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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람되다'는 말은 자신보다 높은 사람에게 반대의 의견을 내놓아야 할 때 쓰는 표현이다. 실생활에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은 아니나 공식적인 석상에서 나에게 해코지라도 할 수 있는 속 좁은 인사에게 귀에 거슬리는 말을 내놓아야 할 때나 직설적인 반박으로 내 말 품새가 훗날 꼬리라도 잡힐까 싶을 때 안전장치로 쓰기도 한다.

 

오랜 삶을 살아오며 쌓아온 인간에 대한 이해와 말이 남기는 은원(恩怨)을 알고 있는 어른이라면 가끔 이런 화술을 펼치는 걸 볼 수 있다.

 

지난 8월 12일 광복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영관 선생이 박근혜 대통령과의 오찬장에서 '외람된 말씀입니다만'으로 입을 띈 후 건국절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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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하자는 세력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틈나는 대로 박근혜 대통령은 의도적인 임시정부의 적통을 무시하는 발언을 일삼아 왔기에 이날 애국지사를 모신 자리에서의 날 선 비판은 예상할 수도 있는 일이었으나 자신 앞에 고개를 조아리며 권력을 탐하는 노인들에 익숙했던 박근혜 대통령이기에 그에 대한 답변은 궁색하다 못해 뜬금없기까지 했다.

 

김영관 선생은 굳이 '외람되오나'라는 표현을 쓰지 않아도 될 분이었다. 암울하던 일제강점기를 끝내고 현재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장본인 아닌가? 인간의 가치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경한 일이라 욕먹을 각오로 대한민국의 존재에 무게를 둔다면 인간 김영관의 무게가 인간 박근혜의 무게보다 가벼울 수 없는 것이니까.


하지만 발언 중 외람되다는 말은 듣는 이가 송구스러울 정도로 반복되었다.


듣다 보니 '아! 이 어르신은 국가수반이라는 인간의 좁은 속내와 졸렬한 인품을 감안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귀에 거슬리지 않게 잘 타이르고 바로 잡아주려는 노인의 인품이 은은히 드러나는 '말씀'이었다.

 

친일세력들이 벌여온 역사의 단절 시도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 사회의 의인들에 의해 그 흉계가 목표하던 바를 다 이루지 못하곤 했다.


이번 건국절 논란의 주인공, 뉴라이트에 의해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승만 정권 시절 서슬 퍼런 감시와 압박에도 리영희 선생은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번 노임을 상해임시정부에 보내주던 하와이의 대한독립협회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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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의 밀알이 되었던 대한독립협회는 이승만 정권에 의해 불온반한단체로 낙인 찍혀 대한민국으로의 입국도 거부된 상태로 고립된 형국이었으니 하와이 교민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온 리영희라는 30대의 젊은 기자가 얼마나 고마웠을까? 거기서 리영희 선생은 좌경용공술로 교민 사회에 분란을 일으키며 자신의 권력욕만을 좇던 이승만의 실체를 확인한다.


짧은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그에게 한 노인은 버스를 타고 가라고 1달러짜리 지폐를 건네고 리영희 선생은 돌아오는 길에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고 한다.


김영관 선생이, 하와이의 한 노인이 또 리영희 선생이 우리에게 전해준 역사의 진실, 오랜 시간 위태로웠던 대한민국의 정신을 지켜온 큰 어른들이 계셨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그러나 황토 몇 줌으로는 조류가 창궐한 바다를 정화할 수는 없는 것인지 최근 '노욕(老慾)'이란 말을 자주 듣게 된다.


늙은이가 부리는 욕심이라 말인데,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은 노욕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신 놓은 어른들의 추태가 요란하다.


전경련으로부터 불법적인 자금지원을 받아 검찰 수사 중인 어버이연합이 활동을 재개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 활동의 시작은 공교롭게도 박 대통령이 지난 8월 12일에 건국절 역사 왜곡 비판 발언을 했던 김영관 선생께 뜬금없이 답했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THAAD)도입 필요성'에 대한 정부 지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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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 나서는 노인들뿐이랴, 이명박 정권에서 기획재정부장관을 지낸 강만수는 한국산업은행장 시절 지위를 남용하여 대우조선해양을 압박해 자신이 지정한 업체에 일감 몰아주기와 투자를 강요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중 주인공은 과거의 혁명 이전을 기억하는 노인을 만나 디스토피아의 계기가 된 혁명 이전의 삶을 묻는다.


혁명을 통해 공고한 권력을 획득한 일당 체계의 집권세력이 주장하는 것은 혁명 이전이 지금보다 훨씬 더 살기 어려웠으며 자신들이 지금의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료에게 빌려주기 싫어 면도날 하나도 숨겨두고 써야 할 만큼 궁색한 시대를 사는 주인공은 의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질문은 간단했다. 


"노인장 그때는 어땠나요? 혹시 지금보다 살기 좋지 않았던가요?"

 

하지만 노인은 중언부언하다가 결국 그 간단한 대답마저 하지 못하고 주인공은 더 이상 답을 독촉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그 당시를 기억하고 있는 노인에게 사실을 확인하고자 걸었던 희망을 내려놓으며 이렇게 한탄한다.


"노인들은 큰 것은 못 보고 작은 것만 볼 줄 아는 개미와 같았다."

 

'1984' 중 주인공의 이 독백은 제 앞가림에 급급해 후세를 위해 남겨야 할 진실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살아온 전 세대에게 던지는 가장 날카로운 추궁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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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욕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이번 건국절 논란을 무관심하게 넘기고 만다면, 92세의 애국지사가 노구를 이끌고 최대권력자에게 맞서야만 하는 이 송구스러운 시국을 눈감고 넘긴다면 소설 속 1984의 디스토피아는 우리가 후대에 물려줄 세상이 될지 모를 일이다.





워크홀릭

트위터 : @CEOJeonghoonLee


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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