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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편에 이어)
자, 유방이 경구를 찾아갔다. 사이비라지만 어찌됐든 일국의 왕을 자칭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앞에 두고 한줌의 병력에 근거지까지 잃은 유방은 뻔뻔하게 요구사항을 내민다.


<병사를 빌려주면, 당신에게 귀순하겠다.>


귀순이라니, 아니 뭘 믿고? 빌린 병사를 먹고 튈 지 누가 안단 말인가. 경구 자신도 진승의 군대를 먹튀한 진가에 의해 옹립되었다. 게다가 유방은 자기 세력을 이끌고 흡수되러 온 게 아니다. 자기 세력을 되찾기 위해 왔다. 이건 귀순이 아니다. 일이 잘 되고 나면 경구의 이름으로 하사된 직함이나 하나 달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대마도주와 여진족 추장은 조선 국왕에게 관리 차원의 봉작을 받았다. 그렇다고 그들이 조선인은 아니다.


경구는 유방의 뻔뻔함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것 같다. 어차피 갑을관계는 명확히 그어졌다. 유방을 한 번 이용해보자는 생각이 든 경구는 조건을 붙였다.


<먼저 내 밑에서 공적을 쌓으면~ 앗♡ 기쁜 나머지 군사를 빌려줄 수도?↗♬>


협상을 할 처지가 아닌 유방은 열정노동을 받아들인다. 경구는 반은 감시, 반은 지원을 위해 자신의 장군인 ‘영군’을 붙여주었다. 유방에게 던진 임무는 물론 경구 자신의 나라를 지키기 위한 일이었다.


제국의 구원자 장한이 천하를 주름잡고 있었다. 최초에 그가 여산의 노역자들을 훈련시켜 편성한 부대는 10여 명이었다. 이제는 그가 지휘하는 정규군이 20만 명 이상이었다. 장한에게 경구의 초나라는 진승이 세운 장초의 잔당이었다. 이제 장한의 제국군이 초나라를 밟아줄 차례였다. 경구는 진가에게 픽업되어 갑작스레 얻은 부와 권력을 잃고 싶지 않았다. 유방처럼 약점이 있는 사람을 이용해 손해 볼 건 없었다.


마침 경구는 사정이 급했다. 제국군이 ‘상현(相縣)’을 함락한 후 마을 주민들을 모두 학살한 후였다. 상현은 지금의 안휘성 회북시(淮北市) 서쪽에 있었던 현으로, 사수군(泗水郡)의 치소다. 즉 유방 용병단의 홈그라운드인 패현의 이웃마을인 것이다! 가까운 곳의 주민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실에 유방과 그의 친구들은 경악했을 것이다.


한 번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에게 두 번째가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당시의 진 제국군은 특정 영토를 싸워서 수복할 수는 있어도 관리할 여력까지는 없었다. 그래서 현 하나를 도륙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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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군은 이어 ‘탕[碭 지금의 하남성 하읍(夏邑) 동남쪽에 위치]’을 포위했다. 포위 대상이 패현이 아니었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하지만 탕 다음엔 패현이 아니라는 보장이 있는가? 유방의 입장에서도 탕 포위군을 물리쳐야 했다. 졸지에 방랑 용병단이 된 패현의 사내들은 이래저래 열정노동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유방은 경구에 귀순했다.



2

앞날의 이야기를 미리 하자면, 유방은 경구의 몰락에 무관심했다. 이를 두고 충성심이 없다느니, 이기적이라느니 하는 비판은 그때나 지금이나 없다. 노골적인 갑을관계 때문이다.


경구는 반은 지원, 반은 감시를 위해 영군(寧君)이라는 장수를 유방에 붙여주었다. 이렇게 해서 유방은 풍읍을 되찾기 위해 풍읍과 아무 상관없는 탕성의 주민들을 구원하기 위한 싸움에 말려들어갔다. 패현 사내들의 목숨을 걸고 말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 커다란 행운이 있었다.


이 시점에서 천하무적이었던 장한의 시야는 경구에서 벗어나 있었다. 장초를 멸망시킨 그는 천하를 ‘교통정리’할 생각이었다. 복원된 조나라와 위나라를 응징할 일이지, 경구는 이미 그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래서 경구를 응징하라고 별장(別將) ‘사마이(司馬夷)’가 지휘하는 별동대를 파견했다. 유방은 장한 대신 그의 부하를 상대한 것이다. 우연에 우연으로 살아남는 데에는 이만한 인물이 없다.


탕성 포위 해제 전투
사마이는 별동대를 좌군과 우군으로 나누어 탕성을 동서로 틀어막고 있었다. 전술가라고 부르기에는 한참 모자랐던 유방은 단순한 직관에 의존했다.


<적이 동서로 나뉘어 있으니 우리도 군대를 둘로 나눠 각각 부딪히면 되겠군!>


유방은 시골 농부와 건달들을 동군과 서군으로 나누어 제국의 정예병에게 달려들게 했다. 놀랍게도, 아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영군과 그의 병사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피해를 입어도 상관없는 유방의 군대와 달리 경구의 귀한 재산이기 때문이다. 영군의 역할은 그저 감시였다. 그렇다면 유방은 당연히 비참한 패배를 당해야 한다. 그러나 그에겐 번쾌라는 변수가 있었다.


서군을 맡은 번쾌는 별다른 전술 없이 그냥 돌격해서 닥치는 대로 적군을 죽였다. 이게 통했다. 번쾌는 15명의 수급(사살 후 잘라 챙긴 적의 머리)을 베었다. 실제로 쓰러트린 적은 훨씬 많았을 것이다. 유방은 번쾌의 개인적 무력으로 동쪽 방면에서 간단히 승리했다.


동쪽 전장은? 하후영이라는 변수가 있었다. 하급공무원 시절, 말발굽이 푹푹 빠지는 늪지를 건너는 게 주요 업무였던 하후영. 그가 모는 말은 마른 땅에서 새처럼 움직였다. 하후영은 원래 풍패(패현과 풍읍)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지만 둘도 없는 절친인 유방에게 고향 마을을 되찾아주기 위해 속도전을 감행했다.


사마이 별동군의 동쪽 진영은 적당히 흩어져 주둔하고 있었다. 병사들이 빽빽이 도열해 성벽을 바라보는 모습은 주로 영화 속의 풍경이다. 전투가 벌어지지 않을 때는 컨디션 조절을 하고 있는 게 상식이다. (성을 공격하는 중에도 영상매체, 특히 한국 사극처럼 밀집해 있지는 않았다. 화살과 투석의 손쉬운 과녁이 돼 줄 이유가 없으니까. 공성은 ‘축차투입’이 기본이다.)


하후영과 그의 기마대는 사마이의 동군이 전투를 위해 집합하기도 전에 숙영지를 덮쳤다. 당연히 적군은 이곳에 집중된다. 이것은 하후형의 트릭이었다. 그는 갑자기 말머리를 돌려 동군 본부를 급습, 함락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소수의 기마대로 승리를 굳힐 수는 없다. 패현의 큰형님 중 하나인 조참이 하후영을 뒤따라 주변을 속속 점령했다.


사마이의 별동대는 순식간에 패퇴했다.



3

직접 지휘를 받지 않을 뿐, 엄연히 에이스 장한의 군대다. 구경꾼 영군은 입이 떡 벌어졌을 것이다. 아니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술주정뱅이에게 저런 부하들이 있었다니? 어쨌거나 영군보다는 성벽 위에서 가슴을 졸이며 전투를 지켜보던 탕성 주민들의 시선이 훨씬 중요했다. 이유야 어쨌건 이들에게 유방은 하늘에서 떨어진 구원자였다. 역사에 기록되어있진 않지만, 탕성 주민들은 불과 3천 명 밖에 되지 않는 타지 사내들이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모습에 감명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정황은 이후의 사건을 통해 충분히 확인된다.


소(蕭)라는 곳은 지금도 안휘성 소현(蕭縣)으로 그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지금의 소현보다는 좀 더 서북쪽에 올라가 있었다. 유방과 영군은 이곳으로 진격해 진나라 군과 싸웠는데, 패퇴한 사마이가 상대였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역사는 이때의 상황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전세가 불리했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고만 한다. 본격적인 충돌은 없었다.


적군이 사마이의 부대라면, 그는 첫 전투에서의 패배를 십분 참고했을 것이다. 한 사람(번쾌)에게 전열이 무너지지 않도록 방책과 진형을 구축하고 하후영의 속도전에 당하지 않을 지형을 선택했을 것이다. 혹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제국군 그룹이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유방과 영군은 굳이 막대한 희생이 예상되는 전투를 치를 생각이 없었다. 영군이 ‘을’인 유방 대신 나설 리가 없었으며, 함께 싸울 리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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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은 당연히 전투를 포기했다. 유방의 동지들에게 풍읍은 고향이거나, 고향의 이웃마을이다. 풍읍을 잃고 헤매는 그들이다. 전우를 많이 잃으면 타지에서 멸망할 운명이다. 유방은 여기서 준수한 사령관이 되기 위한 또 하나의 규칙을 학습한다.


<결과가 확실한 승부는 피한다>


역설적으로, 풍패의 사내들은 이 시기부터 끈끈한 결속력을 자랑하는 운명공동체로 거듭나게 된다. ‘풍패지현(豊沛之縣 풍패와 같은 향토)’이라는 말이 있다. 영웅호걸의 탄생지를 뜻한다. 훗날 유방과 그의 동지들은 거의 통째로 신생 제국의 조정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날이 바짝 벼려진 풍패의 사내들은 운신의 폭의 조금이라도 넓히기 위해 그야말로 미친 듯이 싸우기 시작한다. 농사꾼, 건달, 술꾼들은 다름 아닌 옹치의 배신으로 인해 전사로 거듭난 것이다. 


유방은 정비를 위해 비교적 안전한 유 땅으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경구와 영군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접은 상태였다. 그래서 그는 유 땅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체적으로’ 군사를 모집했다.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군사가 꽤 잘 모여든 것이다.


당시에는 난민이 많았다. 패잔병은 물론이고 진나라에 끌려가 노역이나 병역을 치르다가 탈출한 남자들, 먹고 살기 힘들어 죽창을 들고 어디 괜찮은 패거리가 없나 두리번거리는 농민들, 산과 물에 숨어 불법행위를 저지르던 무장집단들, 거기다 (지금의 기준으로는)소수민족까지 중원의 배회했다. 깃발 하나만 휘두르면 모여들만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유방보다 조건이 좋은 보스들은 많았다.


유방은 아무런 유명세도 없었다. 근거지를 도둑맞고 용병 신세로 떨어진 집단이다. 타지의 남자들이 무기와 제식조차 통일되지 못한 3000명의 오합지졸에 합류한 이유는 뭘까. 이는 유방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도 없던 ‘탕성 주민 구출작전’이 지역 주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음을 의미한다.


우연의 연속이 만들어 낸 결과지만, 유방은 최초로 ‘평판’이라는 것을 얻게 된다. 하지만 평판을 어떻게 활용할 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유방이 유 땅으로 돌아가자, 다시 몸을 드러낸 사마이는 잽싸게 탕성을 점령해버렸다. 어찌된 일인지 사마이는 탕성을 도륙하지 않았다. 탕성 주민들에게는 다행한 일이었다. 물론 이미 도성(屠城 성내를 학살함)을 저질러 본 사마이가 탕성 주민들의 사정에 동정심을 느껴서 그랬을 리는 없다. 토벌의 거점으로 활용하기 위해선 주민들의 생명을 연장해 줄 필요가 있었다. 듣도 보도 못한 유방이라는 자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후 거점의 필요성을 느꼈으리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러나 사마이가 탕성 주민들을 신사적으로 대할 리 없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도 진나라 공권력은 로컬 주민들을 학대했다. 토벌군에 점령당한 지금이야 말 할 것도 없다.


유방은 탕성 주민들 입장에서는 조금 서운하게도, 탕성을 지나쳐 유 땅으로 돌아갔다.



4

초한쟁패 첫 회를 기억하시는가. 진시황 암살 시도로 난세의 예고편을 찍었던 미청년 장량. 그가 십년 간 협객들에게 아지트를 제공해온 사연, ‘예쁘게 생겨서’ 마초들을 이끌 지도자로서 인정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지난 기사에서 설명했다. 장량은 천재적인 병법가로 성장해 있었지만(이 이야기 역시 전편에 길게 써 놨다.) 그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예쁘고 병약하고 무공(武功)은 제로인 장량에겐 ‘계집애 같은 남자’라는 타이틀에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추가되었다.


말이 많다.


조국 한나라를 재건해야 한다. 독학으로 병법도 통달했다. 남들로 하여금 자신을 따르게 하는 데는 이미 실패했다. 그렇다면 뜻을 이뤄줄 주군을 찾아야 한다. 어떤 야심가라도 장량을 차지하면 큰일을 벌일 수 있다. 장량 본인은 그 사실을 안다.


본인만 안다.


진승과 오광이 난을 일으킨 후 장량은 마지막 남은 돈을 털어 보디가드 겸 최소한의 밑천으로 장정 백여 명을 고용해 죽창을 들고 일어난 사내들을 찾아다녔다. 그는 모사(謀士 지략가) 취직 면접에 처절히 실패했다. 오죽하면 독학해 개발한 콘텐츠를 가상의 인물에게 배웠다며 <태공병법>이라 이름 붙였지만 그것도 소용없었다. 그럴수록 말이 많아지는 건 인간의 당연지사. 목숨을 걸고 거병한 남자들은 예쁜 귀족출신 사내의 장광설을 진득이 들어줄 만한 심리적 여유가 없었다. 아니, 냉정히 예상해보자면 무척 귀찮았을 게다. 설교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러다가 가까운 곳에 경구란 남자가 초나라-항연의 초나라, 진승의 장초 모두-를 재건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세력을 일군 것이다. 전문 면접 탈락자가 된 장량은 백 명의 직업 경호원을 데리고 경구에게 자신의 쓸모를 어필해 보려 유 땅에 가는 길이었다.


유 땅,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읍(留邑) 읍내였을까 밖이었을까. 장량은 신기한 집단을 목격하게 된다. 밑도 끝도 없이 적제의 아들임을 주장하는 붉은 깃발을 앞세운 남자들이다. 꼴을 보아하니 딱 논두렁에 붙어살던 오합지졸이다. 대장이라는 자는 품위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늙은이다. 거기다 머리에 진나라제 쇠뇌를 맞아 맛이 갔는지 대나무로 만든 관을 쓰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저들은 그를 따르는가.


그렇다. 유방은 장량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장량은 세계사를 뒤바꿀 결정을 한다.


<저 남자에게 면접을 보자.>


어차피 많이 구직하고, 많이 실패한 그다. 예전이라면 거들떠도 안 볼 패거리였지만 장량도 눈이 많이 낮아졌다. 이야기를 나눠보고 아니다 싶으면 원래 계획대로 경구를 찾아가면 그만이다. 손해 볼 건 없다.


장량이 유방의 눈앞에 나타났다.



5

다짜고짜 자신을 간보겠다고 찾아온 뽀얀 젊은이. 장량 역시 유방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존재였다. ‘네 녀석이 병법을 통달한 지략가라고?’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바로 그랬기에 <태공병법>을 들어보기로 했다. 한가한 성격의 유방은 시간낭비를 결코 싫어하지 않았다. 어차피 인생을 실컷 허비해온 인간이다. 또 허풍쟁이인 만큼 남의 허풍도 즐겼다. 평생 반백수로 살아오며 재미난 이야기를 수집하고 부풀려온 유방이다. 장량이 별 볼일 없는 인간으로 드러날 지라도 이방인과의 술자리를 즐긴 셈 치면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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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웬걸, 유방은 장량의 인생사와 <태공병법>에 매료되었다. 유방은 어려운 말을 떠드는 지식인을 혐오했지만 장량의 병법에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는 무식했지만 타고난 두뇌는 좋았다. 외려 이해력이 너무 좋아 탈이었다. 내용의 맥락을 빨리 파악하는 사람은 심화학습을 귀찮아하는 경향이 있다.


장량은 장량대로 눈앞의 늙은이가 남의 말을 알아듣는 재주가 있음에 깜짝 놀랐다. 드디어 자신의 실력을 이해해주는 상대를 만나자 장량은 막힌 둑이 터지듯 <태공병법>을 있는 대로 쏟아냈다. 유방은 장량의 설명을 죄다 알아먹었다. 감동적인 일이다.


그간 장량이 협객들에게 존중받은 이유는 대귀족 출신에 돈도 많아서였다. 반면 유방은 유학자의 모자를 벗겨 거기다 오줌을 누는 게 취미인 늙은이다. 상대의 배경이나 신분 따위는 거추장스러워하는 사람이다. 반면 유방은 워낙에 협객을 좋아했다. <태공병법>뿐 아니라 장량의 실패한 협객 생활에도 박수를 쳐 주었을 것이다. 즉 유방은 ‘행동과 실력’만으로 장량을 평가해준 최초의 인간이다. 그러나 이제 장량은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정말 이해하는 것과, 이해한다고 착각하는 것은 다르다.
이해만 하는 것과, 이해한 바를 믿고 따르는 것도 다르다.


우리가 흔히 아는 것과는 달리, 유방과 장량은 하룻밤 만에 한 팀이 되지 않았다. 유방이 타인의 재능을 알아본다고 해서 그가 별 볼일 없는 군소 군벌이라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장량에겐 그를 시험할 기회가 필요했다. 마침 장량도 유방의 처지를 들은 터. <사기>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난 후 항량과 항우를 찾아가기 전까지의 짧은 기간 동안 장량의 ‘실험’을 분명히 암시한다.


그렇다면 유방은?



6

유방은 자신의 운명을 바꿔주기 위해 나타난 장량 앞에서 개그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장량의 재능이 급했던 유방은 놓칠 새라 그를 구장(廐將)이라는 직책에 임명한다. 이제 우리는 군신 관계라는 외침이리라. 헌데 구장이라. 군사용 말을 관리하는 직책이다. 뜬금없다. 장량은 한 번도 말 관리 따위 하지 않았다.


유방은 패공(沛公)으로 거병하고 나서 부하들에게 거창한 직위를 수여한다. 예를 들어 번쾌를 국대부(國大夫 진 제국의 6번째 작위)로 임명했는데, 번쾌가 잘 싸우자 열대부(列大夫)로 승진시켰다. 문제는 열대부가 7번째 작위라는 것. 즉 승진이 아니라 강등이었지만 유방은 작위를 하사했고 번쾌는 받았다. 어차피 작위의 특혜를 누릴 만한 국가적 실체도 없었다. 어디서 들어본 직위를 가지고 논 것이다.


하후영은 더 가관이다. 유방은 거병하자마자 자신의 베스트프렌드를 태복(太僕)에 임명했다. 태복이 하후영의 특기인 마차꾼이긴 하다. 문제는 황제 전용이라는 것. 이 시기 유방은 제국의 황제가 되어 보겠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그는 황제 놀이를 즐겼다. 유방은 황제나 최소한 독립적인 왕 정도는 되어야 임명할 수 있는 지위를 남발했다. 예컨대 땅 없이 유랑하는 주제에 땅에 대한 소유권을 뜻하는 작위-후(侯)나 잭(伯) 따위-를 내린다던가... 자취생이 월세 집을 국가로 선포하고 애완견을 총리대신으로 임명하는 것과 같다.


유방은 장량이 본 인간들 중에 가장 웃기는 짬뽕이었다. 고향 풍읍을 날려먹고도 이런 장난을 친 여유가 있었던 유방이나, 그걸 신나게 받아준 부하들이나 거기서 거기다. 중국식 허세가 결코 아니다. 유방만 이랬다. 남의 경우를 보자. 항씨 군(軍)의 직책은 건조하고 정확하다. 넘버 2인 항우는 위치 그대로 비장(裨將 부관 겸 제2 지휘관)이다. 훗날 국가를 세웠을 때를 가정해 대부(大夫)에 해당될 장교들은 ‘대부’도 아니고 ‘대부 급의 장수’라고 불렀다. 당연히 이게 맞다.


나는 풍패 남자들의 ‘놀이’가 한심하게만 보이지는 않는다(그래도 좀 한심하긴 하지만). 유방의 대책 없는 낙천주의에 부하들이 감염되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애초에 먹고 살아보겠다고, 아니 죽지 않겠다고 들고 일어난 사람들이다. 원대하고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움직인 항씨 가문처럼 경직될 필요는 없었다. 논두렁 ‘촌놈’들이 유머감각을 유지한 모습은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장량은 유방의 이런 엉뚱한 면을 좋아했던 것 같다. 황제 놀이를 해서 득볼 건 없지만 손해 볼 것도 전혀 없다. 조직에 활기를 더해 나쁠 건 없잖은가? 방금 ‘구장’이 된 장량은 중요한 조언을 한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탕을 얻어야 한다. 패공의 미래는 그곳에 있다.>


이 남자는 말을 들어줄 것인가?


과연 유방은 유읍에서 전열을 정비한 후 탕성을 포위했다.



7

탕성 주민들의 눈앞에 ‘적제의 아들’ 유방의 붉은 깃발이 다시 나타났다. 그는 정말로 구원자였던 것이다! 유방은 3일간의 공성작전 끝에 결국 탕성을 무너뜨렸다(이게 다다. 누누이 말하지만 전투 과정에 무관심했던 사마천이 참 야속하다.). 공성에는 아마추어였던 유방이 장량과 함께하자마자 최초로 성을 차지한 일은 의미심장하다.


유방은 탕성에서 5000명에서 6000명 사이의 장정을 직속 군사로 징집했다. 원래 군세(軍勢)의 두 배다. 유방과 탕성이 적대관계였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아군보다 많은 포로에게 무기를 쥐어주는 경우는 없다. 감정이 상해있기만 해도 언제든 역으로 당할 수 있다. 이 사건은 탕성 주민들이 유방에게 존경심을 품었음을 증명한다. 탕성은 물리적으로는 유방에게 함락되었지만, 정치적으로는 ‘해방’되었다.


탕성의 남자들은 풍패 출신들과 마찬가지로 이후 유방에게 충성을 다한다. 유방은 이제 얼추 만 단위라고 우길 수 있는 병력을 소유했다. 말로만 공(公)이었지 유랑집단의 지도자 신세였던 그는 비로소 버젓한 영주가 되었다. 거기다 스멀스멀 피어올랐다가 사라질 것이던 평판을 제대로 굳혔다. 이제 유방은 ‘자기 편 사람들’이 아니라 ‘민중 일반’의 고통을 지나치지 않는 인물이 되었다. (훗날 그의 먼 후손인 유비는 의식적으로 선조를 모방한다.)


우연이 만든 상황을 확실한 결과로 회수하는 것. 이것이 장량의 노림수였다. 유방은 타지 사람들의 사정 따위엔 관심 없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예의 없는 술꾼이었다. 그러나 탕성의 충성을 확인하고 중대한 사실을 깨닫는다.


<민중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인물의 이익을 지지한다.>


정의롭지 못하면 정의를 연기하면 된다. 허풍장이 유방에게 연기력은 주특기였다. 정의로운 마음과 정의로운 행동은 다르다. 그런데 결과를 만드는 것은 후자다. 이게 무슨 뜻인지, 유방 자신도 범속한 백성의 일원이었기에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이어 유방은 장량이 설교하는 <태공병법>에 따라 탕성과 인접한 하읍(下邑)을 신속하게 점령했다(이제 유방의 군대는 슬슬 공성의 전문가가 되어간다.). 당연히 이래야 한다. 새로운 근거지 탕성을 위협하는 가능성을 미리 제거해야 하고 완충지대도 필요하다. 더욱이 탕성은 장정 5000명 이상을 유방에게 바쳐 허약해진 상태다. 가까운 곳의 인프라를 끌어와 벌충해야 한다. 우리의 장량, 모든 판단이 정확하다. 토를 달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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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량은 황석공으로부터 <태공병법>을 받았다.


유방이라는 이 남자, 설마 했는데 합격이다. 장량은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8

장량은 감탄과 탄식을 동시에 담아 외쳤다.


“沛公殆天授(패공태천수)!”
“패공은 거의 하늘이 낸 사람이다!”


하늘이 냈으면 냈고 아니면 아닌 거지, ‘거의’ 하늘이 냈다니. 완전하다고 하기엔 영 미달되었다는 얘기다. 문법적으로 보면 괴악한 이 문장은 장량의 고뇌를 드러낸다. 하늘이 냈다는 말을 한문으로 ‘천수(天授)’라고 한다. 중국 고전에서 수도 없이 반복된 표현이다. 그런데 내 짧은 독서를 되돌아보건대 ‘태천수(殆天授)’라는 표현은 <유후세가(留侯世家 장량의 일대기)>외에서 본 적이 없다.


유방은 결함투성이였다. 거물이 되기엔 너무 교양이 없었다. 무식하고 무례하고 술주정뱅이에 양심도 없다. 그리고 인생을 너무 낭비했다. 그는 난세가 시작된 시점에 이미 늙어 있었다. 후세를 사는 우리는 유방이 8년 만에 천하를 제패했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그때는 난세가 일 년을 갈지 백 년을 갈지 아무도 모른다.


10년간의 실패한 협객생활을 계속해볼 것인가.
어떻게든 잘 되지 않겠냐는 망상에 함께 빠져 줄 것인가.


장량은 유방을 선택했다. 그를 처음 알아봐 준 사람은 유방이었기에.


유방은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장량도 잘 안다. 하지만 유방은 솔직하다. 그는 <날 위해 당신이 필요하다>고, <당신 덕분이다>라고, <당신이 없으면 나는 큰일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이러면 백성이고 강호의 도리고 일단 그부터 돕고 싶어진다. 자신의 노력 덕에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진다. 장량은 유방에게 마음을 점령당하고 말았다.


장량은 유방을 결코 존경하지 않았다. 무척 한심하게 생각했으며, 실제로 혼도 꽤 냈다. 대신 그를 깊이 사랑했다. 유방은 유방대로 장량의 시키는 일이라면 군말 없이 따랐다. 장량은 유방과 함께 있을 때 그의 모든 결정에 개입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유방을 장량의 아바타라 해도 좋을 지경이다. 이제부터는 <유방이 ~을 했다>는 문장 앞에 <장량의 조언에 따라>라는 서두가 생략되었다고 전제해도 무방하다. 


이성계를 찾아가 역성혁명을 제안한 정도전은 조선왕조가 개창된 후 이런 말을 했다.


<고조가 장자방을 거둔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고조를 선택한 것이다.>
※자방(子房)은 장량의 자(字)이다.
※고조는 한고조(漢高祖) 즉 유방을 말한다.


적이 많은 정도전이었기에 그의 말은 태조 이성계의 귀에 흘러들어갔다. 역심을 품었다고 의심할만한 언사지만 태조는 껄껄 웃고 말았다. 성격이 호탕해서였기도 하지만, 누가 조선을 설계했는지 가장 잘 알아서이기도 했다. 정도전이 굳이 유방과 장량에 비유한 이유는 뻔하다. 장량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했다는 뜻이다. 이후 ‘장자방’은 거의 일반명사로 발전한다. 그냥 지략가라는 뜻으로도 쓰이지만 아무래도 ‘주군에게 최고의 성공을 안겨주는 인물’의 의미가 강하다.


유방과 장량은 서로를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상적인 군신관계의 표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무렵 장량에게는 유방의 성공보다 한나라 복원이 더 중요했다. 애초에 그는 조국 재건사업을 도와줄 주군을 찾아 나섰다. 구직활동의 목표는 ‘귀순’이 아니라 ‘파트너십’이었다.


<나에게는 한(韓)나라가 패공보다 먼저다.>
<필요할 때는 패공께서도 나를 도와야 한다.>


장량을 얻기 위한 조건이었다. 유방은 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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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잠시 여담. 판타지 문학 시간이다.


유방과 장량의 관계는 훗날 천하에 깃발 좀 꽂아보려는 남자들의 기대심리를 자극했다.


나를 유방으로 만들어 줄 장량이 있지 않을까?
나를 장량으로 만들어 줄 유방이 있지 않을까?
남들이 몰라줘서 그렇지, 나 정도면 충분히 가능성 있지 않은가?


<삼국지> 시대에 가면 수많은 야심가들이 ‘나의 장량’과 ‘나의 패공’을 찾아다닌다. 죽이 좀 맞는다 싶으면 천하통일을 예약했다는 듯 쾌재를 부르는 얼치기 콤비가 탄생한다. 당연히 <이성계-정도전>, <유비-제갈량> 같은 ‘진퉁’ 콤비는 거의 없다. 장량이 인정받은 것이지, 인정받았다고 장량이 되는 건 아니다. 덕분에 우리는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 얼치기 콤비들이 제대로 된 적수를 만나자마자 쓸려나가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권력자들의 영원한 판타지, 그 이름은 장자방이다.



9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 용인지 이무기인지는 붙어봐야 아는 걸까? 글쎄, 유방의 경우를 보면 결국 센 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세다는 어느 영화의 대사가 떠오른다. 그럼에도, 대체로 센 놈이 오래 가는 것도 진실이다.


장한의 활약을 ‘스토리 전개’의 차원에서 보면, 그는 이무기를 처리하는 땅꾼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물론 이 역할은 항씨 군도 했다. 지난 편에 설명했듯 항량과 항우는 경구의 ‘가짜 초나라’부터 처리하려고 했다. 이때는 마침 유방과 장량이 서로를 만나 경구를 떠난 직후였다. 정말로 이 사람의 운은 너무 좋다.


유방은 자신이 행운아가 됐다는 사실도 모르고 풍읍에 재차 쳐들어갔다. 그러나 역시 풍읍은 함락할 수 없었다. 풍읍은 그렇게 튼튼한 성이 아니다. 옹치가 재깍 들어 바쳐야 할 만큼 별 볼 일 없는 성이다. 게다가 풍패에서 차출된 유방의 봉기군은 3천. 반대로 유방이 수중에 넣은 탕성에서는 그 두 배의 군사가 나왔다. 이미 공성을 두 번이나 성공해 본 유방 군이다. 거기다 이제는 동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지략가라는 장량도 있다. 그렇다면 답은 분명하다.


수비 측이나 공격 측이나 친인척, 지인들과 피 튀기는 전투를 도무지 할 수 없었다. 번쾌, 조참, 하후영 등 이미 싸움꾼으로 거듭난 사람들의 풍읍 탈환전 전공은 제로다. 실패를 논하기 이전에 제대로 싸울 수가 없었다. 이러면 성이 번개를 맞아 무너지지 않는 한 당연히 수비 측의 승리다.


유방이 또다시 고향 탈환에 실패하는 불행을 맛볼 동안, 그에게 갑질을 하던 가짜 초나라는 항량과 항우의 진짜 초나라에 사정없이 짓밟혔다. 왕 경구와 승상 진가는 야전에서 ‘용’의 실력을 맛본 후 팽성(彭城)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항량과 항우는 그들이 농성(籠城)할 기회조자 제대로 주지 않았다. 진가는 팽성에서 전사했다. 경구는 도망가는 데 성공했지만, 별동대의 추격에 걸려 간단히 살해되었다.


이제 남은 초나라는 항씨의 초나라였다. 그리고 이것은 진짜였다. 항량은 지체 없이 경구의 진가의 군사들을 아군으로 흡수했다. 어차피 초나라의 깃발을 보고 모여든 백성들이었다. 진짜의 포로가 되었으면, 그 채로 진짜의 일부가 되면 된다. 항량과 항우는 현재의 산동성으로 군대를 이동시켰다.


이 시기 장한은 주불이 위구를 옹립해 세운 위나라를 끝장내는 작전을 개시했다. 위나라가 장한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명약관화. 위구는 자신의 나라와 ‘병림픽’을 벌이며 쌍욕을 주고받던 제나라의 전씨 일족에게 원군을 요청했다. 메시지는 명확하다.


<위나라 다음은 제나라다!>


물론이다. 제나라는 아무런 외교적 마찰 없이 아낌없이 원군을 파견했다. 항씨 가문이 북상해 가짜 초나라를 끝장냈다는 사실은 위나라에도 전해졌다. 위구는 항량에게도 원군을 요청했다. 장한의 위나라 정벌을 저지해야 하는 건 항씨에게도 당연지사. 지리적으로도 위나라는 완충지대였다. 항량은 항씨 일족 멤버 중 하나인 ‘항타(項佗)’에게 군사를 맡겨 파병했다. 



10
장한은 장한이었다.


그는 3개 세력 연합군을 박살냈다. 총사령관 주불은 전사했다. 주불은 위나라를 복원하기로 한 후부터 위나라 군주(위구)와 백성들을 위해서는 양심과 품위를 보여 온 사람이었다. 주불의 죽음은 곧 멸망을 의미했다. 위나라의 왕 위구는 임제(臨濟)에서 잔존병력은 물론 주민들 전체와 함께 포위당했다.


위구는 제나라에 절박한 급보를 보냈다.


<위나라 다음은 제나라라니까?!>
<알아, 안다고!>


위, 제 양국은 공동의 적 앞에서 어느새 끈끈한 동지가 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아예 왕 전담이 직접 총사령관이 되어 대군을 이끌고 왔다. 임제 성을 포위한 장한의 군대를 성 안팎으로 역포위하는 수순이었다. 장한은 적의 수순을 바꿀만한 능력이 있는 전략가였다.


쌍방 포위가 미쳐 완성되기 전, 밤이었다. 장한의 군사들이 입에 함매(銜枚 재갈)를 물고 소리 없이 제나라 군의 진영에 접근했다. 이어진 일제공격에 전담의 군영은 그대로 붕괴해버렸다. 전담은 부하들과 함께 분투하다가 전사했다. 대패였다. 살아남은 전씨 일족은 남은 군사와 백성을 챙겨 장한으로부터 먼 곳으로 후퇴했다. 밤이 지나자 구원군은 증발했고 장한은 다시 임제를 포위했다. 남은 순서는 섬멸, 혹은 도륙이었다.


위구는 원래 군(君)에 봉해진 왕실 귀족이었다. 진나라에 의해 조국이 멸망하자 왕실 탄압 정책에 의해 끌려가 남의 집 머슴으로 전락해 먹고 살았다. 그러다가 진승과 오광은 난을 일으키고 나서 난리통에 위구를 ‘득템’한다. 이후 위나라 일대를 성공적으로 공략한 주불은 왕위에 오르라는 현지 유력자들의 요구를 완강히 거절하고 위구를 옹립했다. 주불이 아무리 신사였다지만 허수아비 왕이었고, 그 기간도 수개월이 전부다. 그리고 주불이 죽은 지금 백성들을 적군에 포위당하게 했다.


위구의 인생은 운 좋게 왕족으로 태어나 운 나쁘게 휩쓸려온 부표였다. 대부분의 역사서는 그의 죽음을 성의껏 다뤄주지 않는다. 그러나 초한쟁패 기간 중 위구만큼 마지막이 의연한 인물은 없다. 위구는 당당히 장한과 만나 항복협상을 했다. 그는 자신의 백성과 패잔병들을 죽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그러려면 패전의 책임은 오롯이 위구가 뒤집어 써야 했다. 참수나 사지절단 정도로 그 많은 인명을 무죄로 돌릴 수는 없었다. 포로로 함양에 끌려가 이용당하거나 능욕적인 처형을 당하기도 싫었다. 실리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그의 백성들에게 손해였다.
 

위구의 최후는 잔혹하고 화려해야 했다.


위구는 장한과 약속한 뒤 백성과 적군이 모두 바라보는 앞에서 불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는 화염 속에서 뛰쳐나오지 않고 끝내 재가 되었다. 자신의 삶을 조종할 순 없었지만 진정한 왕으로서 죽은 것이다. 장한은 적의 영웅적 최후에 고개를 숙일 만한 품위의 소유자였다. 그는 약속대로 위니라 백성들을 해치지 않고 군사작전을 종료했다.


위구의 분신은 위나라 백성들이 왕실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하는 기폭제였다. 애초에 위나라 일대의 토호들은 위씨가 아닌 주불을 옹립하고 싶어 했다. 위나라 사람들이 나라를 지키지 못한 왕가(王家)에 큰 애착이 없었음을 암시한다. 이제는 얘기가 달라졌다. 그랬기에 항씨의 군영으로 도망치는 데 성공한 위구의 동생 ‘위표’는 위나라 재건(‘재재건’이라 해야겠지만)의 강력한 불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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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라 재건 불씨가 될 위표


이번 편의 마지막을 위구의 죽음으로 맺었다. 굳이 그러고 싶었다. 야심이 휘몰아치는 난세는 역사가 한 턱 내는 재미난 블록버스터다. 그러나 한 인간의 처절한 책임감 앞에 숙연해질 기회를 놓을 필요도 없다.


... 난세의 판도는 이제 장한과 항씨 가문의 대결로 좁혀지고 있었다.



outro
한 편이 너무 길다고 투덜대는 메일이 자꾸 오는데 이번 편도 참 길었다.


어쩔래.


독자여러분도 긴 글 읽기가 쉽지는 않을 테지만 이해해주기 바란다. 내가 평소 쓰는 기사의 3~4배 분량이 나왔는데, 사실 나도 쉽지 않다. 노동량도 줄이고 고료도 3배로 받으면 가난에 시달리는 나도 좋지 않겠는가? 아니 세상천지에 같은 고료에 짧게 쓰고 싶지 않은 글쟁이가 있을 리가. 그러나 역사의 줄기를 놓치지 않고 재미를 느끼려면, 필요한 만큼은 이야기를 한 묶음으로 정돈해야 한다. 지난 편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복원되고, 흥미가 재생산되고, 본격적으로 내용에 몰입하고, 다 읽었을 때 포만감을 느끼려면 A4용지 열 장이 훌쩍 넘어간다. 나중에 책으로 묶으면 다 해결될 문제지만 나는 독자들이 연재를 실시간으로 감상할 때도 읽는 쾌감을 충분히 누리길 바란다. 생색내는 거 맞는데 진짜다. 나는 이 이야기 대충 풀 생각 없다.


그러니까 좀 참고 읽는 편이 좋지 않겠냐, 이 말이다.



다 읽었으면 팟캐스트도 들어라.


모든 교양은 남얘기다. 안물어봐도 알려주는 남얘기, [안알남]이 절찬리 방송중이다. 개신교 특집, 조선의 성풍속사에 이어 페미니즘과 메갈리아의 민감한 이슈에 풍덩 입수했으니 독자여러분도 함께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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