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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를 이어가다보니 어느덧 기원전 208년, 이세황제 2년이다. 기원전 209년에서 208년으로 넘어가던 1년여는 중국 역사에서 격동의 밀도가 가장 높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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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공(沛公) 유방. 패현의 군주. 아시다시피 패현의 현령은 이미 죽었다. 그러나 사수군 태수는 휘하 현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동안 몸을 피해 달아난 채였다. 진승과 오광의 야심이 허무하게 스러지자 목숨을 구한 관료와 제국군이 각지에서 몸을 드러냈다. 현지인에게 넘어간 사수군을 다시 접수하려 나타난 이는 사수군수(사수군 태수)가 아니라 사수군감(監)이었다.


지난 글에 진의 천하통일과 군현제로 대변되는 중앙집권제를 이야기했었다. 군수와 현령은 원칙적으로 황제권의 대리자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교통/통신의 속도가 빠르지 않다. 핫라인도 없고 전산화도 되어 있지 않다. 물론 ‘서류화’라는 강력한 문명적 장치가 존재한다. 그래도 당시의 기술적 한계 탓에 중앙집권의 이상과 현실엔 상당한 간극이 있었다.


중앙의 관점에서 군대를 지휘하는 사령관과 원주민을 다스리는 지방 행정관은 곧장 군벌이나 봉건 영주로 ‘타락’할 여지가 있다. 따라서 중앙정부의 편에서 이들을 감시, 평가하고 특이사항을 보고하는 관직이 따로 생겨났다. 호군(護軍)은 군 지휘자를, 군감과 현감은 군현의 행정권자를 관리/감독한다. 사수군감이 사수군에 상주했을지, 조정과 사수군을 오갔을지 정확히 알 방도는 없다. 다만 사수군감이 사수군수(사수군 태수)보다 제국 조정과의 거리가 더 가까웠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진 제국의 네트워크가 부활한 시점에 사수군감이 사수군수보다 먼저 제국 병력을 이끌고 나타난 것은 자연스럽다.


사라진 줄 알았던 제국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유방과 그의 동료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래도 성벽을 단단히 지키고 있던 게 천운이었다. 만약 쓸데없이 현재의 산동성에 쳐들어가 호릉과 방여에 집적댈 때 사수군감이 나타났다고 생각해보라! 패현 주민들은 학살되었을 것이고, 유방의 군대는 천하를 떠돌다가 적수를 만나 소멸되었을 것이다.


이때 유방군과 주민들은 마침 성벽으로 보호받는 풍읍 안에 있었다. 당연히 사수군감은 풍읍을 포위했다. 유방과 부하들은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악착같이 성을 지켰다. 다행히 사수군감이 변두리에서 집결시킨 제국의 병력은 대단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는 더 많은 준비를 했어야 했다. 준비가 되자마자 쳐들어온 것은 이해가 간다. 제국의 일원이었던 그에게 패현은 제국이 마련해준 ‘직장’이다. 그러나 주민들에게 패현은 고향이자 삶의 터전이었다. 사수군감은 농민에게 땅이 어떤 의미인지 뼈저리게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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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수군감은 이틀이 지나도록 얼어붙은 성을 공략하지 못했다. 성안의 여론은 어땠을까? 난리통에 빠졌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우리는 가장 상식적이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패현의 수뇌부가 고민했을 가능성을 들여다보기로 하자. 이대로 아무런 희생 없이 쭉 성벽을 지키고 있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1) 포위가 계속되면 외부세계와 단절된다. 당연하게도 성 밖은 성내를 부양한다. 농토는 성 밖에 있다. 천년만년 웅크리고 있을 수는 없다.


2) 추가로 제국 병력이 나타나 포위군이 늘어나면? 이게 문제다. 당장 지원군이 나타날 가능성은 적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가능성은 높아진다.


3) 미리 싹을 밟아야 한다. 성 안에서는 사수군감과 그의 병력을 ‘물릴’ 수는 있어도 없앨 수는 없다. 평지에서 결전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이틀 동안 성루에서 사수군감의 병력을 관찰하던 유방은 전격적인 결단을 내린다.


<성 밖에 나가 운명적 전투를 치른다.>


평생 술이나 얻어먹던 중늙은이가 난세의 호걸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유방은 비장의 각오로, (아마도 기습적으로) 성 밖에 전 병력을 몰고 나가 결전을 치렀다. 이 시점에서 패현 같은 변두리에 결집해줄 ‘진 제국 자원병력’따위는 없다. 비록 도망치고 숨어있던 패잔병일지라도 엄연히 정규군이다. 싸우는 것까진 좋은데, 이길 방도가 있기는 한가.


있었다.


항량이 항우 한 사람의 무공으로 회계군을 접수한 일을 떠올려 보자. 패현에는 훗날 힘이 항우와 필적했다는 평가를 받은 번쾌가 있다. 사마천은 <고조본기>에서 패공이 사수군감을 무찔렀다고 기록한다. <번역등관열전>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번쾌가 격파(부딪혀 깨뜨림)했다고 한다. 즉 유방은 지휘관으로서 그의 병력이 적을 궤주시키는 것을 ‘보았다’. 무명의 개백정 번쾌야말로 맨 앞에서 적군의 전열을 무너뜨리고 판세를 결정짓는 원맨쇼를 펼쳤다.


패공군이 이룬 최초의 승리였다. 이들은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명분, 바로 ‘생명과 재산’을 위해 싸웠다. 답 없는 술꾼과 농군의 자식들은 첫 승전이라는 값진 경험을 얻었다. 여기서 유방은 대담하고도 훌륭한 판단을 한다. 설 땅, 즉 현재의 산동성에 숨어 기회를 기다리고 있던 사수군 태수를 먼저 찾아가는 것이다. 유방은 패해서 달아난 사수군감과 그의 병사들을 추격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쨌거나 중앙 정부 소속이다. 반면 사수군수와 그의 주변은 권력과 생활의 기반이 사수군에 있다. 이들의 ‘수복’을 저지해야 한다.


유방은 성격이 제멋대로고 게을러서 그렇지, 필요할 때는-사실을 말하자면 필요할 때만- 두뇌회전이 비상한 인물이다. 거기다 상상력이 풍부해서 엉뚱한 짓을 벌이는 데에는 상습범이었다. 워낙 밑도 끝도 없어서 이게 진심인지 장난인지도 모르겠는 인간이 유방이다. 그런 그는 병법의 ‘병’자도 배우지 못했지만, 위기를 맞이하자 병법의 기본을 본능적으로 잡아챘다. 그는 승전 잔치를 벌이지 않았다. 옹치(지난 편들을 충분히 숙지했다면 이 인물을 모르지는 않을 터! 본 시리즈는 반복된 복습을 지향하노니!)에게 풍읍의 수비를 맡기고 사수군 태수가 반격을 준비를 하고 있는 설 땅, 즉 현재의 산동성으로 행군을 시작했다.


<적이 모이기 전에 각개 격파한다.>
<적이 몸집을 불리기 전에 먼저 도전한다.>
<즉, 전쟁은 속도다.>


그러므로,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한다.>


고향 마을의 운명이 자신의 어깨에 놓이자, 이 건달의 산만한 눈동자가 초점을 맞췄다고 해야 할까? 패공 유방은 사수군 태수를 향해 그야말로 ‘직선으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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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관 출신의 사마천이 <사기>를 집필하면서 전투의 진행에 소홀했던 것은 무척 아쉽다. 그러나 우리는 전투의 경과를 한 번 추적해보자. 일단 사마천은 <고조본기>에서는 단 두 문장으로 유방의 선제적 원정을 설명한다.


“사수군 태수 장(壯)이 설에서 유방과의 전투에서 패하고 척읍(戚邑)으로 달아났다.”
“패공의 좌사마(左司馬) 조무상(曹無傷)이 사수군 태수를 붙잡아 죽였다.”


(※ 스포일러를 조금 풀자면, 저 조무상이라는 인물은 후에 잘못된 베팅을 한다.)


사수군수는 높은 확률로 준비 없이 유방의 공격을 받았던 것 같다. 여기서도 번쾌의 괴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마천은 번쾌의 공이라고 분명히 기록한다. 번쾌만큼 중요한 것이 유방의 판단력이다.


<위험요소를 제거할 수 있을 때, 집요하고 확실하게 들어낸다.>


이 얘기를 해 보자.


자, 싸움에서 이겼다. 좋다. 문제는 이 시기, 사수군수가 피난처이자 거점으로 ‘호릉’을 선택해 틀어박혀 있었다는데 있다. 호릉이 어떤 곳인가? 유방이 아무 이유 없이 첫 원정을 나서 정복해보겠다고 큰소리치다가 삽질만 하고 돌아간 곳이 아닌가! 패배한 사수군수는 호릉의 성벽 안으로 잽싸게 몸을 숨겼다. 다행히도, 유방은 호릉을 공격했다가는 피만 잔뜩 흘리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 수밖에 없었다.


유방은 호릉 공격을 포기하고 특유의 능청을 발휘한다. 사수군감의 비서였던 소하를 하후영이 운전하는 전차에 실어 보낸 것이다. 검술 솜씨가 좋은 하후영은 소하의 보디가드로도 적당한데다, 여차하면 특유의 전차 운전 실력으로 소하를 싣고 탈출할 수도 있었다. 사수군수는 오랜 시간 직장동료였던 소하를 보고 감개무량했으리라. 부드러운 성격의 소하는 항복을 권유했다. 한 번 싸움에 진 군수는 두 번째 싸움, 즉 호릉 방어전에서도 패배할 거라고 생각했다(정말 그럴 거였으면 소하가 오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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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릉


소하는 옛 상관을 타이르는 데 성공했다. 안전보장을 받은 사수군수는 애써 점유한 호릉을 유방에게 고이 바쳤다. 덕분에 유방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호릉을 차지했다. 군수는 갈 길을 떠났다. 진나라 본토와의 거리가 멀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필시 가까운 진나라군과 합류하려고 했을 것이다. 군수와 그의 병력을 성벽 밖으로 끄집어낸 유방. 이 늙은 주정뱅이가 갑자기 육식동물의 이빨을 드러냈다.


유방은 위험이 도사린 타지에서 군대를 본대와 별동대로 나누는 모험을 감행했다. 별동대를 맡은 조무상은 사수군수를 추적해 깨끗이 죽여 버렸다. 너무나 뻔뻔한 배신행위였다. 그러나 유방의 깡패짓은 그때에도 훗날에도 그의 평판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진승과 오광의 난이 일어난 직후부터 진 제국이라는 시스템은 자연스럽게 민중의 적이 되었다. 유방의 거병도 명분으로는 ‘악의 세력’에 대한 항거였다. 즉 진 제국의 요원은 존중해야 할 협상 상대가 아니었다.


두 가지 분명한 사실이 남는다.


첫째, 유방은 두 번의 승리를 통해 패현 주민들의 생명을 연장했다. 둘째, 이때부터 유방은 패현 출신 부하들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얻어낸다. 그러나 또 한 번 강조하겠다. 우리는 유방이라는 인간에 대해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된다. 고향 사람들의 구세주로 등극한 유방은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의 바보로 돌아왔다.


지난 기사를 읽은 독자들이라면 유방이 별다른 이유 없이 호릉(胡陵)과 방여(方輿)를 공격했다가 돌아온 전사를 알 것이다. 승리뿐 아니라 호릉까지 챙겨 자신감이 오를 대로 오른 유방은 이번엔 ‘정복’이라는 꿀물을 빨아보겠다며 다시 방여에 쳐들어갔다. 


방여의 수비 인력들은 저 인간 또 왔나 싶었을 것이다. 무작정 쳐들어가면 성벽 등의 수비시설에 막혀 희생을 치를 것이다. 그러므로 유방은 적군이 튀어나와주길 기다리면서 방여를 쳐다만 본다. 반대로 방여의 주민들은 굳이 밖으로 나가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으므로 시나브로 유방을 구경한다. 평소의 오합지졸로 돌아온 유방과 그의 군사들은 방여의 입구에서 아무 계획도 없이 꿈지럭대는 삽질을 벌였다. 사마천은 시니컬하게 한 문장으로 갈음한다.


“한 번의 싸움도 일어나지 않았다.”


패현의 남자들은 미쳐 돌아가는 난세에서 쓸데없는 정복자 놀이로 귀한 시간을 낭비한 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지?>
<그러게...?>


결국 본거지인 패현으로 돌아가기로 한 그들은, 이제 곧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그 전에 유방은 한 번 더 바보짓 하는 걸 잊지 않았다. 뭔고 하니,


방여를 제멋대로 자신의 땅으로 선언했다.


인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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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 우리 잠깐만 시야를 돌려보자.


지금의 안휘성 천장현인 ‘동양(東陽)’현. 이곳에는 지금 심각한 곤란에 빠진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진영(陳嬰)’. 진영은 동양현 관아에 소속된 하급관리였다. 위로는 진나라에서 파견된 현령을 모시고 아래로는 현지 주민들의 삶을 보살폈다. 말이 하급관리지, 동양현 사람들에게는 현령 다음 가는 ‘나리’다. 자신들과 같은 현지인인 진영을 진짜 사또로 생각했을 것임은 자명하다. 진영은 유능하고 선량하고 “성실했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의 관료체계에서 웬만큼 일벌레가 아니면 성실하다는 표현을 붙여주지 않는다. 진영은 현지인들의 니즈와 분쟁을 해결해주기 위해 어지간히 노력한 모양이다. 더욱이 ‘신심이 깊었다’고 한다. 책임감이 강했던 것이다. 약속한 민원은 반드시 처리해주었음을 알 수 있다. 진영 덕분에 제국의 엄혹한 통치에서 숨 쉴 여유가 생긴 주민들은 그를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 진영의 생각보다 훨씬 심하게...


그러다가 갑자기 난세가 찾아왔다. 동양현의 젊은 사내들은 다른 숱한 지역과 마찬가지로 관아에 쳐들어가 현령, 즉 진영의 상사를 때려죽여버렸다. 즉흥적인 궐기는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완벽한 대안이 있지 않은가? 우리의 진영 말이다.


문제는 진영이 마음이 따뜻한 행정가라는 사실. 그는 군사적 야심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타입이었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에게 그는 이미 완벽한 군주였다. 반란에 가담한 동양현과 그 주변의 젊은이들은 어느새 수천 명으로 불어났다. 그들은 진영에게 어서 자신들의 지도자가 되어 달라고 간청했다. 진영은 어이를 상실하고 마는데.


<병법? 그게 뭐지? 먹는 건가...?>


그는 거듭 사양했지만, 이미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진영은 강제로 반란군 지도자 되었다. 점입가경이었다. 진영이 사령관이 되었다는 소식이 주변에 퍼지자 장정들이 떼로 몰려들더니 무려 2만 명의 군세가 형성됐다. 젊은이들은 꿰다 놓은 보릿자루인 진영을 이번엔 왕으로 추대해 버렸다.


진영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진영의 소심함은 무능도 나약함도 아니다. 인간에게는 여러 가지 결이 존재한다. 이미 쌓아놓은 명성만으로도 진영이 좋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주민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매진해 온 인생인데, 갑자기 반란군의 지도자라니. 욕망이 꿈틀대는 난세에 이렇게 핀트가 어긋난 케이스도 참 찾아보기 힘들다. 진영의 이야기를 읽노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그래도 아직 진영의 고초는 끝나지 않았다. 장정들은 곤란해 미칠 지경인 진영에 대한 충성심을 이기지 못해 그를 호위하는 결사대까지 조직했다. 이름 하여 ‘창두군(蒼頭軍)’이다.


창두군. 푸른 두건을 쓴 군사라는 뜻이다. 전국칠웅시대, 위나라는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조그만 나라였다. 고대 인도와 그리스의, 도시국가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도 위나라는 오래 버텼다. 위나라가 개발한 ‘약소국 생존법’ 중 하나가 특수부대다. 위나라는 비록 소규모지만 다양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강력한 특수부대를 창설했으니, 그게 바로 창두군이다.


위나라가 멸망한 지 오래인 현 시점에서 창두군은 더 이상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였다.  창두, 푸른 두건이란 요새로 치면 ‘그린베레’ 혹은 베레모로 상징되는 특수부대다. 자신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창두군에 둘러싸인 진영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어머니에게 상담을 요청한다.


<아이고 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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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의 어머니는 아들의 깜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네 가문에 시집오고 나서 아직껏 네 조상 중에 귀하게 된 사람이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이렇게 냉정한 유전자 분석을 끝낸 후,


"오늘날 정신없이 난이 일어나 네가 큰 이름을 얻었으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마도 좋은 징조는 아닌 것 같다."


아들의 능력도 가감 없이 평가한 그녀. 엄마 맞나 싶지만, 현실적인 조언이 이어지는 걸 보면 아들사랑이 부족한 양반은 아니다.


"차라리 남의 밑에 들어가라. 만약 일이 잘 되면(너의 주군이 성공하면) 제후(諸侯)에 봉해질 것이고, 일이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책임의 그의 것이므로 너는 쉽게 몸을 숨길 수 있으니 목숨을 보전할 수 있지 않겠니?"


‘남’이란 바로 항씨 가문이었다. 마침 항씨군은 양자강을 넘은 후 난세의 중심을 향해 서쪽으로 이동하는 참이었다. 진영은 휘하 장수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항씨는 오랫동안 초나라의 명문가였고 제국에 대한 저항의 중심이었다. 기반과 명분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다 강동 땅을 멋지게 평정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귀순해 함께 대의를 위해 움직이는 게 어떻겠는가?”


이 말은 사실 이렇게 들린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자, 받고 레이스. 항씨 가문은 어떠냐!>


이번에는 부하들도 설득당하고 말았다. 마침 항량은 2만 명이나 되는 병력을 순식간에 모은 진영이라는 인물의 간을 보려던 참이었다. 양측은 자연스럽게 만났고, 2만 병력은 즉시 항량 군에 흡수되었다.


혹자는 항씨군의 병력이 16,000명이었다는 점을 들어 진영이 너무 손해를 본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는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진영의 이름만 보고 몰려든 동양현의 병력은 급조된 오합지졸이었다. 반면 항씨군의 주력은 항우와 함께 성장하고 훈련과 시험을 거쳐 선발된 정예였다. 이때 비장 신분이었던 항우의 직속 병사 8,000명은 난세를 통틀어 최소 수십 배(계산해본즉 대략 백 배)의 적을 죽이게 된다. 단일 교전으로 따지면 1인당 7~8명을 상대하곤 했다. 만약 지역 방범대 수준이었던 진영의 군대가 머릿수만 믿고 항씨군에 맞섰다면 먼지처럼 날아갔을 게 뻔하다. 물론 진영은 결코 그런 선택을 할 사람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2만이다. 정예와 함께 하면 상향평준화되게 마련이다. 항량과 항우는 귀한 자원을 무료로 얻었다. 헌데 더 큰 행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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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잠시 시간을 거꾸로 돌려보자.


현재의 안휘성 동북부에 위치한 육읍(六邑)이라는 동네. 진나라가 천하를 평정한 직후쯤이었다. 지나가던 관상가가 어린 남자아이를 보고 말했다.


“이 아이는 나중에 죄를 지어 형벌을 받게 되지만 그 후에 제후나 왕이 될 상이다.”


아이의 이름은 영포(英布). 그는 관상가의 말을 전해 듣고 자랐다. 간신히 어른이 되었을 때(필시 십대), 악명 높은 진나라의 연좌제에 걸리고 말았다. 아마 친지나 동료가 큰 실수를 한 모양이다. 영포는 경형(黥刑)이라는 고약한 벌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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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 경형이다


묵형이라고도 하는 이 벌은 죄인의 얼굴에 문신을 새겨 죄목을 공개함과 동시에 평생 지울 수 없는 수모를 준다. 그런데 경포는 외려 좋아했다. 그는 유쾌하게 웃으며 떠들어댔다.


“관상대로 형벌을 받았으니, 역시 관상대로 제후나 왕이 될 게 아닌가!”


영포는 수치심을 느끼기는커녕 당당하게 문신을 내놓고 다녔다. 사람들은 비웃었다.


“저거 미친 놈 아냐?”


그러면서 영포를 ‘경포(黥布)’라고 부르며 조롱했다. ‘경형을 당한 영포’라는 뜻. 영포는 경포라는 별명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본명 대신 별명으로 스스로를 소개할 정도였다. 그는 생전이나 사후나 본명 대신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리게 된다. 그렇다. 비속어를 쓰기는 싫지만 영포를 설명할 단어는 이것 밖에 없다. 그는 또라이다.


참, 태사공 사마천께서 독자의 감칠맛을 놓치지 않게 <사기>에 경포라고 기술해 놓았으니, 우리도 그분을 따라 경포로 통일하도록 하자(만약 경포가 자신이 당한 처지를 비참하게 여겼다면, 사마천은 그를 본명으로 기술하는 인간적 예의를 잃지 않았을 것이다.).


정확히 따지자면, 경포는 관상가의 예언대로 직접 ‘죄를 지은’ 게 아니라 ‘연좌제에 걸려’ 형을 받았다. 하지만 자기 운명을 자기가 확신하겠다는데 누가 뭐랄 건가. 경포는 제후가 되기 전에 먼저 여산 공사현장 구경을 해야 했다. 그는 여산에 노역으로 끌려온 수십만 장정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절망해야 정상인데, 경포의 긍정 에너지는 비정상이었다.


경포는 천하 각지에서 붙잡혀 온 협객들과 유명인사들을 구경하면서 그들과 사귀는 재미를 만끽했다. 비탄과 중노동에 허덕이는 죄수들은 이마에 문신까지 박힌 주제에 강제노동 현장을 씩씩하게 들쑤시고 다니는 경포에게 매료되었다. 매달릴 희망일 없을 땐 희망을 가진 사람에게 경도되게 마련. 마초 중에 상마초인 경포는 사귄 남자들을 모조리 자신의 부하로 만들었다. 이때가 10대 중반쯤이다. 난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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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는 여산의 노역장에서 생을 마감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부하로 삼은 사내들을 이끌고 탈출을 감행했다. 혼자도 아니고 대규모 인원을 이끌고서! 아마도 진나라 감시병들을 여럿 죽였을 것이다. 경포와 부하들은 관군의 추적을 피해 재빨리 양자강의 지류인 ‘상수’ 일대로 숨어들었다. 수풀이 자욱한 축축한 땅. 강줄기가 어지러이 이어진 곳이다. 도덕심과 정의감과는 백만 광년 떨어진 경포는 거기서 수적(水賊. 민물 해적) 두목이 되었다.


경포는 망탕산에서 술이나 마시던 유방과는 급이 다른 도적 두목이었다. 일단 그는 사람을 해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인간인 만큼 악행을 많이 저질렀을 게 분명하다. 규모도 대단했다. 그의 인생 목표는 하나, 제후나 왕이 되어 떵떵거리고 사는 것. 노골적인만큼 철저히 실리적이었기에 진승과 오광의 난이 일어났을 때 경포는 신속히 움직였다.


그는 ‘오예’를 찾아갔다. 긍정에너지로 따지면 경포에 뒤지지 않을 것 같은 이름의 주인공, 오예는 누구인가? 그는 진나라에서 파견된 현령이었다. 유능하고 성실했던 모양이다. 오예는 제국에 대한 충성보다 현지 주민들의 편의와 이익에 집중했다. 한 가지를 버렸다고 뭐라고 할 수는 없다. 임명권자의 권위 대신 피지배민의 권익을 선택한 것은 그 나름의 신념이고 양심이다. 산간 민족인 백월(白越)족에게까지 존경받았으니 오예의 스킨십이 얼마나 좋았는지 알 수 있다.


(여기서 잠깐: 백월족은 현재의 베트남 민족의 원형인 월족의 일파다. ‘소수민족’이라고 쓰려다가 정신을 차리고 멈췄다. 당시 월족은 단일한 통치체계가 없었을 뿐, 중국 중남부와 현재의 베트남 북부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많은 인구가 퍼져 있었다.)


주민들은 오예를 원래 관직명인 ‘파양현령’이 아니라 ‘파군’으로 부르며 존경했다. 토착 혈통의 군주에게나 어울릴 법한 명칭이다. 현지인들은 그를 외부인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여기까진 좋다. 난세가 열리기 전까진 문제없다. 오예는 장군 출신이 아니다. 현지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정치력과 난세를 해쳐갈 전술적 능력은 별개다. 게다가 주민들은 ‘파군’이 오예의 별칭이 아니라 정식 명칭이 되기를 은근히 바란다. 독립을 하면 어쩔 건가? 또 이미 반은 독립은 한 상태나 마찬가지 아니던가? 이럴 때 경포가 찾아온 것이다.


경포는 산전수전을 다 겪고 싸움에도 도가 튼 남자. 그러나 정치에 있어서는 재능도 경륜도 없다. 무엇보다 오예는 가졌지만 경포에겐 쥐뿔도 없는 ‘도덕적 명성’은 거병에 필수적인 거름이었다. 두 사람이 연합한다면 하나의 세력을 형성할 수 있으리라. 허나 기질도 세대도 다른 두 남자가 무엇으로 얽힌단 말인가? 인척관계를 맺으면 된다. 십대 후반인 경포는 갓 결혼적령기가 된 자신의 어린 나이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렇다. 경포는 ‘사위 면접’을 보러 온 것이다.


사위는 아랫사람이다. 혼인이 성사되면 경포의 악명은 장인의 도덕적 명성에 덮인 모양새가 된다. 평상시라면 문신을 자랑스레 여기는 놈에게 딸을 줄 리 만무한 오예건만, 혼인은 곧바로 성사되었다. 장인-사위가 된 두 사람은 백월족 전사들을 상대로 모병했다. 모병은 대성공이었다. 이 과정에서 아무 문제가 없었던 걸 보면 경포의 수적단은 물기슭, 산기슭에서 산간 부족들과 괜찮은 거래를 했었던 것 같다. 두 사람은 경포의 도적단과 백월족 전사들을 합쳐 수천의 군세를 이뤄 거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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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병을 하긴 했는데, 당장 뭘 어째야 한단 말인가. 이럴 때 근처에서 진영이 항씨 군대에 흡수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었다. 경포도 항씨 가문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독자여러분들도 나와 같으리라 본다. 이런 인물은 소문으로 타인을 판단하지 않는다. 직접 보고 겪은 것만 믿는다. 경포는 일단 항량과 항우를 만나보기로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곧바로 항씨군에 귀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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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싸움 좀 한다고 어디 경포가 접고 들어갈 성격이던가. 기록이 없어 확실히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경포는 협상 과정에서 항우에게 완전히 압도당한 것 같다. 경포는 형식상으로는 항량의 부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항우의 심복이 된다. <초한지>등의 군담소설에서는 상상력을 발휘해 항우와 경포의 만남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한다. 힘이나 담력 대결에서 경포가 패배한 후 항우의 부하가 되는 식이다.


경포는 ‘안면에 문신이 있는 도적 두목’이라는 특징 때문에 현대에 와선 턱수염이 더부룩한 중년의 덩치로 묘사되곤 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우락부락한 남성적인 외모를 높게 쳤다. 사마천은 몸집이 크거나 마초적으로 생긴 인물이 경우 외모 소개를 잊지 않았는데, 경포는 예외다. 경포의 생김새는 우리의 직관적 상상보다 훨씬 샤프했을 것이다. 문신이라는 특이한 브랜드를 자랑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어리고 싱싱한 악당이 경포다. ‘악인’이 아니라 ‘악당’이라고 부르고 싶은 이유는 그의 성품이 악하다기보다는 선악의 경계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에 가깝기 때문이다. 중국의 전통적 마초보다는 현대 소설의 주인공에 가깝다.


또한 이때 포장군(蒲將軍)이라는 인물이 경포와 함께 항씨군에 귀순한다. 포씨 성을 가진 건 확실히 알겠는데, 문제는 이름이다. 장군이라... 아무래도 본명이라기보다는 난세를 틈타 얻은 별칭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군벌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군벌이라는 말은 군사력을 일정 기간 유지해야 붙여줄 수 있다. 진승과 오광이 열어젖힌 난세 이전까지 누구에게도 진 제국의 영토에서 군벌 생활을 할 여유는 허락되지 않았다.


경포와 포장군이 합류하면서 항씨군은 수와 질에서 수직상승하게 된다. 인종적인 구성으로 보면 일단 묘족과 백월족, 화하족의 연합군 형태다. 여기에 두 그룹의 숙련된 도적단(하나는 산적, 하나는 수적)이 가세했다.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단어들이 기마술, 게릴라전, 기습, 매복, 유통, 보급 등이다. 허나 이런 강점들은 보병이 ‘질량’의 토대를 이루어 주어야 빛을 발한다. 진영과 함께 귀순한 농민 출신의 2만 보병이 이 역할을 해 준다. 다만 포장군의 병력은 역할이 분명치 않다. 항씨군은 도합 6만에서 7만 사이의 병력을 자랑하게 된다.



9


진승은 죽었지만, 그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민중을 각성시키고 한 철이 지나 타락하고, 다시 한 철이 지나 죽었다. 그러나 중국사의 수면에 바위를 던진 그에게 추종자가 없었을까? 아직 충성심을 잃지 않은 열혈 지지자들이 남아있었다. 여신(呂臣)이라는 장군이 지지자들을 모아 창두군(위에 설명했듯이 특공대)을 결성했다. 여신은 진승의 시종 출신이었다가 장군이 된 인물이다. 진승은 부하들에게 많은 잘못을 저질렀지만 적어도 여신만큼은 진승에게 적지 않은 빚을 졌다.


여신의 창두군은 진승이 머물던 진성을 향했다. 진승을 죽이고 진나라에 항복한 배신자 장가는 큰 선물을 받았다. 진성의 수령이 된 것이다. 제국군 사령관 장한은 장가에게 진성을 맡기고 장초군의 잔당을 토벌하러 갔다. 


제국의 에이스 장한은 동쪽으로 진격, 모국(母國)을 잃고 헤매던 송류(宋留)의 군대와 조우했다. 송류는 열심히 싸웠지만 장한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게 문제다. 우리는 난세니, 전쟁이니 하면 곧바로 용기나 사명감 따위의 단어를 떠올린다. 그러나 역사는 자신보다 우월한 상대는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가르친다. 부딪힌 상태에서 아니다 싶으면 중도 포기해야 한다. 섬멸보다는 전멸이, 전멸보다는 궤멸이, 궤멸보다는 궤주가 낫다.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전제조건을 비겁으로 보면 안 된다. 판단력이라고 해야 옳다.


의욕만 넘쳤던 송류의 군대는 장한에게 포위되어 섬멸당할 위기에 처했다. 비록 늦었지만, 나는 송류를 높게 쳐주고 싶다. 그는 자결할 수도 있었지만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모욕과 고통을 감수하기로 했다. 송류는 항복한 후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다. 송류는 제국의 수도 함양으로 끌려가 거열형, 즉 소(혹은 말) 네 마리가 끈에 연결 된 사지를 당겨 찢어 죽이는 형벌을 당했다. 그의 참혹한 시신은 구경거리가 되어 함양을 한 바퀴 돌았다.


한편 여신의 창두군은 장한이 송류를 쳐부수는 틈을 놓치지 않고 진성을 기습적으로 공격, 함락하는 데 성공했다. 진성을 수복한 여신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배신자 장가를 처형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다음이다. 원수를 때려잡기 위해 모인 군대였다. 목표를 속 시원히 달성하고 나자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진성을 수복한 채로 그냥 ‘있었다.’ 이렇게 소리치면서.


<장초가 되살아났다!>
<진성을 수복했다. 천하의 호걸들이여 여기모여라!>


장한이 가만 둘 리가 없었다.


<어쭈?>


송류를 처리한 장한은 돌아와서 진성을 몸 풀듯 다시 접수했다. 간신히 살아 진성을 빠져나온 여신과 그의 창두군은 제국군을 피해 방랑길에 들어섰다. 그야말로 장한의 시대였다.



10


초나라라는 국명을 선점한 진승. 반칙이긴 하지만 난세를 연 것은 그다. 진짜 초나라의 2인자 가문인 항씨는 브랜드를 강탈당한 피해자라고 할 수 있지만 어쨌든 후발주자다. 서로가 서로에게 민망한 상황이다. 사실 항씨군이 회계군을 접수하고 양자강을 넘기 전, 진승의 부하 하나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우리 장초국에서 항량을 높은 자리에 임명하고 응원하는 바이니, 장초를 도와 진 제국을 물리쳐주기 바란다.>


항량은 거절하지도, 충성을 맹세하지도 않았다. 그냥 <알았다>고만 하고 담담히 진군을 계속했다. 그러나 진승이 죽은 후라면 이렇게 애매할 필요가 없어진다. 다음 둘 중에 하나를 골라 선언하면 된다.


1) 진승은 가짜였다. 주제넘게 초나라와 항씨를 사칭하다가 대가를 치렀다.


2) 진승도 우리처럼 초나라의 기치를 건 영웅이었다.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자. 그러므로 우리 항씨를 따르라!


결과적으로 항량과 항우는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이 있다. 이때 새우는 피해자다. 그런데 고래가 하나 없어졌다고 새우가 고래인 척을 하면 곤란하다.


진가(秦嘉)라는 인물이 사고를 쳤다. 그는 진승이 장수로, 옛 초나라 땅 일부를 공략하기 위해 동쪽으로 원정을 간 인물이었다. 좌충우돌하며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가, 진승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그는 이미 죽은 주군을 위해 장초의 잔당이 되어 장한에게 토벌당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초나라를 세우자!>


그는 서둘러 초나라의 왕족을 찾았으니, 그의 이름은 경구(景駒). (지난 기사에 초나라의 왕족에 대해 설명해 놓았다) 어라? 미(羋)씨도 웅(熊)씨도 아니었다. 혹은 미씨 부족 소속이지만 순혈 왕통인 웅씨 씨족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경구는 순혈과는 거리가 상당한 방계였다. 왕실의 피가 몇 방울 튄 정도였을 것이다.


진가는 이만하면 된 셈 치고 경구를 초나라 왕으로 옹립했다. 말로는 초나라 재건이었으나, 실체도 불분명한 조그만 지방정권을 세운 것이다. 초(楚)라는 국명을 선점했다기 보다는... 이건 그냥 도둑질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항량과 항우의 반응은?


<이놈이 미쳤구나. 어디서 새우가 감히 초나라를 세우네 마네...>


항씨 가문은 진가와 경구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죽은 진승을 치켜세우기로 했다.


“진왕(陳王. 진승을 말한다)께서 먼저 큰일을 시작하셨으나 진(秦)과의 싸움에서 지고 도망쳐 생사를 모른다.”


‘사망’이 아니라 ‘실종’이라 표현한 이유는 진가를 확실히 나쁜 놈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오늘날 진가가 진왕을 배신하고 경구를 옹립한 것은 대역무도한 짓이다.”


이제 진가와 경구는 항씨군에 신나게 쥐어 터질 일만 남았다. 그러나 그 전에 자기 비즈니스에 바빴던 우리의 주인공을 놓쳐선 안 되겠다.



11


보무(步武. 위엄 있고 활기 있게 걷는 걸음)도 당당히 개선해 돌아오는 우리의 유방. 방여에서 삽질을 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긴 했지만 승전은 승전이다. 그러나 고향마을 풍읍의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어...!?>


유방과 그의 군사들이 생 날벼락을 맞은 사연은 이렇다. 지난 기사에 이야기했듯, 옹치는 평소에 유방을 싫어했다. 지역의 알아주는 유지였던 그가 허드렛일이나 시키던 술꾼의 명령을 듣는 것도 기분 나빴다. 거기다 난데없이 나타나 지역 최고 부자 타이틀을 빼앗아간 여씨 집안은 유방의 처가였다. 찌뿌둥한 기분으로 우두커니 성읍을 지키는데, 주불이 그에게 사자를 보낸 것이다.


그렇다, 위구를 옹립해 위나라를 재건한 그 주불 말이다. 말이 외교지 협박이었다.


“풍읍은 한 때 위나라의 수도였다.”


순 억지였다. 전국시대 말기, 위나라의 수도였던 대량이 진나라 군대에 함락되었을 때였다. 위나라 왕과 신료들은 닥치는 대로 도망치다가 풍읍에서 숨을 골랐다. 굳이 폼 나게 망명정부라면 망명정부겠으나, 냉정히 말하자면 임시 거처였다. 이걸 가지고 땅을 내놓으라니!


“지금 위나라 성 수십 개가 이미 평정되었다. 그대가 즉시 위나라에 항복한다면, 위(魏)나라는 그대를 후(侯)에 임명해 풍읍을 맡길 것이다. 그렇지 않고 항복하지 않는다면 풍읍은 도륙되어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주불은 주군인 위구와 위나라 백성들에게는 품위 있는 신사였다. 하지만 위나라의 핵심 인물이 되고나서부터 국익을 위해서라면 ‘외국인’들에게는 깡패 짓을 일삼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주불의 메시지는 고향 주민들을 위해서라도 들어주면 안 되는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그러나 옹치에게는 꼴 보기 싫은 유방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는 기회였다.


사실 유방이 누군지, 옹치가 누군지 주불이 알 바 아니었다. 주불은 누가 됐건 풍읍의 지도자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마침 유방이 전투를 치르느라 옹치가 맡아 두고 있었을 뿐이다. 옹치의 입장에서는 마침 잘 됐다. 죽피관이나 쓰고 다니는 술주정뱅이가 아닌 자신이 위나라를 등에 없고 풍읍의 1인자인 풍후(豊候)가 되면 사필귀정이 아닌가?


옹치는 그대로 풍읍을 위나라에 들어 바쳤다. 한 몸이나 다름없던 패풍(패현과 풍읍)이 갈라져버린 것이다! 경악한 유방은 다름 아닌 고향 마을을 공격하는 처지에 놓였다. ‘패공’ 유방과 ‘풍후’ 옹치의 대결은 그야말로 속 터지는 일이었다. 유방군이 아무리 공격해도 풍읍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호릉과 방여 공격 사건에서 알 수 있듯, 그들은 공성(攻城)에는 답 없는 아마추어였다. 더욱이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함께 지내온 지인들이다. 맹렬한 공격을 퍼붓기도 곤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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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천주의자 유방도 이 기막힌 사정엔 어쩔 도리가 없었나보다. 그는 화병이 나 쓰러지고 말았다. 한 가지 다행은 소하, 조참, 번쾌 등 훗날 유방과 함께 천하를 제패하는 동지들은 모두 유방의 원정군에 속해있었다는 것. 이들은 풍읍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영혼이라도 팔아야 하는 처지였다.


그런데 항씨 가문의 역린을 거스른 진가와 경구가 유(留) 땅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유(留)는 패현의 동남쪽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한 가닥 희망이 생긴 유방이 언제 아팠냐는 듯 병석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긴, 화병은 심리적인 문제이긴 하다.


유방은 풍읍을 되찾는 데 필요한 군사를 빌리기 위해 경구를 찾아간다.



outro


그리고 유방은 <초한쟁패> 첫 회의 주인공을 만나게 되는데...
과장을 좀 섞어서 말하면, 유방은 풍읍을 잃고 천하를 얻는다.



모든 교양은 남 얘기다. 안 물어봐도 알려주는 남 얘기, [안알남]이 절찬리 방송중이다. 교양인인 딴지스 여러분은 내가 굳이 선동하지 않아도 알아서 들을 거라 믿지만 그래도 굳이 들이미는 이유는 그만큼 여러분을 사랑해서가 아니겠는가? 지난 2주간의 개신교 특집을 듣다 보면 은혜 받고 천국 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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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새로운 개신교 교파인 <대선진리교>를 소개한다. 대선은 내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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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진리교(大善眞理敎 Very Good Church)를 강론하는 필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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