 지지율이 의석점유율에 정비례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는 쪽으로 발전해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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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표 출처 - 경향신문


사실 우리나라도 그 방향으로 발전은 해왔어. 박정희 유신정권 때 있었던 유정회, 득표는커녕 대통령이 임명하는 유정회 회원들이 그냥 의석을 점유하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진짜 양반이지. 전두환 때도 마찬가지야. 그냥 제1당 되면 전국구를 왕창 받았다고. 그래서 당연 과반수가 되는 거지. 군부독재가 의회를 어떻게 지배를 했겠어. 이런 양아치 같은 선거제도를 이용해서 장악한 거지.


그렇게 고치고 고친 게 87년 헌법이야. 큰 틀에서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아. 하지만 나아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흔한 말로 다른 OECD 가입국들의 수준에 비하면 아직도 개판인 거야. 이게 제일 큰 문제라고.


새누리당을 지지하건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건 안철수신당을 지지하건 모두 상관없어. 각자가 지지하는 정당이 얻은 지지율, 즉 득표율만큼 의석수를 배정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모두 동의해야 되는 거 아닌가?


이건 정파적인 문제가 절대 아니야. 만약 우리나라에 아돌프 히틀러와 똑같은 안돌평 선생이 나타나서 정당을 만들었다고 치자. 그 정당에 55%의 지지가 쏟아진다면 55%의 의석, 즉 165석을 얻는 게 정상이지. 어쩔 수 없잖아. 유권자들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게 민주주의 국가잖아. 김구 선생이 살아 돌아오셔서 창당을 해도 득표율이 10%라면 300석의 10%인 30석을 받는 게 정상이잖아. 그게 민주주의 국가거든.


우리 선거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거야. 득표율과 의석점유율이 괴리가 생기고 있다는 거. 그것도 꽤 큰 폭으로 괴리가 생기고 1, 2등은 이득을 보고 3등 이하는 손해를 본다는 거. 다른 모든 제도의 문제나 지역구 분할의 문제나 비례대표제도의 문제나 이런 것은 모두가 다 이 원칙을 지키고 나서 생각해 봐야 하는 부수적이고 지엽적인 문제들이라고.


그러니까 선거법 개정의 목표는 언제나 이 원칙, '득표율=의석점유율'이 되게 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손쉬운 방법을 찾아서 장착해야 한다는 걸로 귀결되는 거지.


이 전제를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자, 민주공화국을 부정하는 자가 아닐까?




선거법 개정


현재 국회는 직무유기 중이야. 2014년에 이미 지금의 선거법은 위헌판정을 받았어. 헌재는 현행 선거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이 부분을 2015년 12월 31일까지 수정하라고 결정을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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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오늘이 며칠이지? 2016년이야. 기한을 넘겼어. 마감을 안 지켰어. 이러면 짤려야 되는 건데, 국회라서 안 짤려. 이 철밥통들. 마치 맨날 마감을 어기면서도 절대 딴지 필진에서 안 짤리는 마사오 같은 존재들이라고.


이 때 문제가 되었던 것 역시 앞에서 핏대 세우며 떠들었던 한 표의 효력 문제와 비슷한 문제였어. 모든 지역구가 한 사람의 국회의원을 뽑게 되어 있는데, 지역구별 유권자의 수 차이가 너무 심하다는 거였지. 맞는 말이야.


어떤 지역구는 유권자 십만 명에 의석 하나, 어떤 지역구는 유권자 삼십만 명에 의석 하나면 이것도 불평등하잖아. 한 20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우리 사회의 지역구 유권자 수, 최소 지역과 최대 지역의 비율이 4:1을 막 넘어갔어. 한 표의 가치가 네 배 차이가 났었다니까.


1995년에 선관위는 지역구별 유권자 숫자의 최대 최소 비율을 4:1 이하로 맞추라고 판결을 했었어. 그 뒤에 2001년에는 그걸 3:1까지 맞추라고 했어. 그리고 2014년이 되어서 이제는 2:1로 맞추라고 판결을 한 거야. 이게 최소한 1.1:1이나 1.2:1 정도는 되어야, 아 이제 좀 민주주의 국가 답군, 이럴 수 있는 거 아닐까?


물론 이렇게 맞추기가 무척 힘들어. 왜냐면 의원들은 지역 대표성이라는 것도 있어야 되거든. 그런데 인구비율로만 맞추면 서울은 구별로 서너 명씩 의원이 필요해지고, 시골에 가면 대여섯 개 군을 모아야 의원 하나 있게 되거든. 단순 지역구에 기반한 소선거구제 가지고는 이 비율을 맞추는 게 원칙적으로 어렵지.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인구가 적은 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권력의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그게 원칙이잖아.


그럼 어떻게 고쳐야 할까? 대원칙은 표의 등가성 원리야. 한 표의 효력을 동등하게 만드는 쪽. 여기에는 당연하게도 득표율과 의석점유율을 맞추는 쪽이라는 큰 방향이 포함되어 있는 거지. 그리고 디테일은 지역구별 인구편차의 감소야. 헌재의 요구사항이거든.


그런데 지금 선거법 개정 작업에서 나온 안들은 이 원칙을 지키는 안이 없어. 아니 있긴 했지.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여러 차례 수정 제안을 하긴 했어. 그러나 테이블에도 못 앉잖아. 원내교섭단체가 아니니까.


3등 4등 하는 선수들이 게임의 룰을 공정하게 바꾸자고 요구하고 있는 꼴이야. 그런데 언제나 1등 2등 하는 선수들은 이 룰을 그렇게 바꾸고 싶지 않은 거야. 아까 숫자 보여줬잖아. 새누리당만큼이나 민주당도 이득을 보는 룰이라니까. 이렇게 만들어 놓고 우리는 양당제를 택한 나라라고 자랑하거든. 하지만 사실은 1, 2등 하는 선수들이 3, 4등 하는 선수들의 몫을 강도처럼 강탈해 가고 있는 시스템이지. 양당제는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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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보니 나오는 안은 그저 유권자 수가 지나치게 많은 지역구를 쪼개자는 방안이야. 그러면 당연히 2:1 비율은 맞출 수 있겠지. 그러려면, 지역구가 늘어나야 된다고. 그런데 소선거구제 하의 지역구라는 개념은 득표율과 의석점유율을 맞추는 데에는 역행되는 경향이 있거든. 그걸 다시 바로 잡기 위해 비례대표제가 있는 건데, 전체 의석수를 고정시켜 놓고 지역구를 늘리면 비례대표가 줄잖아. 따라서 지역구를 쪼개는 방법을 쓰려면 비례대표도 같이 늘려서 전체 의석수를 많이 늘려야 맞는 거라고.


그런데 전체 의석수는 무서워서 못 늘려. 사람들이 싫어하거든. 그러니까 그냥 비례대표를 줄이자는 거야. 득표율과 의석점유율의 격차를 더 벌리게 되는 셈이지. 지금 새누리당이 밀고 있는 방안이 이런 거야. 거꾸로 가는 개정이라고. 그걸 청와대 핑계 대면서 단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미는 중이야. 거기다 대고 더불어민주당은 선거 참가 연령을 낮추자는 둥, 본질과는 관계없는 흥정거리를 제안하고 있는 중이고. 답답한 노릇이지. 


어쨌든 핵심은 1, 2등은 이 문제를 바로잡을 생각이 없다, 라는 결론뿐이지.




어디를 끊어야 하는가?


이렇게 불공정한 게임의 룰을 1, 2등이 고치기 싫어하는 상황, 그런데 선거법을 고치려면 1, 2등의 힘이 필요한 상황,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상황,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하는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될까? 방법이 없잖아. 방법이.


도대체 이런 문제를 똑같이 겪었을 서구 유럽의 나라들은 어떻게 방법을 찾은 걸까? 그들은 뭔가 마법적인 방법을 썼을까? 아니면 진심으로 원해서 우주가 도와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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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그런 거 없다'야. 마법도 우주의 도움도 없어. 방법은 단 하나야. 공정한 게임의 룰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선거법의 디테일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의 머릿수가 늘어나면 된다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파와 상관없이 게임의 룰은 공정해야 된다고 믿는 합리적인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면 당연히 언론은 이 문제를 보도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고, 새누리당도 그런 반대로 가는 개정안을 내밀 엄두를 못 낼 거고 청와대도 개똥고집 안 부릴 거고 민주당도 눈치만 보는 게 아니라 실력 행사에 나설 거고, 소수당들은 더 열심히 소리 높여 외칠 거고...


결국 하나마나한 소리지만 모든 것은 다 우리 유권자들 탓이야. 우리가 무관심하고 게을러서 그런 거야. 답답하고 분통이 터지지만 그게 답이야. 


우리나라 인구에 비례해서 의석수 늘려야 되고, 득표율에 맞게 의석 배분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 와중에 의원들의 지역대표성도 확보해야 되고, 한 표의 가치는 전국 어디에서나 똑같아야 하는 그런 선거제도는 이미 수두룩하게 개발되어 있어. 그 중에 뭘 택할지만 잘 골라서 적용하면 지금보다도 한결 더 공정한 선거제도를 도입할 수 있게 된다고.


40%의 득표를 하면 40%의 의석을 가지는 상황. 10%의 득표를 하면 10%의 의석을 가지는 상황이 오면 그래도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한 걸음 더 발전했다고 할 수 있겠지. 그런데 그걸 이루기가 이렇게 힘든 걸까? 진짜 미치고 환장하겠다.


끝.







[편집자의 뱀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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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물뚝심송이 신간 <어쩌다 한국은>을 발간했다고 한다.


본 기사에서 다루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순과 병폐를

구석구석 요목조목 알뜰히 살뜰히 살펴보고 있다고.


관심있으신 분들께서 작은 정성(?)을 보여 주신다면

조금 더 따듯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맘에서

오지랖을 발휘해 책 소개를 끝으로 글을 마친다. 


이상.








물뚝심송

트위터 : @murutukus


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