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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소설<82년생 김지영>에 등장하는 지영의 다섯 살 아래 87년생 남동생에 대하여 상상하여 쓴 이야기입니다. 소설에서는 그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아, 김민수라고 지었습니다. 본 소설에서 장면과 대사를 몇 부분 빌려왔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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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씨는 1987년 여름에 태어났다. 김민수 씨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주부였다. 그가 태어날 당시, 큰누나 은영 씨는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작은누나 지영 씨는 여섯 살이었다. 그는 귀한 늦둥이였다. 작은누나와 자신 사이에 누나였을 수도 있는, 어머니가 지워버린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민수 씨가 성인이 된 이후다. 기다렸던 장손이 태어나자 한 집에 같이 사는 할머니는 김민수 씨를 끔찍이 여겼다. 중학생이 되어 스포츠머리를 하고 다닐 때 어머니는 민수 씨의 밤톨 같은 머리를 슥슥 만지며 '네 잘생긴 두상은 돌아가신 할머니가 아기 때 열심히 뒤집어 눕혔기 때문'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반면 편평하게 눌린 지영 씨 뒷머리는 말없이 쓰다듬기만 했다.

 

아버지의 봉급으로 여섯 식구를 건사하는 것은 무리였다. 어머니는 항상 그것을 채우기 위한 부업으로 바빴다. 민수 씨가 7살이 되던 해에 부모님이 살뜰히 모은 돈으로 집을 넓혀 이사를 갔다. 그 이듬해, 할머니는 새집에서 임종을 맞았다. 할머니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민수 씨를 바라보며 눈을 두어 번 깜빡거리신 후에 돌아가셨다. 어린 민수 씨에게 할머니의 빈자리는 꽤 크게 느껴졌다. 노인정에 따라가 먹던 눈깔사탕이나 호박엿 맛이 그리웠고, 누나들 몰래 받은 할머니의 쌈짓돈으로 오락실을 가던 재미도 뚝 끊겼다. 곧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민수 씨를 돌봐줄 사람은 이제 누나들뿐이었다. 중학생이 된 큰누나가 민수 씨의 알림장과 숙제를 봐줬고, 같은 국민학교에 다니는 작은누나가 손을 잡고 문방구에 들러 준비물을 챙겨줬다. 민수 씨에게 누나들은 엄마 같은 존재였다.

 

작은누나가 중학생이 되고 민수 씨도 숙제와 준비물 정도는 혼자 해내던 무렵, 어느 저녁이었다. 아버지는 늦게 들어오시고 엄마와 두 누나, 넷이 저녁을 먹었다. 밥이 어중간하게 남았었는지 라면 세 개가 끓여진 냄비와 두 공기 조금 안 되는 찬밥이 식탁에 올라왔다. 민수 씨는 무심코 면을 자기 국그릇에 건지다가 큰누나에게 별안간 꿀밤을 맞았다.

 

“야, 너 혼자 이렇게 많이 퍼 가면 우린 뭐 먹냐? 그리고 엄마 먼저 뜨셔야지 왜 너 먼저 떠?”

 

식사 때마다 아버지와 자기 밥그릇부터 놓이는 데에 익숙했던 민수 씨는 누나의 꿀밤에 당황했고 약간 서러워졌다. 큰누나는 어머니의 그릇에 면과 국물과 달걀 덩어리를 한가득 담고, 민수 씨가 담아 온 면을 절반이나 떼어 자기의 그릇으로 가져갔다. 그러자 어머니는 자신의 그릇에 담긴 면을 민수 씨의 그릇에 다시 덜었고, 큰누나는 소리를 빽 질렀다.

 

“엄마! 그냥 좀 먹어! 다음부터는 1인용 냄비에다 다 따로 끓여서 자기 것만 먹어!”

 

“언제부터 엄마를 그렇게 챙겼다고 라면 하나 가지고 이 난리야? 그리고 다 다른 냄비에 끓이면 그 설거지는? 니가 할래?”

 

“내가 하지 그럼. 나도 설거지, 청소할 만큼 해. 빨래 마르면 꼬박꼬박 개켜서 정리하고. 지영이도 그래. 우리 집에서 집안일 안 하는 사람은 딱 한 사람밖에 없어.”

 

큰누나는 민수 씨를 노려보았고, 어머니는 민수 씨의 잘생긴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직 어린애잖아”

 

“뭐가 어려? 난 열 살 때부터 지영이 가방이랑 준비물 챙겨주고, 숙제도 다 봐줬는데. 우리는 쟤만 할 때 걸레질도 하고, 빨래도 널고, 라면이나 달걀 프라이 같은 건 알아서 해 먹었다고.”

 

“막내잖아.”

 

“막내라서가 아니라 아들이라서겠지!”

 

큰누나는 젓가락을 탁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민수 씨는 꿀밤 맞은 자리를 만지며 오늘따라 기분이 안 좋은 큰누나가 괜히 자기한테 짜증을 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민수 씨도 분한 마음에 몇 마디 투덜거렸다.

 

“할머니 계셨으면 큰누나는 엄청 혼났을 텐데. 어디 여자애가 남자 머리를 때리냐고.”

 

그러자 이번엔 작은누나한테서 꿀밤이 날아왔다. 어머니는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작은누나 그릇에 라면 국물을 한 국자 덜어 주었다.

 

“따뜻한 거 많이 먹어야 한다. 옷도 따뜻하게 입고.”

 

저녁을 먹다 누나들이 왜 기분이 상했는지, 엄마는 왜 초가을에 때 이른 따뜻한 음식과 옷을 말하는지 민수 씨에게 그날의 저녁식사는 이상한 것 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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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도, 아버지의 명예퇴직도 민수 씨가 멋모르는 초등학교 시절 다 지나갔다. 퇴직금으로 장사를 시작한 부모님은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차린 죽 집이 잘되어 전보다 안정적인 수입을 낼 수 있었다. 집이 어려울 때 수험생활을 했던 누나들에 비해 민수 씨의 학창시절은 비교적 무난했다. 적어도 등록금 걱정을 하며 입시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민수 씨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초등학교 교사가 된 큰누나와 대학을 졸업하고 막 취직한 작은누나가 민수 씨의 용돈까지 챙겨 주었다.

 

민수 씨도 누나들만큼 성적이 제법 괜찮았다. 한 해 재수를 하긴 했지만, 서울에 있는 사립대학의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경영학을 택한 건 힘들게 취업한 인문대 출신 둘째 누나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권유였다.

 

“너는 남자애니까. 재수를 해서라도 좋은 대학 상경계열 나오면 나중에 취업하기 편할 거야. 힘내.”

 

07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한 민수 씨 동기 중에는 한 살 어린 동생도 있었고 한 살 많은 형도 있었다. 하지만 학번제 라는 것 때문에 서로 친구처럼 불러야 했다. 적어도 선배들 앞에서는 그래야 했다. 동갑인 선배들에게 존대를 하고 반말을 듣는 것이 좀 이상했지만 자기보다 어린 사람에게도 그래야 하는 삼수생 동기들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1학기 체육대회 날 결국 일이 터졌다. 뒤풀이 자리에서 나이 어린 2학년 선배의 짓궂은 하대에 자존심이 상한 신입생 삼수생이 술기운에 들이받은 것이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그 삼수생은 학과 ‘원로’인 예비역 선배들에게 불려갔다. 죄목은 ‘개념 없음’ 이었다. 2학기 때부터 그 삼수생은 학과 행사에 보이지 않았다. ‘아싸’(아웃사이더)의 길을 택한 것이다. 꽤 친하게 지냈던 동기 형이 밀려나는 것을 보며 민수 씨는 그나마 나이 어린 선배가 없는 자신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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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을 마치고 민수 씨는 08년 3월 군번으로 입대했다. 학번이 깡패였던 것처럼 군대도 계급이 깡패였다. 후임병은 선임병보다 많은 노동을 해야 하며, 고참들이 정한 규칙은 곧 법이었다. 여기에 잘 적응하는 병사는 개념 있는 ‘A급’으로 대접받았고 그렇지 못하는 병사는 ‘고문관’ 심지어 ‘폐급’이라 부르며 애물단지 취급을 했다. 김민수 이등병에게 그런 군대는 대학 신입생 생활과 묘하게 오버랩 되었다. 붙임성이 좋고 싹싹한 성격으로 마다하는 과 행사와 술자리가 없어 ‘A급’이라 불리며 선배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1학년 과대표 동기가 생각났다. 고단한 이등병 생활을 하며 민수 씨는 A급이 될 자신은 없었지만 폐급은 되지 말자 다짐했다. 탈영을 하지 않는 한 삼수생 형처럼 아웃사이더로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민수 씨도 내무반의 규칙을 정하는 고참이 되었다. 군대에서의 사계절은 똑같은 모습으로 반복되었다. 때가 되면 신병들이 들어왔고 여러 잡일과 ‘개념’을 배우며 적응해갔다. 민수 씨가 그랬던 것처럼. 민수 씨는 웬만해선 후임병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해야 할 때는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질서가 무너지고 사고가 나기 때문이었다. 계급이 낮을 때는 불합리하고 부조리해 보였던 것들이 계급이 높아지면서 저마다 다 나름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전역을 몇 달 앞두고 점차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민수 씨는 내무반 일에서 손을 떼고 책을 보거나 토익 공부를 했다. 걸레 빨던 이등병 시절부터 말년 병장까지 하루하루 성실히 해온 군 복무의 끝이 보이자 민수 씨는 뿌듯했고 잘 버틴 스스로가 대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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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을 하자마자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민수 씨는 복학생이 되어 학교에 돌아갔다. 신입생 시절 어렵기만 했던 선배들은 민수 씨를 반갑게 맞아줬다. 민수 씨도 군 생활의 무용담을 나누는 선배들과의 술자리가 불편하지 않았다. 학교 선배들을 대하는 것은 군대 선임병들과 지내는 것보다 훨씬 쉬운 것이었다. 선배들은 예비역이 된 민수 씨를 이전보다 부드럽게 대했다. 군대를 다녀오니 비로소 성인으로 인정받는 느낌이 들었다.

 

아르바이트로 교내 근로 장학생에 지원했다. 학생처 팀장은 민수 씨가 자기와 같은 부대 출신임을 듣고 매우 반가워했다. 면접은 금방 끝났다. 일은 어렵지 않았다. 복사나 간단한 서류정리 그리고 사무실 청소 정도였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도 학생처 팀장은 행정병 출신이라 일처리가 깔끔하다며 칭찬을 했다. 민수 씨가 3학년 때 교내 CPA 준비반에 들어가면서 근로 장학생을 그만두게 되자 팀장은 ‘군대 다녀온 빠릿빠릿한’ 후배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그 후 민수 씨가 졸업할 때까지 학생처 사무실에는 계속 남자 복학생들이 앉아있었다.

 

3학년이 시작될 무렵 민수 씨는 연애를 하게 되었다. CPA 반에서 같이 공부하는 09학번 과 후배였다. 녹록지 않은 수험생활에 같이 공부하는 여자 친구는 큰 힘이 되었다. 둘은 같은 강의를 듣고 같은 시간에 책상에 앉아 공부를 했다. 끼니는 주로 학생식당에서 해결했지만 가끔 학교 앞 새로 생긴 밥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지방 출신인 여자 친구는 학교 앞 투룸에서 동기와 자취를 했다. 지하철역과는 반대 방향이었지만 민수 씨는 공부를 마치고 나와 여자 친구를 항상 집 앞까지 데려다줬다.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기도 했지만 어린 시절 작은누나가 버스정류장에서 치한에게 나쁜 일을 당할 뻔했던 기억 때문이기도 했다.

 

첫 시험에서 민수 씨는 1차에 합격했다. 1차에서 떨어진 여자 친구는 CPA 반에서 나가 취업을 준비했다. 같이 밥을 먹고 같이 귀가하던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그 해 여름 2차 시험에서 낙방한 민수 씨는 다음 해 한 번 더 있는 2차 시험에 집중하기 위해 휴학을 했다. 여자 친구는 하반기 기업공채를 위해 취업스터디 모임에 가입했다. 얼굴 보는 시간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여자 친구의 스터디 모임은 종로로, 신촌으로, 강남으로 옮겨 다니며 정신이 없었다.

 

“이 시간까지 꼭 회식을 해야 돼?”

 

“스터디룸 예약 시간 때문에 다들 저녁을 못 먹어서 그래. 그냥 밥 먹는 거야.”

 

“그래도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곧 차 끊기잖아.”

 

“룸메도 이 근처에서 스터디하고 있대. 만나서 같이 택시 타고 가기로 했어. 걱정하지 마 오빠.”

 

“여자애들이 밤늦게 위험하게... 앞으로는 일찍 다녀.”

 

“오빠. 내가 지금 놀러 나온 거 아니잖아. 오빠만큼 나도 절실해. 밥 먹을 때도 중요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단 말이야. 그리고... 그 여자애들 여자애들 하는 거 안 하면 안 돼?”

 

각자 먹고사는 걱정에 치이는 시기였다. 전화통화와 카톡 으로만 안부를 나누는 사이에 점점 오해와 서운함이 쌓여갔다. 자신들도 모르게 예민해져있었다. 매일 붙어있던 고시반 시절이라면 오래가지 않았을 말다툼으로 그들은 끝내 헤어졌다.

 

 

민수 씨가 집과 고시반을 오가며 절치부심 다음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때, 집에 슬픈 일이 생겼다. 작은누나 지영 씨에게 마음의 병이 찾아온 것이다. 추석이 이주 정도 지난 어느 날 밤 매형이 어두운 얼굴을 하고 혼자 처가에 들렸다. 정신과 상담을 받은 결과 누나가 산후우울증과 육아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명절날 시댁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내는 분열 증세를 보였다고 했다. ‘저 혼자 알아서 큰 딸’이라며 대견해했던 부모님은 큰 충격에 빠졌다. 민수 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회사에 묶여있는 매형을 대신해 민수 씨가 누나와 병원을 다녔다. 일주일에 두 번 병원에 들러 45분씩 상담을 받고 항우울제와 수면제를 처방받아왔다. 누나의 면담이 끝나면 의사는 민수 씨를 따로 불렀다. 누나가 말한 어린 시절에 관한 기억들이 민수 씨의 기억과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민수 씨가 너무 어려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은 부모님이나 큰누나에게 전화를 해 확인했다. 누나는 민수 씨가 라면을 먹다가 꿀밤을 맞던 이상한 어느 저녁 날에 대해서도 의사에게 말했다. 그날은 작은누나가 첫 생리를 한 날이었다. 그제야 민수 씨는 왜 엄마가 작은누나에게 때 이른 따뜻한 음식과 옷을 말했는지, 왜 누나들이 기분이 상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누나와 조카를 뒤에 태우고 운전을 하는 내내 민수 씨의 마음은 하염없이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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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권유에 따라 누나는 당분간 친정에 와서 지내고 있다. 누나는 아직 민수 씨 앞에서 다른 사람 목소리를 낸 적이 없다. 어릴 때처럼 다정하고 살가운 모습 그대로였다. 가족 중에는 아버지만 유일하게 그 모습을 봤다. 누나가 고등학교 시절 버스정류장에서 치한을 만났을 때 구해준 어느 여자의 목소리였다.

 

“왜 이 아이를 혼내셨어요. 잘 달래주셨어야죠. 이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어요. 그 남자가 나쁜 놈이잖아요.”

 

그날 아버지는 지영누나를 끌어안고 많이 우셨다고 한다. 아버지가 눈물을 보인 건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느 일요일이었다. 부모님은 외출하셨다. 민수 씨는 모처럼 독서실에 가지 않고 집에서 쉬며 조카와 놀아주고 있었다. 낮잠에서 깬 누나는 조카 이유식을 챙겨주고 라면 두 개를 끓였다. 집게로 면을 들었다 놨다 하며 누나가 물었다.

 

“여자 친구는 잘 만나고 있어?”

 

헤어졌다는 걸 누나는 아직 모르는 모양이었다. 민수 씨는 사실대로 말할까 하다가 건성으로 ‘응’이라고 대답했다. 꼬들꼬들하게 잘 끓여진 라면 냄비와 국그릇 두 개를 사이에 두고 누나와 식탁에 마주 앉았다.

 

“잘해줘. 너도 공부하느라 힘들겠지만 그 여자애도 취업 준비하는 거 힘들 거야.”

 

누나가 민수 씨 그릇에 면을 한가득 담으며 말했다.

 

“너무 많아. 누나도 먹어야지.”

 

누나는 숟가락으로 국물 한 모금 떠 마시곤 너무 뜨거웠는지 미간을 익살스럽게 개구쟁이처럼 찌푸렸다.

 

“괜찮아. 어렸을 때 할머니 몰래 네 분유 많이 뺏어 먹었거든.”

 

누나 어깨너머로 오늘따라 울지도 보채지도 않고 거실에서 새근새근 잘 자고 있는 조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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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병아리


편집 : 딴지일보 인지니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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