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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전인환
음악: 조동희
촬영: 김동효
15세 관람가 / Color / 95분

 

 


#그런데 백무현은?

 

 


......

 


좀 의외였다. 대통령 취임 순서 상으로 봤을 때, 2년 전 광주국제영화제를 통해 공개됐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다큐멘터리인 <김대중>이 먼저 극장 개봉망을 탈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작품은 아직까지 소식이 없고, 대신 다른 감독이 만든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다큐멘터리가 먼저 극장 개봉을 하게 되었다. 개봉 전인데도 '어둠의 노사모'(최근에 그 정체가 현 청와대인 것으로 밝혀져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들에 의해 미리 네이버 영화 쪽에서 관객 별점이 매겨져 있던 <무현, 두 도시 이야기>다. 상영관의 수가 적은데도 불구하고 의외의 관객몰이를 하며 순항 중이라, 먼저 개봉한 최승호 감독의 <자백> 현재 관객수에도 이를 수 있지 않겠나 싶을 정도다. '엄청난 곳'에서 개봉 전부터 알아서 별점 매겨서 홍보해 줬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겠지만. 작품의 제목이 찰스 디킨스 작가의 소설인 <두 도시 이야기>를 인용했는데, 안타깝게도 내가 아직 그 소설을 읽지 못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 개봉할 당시부터 읽는다 읽는다 다짐해 놓고 농땡이 피운다고 여태까지!) 그러므로 소설을 끌고 들어오는 것은 하지 않기로 하겠다.


어...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작품은 부산 북강서 지역 출마 시기 노무현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동시에 그런 그의 모습에 호감을 가지고 지켜본 노무현 지지자들의 이야기 또한 담고 있다. 어떻게 보면 단순히 김원명 작가의 의견으로 국한되지 않고, 노무현이란 인물에 대한 대중의 열광이 절대 2002년에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켜 주기도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들(대중)을 대표하는 사람은 과거 1987년에 박종철 열사의 추모시위를 부산에서 주도했다가 구속되었던 김희로 현 이사장의 아들인 김원명 작가다. 그는 과거 자신의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쭐래쭐래' 따라들어오던 변호사 시절의 노무현의 모습과 태도에 강한 인상을 받았으며, 그 때의 기억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며 이야기의 물꼬를 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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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루탄 연기로부터 버티는 중인 노무현과 김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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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문을 직접 수정하는 노무현



노무현이라는 인물은 당연히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줄 수 밖에 없다. 연설문 조차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데다 사이비 종교에게 실정을 맡겨 놓은 현 정부에서 살고 있다 보니 요즘 보면 더더욱. 고심하고 또 고심하며 자신의 연설문을 직접 수정하는 모습. 젠체하지 않은 채 자신을 낙선시킨 지역의 마음을 얻고자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 유세를 위해 탄 차 안에서 끊임없이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까지.


<두 도시 이야기>의 구절이 인용됐던 것도 모두 노무현과 연결이 된다. 최선의 시간이자 최악의 시간.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 믿음의 시절이자 불신의 시절. 희망의 봄이자 절망의 겨울. 우리에게 모든 것이 있었으면서 동시에 모든 것이 없었던 시절... 마치 꾸준히 출마 시도를 시도했던 그를 꾸준히 외면했던 지역. 누군가는 한결같이 믿음을 보여줬지만 누군가는 한결같이 그 믿음을 보여주는 사람을 불신했던 것에 비유된다. 작품 속에서 노무현이 희망을 품고 종횡무진하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나고자 하는 모습과도 연결되기도 한다. 우리는 10년 전만 해도 이런 사람이 대통령인 정부를 살고 있었고, 사회적으로 '헬조선' 대신 '웰빙' 을 외치는 시대를 살아 왔다. 그리고 대통령이 아니었던 훨씬 오래 전에도 계속 포기하지 않고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모습이 여기, 역사로서 남아있다.


그래서 결론.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다큐멘터리이지만, 사실 다 보고 나면 노무현에 대한 팬 무비라는 인상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팬 무비에는 말 그대로 팬의 마음이 깃들어 있기에 다루고자 하는 대상에 관해 그 애정이 충만하다. 그러나 이는 다루고자 하는 대상에 관하여 대부분 저자세로만 유지한다는 이야기도 된다. 이 작품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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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반부인 포장마차 신에서부터 좀 난감하게 받아들였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 작품은 각자의 생업 속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이 노무현이라는 인물을 추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각각 시각예술가, 사진 작가, 안무가 등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그들이 어떤 일(거의 봉사활동에 가까운)을 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신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 사람들이 각자 무슨 일을 하는지를 그들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순간인데, 마치 노무현이라는 인물로 인해 자기들이 이런 일을 하게 되었다는 감흥을 준다.


작품이 여기서 의도하고자 했던 바는 사실 소박했으리라. 이는 중반부에 김원명 작가가 인기 팟캐스트 프로그램인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 멤버들과의 술자리를 가지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퀀스에서 한 번 반복된다.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어서 공통분모라고는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노무현' 이라는 사람 하나로 어울릴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초반부에서 먼저 이런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었겠지. 그러나 어떤 인물이 중심이 되는 다큐멘터리이고, 그 중심인물이 자신에게 끼친 영향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지켜보는 타인이 설득될만한 방식으로 치환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으로 인해서 스스로 보기에 의미 있는 일을 하게 됐다? 이렇게 생각하면 접점이 잘 찾아지지 않는다. 그게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초반부 포장마차 신이다. 결국 초반부에 그들이 나오는 분량이 결코 적지는 않은데도 불구하고, 보고 있으면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곧 노무현의 유세 활동을 찍은 아카이브 영상들이 등장하는 부분에 이르면 거의 기억도 나지 않을 수준에 이른다. 이런 아쉬움은 뒤로 갈수록 더 커져 간다. 왜냐면 작품이 다루고자 하는 '무현' 이라는 사람이 노무현 뿐 아니라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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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백무현 만화가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을 만화로 그려왔으면서, 훗날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 여수에 출마했던 사람. 백무현 만화가는 선거가 끝난 후, 병으로 사망했지만 감독은 그를 따라다니며 인터뷰를 포함한 여수에서의 유세 영상을 찍어놓았다. 작품은 백무현의 여수 유세를 노무현의 부산 유세와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또다른 아쉬움이 발생하는 지점이 여기부터다. 백무현의 비중이 노무현만큼 높지도 않고 인상적으로 담아내지도 못한 것이다. 그제야 <무현, 두 도시 이야기> 라는 제목에 또다른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아. 또다른 무현인 백무현의 이야기구나. 분명 백무현은 이 다큐멘터리의 공동주연이다. 작품도 부산에서의 노무현의 행적과 여수에서의 백무현의 행적을 영상으로 연결시키며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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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거처로 보이는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노무현이 밤늦게 귀가해 어두운 풍경을 바라보다, 
현재의 풍경으로 바뀌고 그것이 현재의 전라남도 여수로 연결되는 시퀀스가 나온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출이다.



그러나 <무현, 두 도시 이야기>를 위해 모습을 드러낸 인터뷰 대상자들은 모두 노무현 전 대통령만을 기억한다. 백무현 화백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딱 한 명. 그를 인터뷰하러 간 김원명 작가 뿐이다. 결국 흐름 상 백무현 작가는 주연처럼 내세워 졌지만 조연에 가깝다. 작품은 그를 노무현에게 영향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처럼 다룬다. 영화로 치자면 조연 같다는 얘기다. 만약 그 정도로서 다루고자 했다면 굳이 백무현의 유세 활동을 담은 아카이브 영상을 그렇게 많이 삽입할 필요도 없었으리라. 애초부터 만들거면 확실하게 했었어야 했다.


작품이 백무현도 주연이라고 생각했다면, 노무현만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 관한 인터뷰도 많이 담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개별로 다큐멘터리를 만들 생각이 아니라면 노무현, 백무현이라는 인물을 최대한 동등한 비중으로 놓고 이야기를 만들던지. 그런데 이 작품은 그렇지가 못하다. 작품의 결말에는 '두 무현을 기리며' 라는 자막이 뜨지만, 그 중 한 사람인 백무현이란 인물을 다루는 비중이 약하다. 이럴거면 그를 왜 넣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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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의의는 하나다. 한국의 현대사에서 노무현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의미있는 정치인이자 대통령이었는지를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다는 의의. 지금 시국을 생각하면 국민에 대한 각성제로서 효과적일 수는 있겠다. 다만 백무현과 노무현을 연결시키고자 했던 시도가 잘만 이뤄졌으면 '다큐멘터리 자체' 가 고유하게 돋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에 대한 과거의 추억에서만 멈추지 않고, 그가 가고자 했던 길을 다른 사람들이 이어 받아서 가겠다는, 현재진행형의 다큐로서 말이다. 그러나 그 무현을 대신하여 가고자 했던, 같이 기억에 남았어야 할 또다른 무현은 어느샌가 작품에서 증발되어 버리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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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현, 두 도시 이야기>를 다 보고 나면 남는 사람은 노무현 뿐이다. 작품은 그를 그리워하는 데에서 멈춰 버린다. 어쩌면 부각 될 수도 있었을지 모를 고유한 매력은, 다루고자 하는 인물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홍준호


편집: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